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카이렌 1권(8화)
제5장 묘인족을 훈련시키다(2)
“젠장! 우리가 이런 꼬맹이한테 뭘 배워야 한다는 건데?”
칸과 시안나, 그리고 케냐 이 세 사람이 발 벗고 나서도 나머지 일곱 놈팡이들은 여전히 틱틱거리며 전혀 협조할 생각을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여섯 놈이로군. 의외로 세이란은 적극적으로 내 말을 들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카이렌! 나 어때? 오늘 특별히 털 손질을 다시 하고 나왔는데…… 응? 괜찮지?”
하지만 그 적극성이 넘쳐흐르다 못해 아예 내게 엉겨 붙으려고 하는 통에 도리어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젠장! 이 계집애는 그새 케린을 걷어차 버린 거냐?’
나와 세이란을 보는 케린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풀풀 날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그리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털북숭이 묘인족 여자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저렇게 엉덩이 가벼운 여자도 더없이 질색이란 말이다.
결국 세이란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결코 고울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차갑다 못해 서리까지 풀풀 날리는 내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이란은 여전히 꿋꿋하게 내게 달라붙었다.
‘젠장! 묘인족 여자는 이래서 싫단 말이야.’
뭐! 사실 강한 상대에게 눈길을 돌리는 건 묘인족 여자에게 있어서는 본능에 더 가까운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일례로 칸이 내게 패하고 나서 스물네 명이나 되던 칸의 와이프 중 태반이 칸에게 등을 돌려 버렸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물론 칸을 떠난 여자 중에는 은근히 내게 접근하려 드는 골 빈 여자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든 제대로 할 마음이 없는 녀석은 여자라고 해도 굳이 내가 봐줄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 쇄기를 한번 박아 둘 필요성을 느낀 나는 그놈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소리쳤다.
“할 마음이 없는 녀석들은 떠나도 된다. 하지만 떠나고 싶거든 일단 먼저 나랑 한판 붙고 나서 떠나. 그게 아니면 겁먹고 도망가는 걸로 취급하겠다.”
내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묘인족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묘인족에게 있어 개와 더불어 겁쟁이에 비유되는 것 역시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서열 2위 쿠렌이 울컥해서는 자리에서 뛰어나왔다.
하지만 칸도 당해 내지 못한 나를 고작 서열 2위의 쿠렌이 당해 낼 수 있을까?
결국 쿠렌은 크로캅을 흉내 낸 내 하이킥에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내 승리가 요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서열 3위인 카이렌이(물론 나와 동명이인이다. 역시 너무 흔한 이름이란 말이야) 용기 있게 나섰지만 무에타이 기술을 적절히 혼합한 내 니킥 한 방에 그대로 나가떨어져 혼절을 하고 말았다.
하긴! 상대의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그대로 뛰어올라 콧잔등을 무릎으로 찍어 버렸는데…… 그래도 멀쩡히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괴물이겠지.
어쨌든 서열 2, 3위가 모두 한 방에 나가떨어지자 다른 멤버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듯한 눈치였다.
“내 아버지에게 이미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희를 소집한 건 이 기술을 너희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다. 물론 너희는 내게 이 기술을 배워서 다시 우리 묘인족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게 기술을 배우면 그 어떤 묘인족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발을 탁탁 구르며 주위를 환기시킨 연후에 다시 말문을 이어 나갔다.
“단! 그게 싫다면 나도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앞으로 내가 묘인족에게 전수할 기술을 단 하나도 전수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 물론 스스로 싫다고 떠난 녀석이니만큼 내 기술에 굳이 아쉬워할 이유는 없겠지?”
“그런데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넌 도대체 그 기술을 어디서 배운 거지?”
하지만 의외로 엉뚱한 질문이 케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말에 내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싱긋하고 웃어 보였다.
“그게 궁금합니까? 하지만 내가 굳이 대답해 줄 필요성은 못 느끼겠군요. 요는 ‘어디서 배웠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지금 알고 있느냐!’일 테니까요. 만일 그래도 궁금하다면 그냥 나 스스로 창안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세요. 어쨌든 다른 사람은 질문 없나?”
그리고 내가 다시 좌중을 둘러보자 다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했다. 일단 그 침묵을 무언의 동의라고 판단한 내가 다시 말문을 이어 나갔다.
