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드래곤 라이더 1권 (22화)
7. 안개 속 마을 (5)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 저는 더기스의 돌침대에 누워 있겠군요. 돌침대에 누워 있는 제 모습은 어떤가요?”
용탄자와 트래퍼스가 미란다의 오른손에 쥐어진 종이 조각을 읽고 나이팅게일을 원망하고 있을 때 벤자민은 미란다의 왼손에 쥐어진 편지를 빼서 읽었다.
“야, 벤자민. 니 뭐 읽노?”
용탄자는 벤자민이 무언가를 들고 혼잣말처럼 읽어내려가자 혹시 나이팅게일의 단검열쇠의 위치가 적혀 있는 종이인가 싶어 물었다.
“야야야야, 베베벤자민 이이이건 며며명백히 계계계약 위반이야! 너너너너는 보보보물만…….”
트래퍼스는 나이팅게일의 단검열쇠의 위치가 적혀 있을 것 같은 종이를 들고 있는 벤자민에게 따지려 들었지만 벤자민의 모습에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베베베벤자민?”
벤자민이 손에 든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편지의 초반부를 다 읽었을 때 벤자민은 12살의 꼬마가 아니라 30살쯤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당신을 처음 만났던 그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당신은 대뜸 내게 새끼손톱만 한 다이아몬드를 건네줬죠. 그리고 저는 거절했죠. 제 행동이 충격적이었는지 당신은 어리벙벙해져서 말을 더듬었어요.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바람같이 사라져서는 이틀 뒤에 다시 바람처럼 저를 찾아왔죠. 이번에는 엄시손톱만 한 다이아몬드를 들고 왔죠. 물론 저는 거절했죠. 그렇게 여러 번의 거절이 새끼손톱만 한 다이아몬드를 갓난아기만 한 크기로 키웠죠. 기억나시나요?”
편지의 중반부를 다 읽었을 때 벤자민은 50살쯤의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돌연 당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당신을 기다렸답니다. 아줌마가 되어서도 기다렸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기다렸어요. 왜 기다렸냐구요? 당신이 훔쳐 온 보물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진심과 사랑을 들고 나타나기를 바랐었거든요.”
편지의 후반부를 거의 다 읽었을 때 벤자민은 80살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어리석은 나의 도둑. 나이팅게일 씨! 나는 당신의 대단한 능력으로는 훔칠 수 없어요. 나는 오직 나에 대한 진심과 사랑으로 얻을 수 있답니다.”
할아버지가 된 벤자민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편지를 통과하여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라졌다.
“유유유유유유유유유유유령이야!”
사물을 통과하는 벤자민의 눈물을 본 트래퍼스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벤자민은 자신이 유령이라는 걸 용탄자와 트래퍼스가 알아 버린 줄도 모르고 흐느껴 울었다.
“미안하구려……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해 당신을 죽을 때까지 기다리게 했구려……. 미안하오…… 미안하오…….”
벤자민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울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의 마음을 훔쳐보겠다고 단검열쇠 따위를 만들고 있었으니…….”
“다다다다다단검열쇠?”
“그럼 혹시?”
벤자민은 땅바닥을 적시지도 못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울었다.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그런 벤자민에게 차마 ‘당신이 나이팅게일이에요?’라고 묻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서럽게 우는 벤자민의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아 우물쭈물거렸다.
“그래……. 내가 바로 너희들이 찾는 단검열쇠를 만든 나이팅게일이란다.”
한참을 울고 또 운 벤자민, 아니, 나이팅게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이 비틀비틀 걸어 미란다에게로 가 그녀의 마른 살갖에 손을 가져다대며 용탄자와 트래퍼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미란다……. 당신은 어떻게 된 여인이요? 이렇게 미라가 돼서 돌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니…….”
나이팅게일은 아무것도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자신의 유령 손으로 미란다를 만져보려, 느껴보려 하며 혼잣말을 흘렸다.
