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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20화)
제12장 환락의 도시(2)


어쨌든 나는 그런 기대를 품고 카랴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게 된 카랴안은 지도에 적힌 표현 그대로 그야말로 환락의 도시였다.
“휘유우! 이 세계는 지구에 비하면 꽤 덜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군.”
내 말대로 카랴안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휘영청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마법으로 만든 가로등이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었고, 여자들도 거의 벗다시피 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었다.
원래 여자들의 노출도가 그 사회의 실상을 한마디로 대변해 주는 법이다. 하지만 끽해야 중세 시대 정도라고 생각했던 이 세계의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되어 나 역시 조금은 놀라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긴! 조선 말기에도 여자들이 젖가슴을 훤히 내놓고 다녔다고 하더라마는.’
그 말처럼 카랴안의 여자들도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이건 뭐! 명동거리 한복판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기본적으로는 다른 곳과 같은 드레스 차림이었지만 카랴안 여자들은 허리 단부터 세로로 길게 치마를 찢는다거나 폭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용케도 방법을 찾아서는 늘씬한 다리와 몸매를 뽐내고 다니는 것이다.
“어머나? 호이친 사람이네? 여기 괜찮은 아가씨들 많은데 좀 놀다 가지 않을래?”
물론 이곳에서는 매춘도 꽤 성행을 하는 듯, 가는 곳마다 매춘부로 보이는 여자들이 마치 거머리처럼 내 주위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물론 태반은 내가 허리에 찬 검을 보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아마 좋은 검을 차고 다니니까 괜찮은 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하지만 아무리 돈이 차고 넘친다 해도 내가 굳이 그런 여자들이나 상대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쳇! 고자 자식.”
결국 내가 일언반구 대꾸도 않자 결국 다들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나는 적절한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매춘부들이 알아서 지껄이는 소리에 대강 이곳 카랴안에서 어디어디가 중요한 곳인지 대강 감을 잡게 된 것이다.
“결국 카랴안 플레이스가 이 도시의 중심이란 거군. 카랴안에서 가장 큰 도박장이란 건가?”
다시 말해 그곳이 이곳 카랴안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카랴안 플레이스는 카랴안 최고의 도박장답게 접근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첫째로 일단 신분이 확실하지 않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입장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복장이 너절한 사람은 사절,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이방인도 사절, 가난해 보이는 사람도 사절이었던 것이다.
“훗! 나는 죄다 걸려드는군.”
물론 내 옷이야 오랜 여행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고 외모도 이곳 레바돈 사람이 아닌 머나먼 남대륙의 호이친 사람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생겨 먹길 태생적으로 귀티하고는 거리가 먼 나였기에 한마디로 딱 보면 거의 상거지 꼴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카르서스가 챙겨 준 검 때문에 그나마 거지 취급은 당하지 않았다. 내 검을 보고 다들 내가 거친 생활을 해 온 무사 정도로 취급해 준 것이다.
“어쨌든 나도 좀 꾸미기는 해야겠군.”
결국 나는 그 길로 바로 근처 여관으로 찾아가 백팩에서 카르서스에게 갈취한 보물 중에 당장 사용해도 될 법한 금화 하나를 꺼내 먼저 방부터 잡았다.
물론 그 금화도 그리 흔한 물건은 아니었던 듯 그것을 받아 든 여관 주인은 무척이나 황송해 하면서 거스름돈을 준비한다든지 하면서 부산을 떨기도 했다.
물론 그 금화 하나 때문에 내 너절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극상의 대우로 날 대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역시 사람은 일단 돈이 있고 봐야 한다니까…….”
어쨌든 나는 여관비를 지불하고 남는 돈으로 주인장에게 두둑하게 팁을 지불하고는 근처에서 대강 그럴듯한 정장 한 벌을 구해 왔다.
일단 낡은 옷을 버리고 그 옷으로 갈아입자 나 역시 제법 폼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생겨 먹은 것까지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끄으응…… 아무리 꾸며 봤자 동양인 모습으로는 조금 무리겠지?”
