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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13화)
7.오픈! (2)


‘환타지월드의 드림오브카?’
검색을 했다. 제일 윗부분에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적힌 글과 함께 게임에 대한 간단한 설명. 바로 홈페이지로 이동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프로그램도 설치했다.
환타지월드라는 아이콘을 손동작으로 클릭하자 눈앞에 하얀 빛이 환하게 밀려온다.

[환타지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본인임을 확인했습니다. 환타지월드는 현재 13개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게임의 문을 열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음과 함께 눈앞에 13개의 문이 보인다. 그중 유달리 눈에 띄는 드림오브카. 곧장 문을 열었다. 또다시 빛이 밀려온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드림오브카를 시작하기 전 도움을 주는 곳입니다. 제 이름은 우미예요.”
눈앞에 레이싱걸 차림으로 설명하는 도우미가 보였다.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
‘여기가 정말 게임 속이란 말인가?’
김무혼은 정신이 없었다. 뭔가를 설명하고 보여 주고 자신 보고 따라하라고 말하더니 말 한마디와 함께 깜찍한 모습으로 사라졌다.
“자,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저 ‘우미’를 찾아주세요.”
그녀가 사라지고 그녀의 설명대로 뒤에 있는 문을 열고 나왔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와∼”
약간 옆쪽에 자신과 똑같이 문의 손잡이를 잡고 밖으로 나온 사람이 외쳤다. 왠지 자신이 외쳐야 할 감탄사를 뺏긴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저 사람도 처음 온 사람인가 보다. 계속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가더니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는 말풍선이 달려 있었다.

소니타 2040 현으로 팔아요.
엔진 VE2 팝니다. 20,000C
랜드로바용 광폭 타이어 2개 팝니다.
.
.
.

김무혼은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상점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저 없이 차의 카테고리를 클릭했다.
눈앞에 창이 바뀐다. 스포츠카 항목을 클릭하자 갖가지 종류의 스포츠카가 보인다. 소항목의 회사명과 년도를 정하자 내가 원하던 페랄리2040이 보였다.
전체 보기가 있어서 전체 보기를 눌렀다. 마치 자동차 전시장에 온 것처럼 바닥이 돌며 페랄리2040을 보여 준다.
그리고 차량 옆에 아름다운 레이싱걸이 갖가지 표정을 취하며 차량을 살 것을 종용하듯이 보인다.
차량 옆에 큼지막하게 50,000원 or 50,000c라고 적혀 있고 색깔을 선택하는 옵션이 있다.
50,000c는 게임을 할 때 얻는 게임 머니. 지금 게임을 한 적이 없으니 50,000원을 선택했고, 색깔은 밝은 파란색을 선택했다.

[현금으로 구매 시 새로운 옵션이 있습니다. 확인하세요.]

멋진 자동차를 팔 때 옆에 있는 레이싱걸을 보며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얘기해 보았음직한 말.
‘저 차 사면 쟤 끼워 주냐?’
그랬다. 여기서는 차를 사면 끼워 줬다.
김무혼은 랜덤으로 선택된 레이싱걸을 옵션으로 받았다.
‘이 게임 회사 대박이닷!’
김무혼이 자신의 옆에서 웃으며 서 있는 아가씨를 보며 생각했다.
차를 사고 시운전을 위해 드라이브 맵을 선택한 후 이동을 눌렀다. 탁 트인 해안도로. 몇몇의 유저들이 각기 다양한 차량과 옵션(?)들을 데리고 있었다.
옵션(?)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여성 유저는 남자를 옵션으로 받았나 보다. 옵션들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옷이 똑같았다. 하지만 유독 한 커플만이 빛이 날 정도로 화려하게 옷을 입고 출발하고 있었다.
김무혼은 다시 상점을 열었다. 옷값은 부담이 없었다. 둘이 해서 10,000원. 차량을 꺼냈다.
젠장!
“크크크! 저게 뭐야?”
“호호호, 기본 차네요.”
재빨리 다시 페랄리2040을 꺼냈다. 손짓 한 번에 차는 다시 바뀐다.
일단, 아가씨를 태운 후 자리에 앉았다. 차의 시트가 움직이며 가장 최적의 자세를 만들어 준다. 평소 내 운전 습관에 맞게 손을 본 후, 출발했다.
“아, 이 느낌이었어!”
“운전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그가 꿈에 그리던 차를 탔다는 기분에 옆에 탄 옵션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옵션이 말이라니.
“말할 줄 알아?”
“당연하죠. 호호호!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대화 상대로는 괜찮으실 거예요. 그리고 제 이름을 정해 주시면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돈밖에 모르는 게임 회사에 대해 감탄이 나온다. 전도희란 이름을 정해 주고 대화를 즐기며 달린다.
속으론 가고 싶어 했던 스포츠카 동호회 따윈 비교가 안 된다.
“어이! 여기서 그렇게 달리려면 언제 한 바퀴 돌 수 있을 거 같아? 노파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크하하하핫!”
BNW를 몰고 가던 녀석이 지나가며 김무혼을 놀린다. 그는 잠자고 있던 레이서로써의 본능을 깨웠다.
“도희야, 조심해라. 지금부터 오빠 달린다.”
“꺄아∼ 오빠! 달려!”
부아아아앙∼!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차나 빠르게 나아간다. 김 무혼의 주말은 신나는 드라이브와 레이싱으로 다시 불타고 있었다.

