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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7화)
3장. 부활을 위한 시작(2)


“자, 조심해서 조사 시작해라. 대장님 말씀대로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주의하도록 하고.”
조사반장이 지시를 내렸다.
조사반원들은 화재 현장에서 시신의 수습을 위주로 조사를 진행하며, 혹시라도 몰라 증거물을 수집하는데도 애를 썼다.
조사가 진행되며 타다 남은 것들이 천천히 치워지고 불에 타 재로 변해 버린 시신들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타다 만 그릇들과 함께 시신들이 발견된 것을 봐서는 점심 식사 도중에 참변을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점심을 먹다가 일가족이 전부 화마에 당한 모양이군.”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재로 변한 시신들을 보며 조사반원 하나가 혀를 찼다.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하겠지만 심상치 않은 것 같군.”
“뭔가 이상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시신들을 한 번 보게.”
“그, 그렇군요.”
지금까지 발견된 시신은 모두 여덟 구로 하나같이 이상했다.
발견된 시신들이 하나같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자네도 느꼈군. 아무리 방화라고 해도 밥을 먹다가 불이 난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쓰러져 있을 수가 없어. 이미 죽어 있던 것이 아닌 이상 말이야. 아무래도 일반적인 방화는 아닌 것 같다.”
“반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불이 나면 대부분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대부분 가스에 질식해 죽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통스러운 탓에 주변이 어지럽혀 있거나, 웅크리고 죽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그런데 발견한 시신들이 그렇지 않았다.
전부 반듯하게 누워 있다는 것은 화재가 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는 증거였다.
‘일가족을 전부 몰살시키고 불을 질렀다면…….’
오랜 세월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조사반장을 비롯해 반원들은 이번 화재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는 사람이 발버둥 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가족을 모두 죽이고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저지른 방화 사건이 분명했다.
“조심해서 움직여라! 사건이 심상치 않으니 남아 있는 증거물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말이야.”
“알겠습니다.”
증거가 훼손되는 것을 염려한 반장의 지시에 일제히 대답한 조사반원들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반장님, 무슨 일입니까?”
소방관들의 심상치 않은 행동 변화에 파출소에서 나와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이 물었다.
“시신들의 상태를 보면 화재가 나기 전에 모두 죽은 것 같습니다.”
“예?”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본서로 연락하겠습니다.”
화재 현장에 온 경찰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곧장 경찰차로 무전을 쳤다.
그리고 감식반이 오기로 했다는 사실을 조사반장에게 전했다.
감식반이 도착하기 전까지 소방관들은 조심스럽게 화재 현장을 조사했다.
추가 조사에서 또다시 네 구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총 열두 명의 주검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추가로 발견된 네 구의 시신마저도 마찬가지였다.
발버둥 친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이미 살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엽기적인 강력 사건이 발생한 탓에 형사들과 감식반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화재 전에 이미 살해를 당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사반장의 인사를 받으며 이경식 경위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살아 있을 때 화재가 났다면 발버둥 친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텐데 전혀 없었습니다.”
“유독가스로 인해 질식사한 경우라면 고통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겠죠.”
“무엇보다 발견된 시신들이 누가 정리라도 한 것처럼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전부 그런 상태로 발견됐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의식을 잃었거나, 이미 죽어 있었거나, 둘 중 하나니 문제가 심각하군요. 둘 다 타살이니 말입니다.”
일가족 열두 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정말이지 엽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폴리스라인부터 치고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증거를 철저히 수집해라.”
“예, 반장님.”
감식반장인 이경식 경위의 지시에 옆에서 듣고 있던 반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신중한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신원은 파악됐습니까?”
지시를 내린 이경식이 죽은 사람들의 신원에 대해 물었다.
“예, 이곳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한 학자 집안이라고 합니다. 내외와 손자, 그리고 근처에 살고 있던 자식들까지 합치면 죽은 사람들의 숫자와 같습니다.”
불에 전부 타 버려 확실한 신원을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화재를 보러 온 인근 주민들을 통해 죽은 사람들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었기에 이야기해 주었다.
‘한집에 살던 것도 아니고, 근처에 살고 있던 일가족이 이곳에서 모두 죽었다면…… 으음, 심상치 않은데?’
이경식은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음모의 냄새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발화 지점을 보면 살해된 후 불을 질러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확연합니다.”
“그래요?”
