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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8화)
4.테스트 (3)


식사를 끝내고 영철이 형과 종완이 형이 여자들에게 말을 건네러 갔고, 우리는 술을 받아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형들은 바빴다. 샤워하고 양치질하고. 근데, 평소 발만 씻던 사람들이 이상하다.
“진하야, 너 양치질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 크크크!”
막 샤워하고 난 온 형주 형이 날 놀린다. 그러고 보니 언제 칫솔질을 하고 있었지? 보통은 자기 전에 하는데……. 역시 본능이 무섭긴 무섭다.
난 그냥 씨익 웃었고, 형주 형도 다 안다는 듯이 나와 같은 종류의 미소를 짓는다.
문이 벌컥 열리자 일제히 눈이 문으로 향한다. 기대했던 바와 달리 낭패한 얼굴의 영철이 형이 들어와 외친다.
“아, 엿됐다. 진행 팀한테 걸리가꼬 우리 방 인원들 다 밖으로 나오란다.”
“에에∼”
“어쩌다가 걸렸어요?”
“가시나들 밥 먹고 나오는 거 기다리다가 종완이랑 시시덕거리는 걸 진행 팀장한테 걸렸다 아이가, 쩝! 언능들 나와라. 형수 형님두 나오이소.”
기분이 착잡했다. 진행 팀장은 계약할 때 봤던 사람이라 내 얼굴을 잘 안다. 테스트 기간 중에도 얼굴이 마주치며 살짝 눈인사를 하던 사람인데…….
다들 내 표정과 비슷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종완이 형은 아주 바싹 언 자세로 진행 팀장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남자 1반 여러분! 나왔으면 모두 빠르게 2열 횡대로 서십시오.”
밀지 마! 아놔 밀지 말라구요! 형들에게 밀려 하필이면 진행 팀장 앞이다. 눈이 마주치자 묘한 표정의 진행 팀장. 쪽팔린다.
“제가 분명 식사 전에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해, 했습니다.”
“허, 목소리가 작습니다! 불이익을 당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얌전히 술 드시고 주무시도록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눈감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 다시 진행 팀에게 걸렸을 시 전원 퇴소시키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저녁들 보내십시오. 해산!”
모두들 똥 밟은 표정으로 힘없이 돌아섰다.
“진행 팀은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전체 회의 시간입니다. 이진하 사장님. 크크크!”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진행 팀장을 보자, 손을 흔들며 들어간다. 앞으로 진행 팀이 필요하면 저 사람을 써야겠다.
8시 30분. 결국 쪽팔린다고 형주, 종완이 형이 버티는 바람에 내가 총대를 메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깊게 숨을 들이쉰 후, 여자 7반의 방에 노크를 했다.
“무슨 일이죠?”
문이 빼곰히 열리면서 묻는 아가씨. 영철 형의 말처럼 예쁘장하게 생겼다.
“남자 1반에서 왔는데…… 혹시 같이 술 드실래요?”
“음, 그래요? 잠깐만요, 언니들한테 얘기 좀 해 볼게요.”
닫힌 문 안쪽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열리는 문. 3명의 머리가 나온다.
“오홍!”
좀 들어 보이는 누님이 내 몸을 아래위로 훑으며 콧소리를 낸다. 이런 어이없는…….
“그럼, 15분 뒤에 이쪽으로 와요. 기다릴게요.”
“네∼”
나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형들에게 달려갔다.
“15분 뒤에 그쪽 방으로 가기로 했어요.”
“와우!”
훗, 저렇게 기뻐하는 얼굴들이라니.
“근데, 와 15분 후에 오라는 거네?”
“하하…….”
형주 형과 눈이 마주쳤다. 우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15분. 당연 양치질할 시간이겠죠?

