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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8화)
3장. 부활을 위한 시작(3)


더운 여름 날씨로 인해 비 오듯 땀을 쏟으면서도 감식반원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조사하면 할수록 타살이란 정황이 뚜렷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반장님,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하지만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장민철이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경식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현장 증거가 없다면 시신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지.”
“반장님, 국과수에서 부검을 하기 전까지 우리가 시신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문제가 될 소지가…….”
“걱정 마라. 내가 다 책임을 질 테니까.”
민철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경식은 불에 타 버려 분간이 어려운 시신에게로 다가가 갔다.
경식은 시신을 뒤덮은 화재의 잔해를 조금씩 치운 후 이리저리 살피더니 가슴뼈 부분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훑어 나갔다.
뭔가 걸리는 느낌에 마음이 무거웠던 경식은 부검을 하기 전에 함부로 시신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반장님!”
증거를 훼손하는 탓에 옆에 있던 민철이 기겁을 하며 불렀다.
“조금 기다려 봐라.”
흥분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제지한 경식은 다른 손으로는 가슴 근처를 조심스럽게 쓸어 내렸다.
옷뿐만 아니라 재가 된 피부도 쓸려 나갔다.
“으음!”
까맣게 탓 갈비뼈가 드러나자 경식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예상한 대로 타 버린 살갗이 쓸려 내려가며 뭔가에 예리하게 베인 흔적은 갈비뼈에 남아 있었다.
“이 흔적을 보니 타살이 맞는 것 같군.”
“뭐가 있는 겁니까?”
경식이 단정하듯 말하자 옆에 있던 민철이 상처 부위를 살피며 물었다.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열심이군.’
막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수습으로 온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았지만 열의가 있어 보이는 막내의 모습이 자못 믿음직스러웠다.
“여기를 자세히 봐라.”
경식은 타 버린 살들이 벗겨져 내려간 갈비뼈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검게 변한 뼈 가운데에서 반듯한 실금이 보였다.
“여기에 나 있는 실금은 아주 예리한 것으로 잘린 흔적이다.”
“예리한 것에 잘린 흔적이라고요?”
“이런 종류의 상처를 남긴 날붙이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에 잘린 흔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게 칼 같은 것에 잘린 흔적이라는 겁니까?”
막내의 반문에 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기로 인해 골수가 끓어올라 여기 잘린 틈으로 빠져나와 이런 금이 보이는 것이지. 아주 예리한 무기로 뼈를 자르고 정확히 심장을 갈랐을 거다. 으음, 이 정도면 정말 보통 솜씨가 아니다. 틀림없이 이번 사건은 전문가의 소행이 분명하다.”
“전문가가 일가족을 전부 죽인 것이라면, 사건이 정말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요?”
“그래, 왠지 냄새가 나는 사건이다.”
아무리 전문적으로 칼을 다루는 자의 솜씨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솜씨를 보일 수 없었기에 음모의 냄새가 짙게 났다.
‘사실 전문 킬러도 이 정도까지는 하지 못한다. 추측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고도로 무예를 익힌 자의 솜씨야.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
경식의 눈가가 딱딱하게 굳었다.
세검을 이용해 뼈와 심장을 단번에 가른 것을 보면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무예를 익힌 자의 소행이 분명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무예가 아니라 암중으로 전해지는 비기를 익힌 자의 솜씨였다.
‘내가 알기로 국내에는 이 정도의 솜씨를 가진 자가 없다. 그럼 외국인이라는 말인데…… 우선은 어떤 종류의 무예가 이런 흔적을 남기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우리 민족의 무예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하려면 다른 시신들도 살펴봐야 한다.’
경식이 아는 한 이런 정도 상처를 남길 만한 세검을 사용하는 유파는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쪽이 유력하기는 하지만, 중국 쪽도 용의선상에서 뺄 수는 없기에 경식은 다른 시신들도 전부 확인하기로 했다.
“막내야, 아무래도 다른 시신들도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시죠.”
시신을 훼손하는 일이 위법이기는 하지만 경식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민철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시신을 향해 걸어가는 경식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가며 천천히 다른 시신들의 상태도 확인해 나갔다.
처음 확인한 시신처럼 하나같이 세검에 의해 갈비뼈와 심장이 한꺼번에 잘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막내야, 모두가 한 사람의 소행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요?”
“그래! 모두가 같은 무기고, 솜씨도 같다.”
“정말 대단한 놈이로군요.”
“그런 것 같다. 반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 사람들을 죽인 것을 보니 정말 보통 놈이 아니다.”
“어떤 새끼인지 얼굴이 보고 싶군요. 사람들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이다니 말입니다.”
경찰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철은 투철한 사명감만큼이나 열이 받는 듯 분통을 터트렸다.
우르릉!
민철의 분노에 공감이라도 하는 것인지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먼 데서 들려왔지만 비가 오려는 듯 하늘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
“젠장! 비가 올 모양이다. 증거물이 훼손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겠다.”
천둥소리에 하늘을 쳐다본 경식이 낭패한 표정으로 민철을 재촉했다.
