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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13화)
제8장 몬스터 사냥(1)
일의 진행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첸이 정보 길드를 통해 비싼 돈을 주고 입수했다는 정보에 의하면 트롤의 동굴은 지금 우리가 있는 크란트 마을에서 고작 하루 거리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나 혼자라면 끽해야 반나절도 안 되는 거리에 불과하지만 거치적거리는 애송이들을 꽁무니에 달고 다니려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 지체는 감수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들도 사냥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 나름대로 준비도 철저했다. 한마디로 트롤의 시체를 회수하기 위한 여러 장비와 새끼 트롤을 산 채로 사로잡기 위한 족쇄와 마법 스크롤, 그리고 작은 수레 등도 이번 여정에 같이 동반된 것이다.
‘젠장!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리겠군.’
결국 내 예상대로 트롤 동굴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만 이틀이 넘게 걸려 버렸다.
물론 굼뜬 애송이들이 꽁무니에 거추장스러운 짐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사냥만 끝나면 바로 떠나야겠군. 고작 검 하나 구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말았어.’
따지고 보면 이건 다 무기를 다루는 걸 수치로 삼는 우리 묘인족의 습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떻게 된 게 일만 명이 가깝게 사는 마을에 그 흔한 검 하나 없는 건지…….
어쨌든 우리는 정보 길드에서 제공한 정보대로 동굴과 함께 그 안에 살고 있는 트롤이라는 놈도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한 쌍으로 보이는 암컷, 수컷 한 마리씩과 세 놈의 새끼들을 말이다.
물론 정보 길드의 신뢰성이 대폭 상승하는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에서 제공한 정보에 전혀 문제가 없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허! 정말 대단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엘리트 트롤이라도 되는 건가?”
사실 그 어른 트롤 두 마리가 다른 트롤보다 덩치가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큰 괴물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첸이 정보 길드로부터 제공 받은 정보에는 그런 이야기가 일언반구도 없이 쏙 빠져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긴! 저 정도는 되니까 따로 독립을 하는 거겠지. 그런데 첸! 정말 할 건가? 저런 괴물들을 고작 이 인원만으로?”
거스의 말에 첸도 적잖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잔뜩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첸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는 듯이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그러기엔 여기에 들인 돈이 너무 많아.”
“그래도 처음 얘기하고는 너무 다른데? 이래서는 성공 확률이 채 3할도 안 되겠어. 솔직히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
“음! 그럼 조금 작전을 바꾸기로 할까? 일단 거스와 카이렌이 잠시 저 수컷 놈을 막고 있어 줘. 그럼 그사이에 나와 케드로, 그리고 실리언이 얼른 암컷을 처리하도록 하지. 그리고 다시 힘을 합쳐서 수컷을 공략하는 거야.”
“…….”
하지만 그 말에 거스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지고 말았다. 예상대로 노골적으로 자신을 미끼로 삼으려는 첸의 태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흥! 결국 우리 둘이서 시간을 끌라는 건가? 저 덩치 큰 수컷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서?
“괜찮군.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거스는 그런 나를 의구심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쨌든 시간만 끌면 되는 거지?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사이에 얼른 암컷을 처치하고 우리를 도와줘.”
내 말에 첸이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마치 호언장담이라도 하듯이 내게 말했다.
“걱정 마라. 너희만 제대로 해 주면 우리도 뒤처리는 확실하게 하겠다.”
일단 작전이 정해졌으니 나도 굳이 시간을 지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첸이나 다른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내 검에 살짝 마나를 불어넣어서 강도만 높이고는 대뜸 그 엘리트 수컷 트롤을 향해 뛰어들었다.
“타아앗.”
“쿠아아아악.”
물론 그 수컷 트롤 역시 나를 발견하고는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제껏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트롤은 높은 방어력에 비해서 의외로 공격력은 형편없는 편이었다. 물론 힘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타고난 괴력에도 불구하고 거의 직선적인 공격밖에 할 줄 모르는 돌머리였던 것이다.