“분명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아 둬라. 물론 고생스럽다고 중간에 포기하는 놈은 내가 손수 반병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리 알도록.”
그러면서 내가 한 손에 손톱을 모두 뽑아 들고 마나를 뿜어 대자 그 모습에 다들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하긴! 내가 칸 수준의…… 아니! 칸보다 한층 더 선명한 마나를 뿜어 대고 있으니 확실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역시 홍안의 묘인족이라는 건가?”
하지만 문뜩 서열 6위의 제이커라는 놈이 내뱉은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저 홍안이라는 말은 내 일생에게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될 것 같군. 어쨌든 나는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있는 힘껏 내 손톱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나가 내 손톱에 맺히는 걸로도 모자라 손톱 밖으로 길게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홍안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입에 담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 아가리를 두 번 다시 놀리지 못하도록 단번에 찢어 버릴 테니까.”
하지만 제이커는 내 말보다는 내가 뿜어 대는 마나를 보고 더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놀란 건 비단 제이커만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뿜어내는 마나에 제이커는 물론이고 칸까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서…… 설마 소드 킹(Sword King) 수준이란 말인가?”
“…….”
그제야 나는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길게 마나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호오라! 마나란 건 이런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했군.”
사실 나도 마음껏 마나를 내뿜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이런 식으로 마나를 사용해 보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간 식으로 하면 마나를 검에 머물게 하는 게 소드 나이트(물론 묘인족의 경우에는 그게 손톱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검 밖으로 마나를 길게 뿜어내는 게 소드 킹이라고 했던가?
그럼 나도 결국 소드 킹 수준의 무사란 소리인데…… 어쨌든 이제껏 묘인족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칸조차 인간 식으로 말하면 소드 나이트 최상급 정도에 불과했다.
‘쳇! 이래서는 남들보고 홍안이라고 뭐라 하지 말라는 소리도 못하겠군.’
결국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마나를 거두어들였다. 어쨌든 홍안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범한 묘인족이라면 감히 꿈도 못 꿀 힘을 가지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선발된 열 명의 묘인족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서 훈련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물론 한 부류는 일곱 명으로 구성된 남자 멤버, 그리고 나머지는 세 명으로 구성된 여자 멤버들이다. 그리고 나는 남자 멤버에게는 대한민국의 거친 특공 무술을, 여자 멤버에게는 주로 상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유도나 호신술 같은 기술을 위주로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멤버를 나눈 것은 남자 멤버를 호되게 훈련시키기 위함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다.
“어허! 복창 봐라. 그것밖에 소리를 못 지르나? 너희가 그러고도 묘인족의 절대 강자란 말이 입에서 나오더냐?”
물론 특공대에서 갈고닦은 훈련이 여기에 고스란히 녹아 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훈련 기간도 딱 2년으로 잡았고 그 2년은 정신 상태가 썩어 빠진 이놈들에게 한국의 특공 정신을 가르치기엔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쨌든 묘인족의 체력에 맞춰 내 특공 훈련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일곱 명에게 격파 훈련이랍시고 마나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바위를 쪼개는 훈련이나, 혹한기 훈련이랍시고 꼴랑 속옷만 걸친 차림으로 설산을 등반하게 하는 짓도 서슴없이 감행시켰다.
훈련 초기에는 여자 멤버들이 왜 자신들은 저런 훈련을 받지 않는 거냐고 강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말도 입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터프하기로는 대륙 최고라고 알려진 묘인족들이(그것도 최강이라는 서열 6위까지의 남자들이……) 지쳐 쓰러져 잠결에 ‘이곳은 지옥’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일 정도라면 이미 할 말 다 한 것 아닌가?
그나마 의외라면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케린이 생각 외로 내 훈련에 잘 버텨 준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케린을 남자 멤버에 포함시킬 때만 해도 금방 뒤처져서 바로 여자 그룹으로 옮겨 갈 줄만 알았다. 물론 그래 봤자 훈련의 방해 거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따라온다는 게 어디인가!
