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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3화)
2.아라 (2)


아라는 미국 NSA에서 연구했던 최초의 A.I(인공지능)인 케네디의 발전형이다. 물론, NSA에서 나올 때 케네디의 프로그램 자체를 완전히 삭제시켜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공지능 컴퓨터이다.
케네디를 만들 당시 개발자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자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내가 볼 땐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의 확장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생각하던 전혀 다른 언어와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나름 이름을 ‘아라’라고 명명했다. 이 모든 것을 개발자들에게 밝힐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난 아라를 모듈 형태로 만든 후, 그들이 만든 언어를 번역하는 코드를 추가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나빴지만 파이라 그룹과 NSA는 기뻐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해 말해 주기도 전에 내가 죽어 버렸으니…….
정신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가상 인물을 내세워 사둔 집에 숨겨 둔 CPU와 기계들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내전 이후 지어진 건물이라 지하 주차장 밑에 별도의 대피소가 있었는데 그곳에 아라의 본체를 설치한 후, 순수한 아라를 보완해 인스톨했다. 그때가 일주일 전이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 그냥 이런저런 생각.”
“여자 생각하는구나. 나라도 괜찮다면…… 오늘밤 너와 뜨거운…….”
“자, 잠깐! 어디서 그런 괴상망측한 말을 배운 거야?”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예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몰래 카메라로 나온 것도 봤는데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입이 귀에 걸리던데……. 진하의 반응은 아저씨들 중에서도 1%에 해당되는 반응이네요.”
…….
막장 드라마가 애들 망친다더니 딱 그 꼴이다. 아라가 컴퓨터라고 해도 인공지능을 가졌다. 젠장! 태어난 지(?) 이제 일주일짼데.
뭐라고 설명은 해야겠는데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난 컴퓨터밖에 몰랐고, 진하는 철부지 그 자체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도.
프로그래밍 할 땐 쌩쌩 돌아가던 머리가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결국 진땀을 흘리며 다음부터 그런 말을 못 쓰게 하는 정도의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 식사를 하며 어떻게 아라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해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천재를 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하지만 아라는 정도를 벗어났다.
언어에 대한 기능이야 프로그래밍할 때 만들어 뒀지만 처음 작동 후 수학을 가르칠 때를 생각하면 내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사실 아라의 머리에 해당하는 CPU(사실 CPU 1,000개의 결합체)는 엑사플롭(Exaflop:1초에 1,000조 회 연산)급이다. 물론, 엑사플롭급 슈퍼컴퓨터들이야 많긴 하지만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된 CPU였다.
그리고 작동 방식 또한 이론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졌기에 사실 정확하게 제 속도를 가질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라’라는 프로그램과 슈퍼 컴퓨터급 CPU의 결합은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칙연산을 가르칠 때만 해도 나름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20분을 넘지 못했다. 방정식, 집합, 함수, 로그…… 등등. 진하의 머리와 내 머리의 합은 공집합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결국 해킹을 가르쳤다. 인터넷이라는 지식의 보고를 마음껏 뒤져 보고 혼자 공부하라고.
오늘 현재 사실 아라의 지식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아라가 저장한 데이터를 살펴보려 했지만 그 양이 너무나 엄청나 포기했다. 기분, 느낌, 감정 등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여전히 모르는 듯했지만 프로그램이 이것들을 알 수 있을 진 아직까진 미지수였다.
“진하, 필요한 게 있어요.”
남은 빵과 우유를 냉장고에 넣을 때 아라가 말했다.
“뭔데? 참고로 물어볼 게 있다면 인터넷을 뒤지는 게 훨씬 나을 거야. 쩝∼”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얼마나 필요한데?”
“일단, 새로운 비메모리 생산 시설, 로봇, 기타 장치 등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물과 장비, 핵융합로 설비, 우주를 연구할 수 있는 인공위성……(중략)…… 끝으로 하프늄 10kg 필요해요.”
…….
“돈으로 환산한다면 1조 달러 정도면 돼요.”
…….
“진하? 진하, 괜찮아요? 진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어요.”
