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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이더 1권 (20화)
7. 안개 속 마을 (3)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거리의 사람들 틈에 소리 없이 섞여 그들의 지갑을 순식간에 낚아채는 벤자민의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벤자민에게 지갑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갑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형들! 어서 지갑들 주워.”
벤자민은 훔친 지갑들을 아무도 보지 못도록 은밀히 땅바닥에 스르륵 떨어트리며 용탄자와 트래퍼스에게 말했다.
벤자민의 말에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자기 지갑인 양 벤자민이 훔쳐 바닥에 떨군 지갑들을 줍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용탄자와 트래퍼스의 옷 주머니란 주머니가 모두 다 벤자민이 훔친 지갑으로 가득 찬 걸로도 모자라 윗옷과 속옷 안까지 불룩해졌을 때 벤자민은 손을 멈추었다.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구. 여기서 돈 정리를 할 수는 없잖아?”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벤자민을 따라 미스트베일의 한적한 뒷골목으로 갔다.
안개가 심하게 깔려 있어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딱이었다.
“난 훔치는 것밖에 못해. 돈 정리는 형들한테 맡길게.”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몸 구석구석을 탈탈 털어 훔친 지갑들을 모두 땅에 내려놓고 돈만 빼내는 작업을 했다.
“초초총 10골드 95실버야.”
훔친 돈들을 훔친 지갑들 중 가장 큰 지갑에 담으니 묵직해졌다.
“그 정도면 더기스 열쇠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자∼ 그럼 베기스럼으로 가볼까? 형들 여기 맨홀 뚜껑 좀 들어줘.”
벤자민은 뒷골목 바닥에 있는 커다란 맨홀 뚜껑을 가리키며 말했다.
“맨홀 뚜껑은 뭐할라고?”
“더기스 열쇠 사러 베기스럼으로 가야지. 베기스럼은 이곳 미스트베일의 지하 소굴에 있다고 말했잖아. 지하 수로를 통해 들어가야 돼.”
“그그그그래?”
“응! 어서 맨홀 뚜껑 좀 들어줘!”
용탄자는 트래퍼스와 함께 맨홀 뚜껑을 잡다 팔짱 끼고 구경하고 있는 벤자민에게 버럭했다.
“야! 너도 좀 거들어라! 놀지 말고!”
“아까 말했잖아. 나는 훔치는 것 말고 다른 건 못한다구.”
결국 용탄자와 트래퍼스 둘이서 엄청 무거운 맨홀 뚜껑을 들어 옆으로 치웠다.
“으아아아∼ 냄새!”
맨홀 뚜껑을 열자마자 하수구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즉시 코를 막았다.
하지만 벤자민은 냄새를 못 맡는 건지 아니면 이런 냄새에 익숙한 건지 곧바로 지하 수로로 내려갔다.
“어서 들어와. 베기스럼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잠시 망설이다 밑에서 들려오는 벤자민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오오오크콧물맛 구구구토제보다 내내냄새가 더더더 심해!”
“진짜 대박이다.”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지하 수로로 내려오자마자 코를 잡았다.
지하 수로에는 각종 오물과 폐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또 양벽을 따라 골목길처럼 가느다랗게 나 있는 길에는 쥐똥이 가득했고 쥐들이 찍찍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보자보자∼ 어느 쪽으로 가야 베기스럼이 나올려나?”
벤자민이 서서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하자
“야! 너 기 아느거 아이여나?(야! 너 길 아는 거 아니였나?)”
용탄자는 화들짝 놀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벤자민을 다그쳤다.
“히이∼ 나 사실 여기 처음 들어와 보는데∼”
벤자민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
“$%#$%#^#$$%@#$@!”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코를 막고 격하게 흥분해서 외계어로 욕을 퍼부어댔다.
“걱정 마! 거듭 말하지만 나 굉장한 도둑이거든!”
미스트베일의 지하 수로는 쥐들이 화장실로 애용하는 냄새나는 미로와 같았다.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아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건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벤자민은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걸어갔고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벤자민을 따라 걸었다.
