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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5화)
2장. 죽음!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3)
쿵! 쿵!
쿵! 쿵! 쿵!
감옥이 사라지고 난 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시, 심장이 움직이고 있다. 설마!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난 건가? 그런데 어째서 눈이 떠지지 않는 거지?’
―깨어났냐?
혼란스러워하는 장혁의 뇌리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녀석, 목소리하고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조용조용 이야기해라. 정신 사납다.
난데없는 핀잔에 장혁은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목소리에 담긴 범상치 않은 기운 때문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이명처럼 자신의 머리를 헤집는 소리에 기가 죽은 혁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나?
―예.
―크크크크, 나도 모른다. 내가 누군지 말이야.
그냥 되는 대로 답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혹시! 귀신입니까?
―떽!! 귀신이라니!!
나무라는 소리가 혁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 그럼?
―내가 누구인지는 당장은 알 거 없고, 지금은 급한 상황이니까 빨리 선택을 해라.
―그, 급한 상황이라니요?
다급한 기색이 역력하기는 했지만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장혁이 되물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염화의 불꽃이 타오르게 될 테니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염화의 불꽃이요?
갑자기 불꽃 타령이라니,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소리였기에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영혼까지 불살라 소멸시키는 놈이지. 염화가 타오르기 시작하면 영영 기회를 놓친다. 그러니 어서 선택해라. 죽고 싶으냐? 아니면 살고 싶으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혁으로 하여금 급하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부터 알아보자.’
강요한다고 해서 무작정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가진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장혁으로서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부터 아는 것이 중요했다.
―제, 제가 죽은 건가요?
―녀석, 의심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겠다. 넌 지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다. 한마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빨리 선택을 해라. 이대로 염화인이 네 영혼에 옮겨 붙으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선택의 여기가 없다.’
거짓으로 느껴지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다급해 보였다.
기억하고 있는 대로라면 강렬한 기운이 심장을 쪼갰으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살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혁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살고 싶어요.
―좋아, 당연히 그렇게 선택을 해야지.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다. 살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육체는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꺼번에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이 야속할 정도로 황당한 말이었다.
―유, 육체를 포기해야 하다니요? 설마 육체가 없어지고 유령이나 귀신이 된다는 건가요?
―아니다.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네 육체는 완벽하게 죽은 상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네 영혼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뿐이다.
―그, 그건 산 것이 아니잖아요?
육체가 없는 영혼의 삶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크크크, 녀석! 영혼만 건재하다면 그까짓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염화의 불꽃인 염화인이 영혼까지 소멸시킨다는 것이 더 문제다. 영혼이 소멸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방법이 있단 말인가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일단 믿을 수 있을 것 같기에 장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법이 있으니까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만 지금처럼 내 말에 일말의 의심을 가진다면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할 수도 있다.
―그, 그렇군요.
―이제 수긍하는 모양이구나. 그럼 하나만 묻겠다. 너는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솔직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믿어 보도록 하지요.
어차피 자신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기에 장혁은 목소리의 말을 믿기로 했다.
―후후후, 좋다, 조금이나마 네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승낙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동요하지 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최악의 선택이 될지도 모르지만 믿기로 했다.
적어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정신이 아득해지고 난 뒤에 어둠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고맙습니다.
―자칫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다. 믿음이 흩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으니 끝까지 날 믿어야 한다. 알았느냐?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다. 내가 주는 힘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장혁은 자신에게 종류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의 설명처럼 이내 아득해지며 점차 정신을 잃어 갔다.
―후후후, 시간을 거슬러 너에게로 오면서도 불안했는데 이렇듯 내 뜻이 완전히 이어졌구나. 이제 너의 의식 속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기억된 곳으로 보내 주마. 그곳에서 너는 새로운 육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 가족들의 희생 덕분으로 이렇게 너를 살릴 수는 있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안타깝기 만하구나.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그 또한 풀어 낼 수 있을 터. 완전히 각성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내가 전한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혁이 정신을 잃자 목소리의 주인공이 독백을 흘렸다.
자신에 대해 모른다는 처음 말과는 달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분명했다.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하도록 해라. 너를 통해 나 또한 부활할 테니 말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것을 혁에게 전하며 천천히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
고속도로 변 갓길에 주차시켜 놓은 차의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창문을 열고 검은색의 망원경이 나타났다.
멀리 화염이 치솟아 오르자 농가를 살피던 사나이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빠져나간 흔적은?
“열두 개의 생체 반응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법이군. 그자는 어떻게 됐나?
“임무를 완수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문제는 없었나?
“현재 상황으로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아, 잠시 더 지켜본 뒤 현장에서 철수해라. 증거를 없애는 것도 잊지 말도록 하고.
“염려 마십시오.”
자신의 대답과 함께 무선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사나이는 커다란 무전기를 껐다.
사나이는 다시 망원경을 눈에 대며 불타오르는 농가를 빠짐없이 살피기 시작했다.
‘전파 간섭이 일어났던 것이 조금 문제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작전이 끝났음을 보고하기는 했지만 조금 꺼려지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거 대상들이 숨을 거두고 난 뒤에 나타난 알 수 없는 현상이 조금은 신경 쓰였다.
