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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17화)
4. 반야(般若)(5)
이건 무협소설에도 나와 있지 않는 얘기다. 확실히 경공과 무공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 나와 있지만, 왜 그런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머리를 굴려 봐도 정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성구몽 장로가 왼쪽 손을 들어 올리고,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렸다.
“자 봐라. 왼쪽 손과 오른쪽 발이다. 너도 평소에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이다.”
“네.”
“사지(四枝)는 머리에서 명령하는 대로 움직인다. 해 보면 알겠지만 상황에 맞춰서 사지를 단순히 들고 내리는 것도 헷갈리기 일쑤다. 심도 깊은 무학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머리는 복잡해지는데 몸은 헷갈린다.”
부우웅!
갑자기 성구몽 장로의 몸이 엄청나게 빨라지더니 앞에 있던 나무에 권각(拳脚)을 연타했다. 내공을 실었는지, 도끼질을 몇 십 번은 해야 부러질 만한 나무가 기우뚱하며 허리가 끊어졌다. 성구몽 장로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건 아직 네 안력(眼力)으로는 파악할 수 없겠지만, 몽환권(夢幻拳)의 초식을 두 번 연환한 것이다. 왼발로 가격하는 동작과 허리를 축으로 비트는 동작, 경(經)을 모아서 장심에 모으는 동작, 힘을 빼면서 오른팔로 적의 공세를 견제하는 동작까지 네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하지. 이걸 그냥 생각하기도 힘든데 직접 펼쳐 내려면 매우 힘든 일이 된다.”
“경공의 발동작에 집중하면서 손발의 조화를 맞추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군요.”
“그렇다. 사실 네가 기본형을 토할 때까지 익혀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검술이든 권법이든 모든 동작에는 뜻(意)이 담겨 있고, 연마하다 보면 머리와 몸이 일체가 되어서 움직임의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단세를 미친듯이 연습하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검술 동작의 기본형이 되는 동작을 몸에 배여 놓게 하면, 당연히 파생되는 검초(劍招)를 시전할 때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나는 성구몽 장로가 가르쳐 주는 대로 소영검법의 기본형을 느리게 시전하면서, 전신의 경락에서 배출되는 기(氣)를 모아서 검끝에 모으는데 집중했다. 도중에 상체와 하체의 균형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소영검법에 포함된 소영보(消影步)라는 열두 가지 유형의 걸음걸이도 일일이 외워야 했다. 같은 소영검법 초식이라도 소영보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초식으로 변했다. 연환(連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검술을 수련하는 동안 들려오는 장로의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시간에 맞추려면 이 정도는 나흘 안에 끝내야 한다. 네 녀석은 사룡광마혈(死龍狂魔血)의 광혈인(光血印)을 익힐 때까지는 잠잘 시간도 없다는 걸 명심해라.”
“잠을 자면 안 된다니…….”
“나흘 후까지 이 수련을 끝내지 못한다면,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너에게 그 이상은 가르치지 않겠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성구몽 장로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기본형을 수련하느라 술시(戌時)까지 악에 받쳐 있는데, 졸리고 잠이 오는데도 계속 수련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 버렸다.
정말로 잠을 안 자면 체력 부족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까지 멀쩡하게 수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소영검법의 습득에 실패해서 성구몽 장로가 전수하지 않는다는 건 그리 좋은 뜻이 아니다. 성구몽 장로는 비전절기의 유출을 막고 싶어 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제자를 가만히 놔둘 위인이 아닌 것이다.
즉, 이것 또한 생사의 갈림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시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째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다음부터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깨닫고 기가 막혔다.
보통 무협 주인공들은 이렇게까지 고되게 첫 수련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복수를 목적으로 어두운 과거를 가진 경우는 달랐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처럼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안 익히면 장로가 나를 죽이니까 익히는 것이다. 무공 수련이 재밌긴 하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익혀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죽을 상황이면, 죽을 각오로 익혀 보고, 안 되면 죽으면 된다. 더 생각해 봐야 의미도 없다. 나는 눈이 충혈된 상태에서 저번에 육합천멸진 안에서 내공을 수련했을 때처럼 미친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의식은 침잠하지만 육체가 기계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휘두른다. 휘두른다. 몸에 배이게 한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덜컥!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내 자신의 의지였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던 기억이 존재하지만, 이성을 날려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새벽 동이 트지 않아서 사부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그냥 계속한다.
수련이 종료된 것은 이틀 후였다. 말 그대로 [안 자고] 계속 수련과 운기를 반복하던 중, 나를 지켜보던 성구몽 장로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는 약간 괴물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만. 이제 충분한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익혔는지 시험해 보겠다.”
“네.”
“삼 장 밖에 있는 저 나무를 적이라고 생각하고,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제거]해 봐라.”
나는 물끄러미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의 크기는 성구몽 장로가 부숴 버린 것과 비슷했는데, 역시 두 팔로 안아도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두꺼웠다. 게다가 참나무라서 단단하기도 할 것이다. 도끼를 들고 있어도 힘든 일을, 이런 장검(長劍)으로 하라니 무리한 주문이었다.
불생불멸…….
하지만 나는 반쯤 멍한 상태로 조용히 움직였다. 내 몸은 어느새 반사적으로 소영보를 펼치며 소영검법의 초식을 움직이고 있었다. 상체, 허리, 하체의 근육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움직이면서 좌측 대각선을 크게 잘라 내었다. 칼끝에서 우윳빛 검광(劍光)이 한 순간 치솟아 올랐다.
덜컹!
미끄덩 하면서 나뭇등걸이 나이테를 보이면서 잘려 나갔다. 나는 무아지경에서 빠르게 깨어나면서 검을 집어넣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손쉽게 해낸 것 같아서, 장로의 평가와 상관없이 기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자 성구몽 장로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수염을 푸들 떨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심(無心)의 검기(劍氣)…… 보통 쾌검수가 십 년을 각고의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는 경지를 손에 넣었단 건가……?”
“장로님?”
성구몽 장로는 내가 반문하자 정신을 차린 듯, 내 어깨를 두들겼다.
“일단 따라와라. 체력을 회복시켜야 하니, 내일은 하루 종일 푹 쉬거라.”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성구몽이 뭐라고 하든 알 게 뭔가. 일단 쉬고 보자!!
나는 다시 유극문 건물로 돌아와서 정신없이 잠에 취했다. 너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상황까지 다다르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울고 싶었지만 그냥 웃으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잠들기 전에 달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아, 깨어났을 때는 보름달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