여기가 한국이라면 또 모를까!
이곳 레바돈 대륙은 동양인, 그러니까 이곳 표현으로 호이친 사람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보기 힘드니만큼 이 모습으로는 카랴안 플레이스 같은 곳에서는 아무래도 경계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이 모습을 버리고 이곳 사람들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양놈의 모습을 하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도박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에잇! 잠시 변하는 건데 내가 좀 참지. 뭐!”
결국 나는 이제껏 만난 인물 중에 가장 적당해 보이는 인물, 즉 이미 트롤의 손에 고인이 된 첸의 모습을 잠시 빌리기로 결정했다.
“흐음! 그 녀석…… 샤이플인지 샤프인지 하는 용병단 소속이랬지?”
어쨌든 내가 기억을 더듬어 첸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자 나 역시 꽤나 그럴듯한 레바돈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흠!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하지만 도박장에서 무기는 금지랬으니 나는 언제나 허리에 차고 있던 내 검을 백팩 안에 집어넣고는 다시 카랴안 플레이스로 향했다.
물론 여관 주인은 완연히 변해 버린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는 했지만 나는 그냥 태연하게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어쨌든 행색이 바뀌니까 첫 날에 내 출입을 가로막던 종업원들의 태도도 180도 확 바뀌어 있었다. 나 역시 이곳에 익숙한 손님처럼 일언반구도 없이 당당하게 그 종업원들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내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모습조차 도박장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대접 받기엔 다소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쳇!”
어쨌든 카랴안 플레이스는 총 네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고작해야 코퍼(동화, 최하의 화폐 단위)나 실버(은화, 코퍼 20개가 모여야 1실버가 된다) 정도 수준의 돈만 오고 가는 일반 등급의 도박장과 주로 골드(금화, 10실버가 모여야 1골드가 된다) 위주로 운영되는 코퍼 회원 클래스.
그리고 최소 50골드 이상이 오고가는 실버 회원 클래스, 마지막으로 판돈의 제한이 전혀 없는 골드 회원 클래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첫나들이인만큼 돈이 넘쳐 나는데도 불구하고 실버나 골드 클래스는커녕 코퍼 클래스 입장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역시 만만치가 않구만.”
어쨌든 일반 등급 클래스의 도박장이란 곳은 이래저래 돈 없는 찌질이들만 모이는 곳이라 아무리 귀 닦고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녀 봤자 제대로 된 정보는 하나도 엿들을 수가 없었다.
도리어 몇몇 멍청이들한테 도박으로 푼돈이나 빼앗겨 버려 기분이 더 나빠져 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도박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다녔지만 마땅한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어라? 이게 누구야.”
하지만 아무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도박장 출입이 거의 열흘에 가까워 오는 시기에 누군가 날 알아보고는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모습을 빌리고 있는 첸을 알아본 거지만…….
“오! 역시 첸이로군. 잘 지냈나? 친구?”
어쨌든 나는 우연히 첸과 안면이 있는 친구와 마주친 모양이었다. 물론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이곳에서 첸과 안면이 있는 사람과 우연히 만나는 것도 참 놀라운 일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용병과 도박은 아무래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니만큼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첸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으므로 아무래도 조심스레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난 첸이 아니오.”
“허어? 무슨 소리야 친구…… 아무리 봐도 첸 맞는데…….”
하지만 나는 최대한 밝게 웃는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나는 첸의 사촌인 미첼이라고 하오. 하긴! 첸이 나를 좀 닮기는 했지.”
그제야 그 남자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첸이 아닌 건가?”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하지만 첸을 이렇게 쌍둥이처럼 쏙 빼닮은 사촌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흥! 첸도 자기 가정사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만큼 수다쟁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사실 같은 얼굴이 친척 중에 있다는 건 그다지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지 않소?”
결국 그 남자도 내 말을 대략 반쯤은 믿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하! 그 친구도 꽤나 입이 싼 친구였는데…… 잘 생각해 보니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 본 적은 없는 것 같구만. 어쨌든 반갑네. 나는 크레이안이라고 하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상인인데 내가 호위 무사로 우연히 첸을 고용하게 되면서 그와 안면을 익히게 되었지.”
