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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14화)
7.오픈! (3)


“누,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아니, 얘가 무슨 소리야? 어느 시대 드라마를 본 거니? 지금은 바로 자유연애, 프리 섹스 시대라고! 성개방시대에 대원군 같은 소리하구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단지, 가상의 아라라는 게 조금은 마음에 걸리지만…… 뭐,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도 결혼하는 시대니까.
“누가 와요!”
누가 와? 여긴 아직 포탈도 생성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 건 너잖아! 너 자꾸 이러면 오빠 거칠어진다.
하지만 동작을 이을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카오스의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여기 리얼월드의 이런 집의 가격은 상상도 못하게 뛸 거라고. 지금 여기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잖아, 안 그래?”
“맞아요, 형.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하나 잡아 놓으면 대박 날 거예요.”
“내가 돌아다녀 본 결과로는 이런 곳이 등급에 따라 20여 개 될 거야. 얼마나 늘릴지 모르지만 희소성 때문이라도 많이 늘리진 못할 테니까 꼭 잡아야 해. 일단, 상진이 너하고 종완이가 준비하고 있다가 분양되기 시작하면 바로 선점해. 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형이 운영자니까 잘되겠죠. 근데, 얼마나 할까요?”
“글쎄, 아직 이곳은 직원들도 잘 모르는 곳이거든. 운영자의 텔레포트 능력으로 이곳저곳 무작위로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곳이라 아직까진 어떨지 몰라…….”
잘하는 짓이다. 가상현실의 복부인 등장이구만.
가까워지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
“헉, 누가 앞에 있어요, 형.”
“누가 여기 있어? 여기는 포탈도 안 되는……. 누구냐? 버그 이용자?”
“……!”
다가온 이들은 역시나 같이 테스트를 하던 이들이었다. 캐릭터 수정으로 다들 미남자가 되어 있었지만, 운영자로 있는 형주 형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종완이 형, 상진이 형 오랜만이에요.”
“으, 응. 지, 진하구나? 오랜만이다.”
김형주, 나영철, 류인준 이 세 사람은 현재 우리 회사의 사원이다. 오늘도 스치듯이 본 사람들이기에 인사는 생략했다.
“근데, 여기서 뭘 하세요?”
“그게 아이고…… 그냥 집에 와서 심심해서 접했다 아기가……요. 사장님…….”
사적인 자리에선 편하게 지내자고 했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던 영철이 형이 말하다 말을 바꾼다.
“김형주 씨,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줘야겠네요. 운영자로 접한 걸 보니 오늘 당직인가 본데 지금 당장 사장실로 올라오세요.”
“……!”
절대 이건 개인적인 복수는 아니다. 아라와의 시간을 깨뜨린 복수 또한 아니다.

단지, 단지…….
성개방시대를 역행하는 부동산 시대를 다시 열려고 하는 이들에 대한 복수다!

으악! 짜증나!



8.휴머노이드 (1)


1973년 일본 와약하다대학에서 이족 보행 로봇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깡통을 휴머노이드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1996년 ‘훈다’에서 개발한 P―2를 시작으로 2000년 아시모(ASIMO)가 나오며 휴머노이드의 첫 역사를 장식했다.
우리나라도 2004년, 독자적인 연구로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독자적으로 휴보(HUBO)를 개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해가 갈수록 휴머노이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지만 일각에서 휴머노이드 무용론까지 대두되기도 했다.
한 과학자는 휴머노이드가 가장 발전한 일본이 만든 성인용 휴머노이드 ‘사쿠라’에 대해 ‘인류가 처음 마스트베이션을 알았을 때로 역행시키는 기술’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5,000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인지 어쩐지 꽤 많은 물량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로봇 전시장이나 과학 엑스포가 아닌 개인의 옷장이나 방 한구석에 주인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극히 비밀스러운 물건이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 것이다.
2030년부터 쓸모없다는 휴머노이드보다 어떠한 일에 특화된 로봇들이 등장하며 일반인들의 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가사 도우미 로봇이었는데 주로 음식점이나 부유한 집의 가정부 역할을 맡으며 본격적인 로봇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로봇 시대 1기(2031년∼)는 산업 및 생활의 많은 부분이 로봇으로 대체되며 행복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오직 부유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걸 깨달게 해 준 시기이다.
방 한쪽에 멍하니 서 있는 청소 로봇을 바라보던 난 상념을 지우고 오늘 도착한 새로운 로봇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머리에 어두운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휴머노이드가 6명. 물론, ‘명’이라고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이니 자연스럽게 인간처럼 느껴진다.
각설하고, 그들 옆에 단정한 오피스 걸의 모습에 살짝 작은 눈이 이지적으로 보이는 비서용 휴머노이드 1명. 누가 봐도 ‘아 메이드구나’ 싶은 1명. 총 8명이 청보 로봇 옆에 나란히 서 있다.
“……뼈는 인간의 무게에 맞추기 위해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어요. 메카닉용 미사일이 아닌 대인용 무기로는 약간의 흠집밖에 나지 않죠. 또한 이들을 이루고 있는 근육이야말로 휴머노이드의 최고 기술인데 뇌에서 전해 준 명령 신호 즉, 전기 신호로 각 관절의 움직임을 인간의 행동과 같이 만들게 해 주는 거예요. 합성 물질인 고무와 몇 가지…….”
아까부터 조잘거리는 아라의 설명은 내 머리가 받아들이질 못하니 패스. 누차 얘기하지만 내 머리는 프로그래밍할 때를 제외하곤 특별한 능력이 없다.
가까이에서 휴머노이드를 살펴보았지만 로봇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볼을 찔러 봤다.
탄력 있게 눌러지는 피부. 비교 삼아 내 볼을 눌러 보아도 느낌상에 차이는 없다. 손끝으로 인간의 체온처럼 약간의 온기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하나하나 살피다 비서로 쓰일 휴머노이드 앞에 섰다.
남자의 본능과 지적 호기심이 합쳐졌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지적 호기심일 뿐이라고 되뇌이고 있다.
쑤욱.
예전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 느낌.
좋구나♡
“꺄악! 이 변태.”
놀랐다. 손을 재빨리 빼고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생각처럼 귀싸대기가 날아오진 않는다. 대신 수치스러움이 가득한 표정과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이 합쳐져 날 흘겨보는 휴머노이드. 양손은 어느새 가슴에 X자 모양으로 방어를 하고 있다.
“휴∼ 진하, 내 설명 듣고 있어요?”
“으, 응. 당연하지. 그런데 지, 지금 작동 중이야?”
“당연하죠. 아까 들어오는 거 봤잖아요?”
“난 아라가 조종하는 줄 알았지.”
“주어진 명령과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상황은 스스로 움직여요. 방금과 같은 행동은 프로그래밍화시켜 둔 거예요. 하지만 비서나 메이드라고 해서 약하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요. 단지 비서와 메이드의 모습이라곤 해도 옆에 있는 경호원들과 똑같은 실력을 가졌으니까요.”
“……미안.”
“아닙니다, 사장님.”
비서는 살짝 인사와 함께 몸가짐을 새로 한다. 괜스레 호기심을 채우다 이게 무슨 망신인지.
그래도 부드러웠어!
“질문!”
“말해 봐요.”
“혹시, ……가능한가?”
“진하의 머리는 요즘 온통 그 생각뿐이군요. 물론, 진하의 생각대로 성인용으로 사용가능해요. 제가 진하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호호호!”
선물이라…… 기특하군. 근데, 이왕 선물로 줄 거면 예뻐야 하는 거 아냐?
내 스타일이 아니잖아, 내 스타일이. 평범함보다 약간 예쁘긴 하지만 요염하다거나 매력적인 얼굴들은 아니었다. 비서나 메이드나.
“혹시, 이들도 성형 수술이 가능해?”
“무슨 상상하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차라리 밖에서 찾으세요. 비서나 메이드와 놀아난다는 소문을 듣고 싶은 건 아니겠죠?”
하긴, 요즘 내가 너무 굶주리고 있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했다. 직원 100명도 추가되었고, 대신 일해 줄 비서도 생겼으니 이제부터 별로 할 일이 없을 테지. 음하하하핫!
이제부터 자유 연애 시대다!