“내가 이 여자를 처음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미스트베일의 지하 수로 어딘가에 법과 드래곤 라이더 정부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장물아비에게 훔친 보물들을 처리하고 나왔을 때였던 것 같구나……. 미란다를 처음 봤을 때가 말이다. 그때 미란다는 지금보다 훨씬 예쁜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지.”
나이팅게일은 미란다의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주려 했지만 그의 손은 미란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를 만질 수 없었다.
“나는 당장에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다이아몬드를 훔쳐 그녀에게 내밀었지. 하지만 그녀는 다이아몬드는 쳐다도 보지 않고 나를 보며 고개를 저어 버리더구나. 그래서 나는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더 크고 아름다운 보석을 그녀에게 내밀었지. 바보처럼 말이다.”
나이팅게일의 눈물이 미란다의 마른 살갖에 떨어졌지만 그녀를 조금도 적셔주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티펙트인 아신의 눈물마저도 그녀를 웃게 할 수 없었단다. 아신의 눈물로도 그녀의 마음을 훔칠 수 없자 나는 어리석게도 미란다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지.”
“아아아아신의 누누누눈물?”
“비싼 거가?”
“나나나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하지만 나는 미란다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보물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미란다라는 한 여인으로 가득해져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닫힘을 열림으로 바꾸는 단검열쇠를 만들기 시작했지. 단검열쇠만 완성하면 그녀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미친놈처럼 단검열쇠에만 매달려 있었단다.그러다 결국 영혼에 상처를 입었지……. 덕분에 광기에 휩싸여 단검열쇠를 완성하고 완성하자마자 세 조각으로 분해해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어딘가에 숨겨놓고 숨을 거뒀지. 영혼에 상처를 입은 덕분에 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많은 기억들을 상실한 채 오직 미란다를 찾아 미스트베일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단다.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게 너희들이었지.”
“우리들이요?”
“너희들은 내가 숨을 쉬고 있을 때 만났던 드래곤 라이더들 중 가장 뛰어난 두 명과 많이 닮았단다. 너희들에게서 익숙함을 발견한 난 너희들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거란다.”
“우우우우리들하고 다다닮았다구요?”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용아린과 엘비스, 도둑맞은 용아족 드래곤 장로의 창지팡이를 되찾고자 나를 찾아왔던 드래곤 라이더들이었지.”
“용아린?”
“엘비스?”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그 용아린과 엘비스라는 드래곤 라이더들을 혼자서 상대하셨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냐? 난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피크테일의 베태랑 암살자 40명을 고용해서 매복시켜 뒀단다.”
“비비비비겁하게!”
“고맙구나! 비겁하다, 야비하다라는 말은 도둑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이란다. 어쨌든 그들은 40명의 피크테일 암살자들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모두 죽이고 전설적인 도둑인 나를 생포했단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지.나는 그렇게 강력하고 멋진 녀석들을 생전 처음 보았어. 난 내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준 용아린과 엘비스에게 매료되어 용아족 드래곤 장로의 창지팡이를 그들에게 순순히 내주었지. 그리고 한동안 나보다 한참 어린 그 두 녀석을 졸졸 따라다녔단다.”
“우리들이 그 두 사람하고 닮았다구요?”
“그러니 기억을 잃어 꼬마 도둑 유령이었던 내가 졸졸 따라다녔지.”
나이팅게일은 용아린과 엘비스가 생각나는지 멍하니 더기스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트래퍼스가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그그그그그런데 다다단검열쇠는 어어어어디다 수수숨겨놓으셨어요?”
트래퍼스의 물음에 나이팅게일은 용탄자와 트래퍼스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의 단검열쇠는 뭐하러 찾는 게냐?”
물었다.
“꼴지 탈출 좀 해보려구요. 책에서 보니까 할아버지의 단검열쇠는 주인의 내면을 열어서 주인의 잠재력과 능력을 주인에게 선물해 준다던데…….”
