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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19화)
7장. 남겨진 것(3)


장호가 생각하는 것처럼 장혁이 의식이 없어 보였던 것은 무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던 탓이었다.
장혁은 자신 이외에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두 존재의 기억들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조사하면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는 두 존재의 기억과 지식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어 장호의 눈에는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두 사람의 삶이 결코 꿈은 아니라는 뜻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가공할 지식들이 뇌리에 가득했다.
다섯 살 이후 할아버지로부터 특수한 수련을 받았던 자신으로서도 처음 대하는 지식들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안정이 되어서 다행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혼재된 기억들로 인해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하나가 되었지만 본래의 나를 찾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장혁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난 닷새 동안 본래의 자신을 찾았다.
그리고 혼재된 기억과 지식들이 하나하나 받아들여 자신의 자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도록 만들었다.
‘후후후, 어찌 되었거나 내 의식 속에 존재하는 기억과 지식들이 사실이라면 난 복수할 힘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불행만 닥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행운이 찾아온 것인가?’
그렇지만 완벽하게 수습할 수만 있다면 가공할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장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주르륵!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혼란스러움이 가시자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참화가 생생하게 떠오른 장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렸다.
‘태륜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으니 네놈은 반드시 찾아내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작은 아버지들은 알려지지 않은 무예의 고수들이다.
그럼에도 손도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
자라나듯 손에 나온 검은색의 검에서 뻗어 나온 하얀 섬광이 펼쳐 낸 죽음의 춤사위는 모든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나에게 있는 경험과 지식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면 충분하다. 그들이 살아오며 겪어 온 전투 경험은 내 것이 될 것이고, 알 수 없는 미래의 지식들이 복수할 힘을 줄 테니까.’
한순간에 식구들을 모두 죽인 능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문제일 뿐 복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드르렁!”
결심을 다지는 순간 코고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후후후, 그나저나 형이 힘들었나 보구나. 시간이 조금 있을 것 같으니 지금부터 시작하자.’
피곤에 지친 탓인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촌 형은 한참 있다가 깨어날 것 같았다.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장혁은 잠재의식 속에 가득한 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하나가 되었지만 원리를 알 수 없어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종류별로 분류할 수 있었다.
‘시작해 보자.’
먼저 가장 선명한 것들을 뇌리에 떠올렸다.
고대 전사가 익힌 것으로 보이는 한 가지 심결과 미래 전사가 사용했던 전투 기술들이었다.
복수라는 목표가 간절한 탓인지, 의식 속에 남겨진 존재들의 기억 중 가장 강렬한 것들이었다.
‘우선은 이것들이 내가 익히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부터 한 번 살펴보자.’
장혁은 표층의식 위로 떠올린 지식들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 오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일단은 이 두 가지부터 익히기로 하자.’
남겨진 기억대로라면 두 가지만 제대로 익힌다면 가공할 힘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웬만한 자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아흠!”
신경을 많이 써서 피곤했던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하품이 나왔다.
“피곤하군.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모양이구나.”
큰 결정을 내린 탓인지 지난 닷새 동안의 정신적 피곤이 물밀듯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서 좋을 것도 없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이제 어느 정도 의미도 파악했으니, 한숨 자 둬야겠다.”
급하다고 빨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은 수련하지 못하기에 우선 몸부터 회복하기로 했다.
장혁은 쓰러지듯 장호 옆에 누웠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함!”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장호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혀, 혁아!”
누어 있어야 할 장혁이 보이지 않자 소스라치게 놀란 장호는 주변부터 살폈다.
“혀, 혁아!”
진정이 되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장혁을 부른 장호는 다급하게 거실로 뛰쳐나갔다.
“어, 형! 깨우려고 했는데 일어났네.”
언제 일어난 것인지 라면을 끓여 식탁 위에 냄비를 놓고 있는 장혁이 미소를 지으며 장호를 보고 있었다.
“괘, 괜찮은 거니?”
“하하하! 괜찮으니까 이렇게 라면을 끓였지. 불겠다, 어서 앉아, 형.”
“그, 그래.”
참담한 일을 겪은 아이답지 않게 맑게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이는 장혁을 바라보며 장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식탁에 앉았다.
‘평소에 행동하는 모습이 어른스럽기는 했지만…… 혹시, 너무 충격을 받아서 다 잊어버린 건가? 아무리 봐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밝은 장혁의 모습이었다.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가에 묻어 있는 슬픔을 보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와! 맛있겠다. 우선 형부터!”
장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국자로 라면을 푸고는 그릇에 담아 장호에게 내밀며 말했다.
“어, 그래.”
“라면이라서 미안해, 형!”
“아니다. 맛있어 보이는데. 뭘!”
대답은 하고 있지만 걱정스러웠는지 장호는 연신 장혁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형, 난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걱정해도 돼. 배고플 텐데 불기 전에 어서 먹자.”
“아, 알았다. 그런데 혁아. 너 라면 먹어도 괜찮은 거냐?”
