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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10화)
제6장 노예사냥꾼(2)


결국 나는 채 몇 분도 안 돼 칸이 말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곳에 남아 있는 건 그냥 흔적뿐이었다. 그러나 그 흔적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닥불을 피웠군. 파헤쳐진 자리로 봐서는 대략 네 명 정도, 흠! 여기 발버둥 친 자리는 그 두 아이의 흔적인가? 아무래도 밧줄로 묶어 둔 모양이군.”
물론 딴에는 흔적을 지운다고 노력은 한 모양이지만 마음이 급했던지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쨌든 특공대 시절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꽤나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벌써 꽤 멀리까지 갔겠군. 그럼 묘인족의 모습으로는 아무래도 추적하기가 좀 번거롭겠지?”
그래서 나는 품 안에 넣어 뒀던 묘인족의 삼신기 중 첫 번째 붉은 구슬을 꺼내 내 모습을 예전의 강찬우 모습으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푸른 구슬도 꺼내서 그 아이들의 행적을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그 노예사냥꾼들이 아이들에게 이미 마나 동결 팔찌라도 채운 모양인지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노예사냥꾼이 남긴 희미한 흔적을 쫓아 서둘러 묘인족의 영역을 벗어났다.

***

처음에는 금방 뒤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노예사냥꾼의 행적을 밟는 건 의외로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잡것들이 내 추격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교묘한 함정으로 내 눈으로 속이거나, 아니면 가짜 흔적을 남겨 내가 몇 번씩이나 헛걸음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나마 마나를 두 눈에 집중하면 월등하게 안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내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거의 구분하기도 힘든 놈들의 흔적을 놓쳐 두고두고 후회할 낭패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놈들도 꽤나 프로라는 소리인가? 제기랄 것들…….’
어쨌든 하늘이 도우심인지 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놈들의 흔적을 놓치지 않고 계속 그 뒤를 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예사냥꾼의 뒤를 완전히 따라잡게 된 게 바로 그 녀석들을 뒤쫓기 시작한 후 딱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젠장! 이거 영 찝찝하네. 아무래도 누가 우리를 뒤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야.”
“별 걱정을 다 한다. 이 산속에 누가 따라온다고 그래?”
“혹시 묘인족 녀석이라도 하나 따라오는 건지 누가 알아?”
헛! 저놈 꽤나 예리한데?
사실 나는 꽤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서 눈과 귀에 마나를 잔뜩 집중해서 녀석들의 대화를 역시 엿듣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그건 내 존재를 눈치 채려면 적어도 나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저놈은 그저 감만으로 그걸 때려 맞추고 있으니…….
‘후훗!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에 불과할 테지…….’
대신 나는 지금은 완전히 지친 듯 잠들어 있는(또는 약으로 재웠거나……) 어린 묘인족 두 녀석과 대략 소드 나이트 정도로 보이는 검사 한 명을 유심히 바라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엔 저 소드 나이트도 적어도 상급 정도는 되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거참! 왜 저 정도나 되는 실력자가 고작 노예사냥꾼 따위를 하고 있는 거지?’
나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끔 귀족의 협조로 실력 좋은 가문의 기사들이 이렇게 노예사냥에 따라나서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잡아들인 노예는 당연히 그 귀족에게 싼 값으로 넘어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쨌든 저 정도 기사라면 내가 달려들기도 전에 묘인족 꼬맹이들에게 칼을 들이댈 확률이 높았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은 이 거리에서 지척에 있는 기사의 검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거군.”
물론 저 인간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가지가지였다.
결국 나는 잠시 목을 움직여 우두둑 소리가 나게 한 다음에,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북북 찢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손톱을 하나 뽑아 들고는(붉은 구슬로 모습을 바꾸고 있어도 본성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면 이렇게 인간 강찬우의 모습으로도 손톱을 뽑아내는 게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내 몸 여기저기에 가볍게 생치기를 냈다.
“휴우! 스스로 생살을 찢으려니 좀 거시기하군.”
