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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11화)
3. 수련(修鍊)(3)


호흡이 익숙해지자 성구몽이 내 몸의 여기저기를 검지로 찔렀다. 그러자 찔린 곳에서 화끈한 기운이 올라오더니, 마치 고춧가루라도 먹은 것처럼 몸이 따뜻해졌다. 성구몽이 마지막으로 내 단전(丹田) 부분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사룡진혈법(死龍眞血法)으로 네 요혈(要穴)을 자극하고 진기가 흐르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호흡을 하면서 뜨겁게 느껴지는 부분으로 ‘공’을 굴려라. 네 몸속에 불타는 작은 공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라. 마지막 도착점은 단전이고, 단전에 도착한 후에는 정수리로 다시 공을 끌어올려라.”
나는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성구몽의 말에 따라서 호흡을 반복했다. 그러자 확실히 그의 말대로 탈 것처럼 뜨거운 공이 전신을 마구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건 원래 체내의 혈(穴)을 공부해서 외우고, 내가 알아서 소주천을 돌려야 하는 과정이었다. 혼자 하려면 적어도 두 달이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공력이 초절정에 이른 성구몽이 도와줬기에 한 번에 나는 소주천(小周天)을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소주천 한 바퀴를 돌리고 나자, 성구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왠 조그마한 항아리 두 개를 내 옆에 놔두었다.
“자, 오늘부터 열흘 동안 힘내라. 이건 벽곡단과 오물통이다.”
“네?”
내 반문에 성구몽이 싸늘하게 말했다. 약간의 증오와 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내 내공까지 소모하며 기초를 도와줬으니, 나머지는 네가 할 일이지. 넌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열흘 동안 호흡만 반복해라. 이 명령을 어길 시에는, 내 손으로 태오 네놈의 목숨을 끊겠다.”
쾅!
그리고 밀실의 철문이 닫혔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빛이라고는 희미한 향불밖에 없는 이 밀실에서, 먹지도 못하고 열흘 동안이나 계속 숨쉬며 수련만 해야 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사실은 마지막에 했던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그 말을 할 때 성구몽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별호에 혈마(血魔)가 들어갈 것 같은 위인이니, 내가 명령을 어기면 그대로 실천할 게 분명하다.
목숨을 걸고 미친듯이 하는 수련, 이게 바로 만인일귀의 과정인 것이다.

