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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14화)
제8장 몬스터 사냥(2)


퍼어어억.
그러자 마치 수박 깨지듯이 머리가 으깨지며 그 수컷 트롤은 그대로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멋대가리도 없고 끔찍하기도 이를 데 없지만 트롤을 상대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쿠우웅.
어쨌든 그 큰 덩치가 요란하게 바닥에 쓰러지자 마치 땅까지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검을 슬쩍 휘둘러 트롤의 피를 모두 떨어내고는 다시 나무 위로 시선을 돌렸다.
“어이! 거스…… 혼자서 내려올 수 있지? 할 수 있으면 그냥 알아서 내려와. 내가 다시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귀찮으니까.”
“…….”
물론 거스도 상당히 괜찮은 실력의 검사이다 보니 어렵잖게 나무를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거스는 나무에 내려와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와 아직도 검강이 맺혀 있는 내 검을 열심히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서…… 설마 소드 킹?”
“응?”
그 말에 나는 문뜩 내 검을 내려다보고는 그제야 검강을 거두어들였다. 어쨌든 내가 다시 낡은 검집에 내 검을 꽂아 넣었지만 거스는 여전히 내 검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마치 낡아 빠진 그 검이 무슨 보검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나는 얼른 수컷 트롤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트롤의 피, 꽤나 비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렇게 그냥 줄줄 흘려 내리도록 놔둬도 되는 거냐?”
“응? 헉!”
그제야 거스는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첸 일행의 장비로 수컷 트롤의 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나는 동굴로 들어가 새끼 트롤들을 살펴보았다.
“카아아아앙.”
물론 새끼들 역시 잔뜩 경계를 하며 날 향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내 가랑이도 못 미치는 놈들이라 그놈들의 반응에 내가 별반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놈들은 날 경계한다고는 하지만 기실 잔뜩 겁에 질린 모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은가!
“흐으음! 그러고 보니 너희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치로군.”
어쨌든 이놈들은 아직 태어나서 지은 죄가 없다. 부모 놈들이야 이곳에 터를 잡고 지나가는 인간 여행자를 습격하며 살아가던 식인 몬스터지만 새끼들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냥 이대로 두면 부모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아 가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이 세 마리 새끼 트롤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 수컷 트롤의 시체를 대강 수습한 듯 거스가 트롤의 피로 범벅이 된 채 엉거주춤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거스가 말했다.
“작업은 대강 끝내 뒀다. 그런데 그 새끼들은 어쩔 셈이지?”
“글쎄! 아직 새끼이고 지은 죄도 없고 하니까…… 이 자리에서 죽이거나 다른 놈들에게 팔아먹는 것도 그리 내키지가 않는군.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데리고 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아무래도 우리 마을 놈들도 꽤나 다혈질인 놈들이라…… 이것들이 그곳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내 말에 거스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평범한 인간 마을에서 트롤을 키우는 건 무리다. 만일 여기서 죽일 생각이 없다면 그냥 신전에 맡겨라.”
“응? 신전?”
거기서 갑자기 신전이 왜 나와? 신전이라는 말에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거스를 돌아보았다. 거스가 말했다.
“아직 어린 새끼라면 신전에서 신성력으로 그 타고난 흉포함을 제거할 수도 있다더군. 그리고 말과 글을 가르쳐 보통 인간처럼 살아가게 할 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인간하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가끔 그런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호오? 그래?”
그 말에 나는 재미난 표정으로 거스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그럴 생각이라면 내가 적당한 신전을 알아봐 주겠다. 자애와 치유의 여신 크레니아의 신전 정도면 적당할 거다.”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어쨌든 이날의 결정이 레바돈 대륙 역사에 한 면을 장식한 크레니아 신전의 트롤 신관 삼 남매 탄생의 발단이 되었지만 그건 굳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물론 거스 역시 그런 먼 훗날의 일을 벌써부터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거스는 첸의 짐에서 꺼내 온 마법 스크롤을 새끼 트롤들 앞에서 찢어 보이면서 내게 말을 건넸다.
