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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7화)
6장. 다른 존재가 남긴 것(3)


‘뭔가가 주변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나나 형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온톤 백설 천지인 산야라 인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에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기운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개체로 인식되지 않고 넓게 퍼져 있는 것을 보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음, 정신을 차리자. 이대로 잠들면 안 된다.’
자꾸 졸음이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기운이 주변을 덮고 있기에 장혁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일단 어떤 기운인지부터 살피자.’
장혁은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저기 청계산 꼭대기에서부터 방사형으로 가닥가닥 뻗어 나와 사방을 살피는구나.’
마치 우산의 살대처럼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가느다란 기운이 펼쳐져 있었다.
‘후우, 다행이다. 걸리지는 않은 것 같구나.’
상대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고기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그물처럼 펼쳐져 있지만 뭔가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들키고 만다. 우선 빠져나갈 틈을 찾아야 한다.’
정신을 집중했다.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그물망 같은 기운의 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냥 갈 수는 없다. 무작정 가다가는 걸리고 만다. 형에게 부탁해 걸릴 때마다 방향을 트는 수밖에.’
산의 정상으로부터 뻗어 나온 기의 그물이 그냥 일직선으로 뻗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에 갈라져 사선으로 뻗어 나가 교차하는 터라 그냥 내려갔다가는 걸리기 십상이었다.
“혀, 형,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혁은 기의 그물이 앞으로 가로막자 형에게 부탁을 했다.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이냐?”
올라온 길이 아닌 다른 쪽을 가리키자 장호가 물었다.
“그래, 형. 이유를 알려 주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알았다. 그렇게 하마.”
조금 더 가파른 길이라 힘이 들겠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동생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형이 나 때문에 고생이구나.’
머리 위로 아지랑이로 변한 습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라 내려오는 길이 무척이나 힘이 들게 보였다.
‘기의 그물이 움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빠져나갈 수 없었을 테니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된다.’
대략 10여 분 간격으로 기의 그물이 변화하고 있었다. 중간에서 갈라지는 부분이 변화하며 사방을 훑고 있었다.
힘이 들더라도 변화에 맞추어 빠져나가는 것이 좋았다.
기의 그물이 펼치는 변화를 감지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차가운 기운이 뺨을 스쳤다.
‘으음, 눈이 오는구나.’
구름에 가린 하늘이 열리고 잠시 고개를 내밀었던 태양이 사라지고 함박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발자국은 지워질 거다. 정상에 있는 자에게 들키지 않게 피할 수만 있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는데 눈이 내림으로 인해서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눈으로 인해 기의 그물을 펼친 자의 주의력이 떨어질 것이기도 하지만 흔적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의는 해야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할 때였다.
‘지금은 이렇게 무서워 피하지만 다음은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적의 추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장혁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다.
‘이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기의 그물에 걸릴 뻔했다.
“형! 서!”
동생의 외침에 장호는 신형을 멈춰 세웠다.
“여기서 3분만 기다렸다가 이번엔 왼쪽으로 가.”
“알았다.”
장호는 잠시 기다린 후 시간이 지나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산을 내려갔다.
실수할 뻔했기에 장혁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의 그물을 살폈다.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동안 추적자의 촉수를 피해 여러 번 방향을 틀어야 했지만 결국 들키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장혁아!”
장호가 지붕이 눈으로 덮인 차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이제는 곧장 내려가도 괜찮아. 혹시 모르니 내려가면서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잘 살펴 줘.”
“알았다.”
‘이토록 주의하면서 내려가는 것을 보면 놈들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구나.’
장호는 등골이 서늘했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온 것을 보면 가문의 흉사를 주도한 자들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혹시나 생각했는데 감시자가 있었던 것이다. 동생의 당부대로 주변을 살피며 장호는 내려오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 걱정이지만 차가 있는 곳까지 올 동안 다행스럽게 사람들은 만나지는 않았다.
주차해 놓은 차까지 온 장호는 뒷좌석을 열고 조심스럽게 동생을 눕혔다.
빠르게 문을 닫은 후 우선 주변을 살폈다.
‘눈이 다시 오기 시작해서 들킬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인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을 만날 것 같지는 않았다.
운전석에 올라탄 장호는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장호는 시선을 뒷좌석으로 돌렸다.
“혁아, 괜찮은 거니?”
