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내가 가는 길 1권 (7화)
4.테스트 (2)
“근데, 혹시 이 게임에 대해 뭐 좀 아는 사람 있어요?”
“말 편히 하이소, 형님.”
“그럴까?”
게임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설까? 만난 지 15분 정도밖에 안 됐는데 형님, 동생이 아주 자연스럽다.
“제가 듣기론 완전 새로운 방식의 게임이라고 하던데요.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소리도 있고요.”
“아, 가상현실 게임이면 완전 망인데……. 얼마 전에 카오스 오브 아틀란타라는 게임도 클베에 참여했었는데 렉 때문에 할 수가 없더라고요. 화면도 실사 수준도 아니고 움직임도 지랄 같았어요.”
“허긴, 파이라에서도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 중이라는 소문만 있었지 아직도 안 나온 거 보면 가상현실 게임은 아직 멀었죠.”
“아, 이번 게임은 대박이었음 좋겠네요. 리벤지5 만렙 찍고 할 것도 없는데…….”
“니도 리벤지 하나? 어느 섭인데?”
“할리디겐 섭이요. 형님은요?”
“난 갈리시온 섭이다. 타기온 길드 소속이고.”
헐, 얘기가 옆으로 새고 있다. 귓속에서 아라가 닦달이다. 여기 온 목적 중 하나를 살며시 꺼냈다.
“저…… 제가 듣기론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일순 시선이 나를 향한다.
“어디서 들었는데?”
“진짜?”
“제가 아는 누나가 개발팀에 있거든요.”
“대박이다!”
“진짜 가상현실 게임이래? 구현 정도는 어떻게 된데?”
갑자기 유명인이 된 느낌이다. 정신없이 질문이 오간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전엔 간단한 검사하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테스트 들어가는데 제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리고 테스터들 중에서 직원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던진 파문은 운영 요원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후엔 거의 모든 테스터들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역시 발 없는 말이 빠르긴 빨랐다.
***
오전은 TSB칩의 정상 작동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는데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오후 테스트를 위해 들어간 강당은 오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최대한 넓게 배치된 의자에 그 사이사이로 파이프 모양의 선들이 놓여 있었고 그 파이프에서 나온 작은 선들이 각 의자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파이프들이 모이는 곳에 냉장고 크기의 컴퓨터가 위치해 있었다.
게임만 테스트를 하는 거라면 핸드컴이나 다른 종류의 컴퓨터에 연결된 헤드셋만 있으면 되지만 헤드셋과 뇌의 상호 작용에 대한 데이터를 최대한 모으기 위한 장비였다.
내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친다.
“밥은 잘 먹었니?”
“아, 예, 형.”
“니 말대로…… 잘됐으면 좋겠다.”
밑도 끝도 없는 얘기였지만 이해가 됐다. 김형주는 흔히 말하는 다크 게이머. 즉,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고등학교 졸업 후, 자그마한 공장에 다니다 공장이 문을 닫자 오갈 때가 없어 선택한 것이 게이머였다고 했다. 소설에서처럼 엄청난 돈은 커녕 겨우겨우 생활할 정도는 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길 원하고 있었다. 결혼을 할 여자가 생겨서라나.
“잘될 거예요.”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여기 1,000여 명의 사람들 중 1차로 채용할 사람은 200명이 안 된다. 그리고 여기 와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사연 한 가지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음 같아선 뽑고 싶지만 유리의 일 이후로는 아라와 같이 의논하기로 결정했기에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어느새 모두들 자리에 앉았고, 진행 팀장이 단상 위에 올라온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헤드셋에 배정된 선을 연결하신 후 접속을 하시게 될 텐데 혹시 문제점이 있으시면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주시면 진행 팀에서 해결해 줄 겁니다. 지금부터 2주일 동안 오직 이곳에서만 테스트가 이루어질 것이며 헤드셋은 이곳 강당에서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테스트 시간은 오전 9시부터 12시, 1시부터 5시, 오후 6시부터 9시를 제외한 시간은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게임 중 편하게 휴식을 취하실 수 있으시며 혹시 몸이 아프신 분들은 즉시 진행 팀에 알려 의료적인 조치를 받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나자 모두들 헤드셋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나도 착용을 한 후 모니터 역할을 하는 커버를 내렸다.
