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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20화)
5. 귀검(鬼劍)(2)


무공에 관한 한, 귀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섭리이자 법칙이나 다름없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뭐라고? 단 두 명이서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그래. 그럼 당초 예상보다 무위(武威)가 두 배는 뛰어오르지? 형님. 그만한 고수를 두 명이나 보유한 곳이 유극문이라고.”
“…….”
“내 생각이지만 그 두 명이 합공하면 나도 꽤 힘들 거야.”
그제야 천휘문주는 상황을 깨닫고 정색했다. 지금까지는, 반쯤은 복수하는 자신의 슬픔에 도취되어 있었지만, 아들의 죽음 이상으로 현실이 다가왔다. 겨우 두 명이서 귀검 장문영을 상대할 수 있는 초절정고수들이 존재한다면, 유극문을 치는 일은 전력(全力)을 기울여야만 한다.
“게다가 형님. 전대 유극문주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
“뭐? 어떤 사람인데?”
멍하니 쳐다보는 얼굴에, 귀검은 기가 막혀서 욕이라도 한사발 하고 싶었다.
“허허.”
동생으로서 그래도 형이라면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걱정없이 폐관수련에 들어갔던 참이다. 그런데 얘기를 해 보니, 현장에 있는 본인이 백 리 길을 떨어져 있던 귀검 자신보다 아는 게 없었다.
‘후우, 대체 먹어 치울 문파에 대해서 조사도 거의 하지 않다니, 형님 미친 거요? 천휘문이 구파일방 다음가는 세력이라고 해도 구파일방급은 아니잖소! 지금이야말로 검성전의 명예를 안고 조심스럽게 세력을 넓혀야 하는데, 왜 이렇게 경솔한 건지……!!’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참았다. 어느 정도는 귀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룡전(天龍戰)에서 화산파 대장로를 꺾고 천휘문에 거대한 명예를 안겨 준 게 귀검 자신이다. 이후로도 급속히 제자를 받고 세력을 늘리면서, 깝죽대는 사파나 적대 세력은 모조리 귀검 혼자서 쳐부쉈다. 그동안 연전연승만 하다 보니까 천휘문주의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차라리 은거를 빨리 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질이 떨어지는 형님이 문파를 말아먹기 전에, 최대한 문파를 흥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무수한 전투를 치르면서 천휘문의 선봉에 섰던 건 오로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귀검은 오만 생각을 지우면서 말했다.
“아, 그래. 십 년 전에 전대 유극문주가 다른 명호를 써서 출전했으니 모를 만하지. 그럼 혹시 천무검왕(天武劍王)이라는 명호는 들어봤어, 형님?”
“처, 천무검왕? 그는 천룡전 사강(四强)에 오른…… 천하 사대고수잖느냐.”
“맞아.”
귀검이 귀찮은 듯 말을 이었다.
“나는 도중에 천빙마녀(天氷魔女)에게 져서 탈락했지만 천무검왕은 흑천뇌제(黑天雷帝)를 꺾고 천하 사강까지 갔지. 현재의 유극문주는 천무검왕의 딸이야.”
“……!!”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조카, 장현익의 절여진 목을 들어 올렸다.
“조카의 목을 자세히 봤어? 난 보자마자 놀랐다고. 천무검왕이 검성전 때 보여 준 그 엄청난 쾌검결(快劍決)이 고스란히 스며 있어서.”
천휘문주의 눈이 홉떠졌다. 생전 처음 듣는 사실이다.
정말로 전대 유극문주가 천무검왕일 줄은 몰랐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천휘문은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걸지도 모른다.
“천하 사대고수, 천무검왕의 무공, 대체 어떤 걸지 궁금하지 않아 형님? 시골 문파라도 천무검왕쯤 배출했으면 제법 하는 편이겠지, 안 그래?”
“크…… 으윽…….”
귀검이 비아냥거렸지만 천휘문주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설프게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갑자기 문파의 명운을 걸고 항쟁을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무검왕의 사문(師門)과!
귀검은 비아냥을 멈추고 진중하게 말했다.
“형님.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호랑이 새끼가 다 크지 않았다는 거야.”
천휘문주가 고개를 들어서 동생, 귀검을 바라보았다. 귀검은 한량처럼 느긋한 성품에 생김새였지만 빈틈이 없고 뛰어났다. 분명히 이 상황에도 해결책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마 문파를 습격한 건 천무검왕을 흠모해서 유극문에 모인 무림의 은거고수들일 거야. 개개인이 충분히 천룡전(天龍戰)에 출전할 역량을 갖고 있어. 그들은 분명히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다시 말하자면 은거고수만 빼면 유극문은 별거 아니란 거지.”
귀검은 앉은 자리에서 대부분의 사실을 정황으로 추리해 내고 판을 짜고 있었다. 무력으로 일인자에 있으면서 군사(軍師)의 재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그렇군.”
