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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18화)
제11장 블루 드래곤 카르서스(1)


어쨌든 나도 카르서스에게 삥(?)을 뜯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굳이 카르서스의 의견에 반대를 할 이유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스무 명 남짓 되는 묘인족들을 먼저 마을로 돌려보내고는 그의 레어에서 카르서스와 함께 가볍게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드래곤이란 놈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묘인족의 삼신기인 붉은 구슬로 예전 강찬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 카르서스 역시 마법으로 그 큰 덩치를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바꾼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너…… 여자였냐?”
그 큰 덩치가 설마 저런 가냘픈 여자로 변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카르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르서스는 도리어 싱긋하고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드래곤은 원래 성별이란 게 없어.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지. 물론 내 취향이 이쪽이라는 걸 굳이 내 입으로 다시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끄응! 그러……냐?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군. 나는 밤 시중 어쩌고 하기에 네가 남색이나 밝히는 변태 도마뱀인 줄 알았지.”
하지만 내 말에 카르서스가 샐쭉한 표정이 되어서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넌 숙녀 앞에서 그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모르냐?”
물론 그 말에 나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카르서스를 바라보긴 했다.
“네가 숙녀냐?”
“그럼 내가 신사야?”
그러나 카르서스는 한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내게 그렇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했다.
‘호오라? 이놈 봐라? 이거 열 받는데 이참에 한 번 더 뒤집어엎어 버려?’
결국 내가 카르서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잠시 눈을 부라리자 카르서스는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얼른 화제를 바꿔서 말했다.
“그런데 붉은 눈동자를 가진 묘인족은 묘인족 마니아인 나도 이번에 처음 보는걸. 묘인족은 원래 황금색 아니면 푸른색의 눈동자만 가지고 태어나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내가 팔짱을 끼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흥! 묘인족에는 나 같은 돌연변이도 가끔 태어난다고 하더군.”
물론 내 퉁명스런 태도에 카르서스도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카르서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을성 있게 내게 말을 붙였다.
“그런데 지금은 또 남 대륙의 호이친 모습이네. 묘인족이 마법까지 쓸 수 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당연히 내가 묘인족의 삼신기에 대해 카르서스에게 꼬치꼬치 설명해 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손을 내저어 보였다.
“신경 쓰지 마.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신기한 일도 있는 법이야.”
하지만 그 말에 카르서스도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하아! 이제 그만 화 좀 풀지 그래? 나도 이미 더 이상 묘인족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잖아. 여기서 나더러 뭘 더 어쩌라는 건데?”
“훗…… 설마 내가 화가 난 상태라고 생각한 건가? 미안하군. 이건 그냥 성격이야.”
“칫! 성격 한번 고약하네.”
어쨌든 카르서스도 내게서 뽀로통하게 고개를 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손님 접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껏 준비한 차를 내 앞에 쪼르륵 따르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다.
“쳇! 묘인족이 없으니까 내가 이런 일까지 직접 해야 되는 군. 어쨌든 감사하게 생각해라. 내가 직접 차를 대접하는 상대는 레바돈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니까…….”
“훗! 별게 다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카르서스의 말에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냥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따른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끄러미 카르서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넌 앞으로는 어쩔 거지?”
“응?”
내가 말했다.
“설마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잡일을 혼자서 도맡아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면 이참에 묘인족 대신 이번엔 인간이나 다른 이종족이라도 잡아서 시종으로 삼을 생각인가?”
물론 카르서스가 인간이나 이종족을 시종으로 삼겠다고 할 요량이면 내가 부득불 한 번 더 손을 써 줄 요량이었다. 한마디로 방금 내가 던진 질문은 일종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눈치라도 챈 건지 카르서스는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인간이나 이종족들은 사실 나도 다루기가 쉽지가 않아. 물론 묘인족도 내가 묘인족 마니아쯤 되니까 일부러 고생을 자처하고 나선 거지 다른 드래곤들이라면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야.”
“흠! 그러냐?”
카르서스가 말했다.
“어쨌든 너하고의 약속 때문에 나도 이제 더 이상 묘인족을 데리고 있을 수도 없게 됐으니……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드래곤들처럼 평범하게 몬스터나 부려야겠지. 아마 고블린 정도면 충분할 거야. 물론 그 녀석들도 내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굳이 내 시중을 마다하지는 않을 테고 말이야.”
그 말에 내가 피식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처음부터 그러지 그랬냐? 그럼 이렇게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내 말에 카르서스는 무릎 위에 두 주먹을 가지런히 올려다 놓고는 마치 토라진 요조숙녀처럼 뚱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보기 시작했다.
“고블린이 그 징그러운 낯짝으로 내 레어를 들쑤시고 다니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네가 알기나 해? 그건 내 심미안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훗! 나잇살도 엄청 처먹은 녀석이 의외로 귀엽게 노는군. 하지만 어차피 네 본성은 이미 내 눈으로 다 목격한 상황이니까 닭살 돋치는 내숭은 이제 그만 좀 해라, 짜샤! 어쨌든 나도 드래곤이란 놈들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응? 뭔데?”
카르서스는 부탁이라는 내 말에 잠시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나와의 껄끄러운 분위기를 이걸 계기로 해서 한번 자연스럽게 풀어 볼 생각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쿡 하고 웃으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돈 좀 주라?”
“…….”
물론 카르서스는 다소 엉뚱한 내 말에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잔뜩 이마에 주름을 잡고는, 이내 검지 하나로 주름 잡힌 자기 이마를 열심히 긁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얼른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다보며 말했다.
“끄응! 갑자기 웬 돈? 그런데 얼마?”
“많이…….”
결국 내 무성의한 태도에 카르서스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내게 버럭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봐! 너 말이야. 사실 나랑 이야기하는 거 싫지? 나랑 진지하게 대화할 생각이 없으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해. 그럼 괜히 서로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을 거 아냐.”