***

―IT강국 다시 일어나다!
―L&J소프트가 이룬 혁명!
―환타지 그 이상의 환타지월드!
―게임 시장의 레볼루션!
…….

서비스를 시작한 지 단 15일 만에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게임 시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9시 뉴스는 물론, 온통 매체에는 연일 환타지월드와 L&J의 소식을 전했고, 기존 게임 업체들의 주식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풋옵션으로 재미 좀 봤네요, 호호호!”
아라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신경을 돌릴 틈이 없었다. 모니터에 보이는 결재 서류들을 확인하고 사인하기도 바빴다.
물론, 혼자만 이렇게 바쁜 건 아니었다. TSB팀의 경우, 택배 포장만 해도 하루가 간다고 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좀 한가하다는 상품 개발팀과 게임 운영팀, 인사팀 등도 TSB팀의 포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후∼ 직원들을 더 뽑아야 될 것 같은데…….”
서류 결재를 마치고 의자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테스터들 중에서 100명 정도 더 뽑으면 될 거에요.”
그렇지! 아라의 각종 테스트에 참여했던 테스터들이 있었다.
“100명으로 될까? 고객 만족팀 사원들도 화장실 갈 틈이 없다고 난리야.”
“제 계산으론 그 정도 인원이면 충분할 거예요. 현재의 건물도 더 이상의 인원이 들어오긴 무리구요. 결정적으로, 앞으로 늘어나는 실업자들을 우리가 흡수해야 하니까 100명이 적정선이에요.”
앞으로 늘어날 실업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사회사업을 위해 깨끗한 돈과 한 명의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설립한 게임 회사다. 근데, 늘어나는 실업자라니…….
“아!!”
“이제야 알겠어요? 과거에 비해 게임 업계가 불황이라곤 하지만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고요. 환타지월드가 나타남으로 해서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수익 감소가 이어질 테고 그럼, 도산. 그와 함께 실업자들이 생기게 되겠죠.”
머리가 아파 온다. 안 돼도 1∼2만 명은 족히 넘을 텐데. 물론, 환타지월드가 게임 업계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얘기지만 지금 상태라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게임 업계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한다면 또 모를까. 생각할수록 먹먹하다.
“진하가 생각하는 만큼 게임 업계라는 곳이 직원 수가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들 모두를 끌어안을 순 없죠. 저희 회사 입장에서도 많아져 봐야 소용없고요.”
하긴 그들 모두가 실업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하려는 이들과 또 다른 틈새시장을 노리려는 회사들도 있을 테니.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일 뿐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또 가상현실 게임을 내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100명을 추가 모집하는 걸로 하자. 면접은 팀장들에게 보라고 하면 되겠지.”
“알았어요. 그리고 잠시 후 TSB칩에 대한 계약을 위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에요.”
정말이지 일이 끝이 없다.