***

테스트가 끝난 후에도 쉴 틈이 없다. 한만호 씨가 본사를 짓기 전까진 내가 있는 이 건물에서 지내야 했기에 채용될 직원들이 쓸 가구를 구입해야 했고 아라와 1차 합격자들을 뽑기도 했다.
내가 은근슬쩍 흘린 말들과 테스터들이 흘린 정보들은 인터넷을 떠돌며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다음 지원자 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
홍명석, 테스트할 때 진행을 맡았던 팀장의 이름이었다.
홍명석은 지금 아라의 다른 테스트를 돕기 위해 일하고 있지만 그 사람이 소개한 아가씨들이 최종 면접을 돕고 있었다.
신숙영, 올해 나이 스물넷. 무액정 모니터로 보이는 이력서는 간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진도 학력도 없었고 이력이라고 해 봐야 봉사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어디에서 했다는 게 다였다. 문이 열리고 신숙영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신숙영입니다.”
“네, 자리에 앉으세요.”
첫인상은 무척이나 좋아 보인다. 여느 면접자들과 비슷하게 깔끔한 밝은 회색 정장에 흰 브라우스. 긴 머리를 깔끔하게 머리 위로 묶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하긴 테스터들과 함께 이 주일을 보냈더니 면접자들의 대부분이 익숙한 듯 보이긴 하다.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그 해결 방안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
눈빛이 마주쳤다. 뭔가 당황한 눈빛? 내 질문이 좀 어려웠나?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다른 질문을 드리죠.”
“아,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는 방법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이슈화되었던 내용입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것이 시간제와 심야 시간에 접속 차단입니다. 물론, 시행은 하고 있지만 사실 전혀 실효가 없습니다. 이유는 부모님의 핸드폰을 통해 인증, 회원 가입을 하면 청소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사가 보다 강력한 인증 방법을 만든다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희 회사도 게임사입니다. 게임사로써 수익 극대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만일 신숙영 씨가 입사를 해서 ‘수익을 늘려라’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니까 그건…… 이, 일단,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쪽으로…….”
“다른 방법이라 하면?”
“시, 시기에 맞게…… 그러니까…… 아이템을 만들어 내놓으면 될 것 같은데요.”
윽, 나쁜 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신숙영은 많이 당황한 듯 보였고 살짝 울상이 된다. 이런 자리로 내몬 아라가 밉다.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신숙영 씨가 했다는 봉사 활동은 어떠한 것들이었나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면접은 길었다. 총 225명의 합격자들의 최종 면접은 5일간 계속될 예정이다. 이름과 나이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뽑으려다 보니 시간이 길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신숙영은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봉사 활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말처럼 했다면 참으로 대단한 아가씨임엔 틀림이 없다.
“잘 들었습니다. 어느 지원자보다 봉사 활동을 많이 하셨군요. 이상입니다.”
신숙영은 자리에 일어서며 다시 인사를 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이잖아……요.”
응? 무슨 말이지? 마지막에 웅얼거리는 말이 왠지 거슬린다.
“네? 무슨 말을 하셨죠?”
“그, 그니까 우리 키스한 사이니까 잘 부탁드린다구요.”
……!
부끄러운 듯 그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아! 이제야 생각났다. 여자 7반에 갔을 때 빼꼼히 쳐다보던 그 아가씨.
역시 여자는 화장 전후가 다르군……이 아니잖아! 날 도와주는 아가씨가 손을 막고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에 울상이 되었다.
면접 3일째, 하루 44∼45명의 면접은 날 녹초로 만들고 있었다. 한 명당 10분씩만 잡아도 440분. 정말이지 미쳐 버릴 지경이다.
“다음 지원자 부탁드립니다.”
말과 함께 모니터의 지원서를 넘겼다.
김형주, 나이 31세. 게임 경력 26년.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군.
근데, 게임 경력 26년은 뭐야? 이력에 뭘 이런 걸 다…….
“안녕하십니까? 김.형.주.입니다.”
“네, 자리에 앉으세요.”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이미 내가 여기서 면접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가? 하긴 여자 7반과 술 마실 때, 게임 나오면 같이한다고 읏샤읏샤 했었으니까 신숙영에게 들었을 수 있을 것이다.
“험, 사적으로는 형이지만 공적으로는 면접관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면접을 시작하죠. 만일 입사가 된다면 원하는 부서가 있습니까?”
“만일 제가 입사를 한다면 게임 운영을 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물론, 어느 부서에 들어가서라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놔, 이 사람이…… 지금 협박하는 거임? 뒷말은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러시군요. 게임 운영 팀에 소속이 되든 아님, 다른 팀이든 회사 입장에선 조심스러운 게 많습니다. 특히, 회사 정보의 유출이 걱정이 되죠.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살짝 눈이 흔들린다. 후후후! 난 의외로 사악하다니까.
“회사의 기밀이라거나 중요한 정보를 유출하게 된다면 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질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광고 효과를 노려 의도적인 유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결혼을 하게 되어 아내에 대한 간단한 단점 등은 술자리에서 재미를 위해 말할 수 있지만, 비밀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사람과의 약속,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증말! 모르쇠, 모르쇠!
“의도적인 유출이라…… 꽤나 위험한 발언이군요. 대답 잘 들었습니다. 다른 질문을 드리죠. 게임 경력이 26년이라면 많은 게임을 해 보셨을 텐데 이번 테스트를 하며 우리 회사의 게임에 대한 김형주 씨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게임계에 핵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얘기를 드리자면 ‘대박’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런 훌륭한 게임이 더욱 발전하는데 온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
어떤 질문을 해도 결혼 얘기가 나온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이다. 더 이상 질문의 의미가 없다.
“질문은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한 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네, 해 보십시오.”
“참고로 다음 주 주말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날 예정입니다. 뵈어야 할까요? 뵙지 말아야 할까요?”
“사적인 겁니까? 공적인 겁니까?”
“사적인 겁니다.”
휴, 정말이지 못 말리는 형이다.
“제가 잘 아는 분위기 좋은 음식점을 아는데 소개시켜 드릴까요?”
“예? 고맙……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적으로 인사를 하고 나간다. 나도 절대로 사적인 마음으로 그를 뽑은 것은 아니다. 그의 능력이…… 게임 경력 26년…… 뭐, 조금은 아니, 많이 사적인 건가?
“다음 지원자 부탁드립니다.”

