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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6화)
3장. 부활을 위한 시작(1)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 안에 두 개의 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광채를 더해 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희미한 광채는 마치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는 촛불처럼 점점 색깔이 옅어져 가고 있었다.
우윳빛으로 일렁이며 광채를 더해 가고 있었다.
찬란한 광채를 발하기 시작한 빛은 장혁의 영혼이었고, 꺼져 가는 희미한 빛은 또 다른 영혼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죽음이 다가올 무렵 장혁을 이끌었던 목소리가 꺼져 가는 광채 속에서 흘러나왔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목소리는 천지 안에 존재하는 시간의 축을 건드려 적들로부터 몸을 피했던 혁(?)이었다.
―후후후, 희박한 확률이었는데 내가 남긴 영혼의 조각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천운이다.
소멸되어 가고 있었지만 기꺼움이 서려 있었다. 자신의 안배가 마침내 결실을 거둘 때가 왔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존재이자 또 다른 존재인 저 아이에게 대부분 건네고 나니 이제 빈껍데기로군. 그렇지만 여한은 없다.
열한 사람에게 남아 있는 영혼의 힘과 자신이 봉인해 놓았던 힘을 장혁에게 옮겼다.
죽어 버린 육체를 되살리는 것보다 정신체로 만드는 것이 났기에 그리했다.
정신체로 만든 직후 곧장 자리를 옮겼다.
장혁이 의식하고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남아 있던 힘을 이용해 공간을 초월해 움직일 수 있었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마지막 염원을 전할 수 있었다.
혁이 행한 두 가지 모두 둘 다 엄청난 힘을 소비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켜 줄 마지막 힘마저도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가지고 있는 것을 거의 다 쏟아부었던 탓에 이제는 서서히 소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만 마치면 모든 안배가 끝나기에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후회는 없었다.
또 다른 자신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누군가 건드려 놓은 혼돈의 장이 시간의 축을 간섭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실수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이렇게 마주하느라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남아 있는 힘으로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시간의 축을 건드려 적들의 손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본래의 시간대가 아니라 미래로 떨어져 버렸던 혁은 천신만고 끝에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가지고 있던 권능 또한 대부분 상실했고, 스스로를 지탱하던 존재의 의미 또한 대부분을 잃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속절없이 소멸을 맞이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안배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의 축에 뛰어들기 전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었기 때문이다.
혁은 조율해 놓은 혼돈의 힘이 누군가에 의해 비틀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존재 일부를 세상에 뿌린 일이 잘한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렇게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에게 존재의 힘이 이어졌고, 마침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척 당황했었지…….
혁은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왔을 당시를 생각하며 당혹스러웠던 것이 기억났다.
존재 일부를 이어받기는 했지만 피를 이은 후손들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부분의 권능을 잃어버렸다고는 해도 한낱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힘이었기 때문이다.
혁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피의 유전으로 인해 존재의 일부를 이은 후손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 봉인시킨 후 스스로는 마침 자라나고 있던 태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안착시켰다.
태아 상태의 장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육체의 구성과 대부분 일치를 보이고 있었기에 선택이 가능한 일이었다.
소멸을 맞이해야 했을 일이었기에 자신의 의념을 장혁이 이어 나가게 만들었지만 그의 선택은 다른 사태를 불러왔다.
자신의 육체 구성과 틀린 부분이 문제였던 것이다.
―후후후, 하마터면 깨어나지 못하고 저 녀석에게 완전히 동화될 뻔했지. 만약 이번에 저 녀석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완전히 흡수되어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고 내 존재는 영원히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사계(死界)의 문이 열리고, 그 충격으로 간신히 깨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의식으로 자신이 후손들에게 봉인시켜 놓은 힘들을 회수했다.
그 힘을 이용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 중에 남아 있는 것들을 장혁에게 전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저 녀석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란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원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천운이 닿아야 하겠지만 장혁이 완전한 각성을 이루는 날 자신이란 존재의 의미를 부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 혁은 무한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들에게 사로잡힌 후 많은 힘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시간의 축을 건드린 탓에 그나마 남아 있던 권능도 잃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권능을 얻게 해주었던 몇 가지만은 후손들에게 나누어 봉인시킨 탓에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자신이 남긴 파편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장혁이고, 권능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던 것들이라면 충분히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힘!