슬픔이 남아 있는 눈동자를 보며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된 장호를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 배고파 죽겠다. 어서 먹자, 형.”
“그래, 어서 먹자.”
죽 한 냄비를 전부 비우고도 탈이 나지 않았던 것이 생각난 장호는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어제도 그러더니 배가 무지 고팠나 보구나. 그렇지만…….’
빨아 마시듯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 대는 장혁을 보며 장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저 녀석도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겠지.’
장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장호는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늦은 아침 식사를 끝낸 장혁과 장호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릇이 얼마 되지 않기에 설거지는 금방 끝이 났다.
“혁아, 어떻게 된 일이냐?”
대충 정리를 끝내고 난 뒤 녹차를 타 온 장호가 식탁에 앉으며 물었다.
‘일어났던 일들만 이야기하자. 나머지 이야기는 절대 믿지 않을 테니까.’
장혁은 집에서 일어났던 사건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아무리 형이라도 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형. 광복절 전날에 그놈이 집에 찾아왔었어.”
“놈?”
“나도 처음 보는 놈이었어.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잘 아는 것 같았어. 할아버지가 식구들을 전부 부르고, 같이 식사까지 했으니까.”
“그놈이 범인인 거냐?”
“맞아. 그놈이 칼을 꺼내 들었어.”
“으드득!”
범인이 밝혀졌기에 장호가 이를 갈았다.
“그놈이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피한 거냐?”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몰라. 삼촌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정신을 잃어버려서 말이야. 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때 제일 처음 본 사람이 바로 형이야.”
당시에 자신이 죽은 것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말할 수가 없었다. 놈의 칼에 심장이 갈라진 후 의식을 잃었고, 알 수 없는 힘에 전사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되살아났다고 말한다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으음, 아마도 어른 들 중 한 분이 널 피신처에 데려다 놓은 것 같구나. 그렇지만 넉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기억이 없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구나.”
“넉 달?”
“그래, 바깥을 한 번 봐라.”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는 조금씩 녹기 시작한 눈을 볼 수 있었다.
한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서 눈이 내리는 계절로 한순간에 건너뛰어 있었다.
‘그 어둠의 공간 속에서 넉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인가?’
설원을 보며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의식의 공간에서 지냈던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인간이 살 수 있는 생존 시간은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7일 전후라고 할 수 있다.
100일이 넘는 시간 뒤에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은 신비한 현상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조금은 꺼려지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확실한 것 같구나.’
그간 겪은 현상이 현실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다가오자 장혁은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혁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냐?”
창밖을 바라보며 마무 말없이 서 있는 동생이 염려스러운지 옆으로 다가온 장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형! 혹시, 태륜이라는 곳을 알아?”
“태륜?”
“그래, 태륜 말이야. 그놈이 그랬어. 태륜의 부름을 받기 위해 우리 집에 왔다고 말이야.”
장호는 지금 장혁이 가문의 참화를 일으킨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태륜이라는 곳에 놈이 있다는 말이냐?”
“그럴 거야, 그놈은 태륜이라는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 가족을 제물로 바친 것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으음, 태륜이라는 조직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당장에라도 놈들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다.”
“형,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그렇게 강한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제물로 바치고 들어갈 정도인 곳이 태륜이야.”
“지금은 아니라는 거니?”
“그래, 태륜은 엄청난 힘을 가진 곳이 분명해. 그러니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할 거야. 아주 강력한 힘을 말이야.”
만류하고 있었지만 장호는 장혁의 눈빛이 한순간 싸늘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침착하구나.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이라고 해도 이 녀석이라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장혁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가 장호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재가 바로 자신의 동생이었다.
할아버지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의 재능을 일부러 감추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벌써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인데. 할아버지의 학문을 불과 열 살에 모두 이어받은 아이니 보통 계획은 아닐 것이다.’
나이답지 않게 냉철하게 생각하며 복수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깊은 것 같아 안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키도 많이 컸구나.’
생각만큼이나 몸도 자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작았는데 이제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커 보였다.
“혁아,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한 장호가 물었다.
“형, 일단 암흑가 조직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아.”
“조, 조직?”
어머니의 사업 때문에 조직이 얼마나 살벌한 자들인지 몇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던 장호는 의외가 아닐 수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로 볼 때 분명히 그놈은 조직 폭력배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어. 그러니 어쩌면 그쪽으로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를 것 같아서 말이야.”
“으음, 네가 그렇게 생각을 했다면 맞기는 하겠지만 조직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니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 거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황당한 계획에 어이가 없어 말끝을 흐렸다.
“걱정하지 마. 몇 가지 계획을 더 세워야 되겠지만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황당한 계획은 아닐 테니까.”
“황당하기는, 네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그렇지만 혁아,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것이 있다.”
가문에서 전해지는 것들을 대부분 이어받은 장혁이 함부로 계획을 세울 리 없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눈으로 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며 조금은 민망했던 장호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