“예, 발화 지점은 대문과 멀지 않은 곳인데……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 직접 가서 한 번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조사반장이 경식을 이끌었다.
불이 나기 시작한 집 입구로 오자 땅 위에 표시된 부분이 보였다.
타 버린 자국들과 액체가 떨어지며 난 파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액체로 된 인화 물질을 집 안에서부터 대문 밖까지 흘리며 나온 후 불을 붙인 것이 분명했다.
“범인이 액체성 인화 물질을 안쪽에서부터 흘리며 나왔군요.”
“한 번 잘 살펴보십시오.”
이경식이 허리를 굽혀 흔적을 살폈다.
‘제기랄!! 이건 전문가의 솜씨다. 그것도 현장 보존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놈이다.’
석회 가루로 인화된 흔적을 둘러싸듯 표시해 놓았다. 화재조사반으로서는 당연한 조치였겠지만 그것이 증거를 훼손했다.
석회가 바람에 날려 인화 흔적을 덮고 있었고, 화학반응을 일으킨 듯 색깔이 변해 있었다.
석회 가루와 반응하는 인화 물질을 범행에 사용해 증거를 자연적으로 없어지도록 한 것이다.
범인은 증거 보존을 위해 석회 가루가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인화 물질을 분석해 내는데 어려움이 클 것 같았다.
‘그래도 약간은 흔적이 남아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다.’
조사반원들이 매뉴얼에 맞게 현장을 보존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지만 아마추어의 솜씨였다.
덕분에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곳이 얼마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집 주변에서 더 이상 다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는…….”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자세하게 이어지는 조사반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식의 신경은 딴 곳으로 가 있었다.
정보기관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고사로 위장하는 방법과 유사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손을 쓸 수 있는 전문가라면 일반적인 방화범과는 다르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경식은 다시 한 번 흔적을 살폈다.
‘으음, 역시나 전문가의 솜씨다. 정보기관과 연계된 사건이 분명하다.’
정보기관이 개입한 것 때문인지 증거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다수의 증거물들이 수집되었지만 훼손이 많이 된 탓에 명확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증거가 문제가 아니다. 섣불리 조사했다가는 자칫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히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할 테니까.’
일가족으로 보이는 열두 명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라면 방송국은 물론이고, 신문에 대서특필될 일이다.
그렇지만 어떻게든지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면 그 중심에 자신이 있어서는 곤란했기에 고심이 깊어졌다.
‘일단 명확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훼손된 증거들은 보여 줘야 하고, 범인을 찾을 수 있는 증거는 감춰야 한다. 그나저나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무도 사건을 덮을 수 없게끔 일가족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를 찾는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정보기관에 손을 쓴 것이라면 발화 지점뿐만 아니라 다른 증거도 훼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건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많았다.
자칫 초동수사의 실패로 인해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언론의 질책이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단 시신이 발견된 곳부터 봤으면 합니다.”
“예? 아, 따라오십시오.”
설명을 이어 가던 조사반장은 굳어 있는 경식의 표정에 말문을 닫고 현장으로 안내를 했다.
“여깁니다.”
불탄 것을 제외하고는 시신의 상태는 누가 보더라도 마치 염을 해놓은 것처럼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조사반장의 말대로 살해된 후 화재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죽인 뒤에 불을 질렀군. 이 정도 화재면 다른 증거를 찾기란 어려울 것 같구나.’
모든 것이 완전히 불타 있었다. 금속류를 제외하고는 증거를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조사를 시작해라.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니까,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
이경식은 감식반원들을 향해 철저한 현장 조사를 지시했다.
감식반원들도 경식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사건의 심각함 때문인지 조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반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화재 현장 사진을 찍으셨을 테니 사진을 인화하시면 필름과 함께 경찰청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 알겠습니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감식반원들의 시선들과 서늘한 경식의 축객령에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조사반장은 말을 더듬으며 자리를 피했다.
조사반장이 떠나자 감식반원 하나가 경식에게 다가왔다.
“반장님, 자다가 질식해 죽었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움직인 흔적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소방관들 말대로 죽은 다음에 불이 난 것이 분명합니다. 정황을 보면 열두 사람 모두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기는 한데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별수 있나,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곳을 찾아서 샘플을 채취하도록 하고, 잿더미 속까지 철저히 뒤지는 수밖에…….”
진화를 위해 쏟아부은 물들로 현장이 질퍽거려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