평범한 문이 보인다. 총 7개의 문. 나머지 6개의 문은 웃기게도 긴 판자로 X자 모양으로 못질이 되어 있었고 ‘Closed’라는 빨간색 글이 쓰여 있다. 아라의 유머 코드가 이 정도라니…… 실망이다.
난 열릴 것 같은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끼리릭!
마치 기름칠이 안 된 문을 여는 것처럼 약간은 뻑뻑한 느낌. 조심스레 문을 열자 밝은 빛이 눈을 덮는다.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으로 빛이 사라지는 걸 느끼곤 살며시 눈을 떴다.
“헉!”
눈앞에 낯선 여자가 보여 깜짝 놀랐다. 피식 웃는다.
내 놀란 모습이 우스웠나?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의 도우미 아리예요. 이곳은 게임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테스트를 하는 곳이죠. 저기 보이는 운동 기구가 보이시나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놓여 있다. 아까도 저게 있었던가? 나의 의문과는 상관없이 아리의 말은 계속되었다.
“여기는 여러분들의 순발력, 지구력, 근력, 점프력, 유연성, 민첩성, 평행성 등등 많은 것을 테스트할 예정이에요. 자, 그럼. 턱걸이부터 시작해 보죠.”
뭐에 홀린 듯 그녀를 따라 철봉이 있는 곳으로 가 철봉을 잡았다.
“준비∼ 시작!”
아리의 말과 함께 턱걸이를 시작했다.
“하나, 두울…….”
둘부터 벌써 힘들기 시작한다. 망가진 진하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해도 달리기를 제외하곤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종목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눈앞의 아리의 복장이 심상치 않다. 흔히 세련된 오피스 걸의 복장인데 치마의 길이는 짧고 상의 단추가 2개쯤 풀려 있다. 결정적으로 철봉에 올라갔을 때 내려다보이는 아리의 육감적인 가슴골은 없던 힘도 나게 만든다.
“아∼∼∼∼홉!”
최대한 아리를 보며 버티려 했지만 더 이상 힘이 없었다. 결국 철봉에서 손을 놓았다.
“자, 다음은 윗몸일으키기.”
혹시 그녀가 다리를? 역시 바람일 뿐이었다. 대신 윗몸일으키기 하는 곳의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대략적인 희망을 가져 본다.
“열하나, 열둘, 열셋…….”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일어서는 중간과 내려가는 중간에 보일 듯 말 듯한 그녀의 속옷. 살짝 몸을 누르면서 일어나도 역시나 아슬아슬할 뿐이다.
“쉰다섯!”
결국 보일 듯 말 듯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아라야, 이게 너의 유머코드라면……
정말이지 사랑한다.
이후로도 100m 달리기, 1,500m 달리기, 멀리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바벨 들기, 아령 들기 등 수많은 기초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국 난 아리에게 이걸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게임 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에요. 힘센 사람이, 운동한 사람이 유리한 게임은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예요. 머리 좋은 거야 어쩔 수 없지만요. 모든 유저들에게 공평해야죠. 현재 테스트 인원은 1,056명. 이들의 기록을 토대로 기초가 되는 유저의 스텟을 적용시킬 거예요. 수고하셨어요. 그럼, 다음…….”
“너, 아라지?”
움찔했다! 너 딱 걸렸어!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아무리 테스트라지만 도우미가 너무 도발적이다 싶었어.”
“호호호, 무슨 말씀을……. 전 단지 그 사람이 지닌 최대한의 힘을 끄집어내기 위한 도우미였을 뿐이에요, 그럼.”
“너, 아라! 두……고오오오…….”
밝은 빛의 소용돌이로 난 빠져들었다.
***
나뭇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위로 숲의 장막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흔들리는 나뭇잎에 수를 놓는다. 흙냄새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10여 마리의 회색빛 괴물들이 몇 사람들과 뒤엉켜 있다.
부리부리한 눈은 금방에라도 뭔가를 잡아먹을 듯이 충혈되어 있고 동작마다 근육의 움직임 또한 섬세하게 보인다.
진정 아라와 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들리는?!
“이진하! 힐, 힐! 나 죽는다고∼∼∼”
제길 파티 사냥 중이었지.
“힐! 힐!”
게임 용어 중 하나인 죽기 직전. 즉, 딸 피에서 겨우 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난 힐러였다.
저녁 9시, 게임을 끝내고 간식을 챙겨 가는 도중에도 형주 형은 계속 뭐라 한다.