이런…… 이런…… 내가 카르서스를 너무 많이 놀려 먹은 건가? 할 수 없이 나는 얼른 손을 내저으면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사과할 테니까 일단 다시 자리에 앉아.”
그러자 카르서스도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다시 주춤 자리에 앉았다.
“사실은 말이야.”
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나와 거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카르서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카르서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다보기 시작했다.
“그럼 파이로니아 공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거야?”
카르서스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널 죽이고 그 참에 금고도 같이 털어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사실 나도 조금 난감한 상황이야.”
“끄응!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어쨌든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그냥 건너뛰기로 하고…… 하지만 너 정도 되는 녀석이 굳이 그럴 필요 있어? 그냥 너 혼자 직접 세틴 제국을 상대해도 되는 거잖아.”
카르서스의 말에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이미 약속해 버린 건데 이제 와서 그럴 수는 없잖냐. 그리고 쥐새끼 몇 마리 때문에 남의 집을 홀라당 태워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냐?”
“흥! 나 하나 때문에 드래곤 일족을 멸족시켜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놈이 누군데? 정말 말은 잘한다. 어쨌든 사정은 잘 알겠어. 하지만 그냥 무조건 내놓으라 하는 건 좀…… 그건 한마디로 날강도 아냐?”
“끄으응! 아픈 곳을 찌르는군.”
그녀의 말에 나도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카르서스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도리어 안색을 밝히며 손등으로 자신의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카르서스가 말했다.
“물론 네가 원하는 걸 그냥 내가 줄 수도 있어. 그 대신 내 부탁을 딱 한 가지만 들어준다면 말이야.”
“…….”
내가 잠시 대답이 없자 카르서스가 싱긋 웃으며 다시 말문을 이어 나갔다.
“어쨌든 너 때문에 자칭 묘인족 마니아인 내가 이제 더 이상 묘인족을 볼 수 없게 되었단 말이야. 끄응!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 나하고 사귀지 않을래?”
하지만 결국 그 말에 내 신경 줄이 뚝 하고 끊겨 버렸다. 지금 뭘 어쩌고 저째? 나랑 사귀자고? 허! 정말 어이가 없어서…… 나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
물론 내 갑작스런 행동에 카르서스도 놀란 듯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카르서스의 행동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변에 조명용으로 세워 둔 사람 키 크기 정도의 가로등을 발견하고는 그걸 단번에 뽑아내면서 대답했다.
“몽둥이 찾으러…… 헛소리에는 몽둥이가 약이라던데? 일단 좀 맞고 보자.”
어쨌든 내가 사악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카르서스를 돌아보자 그녀도 기겁을 하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호오? 도망치면 매만 늘 텐데? 너…… 얌전히 일루 안 와?”
“미…… 미친 놈! 그냥 사귀자는 것뿐이잖아. 근데 왜 그렇게 정색을 하고 난리야?”
“아! 거참 말 많네! 왈가왈부 길게 말할 것 없고…… 일단 너도 여자니까 가볍게 열 대만 때리마. 그러니까 나 필름 끊기기 전에 얼른 와라. 응?”
“아이스 월(Ice Wall).”
하지만 내가 말과는 달리 몽둥이에 마나까지 불어넣고는 있는 힘껏 풀 스윙을 해 보이자 카르서스는 도리어 내 앞에서 마법으로 투명한 얼음벽을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나 드래곤이야. 그것도 이쪽에서는 꽤 잘나가는 퀸카라고…… 그런 내가 사귀어 주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카르서스가 만든 얼음벽을 향해 있는 힘껏 몽둥이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콰과광.
결국 카르서스가 마법으로 만든 얼음벽은 내 몽둥이질에 채 몇 방 견뎌 보지도 못하고 마치 힘없는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 버렸다.
“크크크.”
그렇게 우리 둘을 갈라놓고 있던 벽을 허물고 나서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웃음이 도리어 지옥의 사자같이 느껴졌는지 카르서스는 이내 기겁을 하면서 소리쳤다.
“아…… 알았어. 그냥 주면 될 거 아냐! 그냥 주면…….”
결국 카르서스를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어 버린 내가 그제야 피식하고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대강 내동댕이치고는 말했다.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어쨌든 나도 고작 말 한마디로 카르서스를 죽사발 낼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뜻을 굽히자마자 바로 표정을 풀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카르서스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제 슬슬 변태 짓도 고칠 때쯤 되지 않았냐? 아니면 내게 한 번 더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끄응! 누구더러 변태라는 거야? 선녀가 선남한테 고백을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
“허! 이 녀석 보게? 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정말 한번 혼나 볼 테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카르서스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내게 바락바락 대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날 싫어하는 건데? 설마 내가 처녀가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그래! 나 닳고 닳은 여자다. 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어이어이!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녀는 이미 흥분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였다.
“응? 그게 아니라고? 그러면 묘인족 여자가 아니면 욕정이 들끓지도 않는다는 건가? 칫! 그렇다면 나도…….”
아무래도 카르서스는 예의 그 마법으로 다시 모습을 바꾸기라도 할 요량이었던 모양이지만 내가 얼른 팔목을 낚아채 그녀를 만류했다.
“이거 놔.”
물론 카르서스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내게 안긴 꼴이 되어 버렸다.
“…….”
물론 카르서스는 원망과 함께 기대가 잔뜩 섞인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미안하지만 난 전혀 그럴 생각 없다, 이 여자야.
쾅.
결국 나는 카르서스가 기대하고 있는 로맨스(?)를 베풀어 주기는커녕 도리어 남은 한 손으로 불끈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카르서스의 정수리 부분을 있는 힘껏 내리찍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