그러면서 크레이안이라는 남자가 만면에 웃음을 그득 머금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물론 나도 그걸 거절한 이유는 없었기에 그의 손을 맞잡았다.
“미첼이오. 이런 곳에서 첸을 아는 사람과 만나니 나도 무척이나 반갑구려.”
내가 대강 아무 이름이나 주워서 지껄이자 크레이안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쨌든 크레이안은 겉보기엔 40대 중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지긋한 나이의 남자였다.
크레이안이 내 옆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럼 자네도 용병인가?”
하지만 나는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용병은 아니고…… 그냥 검을 쓰는 한량이오. 특별히 어디 소속된 곳은 없소.”
“호오! 그래? 그럼 낭인 검객이로군. 그럼 자네 실력은?”
“흐음! 첸하고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정도로 해 둡시다.”
그 말에 크레이안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요즘 첸 그 친구가 통 보이지 않아서 섭섭해 하던 참인데 이런 곳에서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군. 어떤가! 시간이 괜찮다면 잠시 내 상단과 같이 움직여 보지 않겠나?”
그 말에 내가 조금 미심쩍은 눈초리로 크레이안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크레이안은 요즘 한창 상단을 보호할 무사를 찾아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게 접근한 것도(사실 첸에게 접근한 것도……) 아마 그것을 위해서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제안은 고맙소만 보시다시피 지금은 한창 즐기는 중이오. 게다가 이번에 한탕 크게 벌어서 돈도 이미 넉넉한 편이지.”
그러면서 나는 백팩 대신 이곳 도박장용으로 따로 준비한 돈주머니를 꺼내 크레이안 앞에서 쩔렁거려 보였다. 그러나 크레이안도 여유롭게 웃으면서 내게 대꾸했다.
“물론 지금 당장 떠나는 건 아니네. 나 역시 이곳에서 간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게지. 하지만 원래 돈이란 돌고 도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평생 이곳에서 도박만 즐기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마 자네가 도박에 슬슬 질릴 때쯤이면 우리도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걸세.”
물론 그렇게 말하는 크레이안의 눈에서 나는 장사치의 노련한 수완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훗! 재미있군.’
내가 말했다.
“그럼 여기선 일단 짧고 굵게 즐기는 수밖에 없겠군. 사실 이런 푼돈으로 도박을 즐기는 것도 이제 슬슬 질려 가던 참이었는데…….”
그러면서 나는 물끄러미 크레이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이곳 말고 판돈이 더 큰 곳도 있다고 하던데…… 혹시 아시오?”
그 말에 크레이안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코퍼 클래스의 도박장을 말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곳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낯선 쉽게 사람을 들이지는 않는다네. 적어도 신분이 확실하거나 아니면 이곳에 반년 이상 출입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지.”
그 말에 내가 잠시 혀를 차며 이내 관심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크레이안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끄응! 그렇소? 그렇다면 역시 길고 가늘게 가는 수밖에 없겠군. 아무래도 난 당분간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적어도 코퍼 클래스가 어떤 곳인지 구경은 하고 가야지. 그런데 반년이라고 했소? 그럼 내가 당신 상단을 따라나서기는 조금 힘들겠군.”
하지만 크레이안은 도리어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으면 굳이 반년이나 기다릴 필요는 없다네. 그리고 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실버 클래스 회원이니 자네를 코퍼 클래스 도박장으로 데리고 가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지.”
흥! 역시 그럴 줄 알았단 말씀…… 내가 말했다.
“그렇소? 그럼 잘됐군. 나도 큰 판에서 한번 놀아 보고 홀가분하게 당신을 따라나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요.”
“그런데 자네 밑천은 어느 정도지?”
그 말에 내가 쩔렁거리던 돈주머니를 슬쩍 풀어 보이며 말했다.
“일만 골드.”
“헉!”
하지만 내 말에 크레이안도 깜짝 놀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지…… 지금 일만 골드라고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