“우우우우리들은 드드드래곤스 하하학생인데 시시시실력이 혀혀형편이 없거든요…….”
“하하하!”
용탄자와 트래퍼스의 말에 나이팅게일은 크게 웃었다.
좀 전에는 세상 다 끝난 것처럼 울더니 이번에는 세상에 즐거움이 가득한 것처럼 웃어댔다.
유령으로 오래 살다 조울증이 생긴 건지…….
“내 말을 도대체 뭘로 들은 거냐? 너희들은 전설의 도둑인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를 안겨주고 매료시키기까지 했던 용아린과 엘비스를 닮은 놈들이라고 했지 않느냐.”
“그그그그 사사사사람들하고 다다닮았다고 우우우리들이 그그그 사람들처럼 가가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용아린, 엘비스가 아니라 용탄자, 트래퍼스인데요?”
“이런 멍청한 놈들. 그럼 어서 단검열쇠나 찾아봐!”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 안 되나요? 찾은 게 고작 뻘소리가 적힌 종이조각이 다라서…….”
“단검열쇠를 만들다가 영혼에 상처를 입고 광기에 사로잡힌 후는 기억이 전혀 안 나.”
“네?”
“내가 단검열쇠를 어떻게 완성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삼 등분했는지 그리고 삼 등분한 단검열쇠를 어디다가 숨겼는지 전혀 모른다는 말이지.”
“그그그럼 저저저희들은 어어어어떡해요?”
트래퍼스는 최대한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무리 광기에 사로잡혔었다고 해도 미란다의 손에 고작 뻘소리가 적힌 종이조각을 쥐어놓지는 않았을 거다.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냐?”
“담배 없이 담배를 피우는 입속에 손을 넣어라. 이렇게요.”
“난 벌써 어디에 손을 집어넣어야 되는지 감이 오는데…….”
“그그그그게 어어어딘데요?”
“힌트를 주자면…… 우리들이 만나기 전!”
역시나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도둑답게 나이팅게일은 수수께끼의 답을 수수께끼로 줬다.
“우우우우리들이 마마만나기 전?!”
“아니 누가 수수께끼 매니아 아니랄까 봐!”
최근 반지에서 비롯된 수수께끼를 푸느라 이제 수수께끼만 보면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짜증을 냈다.
“뛰어난 도둑일수록 수수께끼를 즐기는 법이지. 그럼 난 이제 내가 평생 기다리게 한 여인에게 가봐야겠다.”
나이팅게일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이이봐요!”
“저기요!”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점점 투명해져 가는 나이팅게일을 황급히 불렀지만 나이팅게일은 알쏭달쏭한 미소만 지어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나이팅게일의 단검열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더기스로 들어갔다가 풀어야 되는 수수께끼만 가지고 터덜터덜 더기스를 나왔다.
어느새 밤이 깊어 미스트베일의 여기저기에는 안개와 어둠을 밝히는 램프가 걸렸다.
용탄자와 트래퍼스는 안개에 어둠까지 깔려 99열차 정거장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 더기스 근처에 있는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산송장’이라는 허름한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드래곤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끼이이이이익∼’하고 소름 끼치게 열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산송장처럼 무섭게 생긴 여관 주인이 용탄자와 트래퍼스를 맞았다.
“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
“방 하나만 주세요.”
산송장처럼 생긴 주인을 보고 말을 심하게 더듬는 트래퍼스 대신 용탄자는 방을 주문하고 여관 주인에게 방 열쇠를 받았다.
철컥! 철컥!
용탄자는 여관 주인에게서 받은 방 열쇠가 아니라 다크엘프에게서 받은 만능열쇠로 방문을 열었다.
“정말 만능열쇠네∼”
용탄자는 그 어떤 문도 손쉽게 열어 버리는 만능열쇠를 신기하게 쳐다보다 주머니 속에 넣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