“아무래도 저곳 같은데?”
벤자민이 가리키는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마다르 기이자나!(막다른 길이잖아!)”
“잠깐만∼”
벤자민은 앞을 막고 있는 벽면에서 오른쪽 벽면의 벽돌을 만지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시멘트에 발려져 질서 정연하게 쌓아올려져서 하나의 벽이 된 딱딱한 벽돌들을 벤자민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실크를 만지듯 세심하고 섬세하게 만져댔다.
“형들 여기로 와바∼”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벤자민에게 다가갔다.
“여기 이 벽돌을 꾹! 눌러봐.”
용탄자는 벤자민이 가리키는 벽돌을 시키는 대로 눌렀는데 벤자민에게 지목당한 벽돌은 보이는 것처럼 단단하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누르는 대로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도!”
벤자민이 가리키는 다른 벽돌도 역시나 누르는 대로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이거랑 이거!”
용탄자는 벤자민이 가리키는 벽돌들을 차례대로 눌러 안으로 집어넣었다.
스르르르르릉∼
총 8개의 벽돌을 눌렀을 때 벽면에 커다란 쥐구멍이 생겨났다.
“자∼ 베기스럼으로 가보자구!”
벤자민은 쥐구멍처럼 생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에아! 오으게다(에라! 모르겠다!)”
용탄자는 눈을 질끈 감고 쥐구멍에 들어갔다.
“가가가이 가(가가가같이 가!)”
트래퍼스의 처량한 외침을 뒤로한 채.
“으아아아아∼”
커다란 쥐구멍은 엄청 길고 굴곡이 심한 미끄럼틀과 같았다.
용탄자는 뜻하지 않게 빠른 속도로 커다란 쥐구멍을 통과하고 있었다.
커다란 쥐구멍은 정말 커다란 쥐가 애용하는 쥐구멍인지 쥐똥 냄새가 진동했다.
“으악!”
커다란 쥐구멍에서 뱉어진 용탄자는 어지러워서 일어서질 못했다.
“으악!”
어지러움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는 커다란 쥐구멍에서 뱉어진 트래퍼스에 깔려 일어나질 못했다.
“형들 베기스럼에 온 걸 환영해!”
벤자민은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용탄자와 트래퍼스에게 말했다.
머리를 흔들어 아직 남아 있는 어지러움을 털어낸 용탄자는 주위를 살폈다.
“별 희한한 곳도 다 있네.”
베기스럼의 곳곳에서는 오물과 폐수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악취를 없애기 위해 곳곳에서는 갖가지 향초를 대량으로 피우고 있었다.
덕분에 베기스럼 안에는 여러 가지 향초 냄새와 오물, 폐수 냄새가 섞여 특유의 독한 향기가 났다.
“일단 베기스럼 구경이나 좀 하자구!”
용탄자와 트래퍼스, 벤자민은 베기스럼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찍찍찍!
베기스럼의 모든 길바닥에는 쥐와 쥐덫이 잔뜩 널려 있었다.
“자∼ 쥐고기 핫도그 맛 좀 보러 오세요!”
그리고 코가 엄청 크고 덧니가 심하게 난 코볼트가 운영하는 쥐고기 핫도그 가게도 널려 있었다.
쥐덫에 걸려 죽은 쥐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쥐고기 핫도그는 보는 이들의 식욕을 떨어트리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타타타탄자야! 오오오크들이야!”
“네가 나한테 준 구토제가 쟤내들 콧물로 만든 거가?”
“으응!”
“그 옆에 완전 커다란 녹색 거인은 뭔데?”
“오오오오우거야!”
두꺼운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오크와 오우거들이 용탄자와 트래퍼스 옆으로 지나갔다.
오크와 오우거들을 처음 본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그들이 지나가자마자 호들갑을 떨어댔다.
“저기 99열차 정거장에서 본 로보트랑 똑같이 생긴 놈이다!”