***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 위로 노을이 지고 있다. 해안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암괴석들이 황금빛으로 자신을 뽐내며 장관을 연출한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몰고 와 발을 간질인다.
“진하, 식사해요.”
진한 분홍빛에 살짝 레이스 있는 비키니를 입은 아라가 노을빛에 반짝이며 손을 흔든다. 웃으며 다가가 보니 각종 해산물 요리들과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30분 전에 밥을 먹었는데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아라가 의자에 앉도록 한 후 나도 자리에 앉았다.
“휴∼ 정말 휴가를 온 기분인데.”
“호호,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요. 13개의 게임보다 인기가 좋은 곳이 이곳 ‘리얼월드’라고요.”
그렇다, 지금 이곳은 환타지월드 중에 ‘리얼월드’라는 곳이다. 명명된 이름의 아이러니는 그런가 하고 넘어가자.
리얼월드는 로그인 서버의 빈 자원, 즉 놀고 있는 하드웨어적 공간을 현실과 비슷하게 꾸며 놓은 곳이다. 13개의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선 로그인 서버에 접속하여 본인 인증 절차를 마친 후 각각의 게임 서버로 넘어가야 했다.
직원 중 한 명이 ‘현실과 환타지 중간에 있는 중간계’라고 표현했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근데, 우습게도 빈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이 리얼월드가 현재 서버수가 제일 많이 늘어나고 있다.
“와우! 정말 맛있다.”
랍스터의 부드러운 식감 위에 뭔가가 살짝 터지며 독특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게 뭐야?”
“골드캐비어예요. 괜찮아요?”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 최고야!”
밀려드는 업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결재 서류가 훨훨 날아가 버린다. 접속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휴가라…… 왜 리얼월드가 인기가 좋은지 알 것 같다.
“건배!”
“건배!”
아라와 건배를 후 와인을 삼켰다. 떫은 맛보다는 약간의 단맛이 마음에 든다.
“근데, 이곳에서 술도 팔아?”
“물론이죠. 미성년자에겐 판매 금지인 건 현실과 같아요. 그리고 술을 많이 먹는다고 해도 취하진 않으니까 걱정 말아요. 사람들이 표현하는 알딸딸하고 기분이 좋은 정도?”
“어? 어두워졌다.”
얘기하는 사이 어느새 노을이 지며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라의 손짓에 불이 밝혀진다.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게 몇 번째 놀라는 건지.
가까운 바다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불빛에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고, 기암괴석들도 마치 조명을 받은 여배우처럼 아름답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쭈욱 펼쳐져 있는 별장들과 독특한 모양의 가로수들은 또 다른 장관이다.
별천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떠오르는 단어는 오직 하나였다. 난 ‘어때요?’라는 듯이 웃고 있는 아라에게 쌍엄지를 들어 보였다.
식사를 끝내고 아라와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닌다. 아라가 말하던 알딸딸한 기분 때문일까? 옆에 나란히 걷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작게 쿵쿵댄다.
날 보며 싱긋 웃던 아라는 팔짱을 끼며 바삭 기대어 온다.
아, 이곳은 아라의 영역. 내 생각을 읽지 말라고 명령을 했지만 나의 모든 신체 흐름을 통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기분 나쁘진 않다.
뭉클한 무언가가 팔로 느껴지고 장미향이 아라의 머리에서 풍긴다. 아찔하다.
난 자연스레 아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껴안듯이 내 쪽으로 당겼다. 이성은 가상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감성은 이미 침대로 향하고 있다.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이곳에서 성관계도 가능한 거야?”
앗,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짐승이 되어 간다고!
“불가능하게 만들어 뒀어요.”
어헉! 이 실망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스킨쉽까지는 가능해요. 물론, 옷을 벗기거나 하지는 못하지만요.”
그, 그렇다고 브라를 당기지는 마……. 스킨쉽은 가능하다. 스킨쉽은 가능하다.
스킨쉽은 가능하다!
팔을 안쪽으로 더 당기자 아라의 얼굴이 바로 앞이다. 촉촉해 보이는 입술이 마치 줌을 당기듯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