챙.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트롤의 도끼에 내 검이 부딪치자 곧 불꽃이 파파팍 하고 튀어 올랐다. 물론 그 틈에 내가 수컷 트롤의 허리를 슬쩍 베고 지나갔지만…… 이건 뭐! 베자마자 바로 상처가 아물어 버리는 게 아닌가!
“훗!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만화 같은 놈이란 말이야. 네 녀석들도…….”
어쨌든 트롤을 잡으려면 이런 잔공격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적어도 허리를 양단해 버리거나 골통을 까부수는 정도의 과격한 기술이 있어야만 트롤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설마 여기서 죽기로 작정이라도 한 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스도 버럭 화를 내며 싸움에 합류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그래? 그냥 시간만 끌면 되는 거잖아.”
물론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젠장! 그게 어려우니까 그렇지.”
부우우우웅.
하지만 거스가 내 말에 대꾸를 하기가 무섭게 수컷 트롤의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거스에게 날아들었다.
거스는 허둥지둥 트롤의 공격을 피하고는 다시 내가 했던 것처럼 스치며 놈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로는 트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거스가 말했다.
“게다가 첸 일행이 암컷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도 생각했어야지. 만일 녀석들이 암컷 트롤을 당해 내지 못한다면 그땐 덩달아 우리까지 고스란히 죽은 목숨이라고…….”
하지만 이 순간에는 나도 그냥 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그만큼 호언장담을 했으니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그들도 일단 목숨이 아깝기는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첸 일행을 돌아보니 내 예상과 달리 고작 암컷 트롤을 상대로 꽤나 고전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쳇! 역시 실력이 형편없군. 세 놈이나 들러붙어서 고작 암컷 트롤 한 마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고작 여덟 명으로 트롤 부락 하나를 완전히 쓸어버렸었다. 물론 그때는 마을 부근의 번거로운 트롤 부족을 소탕한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그때 그 부락에 있던 트롤이 적어도 백은 넘었을 거다.
하지만 보통 인간에게 우리 묘인족 같은 능력을 바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첸 일행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결심했다. 결국 수컷 놈을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준 것이다.
“젠장! 이대로는 끝이 안 나.”
하지만 거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급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수컷 트롤을 상대하면서 짬짬이 첸 일행을 바라보는 거스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그득 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트롤은 건성건성 상대하면서 도리어 거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흐으음! 보아하니 소드 나이트에 거의 근접한 실력이로군. 적어도 저 어리바리 용병들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이야. 게다가 기본기도 탄탄한 게 어디서 막 굴러먹은 놈은 아닌 듯하고…… 역시 저 녀석도 이래저래 사연이 있는 놈이란 말인가?’
어쨌든 내 생각에 거스는 적어도 이런 형편없는 일행에 끼여서 몬스터나 사냥하고 있을 인물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내가 굳이 거기에 신경 쓸 이유도 없지만.
“쿠에에에엑.”
“허어억…… 허어억…….”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첸 일행은 거의 곤죽이 된 모습으로 간신히 암컷 트롤의 명줄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쿠아아아악.”
자기 단짝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수컷 트롤이 눈물까지 흘려 대며 미친 듯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래저래 애처로운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런 트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정심이 발하지가 않았다.
“흥! 네 짝이 인간들 손에 죽어서 슬픈 거냐? 하지만 이제껏 네 손에 죽어 간 인간들 생각도 해야지. 이 식인 몬스터야!”
하지만 트롤이 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젠장! 그쪽 정리됐으면 얼른 이쪽도 도와줘.”
거스 역시 내가 뭔 소리를 지껄이든 관심도 없다는 듯 첸 일행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
하지만 첸 일행은 즉각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는커녕 도리어 잔뜩 망설이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첸이 말했다.
“끄으응…… 생각보다 우리도 너무 많이 지친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수컷은 아무래도 너희 두 사람이 그냥 알아서 처리하는 게…….”
그 말에 거스의 이마에 불끈 힘줄이 돋아 오르고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제기랄! 너희들 지금 우릴 버리겠다는 뜻이냐?”