“어쨌든 이대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처음 예정대로 마법으로 재우고 나서 그냥 수레로 옮기기로 하지.”
거스는 마법 스크롤의 효능으로 새끼 트롤들이 잠드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 말에 나는 그냥 피식 하고 웃어 버렸다.
“그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카이렌이다. 그거면 이미 충분하지 않나?”
“젠장! 그게 말이 돼? 설마 당신이 세틴 제국에서도 고작 아홉 명밖에 소유하지 못한 그 소드 킹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혹시 당신…… 세틴 제국 소속의 소드 킹인가?”
하지만 거스는 자기가 말해 놓고도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지. 세틴 제국에 호이친 출신의 소드 킹이 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당신같이 젊은 나이의 소드 킹 역시 하나도 없어.”
“흐으음.”
거스가 말했다.
“게다가 세틴 제국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소드 킹이 올해로 서른여섯이다. 바로 카람스 공작가의 외아들인 세리어스 카람스 경이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리 잘 봐줘도 이제 고작 스물 초반? 물론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눈에는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인단 말이야.”
그 말에 나는 슬쩍 내 턱을 쓰다듬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동안으로 보이나? 아니면 내가 동양, 아니! 호이친이라서 제대로 나이를 못 알아보는 건가?”
내가 인간으로 죽은 나이가 대략 스물 막바지 즈음해서였다. 물론 묘인족의 삼신기로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겉보기엔 내 나이도 그 정도쯤으로 보여야 할 터였다.
‘훗! 내가 동안이라는 생각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군.’
어쨌든 내가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괜한 걸 알려고 하는군. 그냥 신경 꺼!”
하지만 거스는 당황한 목소리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 그럴 수 없다. 나…… 나는 파이로니아 공국의…….”
하지만 내가 손을 들어 얼른 거스의 입을 가로막았다. 내가 말했다.
“너에게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기까지만 해 둬라. 어쨌든 이것만은 말해 주지. 나는 그 어떤 나라하고도 상관이 없는 몸이다. 그냥 낭인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다시 말해 나는 세상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너도 내 일에 대해서는 그냥 신경 끄는 게 좋을 거다.”
“…….”
내 말에 거스는 잠시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거스의 입을 틀어막은 내가 마법으로 잠든 세 마리 새끼 트롤들을 양손에 안아 들고는 성큼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참! 이 녀석들까지 챙기려면 꽤나 번거롭겠군.”
하지만 거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듯 입술을 달싹거리며 내 뒤통수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제9장 파이로니아 공국(1)


어쨌든 거스 한 사람이 트롤 새끼 셋과 트롤 시체 두 개까지 모두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없이 나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만이라도 당분간 거스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 일로 꽤 많은 돈을 챙기게 된 거스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단 한 푼도 받지 않을 생각인가?”
그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처음에 요구한 게 바로 검과 장비, 적당한 식량이었다. 그건 이미 챙겼으니까 더 이상은 필요 없어.”
“후우! 정말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로군, 당신은. 어쨌든 당신 덕에 목숨은 건졌다. 게다가 이런 횡재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앞으로는 내가 당신을 은인이라고 불러야겠군.”
하지만 은인이라는 말에 나는 그냥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거스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 정도 수준의 무사라면 그 어떤 나라라도 모셔 가려고 난리를 피울 텐데…… 당신 정말 낭인인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는 거지?”
“흥! 쓸데없는 호기심은 가끔 사람의 목숨도 앗아 가는 법이다. 그러니까 내 일은 그냥 잊어. 그게 거스 당신에게도 이득일 거다.”
하지만 거스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끈덕지게 매달렸다.
“그럼 적어도 어디로 가는지라도 알려 줘. 기회가 되면 나중이라도 당신에게 은혜를 꼭 갚고 싶다.”
그 말에 나는 그냥 귀를 후벼 파면서 태연스레 말했다.
