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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4화)
5장. 다른 존재의 기억!(3)


감옥에서 탈출하듯 새어 나온 피처럼 붉은 선홍색의 빛들은 문양을 빠져나와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붉은빛들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순식간에 한 무더기가 되어 죄수가 잡고 있던 쇠창살로 향해 날아올랐다.
선홍색의 빛은 사냥개가 냄새를 맡듯 창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혁의 손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을 배회하던 선홍색의 빛은 흔적을 찾았는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쑤―우욱!
빛무리가 창살 사이로 빠져나갔다.
슈우우우우!
하늘로 치솟은 뒤 이내 동쪽 하늘을 향해 불가사의한 속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옥과 그 감옥 안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현상은 정말이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슈아아아앙!
푸른빛이 파공음을 내며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빠르게 가로 질렀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푸른 빛줄기는 바로 기이한 감옥 안에 갇혀 있던 혁의 사념이 응집된 정신체였다.
슈슈슈슝―
먹구름 속에 가려져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며 날아가는 혁의 뒤로는 붉은 광채를 뿌리는 빛줄기가 따라붙었다.
마치 추격전을 벌이듯 뒤를 쫓는 붉은 빛줄기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슈가가가강!!
―이런!! 벌써 쫓아오다니…….
속도를 높이는 와중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파열음으로 인해 혁은 자신을 쫓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빠르게 쫓아 올 줄 몰랐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놈들이 안배를 남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쫓아온 것을 보면 예사 놈들은 아닐 거다. 예전 같으면 단번에 부숴 버리겠지만 지금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결계이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정신체로 화신을 한 혁이었다.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쏟아부어 만선전뢰로 혼천결계를 깨트리고 정신체인 상태로 탈출했기에 지금은 싸울 여력이 없었다.
앞서 나가며 혁은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는 상대를 살폈다.
속도로 보아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존재들은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그것도 단번에 정신체를 파괴할 수 있는 혼천인(混闡印)을 품은 존재들이 분명했다.
자신이 생각한 가정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길! 하필이면 그 빌어먹을 놈들이라니.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혼천인을 품은 존재들은 막강한 존재다.
본래의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의 상태라면 상대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보통의 능력자라도 자신이 없는데 자신의 탈출을 미리 예비하고 기다려온 존재들이라면 절대로 승산이 없었다.
잡히면 꼼짝없이 소멸을 해야 할 판이었다.
슈가가강!
꼬리까지 따라온 추격자를 피하기 위해 혁은 다급하게 속도를 높였다.
콰쾅!!
급격하게 속도가 높아지자 음속을 돌파한 때문인지 소닉붐이 일어나며 엄청난 굉음이 대기를 울렸다.
콰쾅!
콰콰콰콰쾅!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붉은 빛줄기도 곧바로 음속을 돌파했다.
―제길! 쉽게 떨쳐 낼 놈들이 아니다.
음속을 돌파해 날아가자 곧바로 속도를 더하는 정신체들을 느끼며 혁은 가슴이 착잡했다.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놈들을 떨쳐 내야 한다.
혁의 예상대로 붉은 빛줄기는 무척이나 집요했다.
급격히 상승했다가는 떨어지고 지그재그로 요리조리 추격을 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혼천인을 품은 존재들은 일정한 거리이상 벌어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뒤를 쫓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소멸하고 만다.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갇혀 있던 뇌옥은 자신이 빠져나오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 붕괴되도록 손을 써놓은 상태였다.
가둘 곳이 없어진 이상 잡히면 소멸시킬 것이 뻔했다.
슈앙!
슈아아아아아아앙!
쫓는 자들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기에 혁은 최선을 다해 속도를 높였다.
푸른빛의 혁과 붉은빛 줄기의 속도전은 한동안 지속됐다.
온통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탓에 지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빛줄기들의 추격은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쳇!! 지독한 놈이군.
아무리 떨어트리려 해도 소영이 없었다.
육체를 산화해 정신체로 변했지만 지독하게 따라붙는 추격자들의 집요함에 혁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한계에 부딪칠지도 모르지만 일단 속도를 더 높이고 보자.
따라잡히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최선의 방법은 한계까지 속도를 높여 도주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슈가가강!
콰쾅! 콰콰쾅!
혁은 무리해 속도를 더하며 음속의 한계를 연이어 돌파했다.
그렇지만 추격자들도 뒤지지 않는다는 듯 연이어 뒤를 따랐다.