‘훗! 역시 저 녀석도 영 소질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군.’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나에 대한 악감정 하나만으로 이 훈련을 억지로 버텨 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2년이란 세월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의외로 그 열 명의 멤버는 낙오자 없이 내 훈련에 잘 따라와 주었고 내 바람대로 훈련 초창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현격하게 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돼먹지 않은 놈들이 대가리가 좀 굵어졌다고 내가 딱 성인식을 끝마치자마자 작정이라도 한 듯 내게 도전을 해 오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하필 그중에서 일 번 타자가 바로 칸이었다. 칸이 말했다.
“훗!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군. 넌 내게 너한테서 배운 기술로 다시 재도전할 거냐고 물었었지? 물론 너에게 이길 자신은 별로 없지만 어쨌든 이게 그에 대한 내 대답이다.”
크크큭! 첫인상은 개판이었는데 의외로 아버지 당신! 꽤 마음에 드는 성격인데? 어쨌든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할 나도 아닌지라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대결은 어떤 식으로 할까? 아버지? 마나 없이 기술로만? 아니면 서로 있는 힘을 다해서?”
물론 내 말에는 다분히 의도가 깔려 있었다.
사실 이제껏 훈련을 시키면서 나는 마나의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시켰던 것이다. 일단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마나 같은 건 오히려 방해만 된다. 일종의 반칙 같은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순수한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마나의 사용 없이 맨손만으로 대결을 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건 진정한 강함이라 할 수는 없다. 사지에서도 본능의 힘을 숨긴 채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말해 내가 생각하는 묘인족의 강함이란 묘인족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그 특유의 힘과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을 얼마나 잘 융합해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내 말은 훈련이냐 실전이냐의 차이인데…… 훈련이라면 또 모르되 만일 실전이라면 내가 홍안의 묘인족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있는 힘을 다해서다.”
그리고 칸은 역시 내 예상대로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내가 이기면 최강의 명예와 함께 족장의 자리도 되찾을 거니까 너도 부디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그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말이야. 내가 있는 힘을 다한다는 건 당신한테 너무 불공평한 싸움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칸은 내 웃음이 불쾌했는지 약간 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참에 확실히 말해 두는데…… 나도 분명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니 절대 무시하지 마라.”
그러면서 칸은 한 손에 다섯 줄기 검강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호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감탄만 늘어놓았다.
흔히 검에 마나가 맺히는 것을 두고 검기, 또는 마나 블레이드(Mana Blade)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칸처럼 검 밖으로 마나가 뿜어져 나오게 되면 그것을 두고 검강, 혹은 오러 소드(Aura Sword)라고 부르는데 흔히 말하는 오러 소드, 즉 검강은 소드 킹만의 전유물이었다.
다시 말해 칸도 지난 2년간의 혹독한 훈련으로 드디어 소드 킹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어쨌든 타고난 힘 때문에 뭔가를 배우고 성장한다는 개념이 쥐뿔만큼도 없던 묘인족에게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이전부터 거의 소드 킹에 근접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설마 단기간에 그 경지를 뚫어 낼 줄이야.
‘어쨌든 같은 소드 킹이라면 자신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하지만 칸이 지금 한 가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2년 전의 나랑 별반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착각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2년 동안 네놈들만 죽어라 훈련을 한 게 아니거든. 혹시 훈련 조교는 옆에서 마냥 놀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게다가 더불어 나는 그때 성인도 아니었단 말이지.
어쨌든 나는 칸의 검강을 보면서 도리어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너는 오러 소드를 내지 않을 생각인가?”
그걸 도리어 이상하게 여긴 칸이 조금 의구심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잘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묘인족의 전투라는 게 거의 격투기 위주더라고? 하긴! 손톱이라는 타고난 무기가 있는데 굳이 검이나 창 같은 것에 의지할 필요는 없겠지.”
“…….”
“하지만 이곳 레바돈은 격투가 대신 검사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진정한 무인이라면 상대의 기술도 충분히 알아 둬야 하는 법, 아버지! 오늘은 내가 훈련의 마지막으로 그걸 당신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야.”
그러면서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두 손을 엇갈리도록 마주 쥐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을 조심스레 쥐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돌연 검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칸은 갑자기 검술 타령을 하는 내 의도가 적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잔뜩 경계를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그간 내게 당한 게 있다 보니 내 말을 그냥 허풍으로 듣지 않는 눈치였다. 어쨌든 나는 허공에 대고 마나를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