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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5화)
6장. 다른 존재가 남긴 것(1)


감옥에서의 탈출과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추격전을 따라온 장혁의 정신도 방향을 틀었다.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직접 겪는 것 같구나. 후우, 도대체 내게 무엇을 보여 주려고 이런 기억을 전한 거지? 중요한 것 같은데 말이야. 일단은 계속해서 따라가 보자.’
남의 기억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현실로 보였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벌어지는 현실 같은 기억을 자신에게 전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자 했던 곳이 저긴가?’
멀리서 반짝이는 물줄기가 보였다.
혁의 정신체가 급격히 빨라지는 것을 보며 장혁은 목적지에 다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혁이 하고 있는 생각이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

―이제 다 왔다. 저곳에서 시간의 축을 비틀면 나는 천지에 당도할 힘을 얻게 될 것이고, 뒤에서 따라오는 놈들은 소멸될 것이다.
지형은 많이 변했지만 특유의 기운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시간의 축이 비틀린 곳이라 약간의 힘만 가하면 거대한 공간진력(空間眞力)이 쏟아진다.
너무 약한 상태라 전부 흡수하지는 못하겠지만 진짜 목적지로 갈 수 있는 힘만 얻으면 되니 일부라도 상관없었다.
혁이 노린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공간진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돈의 회오리는 온전한 몸일 때도 겁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미증유의 힘이다.
휘말리면 아무리 혼천인들이라 해도 소멸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에 추적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근처가 완전히 폐허로 변하겠지만 혁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선 틈을 찾아야 한다. 틈을…….’
혁은 떠오르는 여명을 받아 반짝이는 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시간의 축이 비틀린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맴돌았다.
시간의 축을 무너트릴 수 있는 틈을 찾아서 정확하게 무너트려야만 비틀려 버린 평행차원의 이계 공간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제기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미 예전에 비틀려 버린 상태라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 혼돈의 힘이 간섭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혁은 시간의 축에 있는 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정 공간을 맴돌기 때문에 거리가 점점 좁혀져 혼천인들에게 잡힐 우려가 있지만 다음 생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차, 찾았다!’
자신이 강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사방으로 흩어져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와 동시에 혁은 자신이 찾고 있던 비틀린 시간축의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지를 열어야 할 힘이지만 우선은 여기에 모두 쏟아붓는다. 으드득! 두고 보자. 네놈들이 어째서 날 가두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부터 그 대가를 철저하게 치르게 주마.’
새롭게 열리는 공간진력에서 혼돈으로 물든 파괴의 힘이 흡수되기는 하겠지만 천지를 열고 난 후라면 시간의 흐름 속에 씻겨 갈 것이 분명했다.
혼돈의 힘이 그렇게 정화되고 나면 기회는 분명히 생긴다.
응징의 시간이 조금 늦어질 뿐이겠지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던 혁이다.
혁은 비틀린 시간의 축의 벌어진 틈을 무너트리기 위해 최후의 힘을 끄집어냈다.
‘가랏!’
피유유융!!
혁의 정신체의 화신인 푸른 빛줄기에서 흰빛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슈아아아아앙!
다급하게 여섯 개의 붉은 빛줄기가 쫓아 들었다.
‘크크크크, 이미 늦었다.’
혼천인을 품은 사념체에게 휩싸이기 직전, 혁은 시간축의 틈을 향해 간신히 자신의 힘을 쏘아 낼 수 있었다.
그르르릉!
빛줄기가 지상에 꽂히기 무섭게 맹수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혁이 가진 최후의 힘이 틈을 무너트리자 비틀린 시간축이 붕괴되는 소리였다.
콰드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시적으로 일그러지며 대지 위 100여 미터 지점에 거대한 검은 원이 생겨났다.
현재의 시간대와 시점을 모르는 평행차원의 시간대가 만나면서 발생된 엄청난 에너지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섯 개의 붉은 빛줄기가 혁의 사념체와 충돌했다.
콰지지직!
혁의 전신체가 산산이 부서져 나가며 작은 알갱이로 변한 푸른빛이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다.
위이이잉!
혁의 산화와 함께 변화가 일어났다.
블랙홀처럼 시간축의 중심에 생긴 검은 원은 소용돌이치면서 점점 작아졌다.
번쩍!
마침내 주먹 정도의 크기로 변했을 때 중심부에서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콰르릉!
우르르르르릉!
빛이 사라지고 난 뒤, 대기가 요동을 치며 검은 점이 확장되어 갔다.
화르르르!
검은 점이 한순간 멈추어 선 뒤, 주변으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콰드드득!
지옥의 광란이 펼쳐졌다.
시간이 비틀어지며 생긴 축이 파괴되고 새로운 세계와 접속하는 순간, 지금의 시간대로 쏟아진 거대한 에너지로 인해 모든 것이 타올랐다.
엄청난 힘이 퍼져 나가며 대지가 속절없이 파도를 쳤고, 울창한 삼림을 이룬 소나무군락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스스스스…….
힘의 중심부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기체로 변해 사라졌다.