“형님. 당초 계획대로 그냥 생각 없이 정공법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환령에서 전멸할 거야. 고수들이 길목에 은신하고 있다가 계책을 써 오면 일반 문도들은 버틸 수가 없다고. 그러니 우리도 확실하게 전력 우위를 바탕으로 조여 들어가는 편이 좋아.”
순간 천휘문주는 상황을 상상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휘문이 습격당했을 때처럼 산지와 연못에서 유극문의 고수들이 공격을 가해 오면, 학살이 일어난다. 귀검이 막아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허탈하게 병력을 소모하다가 정작 유극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정면 승부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았다.
“조여 들어간다고? 어떻게?”
“정식으로 유극문에 결투첩(決鬪牒)을 보내.”
“아니, 뭐라고!!”
천휘문주가 으르렁거렸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 아들을 습격해 살해한 놈들이다!! 유극문 놈들을 갈가리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에 점잖게 결투나 하자고?! 결투는 이기든 지든 한 놈씩의 목숨밖에 빼앗지 못하잖느냐!!”
“진정해 형님. 저쪽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
귀검이 나직이 말했다.
“결투는 삼전(三戰). 내가 나가면 무조건 일승(一勝)이야. 사람 하나가 귀중한, 조그마한 유극문에서는 핵심고수가 무조건 한 명 죽는다는 뜻이지.”
귀검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습격자들인 태월하와 채은, 두 사람의 무위는 일대일이라면 자기 손으로 충분히 꺾을 만했다. 물론 질 확률도 있었지만 얼마 전에 숭산에서 경지가 오른 터라 자신감이 있다.
“……!!”
“결투첩을 보낼 때 이쪽에서 상대를 지정해. 놈들은 거부할 수 없어. 거부했다가는 계책이고 뭐고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해 버려. 장기전으로 가면 골치 아프겠지만 놈들도 도박은 하고 싶지 않을 테니. 그리고 삼전의 승패가 어찌 나든 병력을 숨겨 뒀다가 한번에 결투장을 덮칠 수도 있어. 수백 명이 천라지망(天羅之網)으로 둘러싸면 살아나갈 놈은 정해져 있지. 한두 놈 살아남는다고 해서 강호에서 바뀌는 건 없잖아, 형님?”
“그, 그렇군.”
천휘문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숨통을 조이는 작전이었다. 결투장을 습격해서 멸문시키는 일은 매우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문파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강호에서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다. 잔재주를 못 부리게 전 병력을 모아 놓게 해 놓고 일망타진하겠다는 효과도 있었다.
천휘문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허나 삼전에서 나머지 두 명은 어찌한단 말이냐? 정말로 유극문에 숨어 있는 초절정고수들이 천룡전 수준이라면 널 제외하곤 상대할 자가 우리 문파에 없다. 두 명의 목숨을 그냥 버리란 말이냐?”
“그건 걱정 마, 형님.”
귀검이 눈짓을 까닥했다.
“어이 들어와.”
“예.”
“예.”
그러자 소리없이 두 명의 청년이 걸어들어 왔다. 그들은 기골이 헌앙하고 태양혈이 불룩 솟아 있어서 상당한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무공 수위를 눈어림으로 재어 본 천휘문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제자들이냐? 나이에 비해서는 뛰어난 성취지만 초절정 고수에 비하면 턱도 없다. 그자들은 초인(超人)인데 장난칠 계제가 아니다.”
“내 제자도 아니고 이 녀석들이 나가지도 않을 거야.”
“뭐?”
“이봐. 천휘문주님 앞이다. 사문과 이름을 밝히도록.”
귀검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사람이 부복하며 말했다. 익숙한 듯 빠르고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저는 마환곡(魔煥谷) 마환존자(魔煥尊者)님의 둘째 제자, 서융입니다.”
“저는 환사문주(幻絲門主)님의 제자, 광비입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입을 모아서 외쳤다.
“사부님들께선 천휘문주님의 복수전 및 결투에 아끼지 않고 조력하겠다는 약조를 하셨습니다. 약조의 증명을 위해 도착했습니다.”
“아, 아니? 마환곡? 환사문?”
천휘문주가 당황해했다.
마환곡과 환사문은 분명히 이 근처에서 천휘문을 은근히 넘보는 문파들이다. 전통의 강호로 세력이 천휘문보다 조금 못한 정도였다. 마환곡은 마도(魔道)에 가까운 문파였고 환사문은 정사지간(正邪之間). 확실한 건 경쟁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귀검이 말했다.
“난 마환곡주, 환사문주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내가 습격자의 무위를 판단했을 때 바로 전령을 띄웠지. 그들이 결투에 나가 준다면 전승(全勝)을 기대할 수 있을 거야.”
“그야 그렇겠지만…… 이들도 환령의 유극문을 노리고 있단 말이다.”
천휘문주가 곱지 못한 눈으로 좌중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마환곡주나 환사문주의 무공도 천룡전 육십사강(六十四强)에 들어갈 수준이다. 천룡전 출전 조건에 턱걸이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당한 절정고수인 것이다. 그들이 나선다면 왠만한 고수는 상대도 안 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