“난 괜찮으니까 얼른 여기서 떠나자. 형.”
힘들어 하면서도 떠나기를 재촉하는 동생을 바라봤다.
‘그동안 어떻게 견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혁이 말대로 들키지 않는 일이 우선이다.’
장호도 아직 위험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다.”
차가 도로를 따라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이지만 체인을 채워 놓았기에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차를 주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엔진의 열기가 많이 식지 않아 히터를 타고 따뜻한 바람이 차 안을 맴돌았다.
‘그물망에서 벗어났다.’
10여 분쯤 달리자 청계산 주변에 펼쳐진 기의 그물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긴장이 사라지자 급격히 잠이 쏟아졌다.
“형, 나 한숨 잘게.”
“그래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자 둬라.”
“알았어. 부탁할게.”
장혁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미안하다. 혁아. 내가 빨리 널 찾았어야 했는데…….’
힘에 겨운 듯 잠에 빠져드는 동생의 모습에 장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찍 찾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피붙이들이 모두 죽어 버린 사건이 일어난 후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살펴야만 했다.
그렇게 지낸 것이 6개월이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가문의 피난처가 근처에 있음에도 며칠 동안은 근처에 오지도 못했었다.
가끔씩 집 주변을 맴도는 경찰들은 둘째치고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무서워 그저 멀리 바라보며 맴만 돌아야 했다.
그동안의 시간은 장호에게는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동생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살아줘서 고맙다, 혁아. 앞으로는 내가 지켜 주마.’
동생이 가문의 피난처로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떳떳이 하늘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놈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지금부터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놈들이 어디서 지켜볼지도 모르니까.’
장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세상에 남은 유일한 피붙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뿐이었다.
대로로 나온 후 눈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 장호는 속도를 거의 내지 않았다. 자신의 차를 미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기 위해서다.
눈이 내리고 있는 날씨로 인해 차량들이 죄다 거북이 걸음이라 살피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여섯 달이 지났으니…….’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이다.
가문을 풍비박산 낸 자들도, 의문을 품고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들도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7장. 남겨진 것(1)


장호는 집 근처에 당도했을 때부터는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섣불리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주변을 몇 번씩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따라오는 자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장호는 차고를 열고 차를 주차시켰다.
“혁아, 정신 차려라. 집에 왔다.”
장호는 뒷좌석을 열고 동생을 깨웠지만 깊은 잠에 빠진 듯 반응이 없었다.
“들어가서 몸이 어떤지부터 살펴봐야겠다.”
흔들어 깨울 수도 있었지만 그냥 자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들쳐 업었다.
업느라 많이 움직였음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든 장호는 급히 서둘렀다.
집 안으로 들어온 장호는 안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보일러의 열기가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어 무척이나 훈훈했다.
나올 때 이불을 걷지 않았기에 곧바로 장혁을 눕혔다.
“하아아!”
장호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계산 자락에 만들어진 가문의 피신처에서부터 집으로 오기까지 가슴 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주르륵!
장혁을 바라보는 장호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크흐흐흑, 혁아! 너마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미쳐 버렸을 거다.”
그동안 마음의 번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오열이 흘러나왔다.
“후우, 이럴 때가 아니다. 일단 어머니에게 연락하자.”
장호는 안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전화기를 든 장호는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어머니. 흐흐흑!”
어머니인 경숙의 목소리가 들리자 장호는 자신도 모르게 흐느꼈다.
―장호야, 무슨 일이 있니?
“살아 있어요.”
―뭐?
“장혁이가 살아 있다고요.”
―어디니?
“전에 사두었던 안가에 같이 있어요.”
―잘했다. 그런데 장혁이는 어떠니?
“괜찮은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다. 이제야 아버님을 뵐 면목이 생겼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야기는 들었니?
“아니요. 아직 듣지 못했어요.”
―아니, 왜?
“할아버지가 마련해 두셨다는 피난처에 지금까지 숨어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이 지친 상태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해서 자고 있어요. 저도 듣고 싶었지만 장혁이가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 그냥 놔두었어요.”
―그래, 잘했다. 깨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잘 물어보아라.
“예, 어머니.”
―그런데 뒤를 쫓는 자들은 없었니?
“오는 동안 철저히 살펴봤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 네가 애썼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염려하지 마세요.”
―알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유언대로 차질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예, 어머니.”
경숙은 아들의 대답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