* * *

성구몽 장로가 밀실에서 나와서 햇빛을 맞을 때, 그의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조해하시는군요, 형님.”
태월하 장로가 팔짱을 낀 채 문 옆에 서 있었다. 실력만으로 치면 유극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이며, 강호에서 활동할 때는 육의육신류(六意六神流)의 달인(達人)으로 장강 일대에서 사신(死神)으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그는 태어나서 딱 세 번 패배한 일이 있다.
제일 처음은 바로 눈앞의 성구몽 장로와 팔백 초(招)를 겨뤄 패배를 인정하고 의형제의 동생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은 전대(前代) 유극문주와 싸우던 중 그의 의기에 감복해서 전투를 포기했다. 마지막은 검성전(劍聖戰) 최후의 관문, 천룡전(天龍戰)에서 마왕(魔王)에게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천하제일로 향하는 길을 포기해 버렸다.
태월하 장로는 자신에게 생애 최초의 패배를 안겨 줬던 성구몽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화가 났어도 성구몽에게 제자를 양보했던 것이다.
힐끔 태월하를 바라본 성구몽이 말했다.
“사범 애들과 대련해 줄 시간 아닌가?”
“허약해서 버티질 못하더군요. 실전이었다면 강호에서 좀 한다는 놈들을 상대로 이백 초 이상 못 버틸 겁니다.”
태월하의 대답에 성구몽이 쓴웃음을 지었다. 보나마나 육의육신류의 절기를 사용해서 죽기 전까지 팼을 것이다. 매일같이 사범들이 태월하 장로와 대련하면 골병들겠다고 하소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장로들은 격한 대련이 무공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 강도를 약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극문의 사범은 총 다섯 명, 그들 하나하나가 십오 년 이상 유극문의 무공을 수련해서 일류급의 고수들이다. 강호의 내로라하는 명문대파의 고수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태월하의 평가는 매우 가혹했다.
“태월하. 자네 기준은 너무 엄격해. 애초에 ‘좀 한다’는 기준이 높잖나. 자네는 지룡전(地龍戰) 수준의 고수들과 상대할 경우를 두고 말한 게지?”
“그럼 누구를 기준으로 잡습니까, 지룡전급 고수를 이길 수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인데.”
불만스럽게 중얼거린 태월하가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천휘문(天輝門)뿐만이 아닙니다. 이곳 환령은 정주 지방에서 섬서나 호북(湖北)으로 이동하는 목줄기이며 요충지. 벌써 화산파(華山派)나 종남파(終南派), 무당파(武當派)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게는 모령문(模嶺門)과 환사문(幻絲門)도요.”
“그렇겠지. 소림사(少林寺)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여기를 영향력에 넣어야 할 테니까.”
중원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명문대파의 집단인 구파일방(九派一邦)끼리 역사상 크게 다툰 적은 없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무공이 우위란 걸 입증해서 중원제일이 되기 위해 서로를 견제했다. 그중에서도 소림사는 가장 커다란 세력이라서 도가 삼대파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밟아 놓고 싶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성구몽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 년 후라면 그들 중 어떤 세력도 감히 우리에게 시비를 걸 수 없을 걸세. 문주의 유극신공은 그때라면 팔절(八絶)에 도달할 게야.”
성구몽의 말에 태월하가 흠칫 놀랐다. 그는 단순히 현재 유극문의 어려운 상황을 푸념했을 뿐이지만,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문주의 성취는 현재 장로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였다.
“정말입니까? 아무리 문주가 천재라지만 그 나이에 팔절의 경지에…….”
팔절은 흔히 천무검결(天武劍決)이라고도 불렀다. 젊었을 적 세 장로가 전대 유극문주에게 패배했을 때도 팔절의 천무검결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문주가 며칠 전 폐관수련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 오절의 경계를 뚫고 육절(六絶)의 한계를 돌파하기 직전이야. 겨우 일 년 동안의 폐관수련이었지만 문주 또한 틀림없이 심연을 겪고 엄청난 성장을 이뤘어.”
“과연…… 천인일재(千人一才)군요.”
태월하는 감탄했다. 그 자신도 일가(一家)를 이룬 달인이라서 이제 와서 재능 가지고 유치하게 질투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재능의 위대함에 순수하게 놀랄 뿐이다.
유극신공(有極神功)은 본래 ‘무공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념 아래 만들어진 특이한 무공이다. 무극(無極)은 건방진 소리라고 여기고, 인간의 한계 내에서 최강(最强)을 이루겠다는 소심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소심한 무공명과는 다르게 유극신공은 십 년 전의 검성전(劍聖戰)에서 천하일절(天下一絶)로 공인받았다.
전대 문주는 인(人), 지(地), 천(天)으로 이루어진 수도 검성전에서 마지막 천룡전에서도 사강(四强)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천하에서 네 손가락에 꼽히는 절세고수(絶世高手)였던 것이다.
그때의 전대 유극문주가 이루었던 진경(進境)은 구절(九絶)이었다. 이론상 십절(十絶)까지 존재하는 유극신공을 구절까지 성취한 건 전대 유극문주가 사상 최초였다.
만일에 전대 유극문주가 검성전에서 생환했다면 틀림없이 유극문은 구파일방에 견주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태월하는 십 년 전의 일을 회상하자 저절로 먼 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문주는 복수할 수 있겠군요.”
“그건 모를 일일세.”
성구몽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나도…… 그 벽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어. 전대 문주도 예외는 아니었지. 무엇보다 구절(九絶)의 유극신공을 달성하지 못하면 수도에 살고 있는 노괴물(老怪物)조차 이길 수가 없지.”
“암담하군요.”
“어쩔 수 없지.”
성구몽은 팔짱을 꼈다. 그의 눈에서 희미하게 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주가 힘을 갖출 때까지 유극문을 보호하는 것일세. 너무 바깥의 잡놈들에게 신경 쓰지 말게, 노제(老弟).”
“후후 노제라. 저도 꽤 나이를 먹었군요.”
“클클. 누군 아닌가?”
두 사람은 잡담을 나누며 웃었다. 쌓여 있는 말도 많고 분노도 깊었지만 늘 분출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인생은 흐름이기 때문에 이따금 아무 일도 없는 양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월하가 성구몽 뒤의 건물을 힐긋 바라보았다.
“설마 태오(太烏)라는 녀석이 천인일재입니까?”
태월하가 성구몽에게 양보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성구몽이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처음 봤기에, 혹시 태오가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그건 모른다네. 그리고 천인일재든 아니든 달라지는 건 없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월하의 반문에 성구몽은 아름드리나무 밑으로 가서 앉았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그는 천천히 말했다.
“노제. 나는 말일세, 전대 문주가 패배했을 때부터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어. 천하인들이 천재라고 칭송하는 천인일재…… 그리고 한 가지에 미친 끝에 귀신이나 달인이 되어 버리는 만인일귀. 이 뛰어난 초고수들이 근 오십여 년 동안 중원최강의 칭호를 탈환하지 못하는 걸 보고 말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