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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0화)
4장. 사라진 증거들(2)


‘일찍 오셨나 보구나.’
곱창을 굽는 탓에 연기가 뿌연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석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오셨군요.”
“왔냐? 자리에 앉아라.”
지글거리며 맛있는 냄새를 피워 올리는 곱창 냄새에 식욕이 돈 경식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자리에 앉았다.
“자, 한잔 받아라.”
“고맙습니다, 형님.”
기울어지는 병을 따라서 맑은 액체가 술잔에 가득 차자 경식은 단숨에 비웠다.
“카아! 어디!”
불줄기가 일듯 식도를 타고 도는 싸한 느낌을 뒤로하고 경식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양념이 적당하게 밴 곱창을 한 점 들려던 경식은 아직도 병을 들고 있는 한석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안 좋은가 보구나.’
들어올 때부터 심각해 보이더니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한석의 얼굴을 보며 말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은 경식은 다시금 술잔을 잡았다.
조르르륵!
“꿀꺽! 카아!”
한석이 술을 따르고 경식이 또다시 단숨에 비웠다.
그래도 병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기에 경식은 빈 속으로 다시 채워진 술잔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한석은 연거푸 다섯 잔을 따라주었고, 경식이 비운 숫자도 다섯이었다.
“취하겠다. 안주 먹어라.”
“예, 형님!”
경식은 아무 말없이 젓가락을 집어 곱창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제길, 왜 이렇게 질긴 건지.’
식당 안으로 들어오며 회가 동했던 식욕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에 곱창을 씹는 것이 꼭 고무를 씹는 것 같았다.
“한잔 따라 봐라.”
한석이 술을 비우고 술잔을 내밀었다. 소주병을 잡은 경식이 공손히 술을 따랐다.
약속을 하고 만났지만 한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경식의 술잔이 비면 술을 따라 주고 자신의 술잔이 비면 잔을 내밀어 술을 받아 마셨다.
두 사람은 그렇게 술자리를 같이했다.
한석의 태도가 이상할 법도 하건만 경식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술자리를 지켰다.
“사건이 있어서 난 이만 들어가 봐야 한다. 넌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 봐라. 술 마셨으니 차는 두고 가고.”
두 병째 소주병이 비워지자 술자리를 파하려는 듯 한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다음에 또 보자. 계산은 내가 알아서 하마.”
볼일이 끝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 한석이 계산을 하고는 경찰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글라스 하나 하고요.”
“예! 갑니다.”
잠시 후 소주 한 병과 글라스 잔을 주인이 내왔다.
경식은 반병 정도가 들어가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는 한 번에 마셔 버렸다.
벌컥! 벌컥!
“크으!”
탁!
쪼르륵!
잔을 비운 경식은 안주도 먹지 않고 비워진 글라스에 다시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 정도로 큰일이라는 것인가?’
한석이 자신에게 잔을 다섯 번 따랐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서로 간 약속되어 있는 신호 중 하나다.
단계별로 나누었을 때 최상위 등급 표시니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기에 경식은 심정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는 이미 넘어왔을 것이고, 아무래도 위험할 테니 조금 기다렸다가 움직여야겠구나.’
한석이 경고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함부로 움직일 사안이 아니었기에 경식은 마음속에 이는 의문을 일단 접기로 했다.
경식은 잔을 집어 들었다.
벌컥! 벌컥!
“크으!”
글라스에 가득 담긴 소주를 단번에 비워 버린 경식은 곱창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소주 맛만큼이나 마음이 쓰린 경식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고 가게를 나섰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직접적으로 수사하지 못하지만 지원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연구기관이다.
한해 수천 건의 부검 및 증거물을 조사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근무하고 있는 이들은 요즘도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각급 경찰서와 검찰 등에서 조사 의뢰가 많아진 탓에 조사할 것이 워낙 밀려 있어서다.
조사는 접수 순서대로 이루어졌다.
사회적 이유가 되는 아주 큰 사건이 아니고서는 언제나 의뢰가 들어온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이라 어디 하나 급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들어온 시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화재로 인한 사고인지, 아니면 타살된 후 증거 인멸을 위한 방화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경찰 감식반의 의견대로라면 타살이 분명하니 곧바로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법의관의 이견은 무시됐다.
같이 들어온 한 구의 시신 때문이었다.
화재 사건이 일어난 날 연예인의 음독 사건이 있었는데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견이 분분하여 뒤로 미뤄진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다 보니 장혁의 일가족에 대한 조사는 뒤로 미뤄졌고, 간단한 검사와 사진 촬영을 마치고는 나란히 사체 보관용 냉동실에 보관되어졌다.
드르륵…….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어 조용한 시간!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리며 시체 보관소에 검은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미세한 소리조차 흘리지 않는 그림자는 냉동실 문을 하나하나 열고는 화재로 사망한 시신들을 살폈다.
“후후후!”
시신을 확인한 그림자가 음침하게 웃었다.
“이것으로 상황은 끝나는 거다.”
그림자는 음흉한 웃음과 함께 품에서 검은빛이 도는 액체가 든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병의 뚜껑을 연 그림자는 대부분 타 버려 재나 다름없는 시신들 위로 병을 기울였다.
톡! 톡!
몇 방울의 액체가 시신 위로 떨어졌다.
치이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시체들이 타들어 가며 희끄무레한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연이어 액체를 떨어트렸다.
열둘이나 되는 시신들이라 타들어 가며 적지 않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배기 장치가 되어 있는 곳이라서 살이 타들어 가며 나는 연기는 공중으로 빨려 올라가 이내 사라졌다.
“히히히히!”
소리 없이 타들어 가는 시신들을 바라보며 그림자가 히죽거렸다.
“이런 정도면 증거로서 가치가 없을 것이다.”
속까지 완전히 타들어 갔다. 살과 뼈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타 버려 숯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검사해도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후후후! 그럼, 이제 보고서나 써 볼까? 이렇게 탄화되는 경우도 드무니 거기에 대해서도 조금은 언급을 해야겠군.”
딴 곳으로 빼돌려 완전히 재로 만들어 버리면 더 좋겠지만 문제가 될 수 있기에 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탄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희귀한 일이었기에 별도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아니다.
이미 이런 형태의 시체에 대해 몇 번의 보고서를 써 본 적이 있기에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됐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의로 보이는 사나이는 시신들은 원상태로 돌려놓기 시작했다.
시신들을 모두 냉동실에 집어넣은 사나이는 곧장 시체 보관소를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책상 위에 앉은 사나이는 밤이 새도록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가족은 화재로 인해 타 죽은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이가 작성한 보고서는 완벽한 것이었다.
“현장도 정리가 끝나 갈 테니 이로서 이번 사건은 완전히 묻힐 것이다. 후후후.”

