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카오스 오션 1권(12화)
4장. 사라진 증거들(4)
“정말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조금 지나 잠잠해지면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거다. 너도 섣불리 덤빌 생각은 버리고 우선은 머릿속에만 담고 있어라.”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기에 언제나 의욕에 넘치는 민철에게 경식이 주의를 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경식의 말뜻을 모를 민철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자칫 저 녀석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혹시나 몰라서 경식은 한석으로부터 받은 수첩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섣불리 이야기할 단계도 아니고, 그로 인해 민철이 위험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 녀석에게 말한 대로 당분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
정보기관이 개입했다.
거기다가 방송국과 정부 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까지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영향력을 미친 것을 생각해 볼 때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고위 인사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당할 수도 있기에 경식은 좀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막내야, 일단 사건 현장에 다시 한 번 가 봐야겠다.”
“그곳에요?”
“그래, 시체가 그런 정도라면 사건 현장도 이상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단 가시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민철은 차선을 바꿔 사건 현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모는 내내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끼이익!
현장에 도착한 민철은 급하게 차를 멈춰 세우고는 곧장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나!!”
“으음!”
완전히 변해 버린 현장을 보며 두 사람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산 쪽으로 올라갔던 불길의 흔적은 모두 파헤쳐졌다가 덮여 있었다.
화재가 났던 집 주변이 모두 새로운 흙으로 덮여 있는 것이, 사건 현장이 아니라 집을 짓기 위해 다져 놓은 택지를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정말 대담한 놈들이군.”
간덩이가 부어 있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벌일 수 없는 터라 경식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군요. 이거, 만만히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겠는데요.”
“그래, 일단 청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예, 반장님.”
뒤져 보았자 화재와 관련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 경찰청으로 향했다.
‘아마도 현장 사진 또한 전부 사라졌을 것이다. 모든 증거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군.’
시신은 물론 현장까지 조작했다면 증거 보관실에 있을 현장 사진을 없애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에 경식의 답답함은 더해 갔다.
경찰청으로 돌아와 곧바로 증거 보관소로 향했다.
시신을 정밀 촬영한 사진을 확보하려 했지만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집이 불탄 장면만 나오는 사진 몇 점만이 전부였다.
“반장님!”
증거 보관실을 나오며 얼굴이 붉어진 민철이 경식을 불렀다.
“조용히 해라.”
“하지만!”
“조용히 하라고 했다.”
“예…….”
“행여 이번 사건을 파헤칠 생각은 하지 마라. 지금은 몸을 숙일 때다.”
경식은 조용한 목소리로 민철을 다독였다.
일가족이 몰살한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물들이 전부 사라졌다.
이렇게 완벽하게 처리했다면 섣불리 손댈 수가 없는 사건이다.
이번에 움직임 자들은 사건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어떤 놈들인지 반드시 잡고 만다.’
지금은 모든 것이 조용해지기를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할 때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5장. 다른 존재의 기억!(1)
콰르르르릉!
천둥이 울렸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하늘의 외침이 들려오기 무섭게 감옥이 어두워졌다.
먹구름 끼어서인지 창살 사이로 내려오던 햇살이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쏴아아!
비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목청을 더해 가는 비 내리는 소리로 인해 오랜 세월 침묵으로 일관해 온 감옥의 정적이 깨졌다.
쏴아아아아아!
묵직하면서도 청량함을 풍기는 빗소리는 현실을 벗어난 감옥 안의 기괴함을 조금씩 씻어 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다.
기괴한 감옥이 있는 이곳은 워낙 고산지대라 눈이라면 모를까 비라고는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쏴아아!
무섭게 내리는 폭우 때문인지 천장에 나 있는 구멍으로부터 빗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투투투툭!
바닥으로 떨어진 비가 어둠으로 물든 감옥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온통 암흑으로 물든 어둠 속에서 울리는 빗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여운을 던졌다.
쏴아아아!
번쩍!
빗소리가 굵어지고 번개가 내려치며 어둠으로 물든 감옥 안을 환하게 밝혔다.
콰르르르르릉!
천둥이 감옥 안을 메아리쳤다.
번쩍!
다시 번개가 내리치고 감옥 안은 잠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어둠이 감옥의 중심에 둥실 떠 있었다.
번쩍!
콰르르릉!
다시 번개가 치며 빛이 감옥 안을 들이쳤다.
감옥 안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검은 어둠 대신 중심부에서 어렴풋이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던 것이다.
