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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9화)
5.입·출력 캡슐 (2)
“제2연구소에서 지금 개발 중에 있어요. 인공 근육과 피부에 문제가 있어 연구 중이니까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래?”
아라가 이렇게 말하면 곧 완성이 된다는 소리다. 정말이지 아라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좋은 소식에 기분이 약간 풀어진다.
“어, 근데 저건 뭐야?”
어제까지는 없던, 사무실 한쪽을 차지한 이상한 물건이 놓여 있다.
“제가 만든 입·출력용 캡슐이에요.”
“응? 이게 캡슐이라고? 마치 일본 야동에서 나오는 가학 도구처럼 생겼는데?”
“호호호! 이 비싼 첨단 기구를 그렇게 매도를 하다니 대단하네요. 잘 보세요.”
끼이잉, 철컥! 철컥! 철컥!
입체형 원에 흩어져 있던 부분들이 모이며 하나의 형태를 만들더니 마치 탑승형 로봇 모양이 완성되었다. 난 더 설명을 해 보란 듯이 볼을 긁적거리며 입·출력 캡슐을 계속 쳐다봤다.
“이 입·출력 캡슐은 탑승자의 뇌 정보뿐만 아니라 몸의 반응 또한 데이터화해 저장할 수 있어요. 반대로 제가 탑승자에게 주는 신호로 탑승자의 몸을 움직이게도 할 수 있죠.”
“말인즉 이 기계 안에 탑승하면 사람을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 아냐?”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죠.”
내 말투 때문인지 아라의 말투도 약간 퉁명스러워진다.
“물론, 쓸모없는 물건은 아닐 테지만…… 왜 만든 거야?”
“쓸모없는 물건이 아닐 테라니…… 흑! 너무해요. 이 물건은 혁명이라구요, 혁명. 제가 예측한 데이터에 따르면 하반신 불구의 사람이라고 해도 치료가 가능하다구요. 그리고 골프라는 운동을 예를 들죠. 배우려 하면 가장 힘든 게 자세 교정이에요. 하지만 이 캡슐을 이용해 자고 일어나면 골프를 칠 수 있게 되는 거라구욧! 그런데 왜 만들었다니……. 흑흑! 이제 애정이 식은 거야. 나에 대한 사랑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사랑을…….”
…….
“너 어제 드라마 봤지? 내가 막장 드라마 보지 말라구 했을 텐데.”
“막장 드라마가 아니었어요. 분명 어제까진. 하지만 오늘 뉴스에 막장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뿐이라고요. 정말이에요!”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쓸모없다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그런데 물건을 만들었으면 테스트를 해야지, 왜 이쪽으로 가져왔어?”
“당연히 테스트하려고 가져왔죠.”
“서, 설마……?”
불안했다. 아라 이 녀석은 내 말을 명령으로 받아들였기에 어느 날, 내가 무슨 말을 내뱉으면 끝까지 기억을 한다. 인간인 내가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진하가 테스터가 되어야죠. 진하가 분명 저에게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건 좋지만 ‘확신이 들지 않을 땐 절!대! 인간에게 테스트를 하는 건 안 된다’고 말했어요. 차라리 진하에게 테스트를 하라는 말도 물론 했었죠.”
……!
왜 내 머릿속에 그런 말을 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가 모르겠다.
“그러니 아직 인간에게는 테스트가 안 되었으니 진하가 해야죠.”
“그러니까 아직 검증도 안 된 물건을 나 보고 테스트하라는 소리야?”
“검증을 하려면 테스트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테스터가 필요한데 어떻게 해요?”
함정이다. 분명히 함정이라는 건 알겠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절대적인 명령으로 번복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선 아라가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잠깐, 내가 지금 ‘아라의 기분’이라고 했나? 과연 가능한 것인가? 스스로 생각하는데 기분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왠지 모를 가능성에 가슴이 뛴다.
“알았어. 내가 할게, 한다고. 근데 말이야. 만일, 정말로 만일. 내가 ‘절대로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너의 기분이 나쁠까?”
“아뇨. 안 된다고 하면 그게 끝이죠.”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잖아. 그런데 테스트를 하지 못한다면 그 진가를 알 수가 없는 것 아니겠어? 그럴 때 너의 생각을 듣고 싶거든.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경우 화가 난다던가 아님, 실망을 한다거나 그런 거 있잖아?”
“전혀요. 그런 것 없어요.”
역시나 기계인 건가?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일 뿐인 건가?
“단지…… 진하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가상현실 게임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처럼요.”