하지만 첸 일행은 대답 대신 얼른 죽은 암컷 트롤의 피를 뽑고 대충 정리해서 장비에 싣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마치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죽은 놈들이라는 듯이 그냥 깡그리 무시하고는 서로 쑥덕쑥덕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 판단 미스였던 것 같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트롤이었어. 역시 새끼는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쳇! 고생한 거에 비해서 이득은 얼마 안 남겠군.”
“그래도 일단 트롤 한 마리라도 잡았으니 길드의 의뢰는 무사히 완수한 셈입니다. 그냥 그걸로 만족하죠?”
물론 차례대로 첸, 케드로, 실리언 순서였다. 첸이 말했다.
“어쨌든 불똥이 우리한테까지 튀기 전에 얼른 내빼자고. 실리언, 전에 준비한 워프 스크롤 아직 가지고 있지?”
그 말에 실리언이 피식 웃으면서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아마 첸이 말한 바로 그 마법 스크롤이겠지. 첸이 말했다.
“다행이로군. 혹시라도 내가 저 수컷 트롤을 상대하게 될까 봐 정말 걱정했었는데……. 어쨌든 저놈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 올 정도라니까!”
“…….”
음! 그럼 대강 상황 정리는 끝난 건가? 아무래도 첸은 우릴 버리기로 작정한 모양이었고 조금만 더 지체하면 그냥 마법으로 어디론가 튀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도록 얌전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첸 일행의 행동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흥분한 나는 검이 잔뜩 엉키고 있는 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른 트롤 두 마리, 하지만 새끼들은 포기해. 그놈들은 아직 지은 죄가 없으니 그냥 내가 맡도록 하지.”
“뭐?”
하지만 거스는 내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거스가 내 말을 이해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대신 나는 피식 웃음으로 설명을 대신하고는 그대로 거스에게 달려들어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풀쩍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쿠아아아아앙?”
“헉!”
단지 트롤이나 거스나 내가 십수 미터나 되는 나무 위로 단번에 뛰어오를 줄은 몰랐던 듯, 기겁을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물론 기겁을 한 건 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헉! 어떻게 저럴 수가…….”
하지만 말이야, 첸! 지금이 그냥 그렇게 기겁만 하고 있을 순간은 아닐 텐데?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손에 들고 있는 그 스크롤을 찢으라고…….
어쨌든 내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자 수컷 트롤도 그제야 첸 일행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륵.”
“헉!”
그다음은 안 봐도 삼천리였다.
첸 일행은 미처 내게 도움을 청해 볼 틈도 없이 수컷 트롤의 도끼에 처참하게 찢겨 버렸다. 그것도 미처 스크롤을 찢을 틈도 없이 말이다.
물론 당황한 첸과 케드로가 얼른 검을 들고 수컷을 상대해 보려고 했지만 그 둘의 실력으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사실 수컷 트롤은 암컷에 비해 두 배 이상은 강한 놈이었다. 그걸 암컷 트롤을 상대한다고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첸 일행이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칫!”
하지만 인간이 몬스터에게 도륙되는 장면은 과히 보기 좋은 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크르르르르릉.”
어쨌든 첸 일행을 단번에 찢어발겨 버린 수컷 트롤이 이번에는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나와 거스가 있는 나무에 도끼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쿵…… 쿵…….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스는 트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 그저 내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당신은…….”
하지만 지금은 거스와 한가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수컷 트롤이 나무에 도끼질을 해 대기 시작하자마자 거스를 적당한 나뭇가지에 내려놓고는 얼른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타아아앗.”
분명 나도 이 순간만큼은 트롤을 상대로 나름대로 멋도 좀 부려 보고 할 수도 있었다. 트롤과 공방도 몇 번 주고받아 가면서 말이다. 원래 일격에 끝나 버리는 싸움보다는 조금 시간을 끄는 싸움이 훨씬 더 멋져 보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것조차 귀찮았던 나는 그냥 검으로 검강을 내뿜으며 그대로 수컷 트롤의 정수리에 내리꽂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