번개가 치지 않음에도 어둠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바로 혁이었다.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을 이 특이한 감옥과 함께 동고동락해 온 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건?’
모습을 드러낸 혁의 모습을 보면서 장혁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혁의 기억임을 알 수 있었다.
번쩍!
우르르릉!!
바로 옆에서 번개가 내리친 탓인지 환하게 밝아지며 귀를 찢을 것 같은 굉음이 감옥 안에 다시 울려 퍼졌다.
휘이이이익!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리의 충격파가 연신 감옥 안을 휩쓸었다.
바로 위에서 번개가 내리친 탓에 감옥 안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될 지경이다.
‘정말 무섭군.’
다른 존재의 기억일 뿐임에도 장혁에게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기이한 어둠 속에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 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 있음이 확실한 데도 마치 죽은 사람처럼 허공에 떠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인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자.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야.’
내심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장혁은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단서가 혁의 기억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번쩍!
콰콰쾅!!
다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연이어 내리치던 번개 중 하나가 곧장 창살을 뚫고 허공에 떠 있는 혁을 관통해 감옥 바닥에 꽂혔다.
번쩍!
콰르르릉!
파츠츠츠츠츠츠츠!
닿는 것은 모조리 박살 내 버리는 수백만 볼트의 전압을 내포한 푸른빛의 전하가 혁의 몸을 관통했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강한 전하를 가진 번개가 자신의 몸을 파고들었지만 혁은 그저 무생물마냥 요지부동이었다.
번쩍!
꽝!
파츠츠츠츠츠!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섬광과 함께 다시 한 번 번개가 안으로 들이치며 혁을 관통했다.
꿈틀!
믿지 못할 변화가 시작됐다.
번개에 두 번이나 관통했던 혁의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번쩍!
콰콰콰쾅!
번개가 다시 떨어졌다. 그것도 혁의 정수리를 향해 곧장 떨어져 내렸다.
휘이이이익!
번개와 함께 감옥 안을 맴돌던 뇌전의 입자들이 회오리처럼 휘돌았다.
파츠츠츠츠!
푸른색 섬광과 함께 뇌전의 전하들은 천천히 혁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으으음!”
미동도 하지 않던 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번쩍!
콰르르릉!
정말이지 재수가 없게도, 신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번개가 쳤다.
일부러 표적을 정한 것처럼 정확하게 혁의 정수리로 내리꽂혔다.
파츠츠츠츠!
전하들의 요란한 춤사위가 다시 시작되었고, 역시나 천천히 죄수의 몸에 스며들었다.
“으으으으음!”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산발한 머리와 덥수룩하게 수염이 뒤덮인 혁의 입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곧이어 신음이 끝나고 난 뒤 혁의 눈이 떠졌다.
번쩍!
번개와는 다른 빛이 혁의 눈에서 번쩍였다.
사람의 심장을 오싹하게 하는 붉은 광채가 그의 눈동자를 떠나 감옥 안을 온통 휘감았다.
“크크크…… 크크크크…….”
갈라지는 것 같은 웃음이 그의 입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마치 지옥에서 가르릉거리는 악마의 울부짖음을 방불케 했다.
섬뜩한 눈빛과 함께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기괴한 웃음이 혁의 입에서 끊어지질 않았다.
기괴한 웃음 뒤, 오랜만에 깊은 의식 속에서 깨어난 혁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려 애를 쓰다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도대체 생각이 나지를 않는군.”
영어(囹圄)의 몸이 된 후부터 자신이 잃어버린 세월을 찾으려 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큭! 그렇군. 언제인가부터 시간의 흐름을 세는 것을 멈췄었군.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석이 되었나? 크크크.”
세월의 흐름 속에 지쳐 버렸던 혁은 언젠가부터 자신이 날짜를 헤아리는 것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크크크, 시간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렇게 깨어났으면 그만인 것을.”
희미해진 기억으로 인해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었던 세월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애써 지우는 혁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탁!
붉은 광채가 어리던 눈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찾은 혁의 발길이 동굴 바닥에 닿았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바닥에 내려선 혁의 음성에는 들뜬 기운이 역력했다.
그러나 목소리와는 달리 칠흑처럼 검은 혁의 눈동자는 왠지 모를 회한이 스치고 있었다.
투투툭!
정수리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으음! 비님이 오시는 건가?”
혁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느낌에 얼굴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