……!!!
맙소사! 생각을 하는 건가? 어쩌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 즉, 생각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호르몬의 분비만 없을 뿐 분명 나와 관련된 일에 대해선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 아라야. 입·출력 캡슐의 테스트할 때 위험성은 없는 거야?”
“제가 예측한 바에 의하면 극히 일부분의 기억에 대해 일시적인 기억 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요.”
“뭐? 그런 일을 해서 내가 위험에 빠지는 건 괜찮은 거야? 그럼, 아라가 슬프잖아? 안 그래?”
“별로 위험하지 않아요. 제 예측이 오차는 0.1%도 되지 않으니까요.”
…….
망할 감정은 무슨. 그냥 말하는 거뿐이잖아. 괜히 혼자 들떠서는……. 기대했던 일이 무너지자, 아라가 이어서 뭔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든 거야? 그리고 얘기가 어쩌자고 삼천포로 빠진 거야? 아라가 감정을 가진다는 게 핵심이 아니었잖아? 내가 기억 장애를 당할지도 모르는 테스트를 하게 된 게 중요한 거였는데……. 젠장!’
결국 난 실험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캡슐 안은 포근했다. 캡슐에 탑승하기 위해선 벌거벗어야 한다는 아라의 말에 ‘다음부턴 위험하지 않는 실험의 경우 알아서 해’라며 투덜거리는 건 잊지 않았다.
“들어가요. 하나, 둘, 셋!”
아라의 ‘셋!’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밝은 빛이 쏟아진다.
***
“어서 와요, 진하!”
“아, 아라?”
새하얀 공간에 나타난 여인. 공간의 색깔과 대조되는 검은색의 짧고 몸에 붙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 착해 보이는 눈꼬리에 화장으로 올라간 듯 보이게 했고, 입 모양새가 합쳐져 도도하게 보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원피스의 천이 터질 듯한 상체와 길게 뻗은 다리. 완전 나의 이상형이다!
“고마워요, 절 그렇게 평가를 해 주시니.”
“엥? 지금 내 생각을 읽은 거야?”
화들짝 놀랐다. 상상의 나래는 벌써 눈앞의 아라와 호텔로 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게임과 같은 환경이에요. 즉, 생각하는 말은 귓속말 혹은 파티 창에서 확인할 수 있죠. 물론, ‘귓속말’, ‘파티창’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만 이 기계는 지난번 테스트로 인해 더욱 발전된 형태예요. 이곳은 저의 공간이니 생각을 읽긴 쉽죠.”
“음……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 생각 읽지 마. 험험!”
“아흥∼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아흥이라니 어디서 저런 매력적인……. 정말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묘한 매력을 뿜고 있는 아라의 모습에 생각을 읽히기 싫었다.
“자, 이 공간이 바로 가상현실에 들어가기 전의 장소예요.”
하얗던 공간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해변으로 바뀐다.
“가상현실 게임과 다른 점이 뭔데?”
“능력 제한이 없다는 거죠.”
“능력 제한?”
“이런 거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라는 날기 시작했다. 눈앞을 휙휙거리며 나는 모습에 시선이 자연스레 아라를 향한다. 크∼ 아슬아슬하게 안 보이네. 참, 이게 아니지. 험험!
“나도 가능한 거야?”
“당연하죠. 여기는 꿈과 같은 장소예요. 강하게 원하면 어떤 것도 가능하죠. 현재 진하에겐 능력 제한이 전혀 걸려 있지 않아요.”
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의외로 상상력에 현실의 제한이 걸린다. ‘사람은 날 수 없어’라던가 ‘높이 올라가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던가.
“오호∼ 진하의 머릿속에서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군요.”
“그러게. 쉽지 않은데.”
“제가 도움을 드리죠. 뇌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게 이 기계의 최고 장점 중 하나니까요.”
신기하다. 말과 함께 제한이 사라졌다. 머릿속은 정말 순수하게 ‘날 수 있다’라는 자신감만 넘쳤다.
“어때요?”
아라의 물음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하늘 위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진다.
“하하하하하!! 정말 날고 있다고.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자유다. 창공을 날 수 있다. 영화 속의 슈퍼맨이 된 것이다. 스쳐 가는 구름도 땅의 모습도 모든 것이 새롭다.
“어때요? 재밌죠? 그럼, 테스트를 해 봐요. 절 잡아 보세요. 그렇다면 진하가 원하는 모든 걸…… 아항♡”
막장 드라마를 다시 보게 해야겠다.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컸다.
