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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1화)
4장. 사라진 증거들(3)



“뭐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정기 수사 보고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사무실에 돌아온 경식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봉투를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봉투를 들어 보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자신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보통은 아무리 빨라도 2주가 넘어야 나오는 보고서가 벌써 나오다니 이상하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책상에 앉은 경식은 봉투를 뜯어 안에 들어 있는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무슨 보고서를 이따위로…… 막내야! 차 좀 대라.”
경식은 민철에게 차를 대도록 했다. 다급하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평소 언성이 높지 않은 경식이고 보면 심각한 상황이기에 민철이 바깥으로 나갔다.
경식도 점퍼를 걸치고는 보고서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반장님, 어디로 갑니까?”
경식이 차에 올라타자 민철이 물었다.
“국과수로 간다.”
“국과수요?”
“그래.”
“알았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기에 민철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따위 보고서가 국과수에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군. 예상대로 누군가 손을 쓴 것인가?’
의문에 잠긴 경식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보고서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보고서의 내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예상외의 결과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보내온 결과는 일가족의 죽음이 화재로 인한 소사(燒死)라고 결론지어져 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기에 누군가가 손대지 않는 한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맨 처음 맡은 부검의가 아니고, 다른 부검의가 보고서를 보내 온 것도 이상하다. 확실히 이번 사건에는 뭔가가 있어.’
처음 사건을 배당을 받았던 사람이 아니라 이상철이라는 부검의 이름이 명시된 보고서였다.
대부분 처음 배당받은 부검의가 부검을 마무리를 짓는 것이 관례였다.
도중에 사람이 바뀌었다면 누군가 조작을 하기 위해 담당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막내야, 서둘러라!”
“예.”
부우웅!
경식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민철도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부리나케 차를 달려 연구소에 도착한 경식은 제출자로 명시된 담당 부검의를 찾았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부검의가 보였다.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는 무척이나 냉철한 인상을 보이는 30대 후반의 금테로 된 안경을 쓴 자였다.
“누구십니까?”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경식을 보며 상철이 놀란 듯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경기경찰청의 이경식입니다.”
“경기경찰청이요, 그런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금토동 화재 사건 검시 보고서 때문에 왔습니다.”
“아! 보고서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오시다니,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안경을 치켜 올리며 상철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탁!
상철의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은 경식이 따지듯 물었다.
“뭐가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기분이 나빴는지 뭐 이런 사람이 있냐는 듯 인상을 쓴 상철이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들어 보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타살 흔적이 남아 있는데 화재로 인한 소사라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 경위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정확하게 부검하고 객관적인 증거에 따라 검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안수호 부검의에게 전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그들은 반장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타살된 것이 아니라 화재로 인해 죽은 것이 분명합니다.”
딱딱하게 말하는 것이 바늘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차가운 기운이 상철에게 맴돌았다.
“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상철을 바라보며 경식은 어이가 없는 듯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이 새끼! 돌파리 아냐?’
레지던트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을 의사 면허까지 있는 법의학자가 모른다니 말이 되지를 않았다.
경식은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의 의견이 왜 묵살이 됐는지 물어봐야 했다.
“제가 그때 갈비뼈가 갈라진 흔적을 안수호 부검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화재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니요?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건 반장님이나 안수호 법의관이 잘못 보신 겁니다.”
상철이 단정하듯 말했다.
“제가 잘못 봤다는 말입니까? 제가!”
화가 난 듯 경식이 상철에게 다가갔다.
“반장님!!”
상철의 멱살을 잡으려는 경식의 손을 민철이 잡으며 소리를 질러 말렸다.
“그렇습니다. 전 제가 지금까지 배운 대로 조사를 했고, 그대로 검시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와 같이 가보십시오. 반장님도 시신들을 보시게 되면 제가 작성한 검시 보고서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지금 이자와 싸워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시신부터 보자.’
상철의 말이 자신을 자극했지만 경식은 참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보고서가 작성된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좋소, 가 봅시다.”
연구실을 나온 세 사람은 곧장 복도를 지나 시신들이 안치되어 있는 시체 보관소로 향했다.
경식은 분주한 발걸음으로 앞서가는 상철을 쫓았다.