“큰일이군요. 어이, 거기! 비가 올 것 같으니 여기 시신들을 빨리 옮기도록 해라. 어서!”
민철이 지시를 내리기가 무섭게 현장 근처에 대기 중인 경찰들은 빠르게 시신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해가 많은 탓인지 구급차들도 여러 대가 와 있는 중이고, 감식반 차량도 3대나 와 있어 서둘러 옮기기만 한다면 손상될 염려는 없어 보였다.
“서둘러라! 어서!”
조금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커멓게 몰려오는 먹구름들이 속력을 더하자 주변이 더욱 어두워졌고 재촉하는 경식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번쩍!
우르르릉!
증거와 시신들을 반도 채 옮기기도 전에 하늘을 가르는 빛줄기와 함께 천둥소리가 울렸다.
“이런! 급하다.”
“어서, 옮겨라. 어서!”
경식이 다시 한 번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재촉하지 않더라도 감식반원들도 상황이 급함을 인식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신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현장 주변이 일순간에 환하게 물들었다.
번쩍!
콰콰쾅!
멀리서 몰려오던 번개가 갑자기 현장에 떨어지면서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현장을 휩쓸었다.
놀랍게도 번개는 불타 버려 거의 형체를 알 수 없는 가장 왜소해 보이는 시신 중 하나에 직격했다.
“으아악!”
“아아아아악!”
시신을 옮기려고 주변에 있던 감식반원 두 명이 번개에 감전당해 튕겨지듯 나가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김 경사! 윤 경장!”
경식이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달려갔다.
“괜찮나?”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반원들에게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크으으!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 저도 괜찮습니다.”
약간 떨어져 있었고, 다행히 번개가 시신에 맞으며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상당해 보였다.
“번개에 직접 맞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어이, 거기 네 사람! 여기 이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응급 차량에 태워서 병원으로 보내. 어서!”
감식반원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경식은 혹시나 몰라 몰려오는 경찰들에게 쓰러진 부하들을 옮기게 했다.
응급차에서 내려진 들것이 날라져 오고 충격이 큰 듯 아직도 신음을 흘리는 감식반원들이 실려 가는 것을 본 경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기랄!”
불에 타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던 시신이 번개를 직접 많은 탓인지 산산이 부서진 것이 보였다.
‘완전히 박살이 났군. 이렇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벼락까지 맞다니!’
타인의 손에 살해당한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까지 편하지 않은 고인의 처지가 경식은 안타까웠다.
“거기 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시신이지만 고이 모셔라. 나머지는 빨리 증거들을 옮기도록 하고! 어서!!”
경식은 다른 감식반원들을 불러 대부분 훼손된 시신과 증거물들을 수습하도록 했다.
번개가 떨어진 탓인지 다들 머뭇거렸지만 사명감 때문인지 이내 움직이며 증거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가 내리기 전에 움직일 수 있는 증거물들은 전부 옮길 수 있었다.
“어서 현장을 덮고, 비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해라.”
이제 현장만 잘 보존하면 끝이었기에 경식은 경찰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후우!”
짙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경식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보통 놈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기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의 냄새가 나. 그나저나 이렇게 완벽하게 처리할 정도라면 놈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보기관까지 가세했다면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놈인지 반드시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시신들 대부분이 불에 완전히 타 버렸다.
화재 신고를 받고 진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까지 타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완전히 타 버린 것을 보면 휘발성과 연소성이 강한 물질이외에도 특수한 물질이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 사용된 것이 분명했다.
전문가의 솜씨가 분명한 이상 범인을 잡는 것이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시신들과 훼손되기는 했지만 화인을 밝혀줄 샘플이 있으니 사건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 비가 오기 전에 불타 버린 시신들을 옮길 수 있었다.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졌으니 뭔가 단서가 나오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막내야!”
“예, 반장님!”
“넌 나와 같이 국과수에 좀 가자.”
“국과수에요?”
이제 청으로 돌아가 공문만 보내면 되는 일인데 경식이 직접 가겠다고 하자 민철이 의아한 듯 물었다.
“범인이 아무래도 전문가 같으니 내가 가서 설명을 좀 해줘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차를 대도록 하지요.”
한번 이야기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민철은 두말없이 대답했다.
조금 떨어진 쪽에 주차했던 민철은 차를 가져다가 화재 현장 근처 도로 옆으로 댔다.
“나머지는 현장 보존을 철저히 해라.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덮은 후, 고랑을 파서 물길을 내도록 해라.”
“염려하지 마십시오, 반장님!”
경식의 지시에 나머지 감식반원들이 현장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전경들이 가져온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이용해 현장을 꼼꼼히 덮어 나갔다.
두 겹 세 겹 비닐로 완전히 덮은 후 주변에 배수로를 파서 비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현장 보존을 끝냈다.
현장 보존이 끝나자 전경들은 사방에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아직 현장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출입 금지라는 잉크 인쇄가 선명한 테이프를 막대에 걸쳐 빙 둘러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막내야, 가자!”
“예, 반장님.”
경식은 현장 정리가 끝나는 것을 확인한 경식은 민철과 함께 차를 타고 곧장 국립과학수사연수소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