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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성전 1권(22화)
5. 귀검(鬼劍)(4)


“호신강기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확실히 해라.”
“잘 모릅니다.”
“흥.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라.”
성구몽 장로는 물을 벌컥 들이켰다. 고수라도 갈증을 느끼면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인간의 육체는 기(氣)를 두르면 매우 강해지지만 한계가 있다. 효율성이 외공(外功)을 따라갈 수가 없지. 시중에서 유명한 철포삼(鐵包衫)을 열심히 익히기만 해도 웬만한 화살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외공 없이 내공으로 이루는 경지는 적어도 사십 년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철인(鐵人)이 되는 건 매우 어렵고 구차한 일이지.”
“네.”
“기를 외부에 둘러서 선명한 호신강기를 만들 정도라면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봐도 좋을 게다. 그들도 언제나 두르고 다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극심한 내공 소모를 겪으며 시전하지. 무학의 최고급 전투술 중의 하나다.”
거기까지 설명한 성구몽 장로가 나를 사납게 째려보았다.
“나도 잘 못하는 걸 어찌 너에게 전수할 수 있겠느냐?”
“음, 그래도 죽을까 봐 불안한데.”
성구몽 장로는 내 징징거림을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네 팔자인 법이니 나에게 따지지 말아라.”
“물론 제가 죽는 건 제 팔자겠지만서도.”
나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제가 죽으면 장로님께서는 곤란하시겠죠. 장로님의 가르침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던 셈이니.”
성구몽 장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정곡을 파고들자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나는 여기서 잘못하면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눈치채고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 나름대로 배우는 속도가 빠르니까, 방어수법 하나쯤 전수해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허. 광혈인과 다른 수법을 동시에 익히겠다는 거냐?”
“시간이 없으니까요.”
“흐음! 하긴.”
장로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
이어진 말에 내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태월하에게 가자.”



6. 수선(水仙)(1)


“네? 형님.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성구몽 장로와 함께 태월하 장로의 처소에 왔다. 태월하 장로는 자신의 애검(愛劍)을 손질하고 있다가 우리의 방문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태월하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첫인상에서 내게 살기를 내뿜은 건 성구몽 장로뿐만이 아니다. 태월하 장로도 할 수만 있다면 나를 패 죽이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던 것이다.
내가 쫄아 있을 때 성구몽 장로가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 독문절학의 방어오의, 사룡포(死龍布)는 지금 전수하기가 어려워. 자네의 수선(水仙)은 습득이 빠르고 강력해서, 태오에게 익히게 하고 싶군.”
사룡포?
어차피 나를 사룡광마혈의 전수자로 선택했을 텐데, 어째서 방어절기를 전수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내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성구몽 장로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 그렇지만…….”
태월하 장로는 난처해하는 기색이다. 그는 닦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낚싯대를 집어들었다.
“아시다시피 수선은 제 독문절학입니다. 아무리 형님의 부탁이라지만 함부로 전수할 수가 없는지라…….”
“어차피 수선이 두려운 까닭은 특수한 비밀이 있기 때문이 아니잖은가? 이놈이 익히기 나름이니까 까다롭게 굴지 말게.”
“그게 더 문제란 겁니다.”
태월하가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능이 없으면 아예 익힐 수도 없는 수법인데, 과연 이놈이 그 짧은 시간에 터득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 수선이 뭐길래 이리도 호들갑인 걸까.
태월하의 태도가 완강한 걸로 봐서는 함부로 전수하지 않는 비기(秘技)인 게 틀림없다.
성구몽 장로가 은근한 목소리로 태월하를 꼬셨다.
“생각해 보게. 무심검(無心劍)의 난이도가 수선보다 낮을까? 내 생각에는 충분할 거 같은데.”
“흠…… 정말 기대를 많이 하시는 모양이군요.”
태월하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전수해 주겠습니다.”
“오늘은 광혈인을 연마해야 하니, 내일부터 사흘간은 태오를 자네가 맡아 주게.”
“사흘이라…… 넉넉하군요.”
나는 곧 성구몽 장로를 따라서 야산으로 되돌아 갔다. 성구몽 장로의 말대로 광혈인은 폭기의 요령을 발전시킨 느낌이라,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기초를 터득할 수 있었다. 내가 몇 번이고 복습하는 동안에 광혈인의 요령은 내 몸에 과일즙처럼 배어 들었다.
광혈인의 연성을 위해서 자세를 잡으며 기를 끌어 올리는 동안, 나는 문득 궁금함이 생겨서 질문했다.
“수선이 어떤 절기(絶技)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태월하 장로님도 참 아까워 하시던데.”
“흥, 복에 겨운 놈.”
성구몽 장로는 술병을 들이키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강 일대의 무림인들이라면 수선사계(水仙四季)를 익힐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게다…….”