―크으윽,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본체마저 붕괴되고 만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전히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혁은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빛줄기로 보이지만 자신을 쫓고 있는 빛줄기는 최소한 여섯 명의 정신력이 합쳐진 정신체였다.
본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정상이 아닌 상태다.
혼천결계를 깨트리느라 본신의 힘을 대부분 써 버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정신체가 붕괴되어 소멸할 가능성이 있었다.
―더 이상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육체만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영혼의 향기를 쫓아오고 있는 중이라 육체만 있다면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숨길 수 있었다.
혼천의 결계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을 가둔 자들의 집요한 정신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무지막지하게 강한 육체 덕분이었다.
정신체로 화신한 것 때문에 이런 상황을 맞이했으니 육체를 버린 것이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고요의 바다 혁(?)이 고작 저런 놈들에게 이리 쫓기는 신세가 될 줄이야. 제기랄! 하늘을 뒤엎을 힘을 가졌으면 무엇하랴. 기름이 다한 등잔 꼴인 걸!
정말 지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번지복의 재주와 힘을 가졌었지만 실수로 인해 영어의 몸이 되면서 대부분 잃어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힘도 혼천결계를 깨트리느라 거의 다 써 버린 마당이다.
―그때 그놈들을 살려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결과가 자신의 자비를 인해 벌어진 일이라 혁으로서는 남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간신히 거리를 유지하며 혁은 도주를 계속했다.
설사 정신체가 붕괴된다 하더라도 잡혀서 소멸하는 치욕은 당하기 싫었기에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그래, 거기라면!
속도를 높여 가며 계속해서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던 혁은 한 가지 좋은 수가 떠올랐다.
매우 위험한 도박이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써 볼 수 있는 최상의 패였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놈들에 대한 응징의 시간이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니까 우선 그곳으로 가보자.
어차피 정신체로 화신을 할 마음을 굳히면서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다.
쫓기는 입장에서 혁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살고 봐야 했기에 복수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피이이익!
혁은 쫓아오는 존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동북쪽으로 아주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그나저나 시간축이 변동되면 또 하나의 업이 쌓일 텐데.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르겠구나.
자신이 생각했던 방법 중 가장 뒤로 미루어 놓았던 것을 결행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로 겪게 되는 일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었다.
다시 시간의 축을 건드리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에 두려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 소멸하기는 너무 억울하니까 말이야. 나로 인해 벌어지게 되는 일은 끝까지 내가 수습하고 만다.
부아아앙!
시간의 축을 이용해 추적자들을 따돌리기로 마음먹은 혁은 곧장 천지가 열렸던 곳을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 때문인지 유성이 대기를 가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파공음이 천지를 울려 댔다.
타타타타타탁!
혁이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이자 이전과는 다르게 사념체가 돌연 여섯 갈래로 갈라지더니 작은 붉은 구체로 변했다.
슈가가가가강!
여섯 줄기의 붉은 선이 하늘에 그어졌다.
쿠콰콰쾅!
부아아아아아앙!
너무 빨라 이미 이동을 끝낸 붉은 빛줄기들이 멀리 사라지고 뒤이어 대기가 터져 나가며 천지가 요동을 쳤다.
―알아차린 건가? 북쪽으로 해서 돌아가자.
자신의 목적을 알아차린 듯 개체를 나뉘었다.
역시나 혼천인을 담은 사념체들의 추격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한쪽이 진로를 막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을 느낀 혁은 다시 방향을 북동쪽으로 꺾은 후 속력을 더했다.
아래쪽은 그림이 넘어가듯 산과 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혁은 쫓겨야 했다.
부아아앙!
까마득한 상공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한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세 개의 혼천인들은 우회하며 뒤를 쫓았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혁의 뒤를 쫓았다.
―혹시 모르니 그곳으로 가면서 사념의 일부를 세상에 흩어 놓자.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누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존재의 일부를 세상에 퍼트려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방지하기로 했다.
피의 유전이라면 자신의 근원을 담을 수 있는 존재가 후손 중에서 하나 정도는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매우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희미한 기운이 혁의 정신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됐다. 놈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혼천인을 품은 사념체들이 분리되지 않았다.
아주 미약하고 흐릿해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놈들을 최대한 이곳에서 멀어지게 해야 한다.
슈우우웅!
최후의 안배를 남기는데 성공한 혁은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