하지만 묘인족의 뛰어난 치유력이라면 이 정도 상처쯤은 반나절만 지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로 말 그대로 피범벅이 되어 버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죽다 살아난 것 같은 모습처럼 말이다.
어쨌든 대강의 준비가 끝나자 나는 언덕을 내려가 비틀거리며 그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누구냐?”
물론 그놈들도 꽤나 뒤가 켕기는 놈들이다 보니 내 등장에 상당히 기겁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등장한 인간이 묘인족이 아닌 걸 확인하고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도…… 도와주시오.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내 리얼한(?) 연극에도 불구하고 그놈들은 별반 안색이 변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아니! 그런 날 보고도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는 게 아닌가!
“쯧쯧! 멍청하기는…… 여기는 몬스터가 밥 먹듯이 출몰하는 칸타네 산맥이라고…… 실력도 없는 것들이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찾아오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지. 근데 어디 사람이지? 아무래도 이 근처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그들도 나 같은 동양인을 그리 자주 보지는 못한 모양인 듯했다. 하긴…… 이곳 놈들은 죄다 양놈이었지? 흠! 그럼 레바돈에는 나 같은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는 건가?
“호오라? 생긴 걸 보니까 아무래도 남 대륙의 호이친 일족인 모양이군.”
하지만 그건 아닌 듯 그들 중 한 남자가 반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 인간 역시 나를 보고는 이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은 것이다.
“쯔쯔! 예쁜 여자거나 나이라도 좀 어리면 그나마 쓸 만하겠는데 이건 어디를 내놔도 쓸모가 없는 사내자식이로군. 호이친 일족을 이 근처에서 보는 건 꽤나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놈은 영 실속이 없겠는걸! 어쨌든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까 그만 꺼지시지. 아니면 네놈도 잡아서 노예로 팔아 버릴 테니까…… 물론 푼돈도 안 될 놈이지만 말이야.”
그리고는 저들끼리 뭐가 재미있는지 껄껄 웃어 대기 시작했다.
‘호오라! 이놈들 보게?’
아무래도 이것들은 인간의 양심이란 걸 모조리 전당포에 내맡겨 버린 놈들인 모양이다. 물론 노예를 잡아서 내빼고 있는 와중이니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기도 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 결국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고는 이내 당당하게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뭐…… 뭐냐?”
갑작스런 내 태도 변화에 놈들도 당황한 듯 죄다 허둥지둥 검을 뽑아 들었다. 물론 내가 유일하게 경계하고 있던 그 소드 나이트 역시 긴장한 듯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여전히 만만해 보였던지 그 누구도 어린 묘인족들에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내가 제일 경계하던 그 소드 나이트의 근처까지 다가가 말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단 한 마디만 해 주시오. 그럼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게 해 드리겠소.”
하지만 내 말에 그 소드 나이트는 도리어 잔뜩 눈살만 찌푸려 보일 뿐이었다. 아니! 도리어 다른 노예사냥꾼들에게 눈짓을 하며 나를 처리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훗! 내가 마지막으로 목숨만은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도 알아서 마다하는군.’
어쨌든 나도 결심을 한 이상 더 이상 거리낄 이유는 없었다. 살인에 대한 반감은 없느냐고? 훗! 망설이면 내가 죽는다. 적과 마주친 상황에서 살인이 무서워서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할 거면 애당초 총을 들지도 말았어야지.
스팟.
결국 나는 내게 달려드는 세 노예사냥꾼을 향해 단번에 손톱을 뽑아서 휘둘러 버렸다.
“크어어어억.”
당연한 말이지만 실력도 형편없는 녀석들이 내 일격을 버텨 낼 리 만무하다.
결국 그 세 녀석 모두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리가 두 동강이 나서 그대로 절명해 버렸고 놀란 소드 나이트도 허둥지둥 검을 뽑아 나에게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 역시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느리군.”
나는 그대로 그 소드 나이트에게 달려들어 그놈이 채 검을 뽑아 들기도 전에 녀석의 오른팔을 잘라 버렸다.