어이, 거기 누님 웃지 말라니까요!



5.입·출력 캡슐 (1)


최종 면접 인원 225명. 최종 합격자 225명. 난 단 한 명도 탈락시키지 못하고 합격시켰다. 하지만 이것도 아라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라는 벌써 그들로 팀별로 구성을 짜 놓았다.
나쁜 기집애. 5일간의 면접에 쏟은 내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차를 주차하고 내 사무실로 올라간다. 이번에 채용한 직원들 중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리모델링 중이라 복잡했다.
“어서 와요, 진하.”
“응.”
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소파에 던져 버리곤 자리에 앉았다. 로봇이 갖다 주는 음료수를 받곤 단숨에 원 샷! 이제야 속이 풀린다.
“망할 새끼들!”
조금 전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욕이 튀어나온다.
“기분 풀어요. 게임이 본격화되면 사정이 달라질 거예요.”
아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법률 회사와 법적인 문제에 대한 계약을 마치고, TSB칩에 대한 계약을 위해 우리나라 대표 전자 회사 두 곳을 찾았다.
물론, ‘우리 물건을 헤드셋에 장착 좀 해 주십시오’라는 약자의 입장이라곤 하나 브레인칩에 비해 가격도 80%, 특허료는 50%로 이상 가격을 낮춰 주겠다는데 그 기술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오라니.
망할 새끼들! 기술만 빼 가겠다는 정형적인 수법이다.
마음 같아선 회사며 공장에 바이러스라도 심어 주고 싶지만 차마 아라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참는다.
“휴머노이드는 아직 멀었어?”
기대하지 않지만 혹시나 싶어 말을 꺼내 본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정말이지 내가 하는 일을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