그것을 이용해 각성을 한 후 자신이 남긴 것을 깨닫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시간의 축을 건너 미래로 떨어지며 만난 영혼의 파편으로부터 얻은 지식들이 있었다.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지식들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편안하게 자신의 소멸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런 곳까지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아이도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구나. 이제 남아 있는 힘이 얼마 되지 않으니 서둘러야겠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혁과 자신이 있는 곳은 죽음을 예비해 마련한 장소 같았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곳이니 아주 안성맞춤인 장소다.
이제 장혁을 소생시켜야 할 시간이었다.
―아이야, 이제부터 너와 나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거다. 내가 살아온 의미는 이제 사라지겠지만, 이로서 너의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아마 이것도 내게 정해진 운명이겠지. 내게 남은 것이 얼마 없지만 나를 태어나게 만든 근원만 지킬 수 있어 너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래도 그것이면 어떻게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의 시간대에서 얻은 것들도 너에게 넘겨주도록 하마. 그런 저급한 지식이 너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그 시대보다 과거이니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힘으로 너에게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주마. 이로써 난 완전히 사라지고, 넌 새로운 시작을 열게 될 것이다. 사실 나의 존재는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나 또한 자유롭게 살았으니 여한은 없으니 말이다. 너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기 바란다.
혁은 유언을 하듯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장혁에게 자신의 마지막 힘을 전하기 시작했다.
장혁에게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스르르르…….
희미하게 꺼져 가는 광채가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이제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장혁의 정신체로 다가갔다.
촛불처럼 일렁이며 희미해져 가던 혁의 정신체가 스며들며 장혁의 정신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번쩍!
완전히 스며들자 엄청난 광휘가 치솟으며 미지의 공간을 밝혔다. 혁이 가진 마지막 힘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툭!
온통 빛으로 물든 공간이 세로로 일그러지며 무엇인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혁의 의지에 따라 불타 버렸던 장혁의 육체 중 일부가 공간을 넘어 도착한 것이다.
대부분 불타 재로 변해 거무튀튀한 장혁의 육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재가 되어 버린 육체가 빛에 의해 이내 환하게 물들어 갔다.
변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재가 된 육체가 검은 기류로 변해 버리더니 공간을 뒤덮은 빛 속으로 서서히 섞여 들어갔다.
잠시 후, 광휘의 빛이 꺼지듯 사라지고 깊은 어둠이 공간에 찾아왔다.
쿵! 쿵! 쿵!
심혼을 뒤흔드는 맥동음이 어둠으로 물든 공간 속에서 천천히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혁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어둠을 품은 공간이 마치 태아를 잉태한 자궁처럼 새로운 생명체를 품은 것이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잉태한 생명체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서 비상을 시작할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시간의 흐름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3시간 만에 집들이 전소되면서 화재는 간신히 진화가 됐다.
“산으로 옮겨 붙으려던 불은 겨우 겨우 진압했군. 하지만 안에 갇힌 사람들은…….”
화재가 진압된 현장에는 타고 부서진 앙상한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안에 있었다면 엄청난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방대장의 목소리가 안타까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열기가 가신 다음에 화인을 조사해라. 사망자가 있을 것 같으니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조사도 중요했지만 잿더미 속에 있을 시신도 문제였기에 조사반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무래도 방화인 것 같으니까 경찰들에게 연락을 취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흙길 가운데 길게 불타 오른 흔적이 있어 방화로 보이는 터라 경찰에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 대장님.”
“난 서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할 테니, 뭔가 발견되면 곧바로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소방대장이 지시를 남기고 지휘 차량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조사반원들이 주변을 뒤지며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대장님 말씀대로 방화가 분명한 것 같다.”
불 냄새 사이로 휘발유 냄새 같은 것이 확연히 남아 있었다.
“휘발유 같은 걸로 도화선을 만들고 불을 붙인 것 같으니 확실히 방화인 것 같군요.”
“멀지 않은 곳에 방화에 사용된 도구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변을 확실히 살펴봐라.”
반장의 명령에 조사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 위에 남은 흔적 이외에는 화재 현장 주변에서 방화에 쓰였을지도 모르는 증거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