근처에 있던 사물은 물론, 바스러진 혁의 정신체도 그를 쫓던 혼천인을 품은 사념체도 엄청난 힘에 바스러졌다.
콰콰콰콰쾅!!!!
폭발의 여파는 무척이나 광범위했다.
혁이 떠나 왔던 희말라야는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이번 폭발로 인한 벌어진 대지의 진통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폭발이 끝나고 난 뒤 대지에 흔적이 남았다.
엄청난 폭발과는 달리 그 여파가 남긴 흔적은 이상할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다.
거대한 폭발에 따라 당연히 생겨나야 할 크레이터도 발생하지 않았고, 나타난 흔적이라고는 오로지 쓰러진 나무들뿐이었다.
우우우웅!
폭발의 여파가 사라지고 난 뒤 대기가 일그러지면서 진동음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비명과 같은 신음과 함께 희미한 기운이 허공에 나타났다.
바로 혁의 정신체였다.
―크으, 성공한 건가? 간신히 살아남았군.
소멸을 각오하고 한 일이 성공했음을 확인한 혁은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천운이로군, 아마 놈들이 사념체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지상을 초토화시켜 버린 거대한 폭발은 혼천인을 소멸시키기도 했지만 혁에게는 반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혼천인이 소멸하는 반발로 터져 나온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 에너지로는 어림도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뇌옥을 빠져나올 때에 비해 거의 열 배나 되는 에너지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것에는 조족지혈도 되지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일단 빠져나가고 보자.
혁은 시간의 혼돈 속에서 탈출을 시작했다.
혁의 정신체가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천천이 바깥쪽으로 이동했다.
―크으으윽!
엄청남 압박이 중첩되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컥!
천신만고 끝에 일부분이나마 시간의 혼돈 속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온 혁에게서 답답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럴 때가 아니다.
혁은 주변부터 살폈다. 혹시나 소멸하지 않은 혼천인들이 있을까봐서였다.
―크으으, 전부 소멸됐구나.
다른 시간대의 접점을 찾은 후 축을 깨트려 서로를 충돌시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였다.
그 엄청난 힘을 감당할 리 없었다.
자신을 쫓아온 혼천인들을 전부 소멸시킨 것을 확인한 혁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크으, 시간은 아직도 혼돈 상태다. 안정화가 시작되면 힘을 전부 회복한다고 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오갈 데 없는 시간의 미아가 되기 전에 빠져나가자.
츠―츠츠츠!
폭발의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푸른색의 구체가 나타났다. 혁의 정신체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뇌옥을 탈출할 당시보다 더 선명하고 영롱한 빛을 뿜어냈지만 시간축을 깨트린 여파 때문인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소멸을 전제로 걸었던 도박이 성공했지만 안도감에 젖어 있을 사이가 없었다.
슈―우우웅!
혁의 정신체가 곧장 동쪽을 향해 날았다. 최후의 목적지인 천지를 향해서였다.
―마지막 남은 곳이니 그곳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거다. 모든 것이…….
세상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시간축 중에 조금 불완전했던 하나가 깨어진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게 된 것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아니, 적들에게 소멸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지에 있는 마지막 남은 시간축을 열어야 하는 혁이었다.
그렇게 혁의 화신인 푸른색의 정신체는 폐허가 된 상공을 빠르게 가로질러 곧장 한반도 최북단에 있는 백두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야에 들어온 지상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생명체들의 업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에 혁은 마음이 착잡했다.
―이 꼴이 난 것은 모두 나 때문이다. 업을 짊어지기는 했지만 인과율에 따라 돌아오게 될 화는 나 스스로 감당하면 된다.
인과의 법칙에 따라 돌아올 카르마가 무섭기는 하지만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혁은 마음을 다졌다.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이 정도 거대한 파장이면 누군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슈―우우우웅!
어차피 저질러진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기에 혁은 마음을 다 잡고 속도를 높였다.
꼬리를 길게 끌며 푸른색의 빛은 동쪽 하늘을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드, 드디어 왔구나.
창공을 가로질러 날아온 혁은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상 부분만 새하얀 눈이 덮인 거대한 분화구 안의 검푸른 물결은 오래전 보았던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폭발하면 시간의 평형을 깨트릴 수 있기에 직접 봉인한 화맥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봉인을 위해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천지의 상공에 다가간 혁은 그대로 검푸른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쾅!
쏴아아아아아아!
충격파로 인해 새하얀 물결이 100미터나 솟구치고 해일처럼 일어나 파문이 외곽으로 밀려났다.
호수 속으로 들어온 혁은 세월의 흐름 속에도 전과 비슷한 모습에 안도했다.
‘변한 것이 거의 없구나.’
혁은 호수의 중심부를 향해 깊숙이 잠수해 들어갔다.
지하수가 빠져나가는 길이자 지각으로 통하는 협로가 보였다.
혁은 지심화맥과 맞닿은 수중동굴을 따라 깊숙이 내려갔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통로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자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수중 동굴이 나타났다.
―다행이다. 아직까지 봉인이 힘을 잃지 않았구나.
분화구의 호수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수중 동굴의 아래쪽에 하얀색의 막 같은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