용탄자는 노움 로봇과 똑같이 생긴 노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레이싱카처럼 생긴 기계에서 부속 부품들을 해체해서 팔고 있었다.
“노노노움들이야!”
베기스럼을 조금만 거닐었을 뿐인데 오크, 오우거, 코볼트, 노움은 물론이고 땅딸막하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드워프, 기다란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파란 피부의 트롤, 아주아주 못되게 생긴 녹색 피부의 노움 같은 고블린 등등 이 세계의 다양한 종족들과 그들이 파는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정말 베기스럼에는 없는 종족, 물건들이 없었다.
“단돈 2골드에 너희들을 따라다니는 유령을 내쫓아주마!”
드워프 상인이 파는 ‘모라크의 손’이라는 드래곤 라이더 장갑을 구경하고 있던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갑자기 부두교 가면을 쓴 트롤이 불쑥 다가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랐다.
“유령이요?”
“지금 유령이 너희들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구나! 내가 너희들을 위해 단돈 2골드에 그 유령을 쫓아내주마! 그럼 너희들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 트롤∼”
용탄자는 갑자기 ‘뒤에서 후광이 나서 따라왔습니다’라든지 ‘도를 아십니까’라는 멘트로 다가오는 도인들이 생각났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용탄자는 트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트래퍼스의 고개를 홱 돌리고 자기 고개도 홱 돌리며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부두교 가면을 쓴 트롤은 용탄자와 트래퍼스가 고개를 홱 돌리며 제안을 거절하자 쿨하게 다른 곳으로 갔다.
“유유유유령이 우리들 뒤를 따따따따따따따따따라오고 이이이이있다면 크크크크크큰일이잖아!”
트래퍼스는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말했다.
“유령은 무슨 다 돈 벌려고 하는 수작이지. 내가 사는 곳에도 저런 놈들 많다.”
“그그그래?”
트래퍼스는 용탄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평소 때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그그런데 베베벤자민은 어어어디로 갔지?”
“더기스 열쇠 파는 놈한테 갔겠지. 뭐 곧 오겠지.”
“우우우리들 위위위위치를 어어어떻게 알고?”
“굉장한 도둑께서 그거 하나 모를까?”
“하하하긴.”
벤자민의 놀라운 재주를 눈으로 확인한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안심하고 다시 베기스럼에서 파는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시속 300km까지 낼 수 있는 부스터 엔진을 단돈 30골드에 모시고 있어요! 로켓, 탑승물에는 물론, 심시어 드래곤 아머에도 이식이 가능한 잘 빠진 놈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에게만 제가 특!특!특!별히 ‘노움 제품 품질 보증서’에 싸인만 해주시면 20골에 드리겠습니다!”
노움 상인이 파는 부스터 엔진을 구경하다 누가 어깨를 툭툭 치길래 뒤를 돌아보았다.
“형들, 뭐기서 뭐하고 있어. 더기스 열쇠를 우리에게 팔려는 사람을 구했어.”
벤자민이 서 있었는데 벤자민 옆에는 걸레처럼 지저분한 누더기 망토로 전신을 가린자가 서 있었다.
“어서 가자구!”
누더기 망토를 걸친 자는 따라오라는 듯이 천천히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 뒤를 세 사람이 따라갔다.
“우우우우리 지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나도 몰라. 내가 열쇠꾼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사람이 ‘혹시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저 사람하고 일행이세요?’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찾는 게 뭐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더기스 열쇠라고 하니까 돈 안 받고 주겠다고 하던데?”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이면 나잖아?”
용탄자는 벤자민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
“맞아! 걱정은 하지 마. 함정은 아니니까.”
“그걸 니가 어떻게 아는데?”
“원래 엄청 뛰어난 도둑들은 함정을 탐지해 내는 감각을 가지고 있거든. 내 감각이 저 사람은 함정이 아니래.”
“정말 편리한 감각이네…….”
“그그그나저저저나 우우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거걸까?”
세 명은 누더기 망토를 걸친 자를 따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에서 골목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