“난 네가 싫다.”
다음 날 수선을 익히러 태월하 장로의 방에 갔을 때 들은 첫 마디다. 내가 무표정하게 그를 마주 보자, 그는 비직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싫은 놈에게 기술을 전수하다니, 짜증이 나는군.”
“안 하면 되잖습니까?”
퍼억!
그 순간 내 몸은 갑작스럽게 천지가 뒤집혀진 채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가슴팍과 얼굴이 얼얼한 걸로 봐서는, 짧은 순간에 적어도 열 대는 얻어맞은 듯했다. 폐가 아파 오면서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냈다.
“쿨럭!”
“말대답하지 마라. 난 성격이 나빠서 바로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
나는 태월하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성구몽 장로는 살기를 내뿜긴 했어도, 내가 제자라고 생각해서인지 자제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태월하의 살기는 말 그대로 정제된 초절정고수의 칼날과 다를 바 없다. 이 앞에서 농담이나 헛소리를 하다가는 그대로 심장이 멎고 말 것이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지만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문주를 포함해서 유극문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성구몽 장로의 원래 성격은 절대 태월하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감정을 가라앉힌 태월하 장로가 자신의 낚싯대를 쓰다듬었다.
“네게 가르칠 것은 수선사계(水仙四季)라는 감응법이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사절(四節)에 각각 열 개의 변화가 존재한다. 외워야 할 건 총 사십 개뿐이니까 오늘 내로 식(式)은 다 터득할 수 있을 거다.”
의외였다. 사십 개의 변화면 무공 중에서는 많은 것도 아니다. 복잡하다고 불리는 무공은 기본으로 일백 개가 넘었고, 어떤 경우는 이삼백 개나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천재가 아니라고 해도 하루만에 동작 마흔 개를 외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침묵 속에서 약 세 시진 동안 밥도 안 먹고 조용히 수선사계의 움직임만을 반복 연습했다. 동작은 특정한 공격이나 방어가 아니라, 마치 춤(舞)과 같이 불규칙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소영검법과는 다르게 동작에 어떤 뜻이 숨어 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동작을 어느 정도 몸에 붙일 정도가 되자, 나는 내가 무공을 수련하는지 춤을 추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자 태월하가 비웃었다.
“수선사계의 움직임 자체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장강 일대에서 식(式)을 따라할 수 있는 사람만 백 명이 넘을 거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수선사계를 알고 있지 못하다.”
“뭔가 비밀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그걸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닙니까?”
태월하는 내 항의를 못 들은 척 낚싯대를 가지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나가면서 툭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수선화의 호흡을 봐라. 네가 수선사계를 익혀도 내 수선사계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는 뒷산에 있는 강변으로 가 버린 듯했다.
태월하 장로가 늘 낚싯대를 들고 있는 건 고기 잡기를 너무 좋아해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태월하의 말에 끙끙거리면서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이 의미없는 춤사위 동작에 어떤 신묘한 무공이 숨겨져 있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수선화의 호흡은 무슨 뜻일까?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어 봤지만 그럴듯한 느낌이 찾아오지 않는다. 보통 무협 주인공들이라면 포기했을 때 갑작스레 깨달음이 찾아오게 되어 있지만,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점이 없으니까.
‘아, 귀찮아.’
결국 나는 한참이나 동작을 연습하다가 지루해져서 잡생각을 하게 되었다. 흔히들 잡생각이라고 불렀는데, 태월하가 낚시를 하고 있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었다. 난 태어나서 낚시를 해 본 적이 없기에 마냥 고기 낚는 게 재밌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낚싯대를 던지면 고기들은 왜 낚이는 걸까? 어떤 괴인이 독수리(鷹)의 부리는 왜 노랄까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쓸데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