“거참!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 놈이네. 은혜 같은 건 필요 없어. 나한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내 말대로 그냥 날 잊는 게 거기에 보답하는 길이다. 어쨌든 귀찮으니까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하지만 그때 문뜩 뭔가 좋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 수가 있었군. 거스, 내가 당신에게 지금 당장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주지.”
“응?”
내가 말했다.
“혹시 드래곤이라는 놈에 대해서 아는 거라도 있나? 있으면 내게 모조리 다 말해 줬으면 좋겠군. 아! 그놈이 블루 드래곤이라고 했으니까 될 수 있으면 그쪽 방향으로 말이야.”
하지만 거스는 내 말에 잠시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스가 말했다.
“드래곤? 도대체 드래곤에 대해 알아서 뭘 어쩔 작정이지?”
내가 대답했다.
“물론 죽일 거다.”
“…….”
드래곤을 죽인다는 말에 거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주…… 죽인다고? 드래곤을? 설마 당신 목표가 드래곤 슬레이어란 말인가? 마…… 말도 안 돼.”
그리고는 거스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카…… 카이렌! 당신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나도 잘 알겠다. 하지만 그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인간이 드래곤을 죽이겠다니…… 당치도 않아. 당신이 아무리 소드 킹이라도 드래곤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단 말이야.”
“아! 그것까지 댁이 신경 쓸 필요는 없고…… 거스 당신은 그냥 내게 드래곤에 대해서 알려 주기만 하면 돼.”
“끄으응…… 그리고 보니 남 대륙에는 드래곤이 살지 않는다는 소리를 언뜻 들은 기억이 나는군. 설마 당신! 드래곤 때문에 이곳까지 온 건가? 그 머나먼 남 대륙에서?”
거스는 아무래도 날 눈앞에 두고 자기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그걸 정정해 줄 마음은 없었다. 물론 나야 남 대륙이라는 곳에 가 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거스가 제멋대로 상상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는 다시 내가 말문을 열었다.
“그건 알아서 생각해. 어쨌든 내가 듣고 싶은 건 드래곤에 대해서야.”
하지만 내 대답에 자신의 짐작이 얼추 맞는 것 같다고 확신을 내린 듯, 거스가 또 한 번 고개를 크게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뭔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어. 카이렌! 다들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슬레이어 하지만 실제로 드래곤이 사냥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적어도 인간의 손에 대륙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는 말이야. 물론 지금은 전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황금시대에는 또 어쨌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야. 설사 세틴 제국의 아홉 소드 킹과 일곱 대마법사까지 모두 힘을 합쳐도 아마 드래곤 하나를 제대로 상대할 수는 없을 거야.”
“흐으음! 그렇게 대단한 놈인가? 그런데 혹시 그놈의 덩치라든가…… 아니면 싸우는 방법 같은 건 알려진 게 없나?”
“거참! 정말 말귀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로군.”
하지만 거스는 내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어쨌든 드래곤은 마법 종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종족이야. 따라서 해츨링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 9클래스의 마스터라고 봐도 무방하지. 참고로 인간이 익힐 수 있는 마법의 한계는 대략 8클래스 정도이고. 그래서 인간 마법사는 9클래스의 마스터인 드래곤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들 하지.”
“호오오…… 그런가?”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원래 마법사는 한 클래스만 차이가 나도 엄청나게 위력이 달라진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건 클래스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격차가 커져서 결국 8클래스와 9클래스라는 건 하늘과 땅의 격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스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듯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표정으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물론 드래곤이 가진 힘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야. 내가 들은 바로는 그 거대한 덩치는 웬만한 레어도 비좁을 정도라고 하더군. 게다가 그 덩치를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힘이 어마어마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고…… 그리고 드래곤의 피부는 소드 킹이 내뿜는 오러 소드로도 쉽사리 뚫을 수 없다고 들었다. 거기다가 그들이 내뿜는 브레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