“좋아!”
말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아라. 둘만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곧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빛의 속도로 난다고 해도 그녀 또한, 그 속도로 나는데 어떻게 잡을 수 있지? 그래, 이곳은 꿈이다. 나의 능력은 제한이 없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보던 마법을 생각했다.
“바인드!”
그녀가 나는 공간 옆에서 밧줄이 생기며 아라를 잡는다.
“흐흐흐! 드디어 잡았다.”
꽁꽁 묶인 아라에게 괴소를 흘리며 느긋하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라의 표정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사실이 기억났다. 내가 이곳에서 신이면 그녀도 신이었다.
짜증이 와락 밀려온다. 어떻게 해도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으니.
“안 해! 어차피 잡을 수도 없는데. 이건 명백히 사기라구!”
“어머, 이제 잡히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진하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도장!”
아라의 말에 아차 싶어 말을 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어느새 주변이 고풍스러운 도장으로 바뀌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시츄에이션인데. 고전 영화 ‘매트리스’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이거 혹시 매트리스에서 나오는?”
“맞아요. 그 영화의 ‘오마주’라고 생각하면 더 좋을 듯해요. 사실 그 영화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만들었으니까요.”
인공지능 컴퓨터가 절대 보지 말아야 하는 영화 베스트 2위에 해당하는 ‘매트리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니.
1위는 누가 뭐래도 ‘터보네이터’다. 이런 또 잡생각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만들진 않았을 테고 나도 영화에서처럼 대결을 해야 한다는 건가?”
“네.”
“어이, 어이! 말 쉽게 하지 말라고 난 운동이라면 걷기와 달리기 두 가지밖에 못한다고.”
“상관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에요. 영화완 완전히 다른 혁명에 가까운 장치라고요. 설명보다 간단히 실험을 해서 보여 주는 게 좋을 듯하군요.”
눈앞에 갑자기 자동차 충돌 시험에서 볼 수 있는 더미가 보였다. 아라를 보며 ‘이게 뭐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싸운다는 생각으로 마음대로 쳐 보세요. 지금부터는 순수 진하의 능력만 적용되니 초인이라는 생각을 지우는 게 좋아요.”
“난 평화주의자라고.”
말은 투덜거렸지만 곧 더미를 보고 TV에서 보던 동작들로 더미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잽을 날리고 로우킥을 날리고 한참을 가지고 놀다 마지막에 어퍼컷을 날렸다.
그런데 마지막 어퍼컷이 조금 빗나갔는지 턱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머리에 맞았다.
“악!”
더미를 때린 주먹이 아팠다. 정권의 앞부분뿐만 아니라 팔목에도 은은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내 주먹이 아픈 거지? 아야야!”
“지금 진하가 더미를 잘못 때렸으니 고통이 느껴지는 거죠. 현재 적용되고 있는 고통지수는 20%예요. 만일 현실과 같은 100%를 적용했다면 진하의 팔목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게 되겠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테스터로써 참을 수밖에 없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라의 말은 계속되었다.
“실제 게임에서는 단 0.1%로의 고통지수를 적용할 생각이에요. 말이 고통 지수지 팔다리가 부러지는 고통 정도는 멍해지는 감각 정도로 느껴지게 되죠. 그리고 타격감은 그대로 살리지만 잔인한 장면은 모두 없앨 생각이에요.”
“아니, 왜? 고통이 없다면 웬만한 장면쯤이야 적용 가능하지 않아?”
“안 돼요. 만일 게임 도중 자신의 팔이 잘렸을 때, 인지한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요. 파이라 그룹에서 비밀리에 행한 테스트에서 완전한 가상현실이 아니었고, 고통 또한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실험한 결과가 보여 주고 있어요. 피실험자가 칼 싸움을 하던 중 팔이 잘렸어요. 하지만 인지 못할 땐 괜찮았는데 자신의 팔이 잘리고 피가 나오는 걸 느끼자 뇌가 폭주해서 쇼크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피실험자가 죽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적 타격을 받았더라구요.”
“자, 잠깐! 왜 게임에서는 0.1%의 고통이고 내가 적용되고 있는 건 20%인데? 혹시 나를 음해하려는…….”
“휴, 진하.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야 고통을 없애죠. 그렇다고 아예 가상현실 게임처럼 모든 감각을 없애 버리면 테스트가 불가능하구요. 그리고 테스트를 위해선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고통을 즐길 정도로 변태는 아니다. 그래도 성실히 테스트에 임할 거라 했는데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체념은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