작전이 끝났을 때 암살자를 상징하는 녹색의 점 하나만 남고 모니터에 나타났던 반응이 일제히 사라졌다.
각오하고 수립한 작전임에도 피해는 전무해 안도하는 순간 섬광이 일어나며 모니터의 화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왔고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잠시나마 신호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았다.
‘너무 쉽게 끝나서 조금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 가지고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끝난 작전이었다.
생각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사나이는 일말의 의구심도 버렸다.
화르르르르!
‘저 정도 불기운이면 웬만한 증거들은 모두 소각되고 없겠군. 주변에서 신고했을 테니 소방차들이 오면 떠나자.’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 불이라면 누군가 신고를 소방차들이 몰려올 터였다.
웨에에엥!
아니나 다를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빨리도 출동하는군. 멀지 않은 곳에 소방교육대가 있어서 그런가?’
벌써 화재 신고가 들어간 것인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소방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이었다.
화르르르!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불길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청염의 불꽃, 염화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나이는 걱정거리를 던 표정으로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끝났군. 염화인이 타오른 이상 아무리 출중한 능력자라 할지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여러 가지 금제주술에 염화(炎火)의 인(燐)까지 담긴 불이 바로 염화인이다.
최상급 능력자라 할지라도 심장이 갈라지고 거기에다가 염화인까지 덮어썼다면 영원한 소멸밖에는 없었다. 완벽한 소멸에 이르는 것이다.
‘괜히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떠나야겠다. 나머지도 서둘러 정리를 해야 할 테니까.’
어정쩡하게 남아 있다가 자칫 자신을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른 소방서의 움직임이 시작된 이상 최대한 빨리 증거들을 없애야 했기에 사나이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현장을 지켜보던 사나이는 빠르게 갓길을 벗어나 서울 쪽으로 차를 몰았다.
***
멀리 보이는 산 쪽에서 급격하게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가 보면 불이 난 것이 분명했다.
삐요! 삐요!
요란한 소리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차를 비롯한 여러 대의 소방차들이 부리나케 달리고 있는 것만 봐도 화재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끼이익!
산의 줄기를 따라 흐르는 하천 옆에 난 도로 위를 줄지어 달리고 있던 소방차들이 연이어 멈추어 섰다.
“서둘러라!!”
소방대장의 거친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소방관들이 급하게 내리며 빠르게 화재 진압 준비에 들어갔다.
“으음, 저 정도면 틀린 것 같군.”
지휘 차량에서 내린 소방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화재 현장을 바라보았다.
도로에서 조금 들어간 언덕 위에 나란히 서 있는 세 채의 가옥이 완전히 화마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푸른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 화재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었다.
건물 대부분이 불길이 휩싸여 있어 1,000도가 넘는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안에 있었다면 대부분 죽었을 것이 분명하기에 소방대장의 안색은 잔뜩 굳어 있었다.
“이런!”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인력으로 장비를 이동시킬 수밖에 없어서인지 소방관들은 애를 먹고 있었다.
소리치고 독려했지만 불이 난 집까지는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작은 소로뿐이라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하고 있는 거야! 호스를 연결시켜서 끌고 가라. 어서!”
“빨리! 빨리!”
소방대장의 외침에 소방관들이 호스와 노즐을 연결시키고는 서둘러 산자락까지 소방 호스를 끌기 시작했다.
슈아아아!
경사가 있는 소로를 따라 소방 장비들이 하나둘 올라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얼마 있지 않아 마귀처럼 넘실대는 불꽃을 향해 하얀 물줄기가 뿜어져 나갔다.
치이이익!
상극인 물줄기가 불길에 닿자 빠르게 수증기를 피어올라 주변을 물들였다.
그러나 화재가 난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화마가 절정의 춤사위를 보이고 있었다.
소방차에 연결된 호스에서 연신 물을 뿜어내고 있는 데도 불길은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와르르르!
거센 불길로 인해 구조가 취약해진 탓인지 쏟아지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지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제기랄!! 어서 불길을 잡아라! 인명 구조는 틀린 것 같으니 불길이 산으로 번지는 것부터 막아라, 어서!”
집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틀린 일이라 소방대장은 얼굴을 구기며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붕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더니 열기로 취약해진 기둥에 금이 가고 집들이 연이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집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불길이 산 쪽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아무리 여름철이라고는 하지만 보름이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대지가 말라 있었다.
불길이 옮겨 붙기라도 하면 자칫 큰 산불로 번질 우려가 있었다.
“거기! 빨리 빨리 움직여!”
“불이 그쪽으로 번진다, 호스를 틀어!!”
소방대장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소방관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다급했다.
얼마 안 있어 노즐에서 뿜어지는 물줄기 중 두 개가 산 쪽으로 향했다.
쏴아아아!
불타오르는 농가 뒤편으로 거센 물줄기가 뿜어졌다.
소방관들의 노력 덕분인지 산 쪽으로 향하던 불길이 천천히 잡혀 갔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군.”
조금만 늦었어도 산으로 옮겨 붙었을 것이기에 소방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