시체 보관소에 도착해 냉장실에서 시신을 꺼낸 상철은 얼마든지 보라는 듯 경식을 바라보았다.
“자, 확인해 보십시오.”
“알겠소.”
상철을 한 번 쳐다본 경식은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위에 씌워져 있던 천을 걷어 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현장에서 시신을 보낼 때와는 달리 상태가 달라져 있었다.
대부분 타 버리기는 했지만 전소되지 않은 탓에 군데군데 익다만 살점들이 있었건만 지금 본 시신은 완전히 타 버려 숯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연구소로 보내기 전에 확인한 시신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누군가 조작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신들이 이렇게 변하다니, 반장님! 정말 이상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민철도 의문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자신이 현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시신이었기에 민철 또한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다른 시신들도 보여주시죠.”
하나만 확인해 볼 일이 아니었기에 경식은 상철을 보며 다른 시신도 보여 주기를 요구했다.
“뭐, 확인하실 필요도 없습니다만 그렇게 원하신다니 보여 드리죠.”
상철은 냉장실에서 시신들을 전부 꺼내기 시작했고, 경식은 시신들을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폈다.
‘완벽하게 숯이 되어 버렸다. 시신들을 전부 훼손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으음, 누군가 손을 쓴 것이 분명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태로 만든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군. 소각로에 태워도 재만 남지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음모가 있는 건가? 혹시…….’
겉만 탔던 시신들이 속까지 전부 새카맣게 타 버린 상태로 변해 버려 전부가 탄화되어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태워 버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국과수 내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설사 태운다고 해도 이 정도 탄화가 진행되었다면 유골이나 재가 남아 있어야지 숯처럼 될 리는 없었다.
‘부검의가 갑자기 바뀐 것도 그렇고, 보고서가 평소보다 빠르게 도착한 것을 보면…….’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는 증거물들을 훼손하기 위해서는 내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훼손한 방법은 모르지만 연구소 내부에서 공조한 자에 의해 시신들이 손상된 것이 분명했다.
가장 유력한 자는 보고서를 제출한 자였기에 경식은 시신들을 확인하면서 암중에 상철의 모습을 살폈다.
‘으음, 저 자식도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빠르게 사라졌지만 눈동자에 어린 차가운 조소는 분명 자신을 향한 것이 분명했다.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이제 확인을 끝마치셨으면 돌아가시죠.”
마지막 시신을 살피는 것이 끝나자 상철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철을 바라봤다.
‘저 자식을 잡아 봐야 몸통은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자.’
지금 자신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철도 관련이 된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냥 놔두는 것이 나았다.
시체를 훼손한 방법을 모르는 이상 이번 일에 관여된 것으로 보이는 부검의를 추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섣불리 건드려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경식은 이만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신들이 이런 상태라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겠소.”
간단한 대답과 함께 경식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상철을 뒤로하고 시체 보관소를 나섰다.
“반장님!”
딱딱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와 빠르게 복도를 걸어가는 경식을 부르며 민철이 달려왔다.
“막내야, 그냥 이대로 가자. 아직은 섣불리 단정할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민철 또한 증거물과 시신들이 일부러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경식의 말에 입을 다물고는 밖으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더럽군. 이렇게 썩어 빠진 곳이라니…….’
청운의 꿈을 안고 경찰에 입문한 민철로서는 더러운 기분이 들어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경식과 민철이 떠나고 난 잠시 뒤에 시체 보관소에서 나온 상철은 복도에 서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지랄을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상철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보다 더한 조소가 흐르고 있었다.
부우웅!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빠져나온 경식은 민철의 차를 타고 빠르게 도로로 들어섰다.
“반장님, 국과수에서 증거를 훼손할 걸까요?”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 막내야, 아무래도 죽은 사람들에 대한 탐문 조사부터 해야겠다. 이렇게까지 증거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심상치 않은 사건인 것 같으니까 말이다.”
방송에 화재 사건으로 나온 것도 그렇고, 조직적인 은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석으로부터 들은 말로 유추해 보면 최고위층이 관련된 정치적인 사건일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 그런지 민철의 눈가에 열의가 돌았다.
민철의 열의와는 달리 정보기관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경식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야, 아직은 아니다.”
“아니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섣불리 움직일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당분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예?”
수사해야 한다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니 의도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