어느새 테스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자유롭게 접속을 끊고 쉬면서 테스트에 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속을 하면 서버 종료 카운트다운이 될 때까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시간을 잊고 열중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형들은 게임 TV를 켜둔 채 얘기꽃을 피우는 중이다.
“내가 볼 때 이 게임 무조건 된다.”
“참 행님두 당연하지예∼ 그 정도는 저도 알겠심더.”
“안 그럴 수도 있어요.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컨텐츠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요.”
“상진아, 컨텐츠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내 아는 여자애도 같이 테스터로 왔는데 그 애가 한 일이 뭔지 아냐? 말 타고 이쪽저쪽으로 계속 달리고만 있는데 일주일째 달려도 맵이 끝이 없단다. 대략 큰 도시만 7개 그쳤고, 왕국으로 향하고 있다더라. 현재 우리가 있는 마을을 생각해 봐도 던전이다 뭐다 끝이 없잖아?”
“아뇨, 형 제 말은 만렙 컨텐츠 말이에요. 막말로 아무리 퀘스트고 뭐고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유저 특성이 광렙이잖아요. 한 번 거쳐 간 마을은 두 번 돌지 않잖아요. 일단 오픈했을 때 만렙이 100렙이면 지금 우리의 렙업 상태를 보면 길어야 세 달, 결국 공성전이나 던전 등 즐길거리가 없음 끝이라구요.”
참나. 하루 종일 게임하고 또다시 게임 얘기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갑을논박이 이어지다가 결국 나에게 화살이 날아온다.
“진하야, 혹시 뭐 정보 같은 거 없냐?”
“무슨 정보요?”
“당연 게임 정보지. 어느 정도 개발했는지, 언제쯤 오픈베타할 건지 뭐 그런 거 있잖아.”
“그게…….”
잠시 뜸을 들였다. 아라가 얼마나 개발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귓속으로 아라의 말이 들려온다.
“일단 3번 업데이트…… 그러니까, 렙 400정도까지의 컨텐츠는 만들어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유저의 흐름에 따라 점차 업데이트할 예정이라던데 정확한 날짜는 저도 모르죠. 그 다음에 만렙을 처음에 어디에 둘지 컨텐츠는 어떤 것들이 좋을지는 새로 뽑힌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한다는데요.”
“오! 진하야, 난중에 게임 오픈할 때 형이랑 같이 게임하자. 정보만 주면 내가 너 캐릭 책임진다.”
“형수 행님, 그러지 말고 이것도 인연인데 여기 있는 동생들이랑 같이하입시더. 길드 맹그러서 성도 묵고. 어때예?”
“영철이 형 생각 좋은데요. 연락처 아니까 연락해서 첫날부터 달리죠. 혹시 직원 되는 사람 있음 정보도 공유 좀 하구요.”
“크∼ 좋네요.”
“내래 좋슴네다.”
이 형들 큰일 낼 사람들이네. 사장 앞에서 회사 정보를 남에게 전해 주겠다니. 뭐, 간단한 정보야 누굴 통해선 나가겠지. 그것도 광고의 한 방법이니까.
다음 날부턴 나도, 테스트에 참여한 사람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이 하나 더 열린 것이다. 레이싱 게임. 수십억짜리 세계의 명차를 끌고 하는 레이싱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놀람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됐다. FPS 게임, 카지노 게임, 댄싱 게임 등.
7개의 문이 열리고 마지막 날, 오후의 음주 후 테스트까지 무사히 마쳤다.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각자 방으로 일정량의 알코올이 지급될 것이니 각방 대표자 한 분이 타 가시길 바랍니다. 적당히들 드시고 주무시기 바랍니다. 특히, 술 먹고 돌아다니거나 숙녀 분들의 방을 배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하셔서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음주 테스트라 다들 적당히 취한 상태. 기분 좋게 강당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갔다.
“우리 술 먹을 때 조인(Join)해서 먹으면 어때요?”
“조인?”
“네, 어차피 마지막 날이니 여자들과 같이 먹자고 하는 거예요.”
영수형의 말에 다들 당기는 눈치다. 물론, 나도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라믄 여자 7반하고 같이 묵자고 해 봐라. 가시나들 억수로 이뿌던데…….”
“크크! 형님두 은근히 바라고 계셨구나. 좋아요. 그럼,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가기 어때요?”
약간의 술김이라 그런지 모두들 오케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앗싸!”
“윽!”
희비가 엇갈린다. 다행히 난 희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