그 덕에 한창 발검 동작 중이던 그 소드 나이트는 팔죽지만 남은 어깨만 나를 향해 허무하게 휘둘러 보일 뿐이었다. 물론 실제 검과 그것을 잡고 있던 팔 부분은 철커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
잠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그 소드 나이트는 곧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팔을 보고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악!”
하지만 내가 네 돼지 멱따는 비명 소리나 들으려고 널 살려 둔 건 아니거든? 나는 그놈의 목을 움켜잡고는 벌떡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말해라. 이 아이들에게 무슨 약을 쓴 거지?”
“크으윽…… 쿨럭.”
하지만 내게 목젖이 잡힌 탓인지 놈은 쉽게 말을 꺼내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놈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말했다.
“그냥 두면 정신을 차리나? 아니면 따로 해독제라도 먹여야 되는 건가? 말해라. 그럼 목숨은 살려 줄 테니까.”
“쿨럭…… 서…… 설마 너는 묘인족이냐?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녀석의 배에 시원하게 발길질을 날려 버렸다.
퍽.
물론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기 때문에 아마 속이 꽤 망가졌을 것이다.
“크어억! 쿨럭…….”
아니나 다를까! 놈은 곧 피를 토하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는지 원망과 절망이 섞인 눈으로 간신히 고개만 치켜들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쳇! 그런 눈으로 날 바라봐서 뭘 어쩔 건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노예사냥 따윈 하지도 말았어야지. 어쨌든 이게 마지막 기회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약을 쓴 거지? 따로 해독제라도 먹여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 소드 나이트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야…… 약 같은 건 쓰지 않았다. 마…… 마법 스크롤로…… 슬립 마법으로 재운 거니까 한나절만 지나면 다시 일어날 거다.”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목숨만은 살려 주지. 뭐! 너도 무인이니까 오른팔을 잃은 것만으로도 더없이 큰 형벌이 되었겠지. 그러니까 앞으로 노예사냥 같은 건 꿈도 꾸지 마라. 다음에는 목숨이 날아간다.”
어쨌든 나는 대강 옷을 찢어 잘려 나간 팔에 지혈을 하고는 그냥 놈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들겨 주었다.
“너도 마나를 다룰 줄 아니까 지혈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대강 지혈을 해 뒀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
그리고는 잠든 두 아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 뒤돌아섰다.
“그럼 살아서 돌아가길 기원해 주마.”
그리고는 훌쩍 몸을 날려 다시 묘인족의 마을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물론 나라고 인간을 죽여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사실 나 역시 묘인족으로 살아온 세월보다는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이 훨씬 더 긴 놈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을 건드리는 놈은 그게 설령 신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

내가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두 꼬맹이도 이미 정신을 차린 후였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그 두 녀석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꼬마였는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울며불며 자기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하긴! 어린 나이에 꽤나 힘든 경험을 했으니…….’
하지만 반대로 칸은 내 형편없는 몰골에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꽤나 고생을 한 모양이로군. 네가 곤욕을 치를 정도로 강한 놈이었나?”
칸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그럴 거라는 생각은 별로 하고 있지 않은 눈치였다. 나 역시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는 태연스레 대답했다.
“아니! 이건 그냥 내 스스로 한 거야. 놈들을 방심시키기 위한 연극이었지. 그런데 그것보다…… 혹시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건가?”
사실 내가 이곳에 태어나고 나서 5년 동안은 단 한 번도 노예사냥꾼이란 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종종…… 그놈들도 머리가 있는 건지 잊을 만하면 찾아오더군. 마치 이쯤이면 경계가 어느 정도는 풀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듯이 말이야.”
그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인간, 아니 다른 종족의 노예로 잡혀 있는 묘인족은 몇이나 되는 거지? 대강 숫자 정도는 파악하고 있나?”
하지만 칸은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벌써 수백 년이나 이어져 오던 일이다. 이미 죽은 녀석이나 아니면 밖에서 태어난 녀석까지 생각하면 나도 정확한 숫자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때까지 이런 식으로 마을에서 잡혀간 녀석들을 대강 추슬러 보면 족히 천은 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