***

부르르릉!
산골에 울린 중장비의 엔진 소리가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리고 있었다.
포크레인과 페이로더가 움직이고 있는 곳은 얼마 전 화재로 일가족이 참사를 당한 현장이었다.
어두운 시간임에도 무엇이 그리 급한지 움직이고 있는 중장비로 인해 현장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알게 되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워낙 인가가 없는 곳인데다가 깊은 밤이라 아무도 이들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육중한 굉음을 우리며 중장비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이 뒤집어졌다.
퍽!
화인이 나왔던 곳이 사라졌다.
포크레인을 이용해 통째로 퍼 올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물들은 사라져 갔다.
사체가 발견된 곳 등 증거가 될 만한 것이 나올 곳들의 흙들을 포크레인으로 퍼 올려 트럭에 실어댔다.
그 뒤로 페이로더가 지나가며 재와 남아 있는 잔해들을 모았다. 그것들은 다시 포크레인에 의해 트럭에 실려졌다.
트럭들이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포크레인이 흙을 갈아엎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페이로더가 움직였다.
트럭들이 싣고 와서 한쪽에 부려 놓았던 흙들은 현장을 덮어 버리는 평탄 작업에 동원되었다.
증거를 보전하기 위해 경계선을 치고 비닐로 덮어 놓은 사건 현장은 불과 1시간이 되지 않아 완전히 훼손됐고, 증거물은 모두 사라졌다.
작업이 끝나자 증거 인멸에 동원되었던 중장비들이 속속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들이 훼손되는 때를 같이해 현장도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