아라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는다. 1조 달러라니? 얼마 전 뉴스에서 본 한국 1년 예산의 2배가 넘는 돈이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했기에 간땡이가 저토록 커질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지? 문득, 그동안 불려 놨던 숫자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아라야, 괜찮아. 그건 그렇고 내 핸드컴에 ‘kori’라는 폴더를 확인해 봐. 그게 내 전 재산인데 얼마나 될지 계산해 보고.”
“알았어요.”
코리였을 때 만들어 놓은 비자금들과 주식들에 대한 정보들이었는데 NSA에 근무하면서부터 거의 신경 쓰지 못했던 돈들이었다.
“원화로 계산 끝났어요. 총 326,236,531,590원이에요. 주식의 경우 오늘 시세로 계산했어요. 건물과 땅의 값은 구입 당시의 가격으로 계산했고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하긴 게임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했으니 당연한 결과물(?)인지 몰랐다.
“음…… 건물, 땅처럼 처분하기 힘든 것 빼놓고는 얼마나 되지?”
“103,093,874,380원이에요.”
“……아라야, 대략적인 금액만 말해. ‘약’이라던가 ‘대충’이라는 좋은 말이 있잖아.”
“알았어요. 대충 1,000억쯤 돼요.”
“그럼, 이 시간부로 그 대충 1,000억을 줄 테니 그것 가지고 해 보고 싶은 거 해 봐. 대신, 부동산은 관리만 해.”
“하지만, 진하. 안 그래도 부족한 금액에서…….”
“벌어! 주식에 투자하든 물건을 만들어 팔든 벌어. 벌어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말리지 않겠어.”
호기롭게 말하다 뭔가 부족한 게 있어 보였다.
“참, 절대로 정당하게 벌어야 해. 가령, 해킹으로 남의 돈을 가져온다거나…….”
“……!”
“전쟁을 발생시키거나…….”
“……!”
“바이러스를 퍼트려 치료제를 팔아도 안 돼. 오로지 정.당.한. 방법, 즉, 남들이 볼 때도 타당하게 벌었다는 말이 나와야 해. 알았지?”
“휴∼ 깐깐하군요. 그런 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알았어요.”
역시나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라를 지금이라도 폐기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런 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과 해도 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해야 했다.
아라가 원하는 걸 뭉뚱그려 보면 원하는 게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테스트하고 실험해 볼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이튿날부터 운동할 시간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상의 인물이 되어 아라가 원하는 연구소 설립을 위해 공공 기관을 뛰어다녔고, 토지를 사러 다녔으며, 외국도 여러 번 나갔다 와야 했다.
그러던 것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아라가 원하는 것 중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줄이고 줄여도 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휴∼ 아라야, 로봇은 언제쯤 완성이 될 것 같냐?”
방금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3개월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이번 일본행을 끝으로 한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주차된 차에 몸을 던지며 결과가 뻔한 질문을 던졌다.
―제1연구소와 제2연구소의 경우 진척도가 30% 정도예요. 완공은 12월로 예정이지만 이후, 제가 예측한 로봇을 테스트하려면 적어도 1년은 넘게 걸릴 거예요.
핸드컴과 연결된 자동차의 스피커로 들리는 아라의 답은 역시나였다. 아라가 연구하고 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하루라도 빨리 나오길 간절히 바랐지만 사실 그것이 불가능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를 개발한 후 로봇의 발전은 점점 가속화되었다. 현재에 이르러 하우스키퍼용 로봇, 건설 로봇, 성인용 로봇 등 거의 생활전반이 로봇과 함께하곤 있지만 아직까진 부족한 것이 많았다.
특히나 휴머노이드의 경우 성인용 로봇을 제외하곤 쓸모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기술 개발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용도적인 측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 사람과 같이 만들어진다면 인간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건 차지하고라도 내가 생각하는 휴머노이드의 용도는 간단했다. 나의 귀찮음을 대신할 존재였다.
아라가 자신 있게 1년이라고 말했지만 10년이 넘어서라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아라에겐 말하지 않았다. 빨리 들어가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감았던 눈을 뜨곤 서울로 향했다.

***

잊고 있었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것을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큰 사명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자 내 목숨을 걸었던 일을 잊어버리다니…….
핑계를 만들어 본다. 진하라는 인물의 기억과 섞이며 혼란스러워 잊었다고. 아라를 만들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라고. 죽음을 담보로 보낸 자료를 그들 스스로 발로 차 버렸으니 이제 도울 필요 없다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의 죽음에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였다. 한쪽 다리는 새까맣게 썩어 있었고 빼빼 마른 몸은 잔득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고생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죽음 직전에 안심할 누군가를 보았을까?
행복해 보였다. 고통에서, 절망에서 벗어나 안도했다는 듯이. 아이가 죽은 지 이틀. 그동안 난 뭘 했지? 침대와 컴퓨터 사이를 오가며 빈둥댔을 뿐이다.
신기하게도 오른쪽 눈에서만 눈물이 흐른다. 코리는 울어도 진하는 울지 않는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애처로움과 냉정함이 맹렬히 싸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흔히 있는 일에 난 소파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3일간 누워 있었다. 아팠다. 병명은 몰랐지만 그냥 앓았다.
감기였을까?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시끄럽게 굴던 아라는 언제부터인가 조용하다.
“아라, 좋은 아침!”
“진하, 좋은 아침.”
“내가 좀 아팠나 봐?”
“몸 상태는 정상적이었는데 뇌파가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어제 밤부터 정상적으로 돌아와 안심했어요.”
“그래? 아라 덕분에 다 나았나 봐. 고마워.”
“천만에요. 진하.”
머리가 맑다 못해 텅 빈 것처럼 개운하다. 감정적 혼란도 없고 그…… 아이 생각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를 뿐이었다.
“아라, 아침 좀 시켜 줘.”
“샌드위치와 우유를 시켜 줄까요?”
“아니, 시원한 국물 있는 게 좋겠어. 생태 맑은 탕이나 비슷한 걸로 주문해 줘.”
“알았어요. 아프고 나더니 입맛이 변했나 봐요?”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배달되어 온 음식이 보였다.
“우와 맛있어 보인다. 근데, 2인분이 넘겠다.”
“1인분은 배달이 안 된데요.”
“아라가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딱인데. 어쩔 수 없지. 잘 먹을게.”
생태 맑은 탕은 맛있었다. 만일 아라가 같이 먹었다면 부족할 뻔했다.
“푸하∼ 잘 먹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호호, 아프고 난 뒤 사람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아요.”
“그래 보여?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잖아. 하하하!”
아라의 말처럼 뭔가가 바뀐 것을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어떻게 변하든 ‘나’라는 사실은 틀림없으니까.
“아라야, 현재 돈이 얼마나 있어?”
“부동산을 제외하고 3조가량 있어요.”
“응? 얼마라고?”
잠깐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3조라니……. 몇 달 전 사용했던 금액이 얼만데 줄지 않고 늘었단 말인가?
“2,998,683,986,345원 있어요. 50개의 외국 계좌에 있는 돈은 오늘의 환율을 적용했어요.”
“지난번에 쓴 돈이 있는데 어떻게 더 늘었지?”
“제1, 2연구소 건립 비용 중 약 1,000억, 주문한 각종 로봇과 장비의 결제 대금이 365억. 3개월간 지급될 예정이며, 지하에 핵융합 시설을 건설할 섬의 구입은 신원상의 문제로 아직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며칠 내로 결론이 나올 거예요. 오늘 현재까지 총지출 금액이 8,234억. 수입은 대략 1조 5천억쯤 돼요.”
“헐∼ 내가 알기론 수입이라 할 부분은 주식 투자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그 정도로 벌 수 있었던 거야?”
“주식 시장이라는 게 진하의 말대로 정당한 시장이 아니더라고요. 겉으로는 정당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더군요. 그래서 해킹으로 투자하려는 회사의 내부 정보를 모았어요. 그걸 기초로 주식을 한 거죠. 진하가 시장에 통용되는 정당한 방법이라는 단서를 조금만 약하게 했어도 10배는 넘게 벌었을 거예요.”
“쩝, 고생 많았어.”
앞으로 돈이 많이 필요했다. 10배라는 말에 입이 썼다. 내 스스로도 막연하게 얘기한 것인데.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