***

용인대학교. 1953년 대한유도학교로 시작하여 현재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체육관련 대학교.
이름에서 풍기는 포스처럼 주차권을 끊고 교내를 들어서자 방학일 텐데도 불구하고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합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구르고 있다.
184cm의 키에 요즘 운동을 해서 제법 몸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유도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니 왠지 왜소하게 느껴진다.
일의 여유가 생기자마자 자유 연애 시대를 부르짓는 내게 아라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이 떨어졌다. 경호원―휴머노이드지만―들의 무술 실력 향상을 위한 테스터들을 모아 오라는 것.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고 완벽한 품새를 가진 태권도장 관장님의 소개로 이곳에 온 것이다.
잘 정돈된 표시판을 보며 목적지인 경호학과 강사실을 찾았다.
“저, 이용희 사범님이나 김호철 사범님 계시나요?”
“두 분 지금 계절학기 때문에 체육관에 계세요. 잠시 후, 점심시간이니 그쪽으로 가서 기다리시는 게 좋을 거예요. 두 분이 같이 있을 땐 수업 시간밖에 없거든요.”
친절한 여학생의 도움으로 그들이 있다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담백한 모습의 체육관은 겉으로 보기에도 제법 컸다. 입구로 보이는 곳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야야! 경호할 대상이 죽었잖아! 그리고 칼 들고 오는 놈한테 배를 대 주면 어쩌자는 건데, 응? 범인이 한 명이면 그나마 낫겠지만 떼거리로 몰려들 때도 그럴래? 너 운동 뭐했어?”
“…….”
혼나는 학생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자식아, 손은 놔뒀다가 국 끓여 먹을래? 근접전에서 팔은 필수야 필수! 너 이번 학기 동안 다리 쓰지 말고 팔만 사용해. 알았어?”
끝인가 싶었는데 한쪽에서 또 다른 괴성이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장난해? 킁! 지금 애무하냐? 그래서 범인이 쓰러지겠냐? 킁! 내가 몇 번을 얘기해. 다리를 사용하라고. 로우 킥 한 방이면 웬만한 애들 쪽도 못 써. 그리고 너 쿵후 배웠지? 쿵후의 기본은 하체를 무너뜨리는 거야. 킁! 근데, 팔 동작만 신경 써서 파괴력이 안 나오잖아. 제발 그런 동작들은 네 애인에게나 사용하라고! 킁!”
체육관 분위기 전체가 싸늘하다. 멀리서 봐도 혼을 내던 두 사내가 서로에게 적개심을 품고 쳐다보고 있다.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간다.
“팔이 더 중요하지 왜 다리가 중요하냐?”
“다리가 더 중요하지 왜 팔이 중요하냐? 킁!”
동시에 터지듯이 나오는 두 사람의 말에 대략 짐작할 수가 있었다. 태권도를 가르쳐 주셨던(훔친 거나 다름없지만) 민 관장님의 말에 따르면 무척이나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던데 지금 보면 꼭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두 사람이 손짓을 하자 학생들은 우르르 내 쪽으로 향한다.
“또 저런다, 지겹지도 않나?”
“으휴, 과를 잘못 선택해서 이게 뭐니?”
“이 수업은 배우는 건 많은데 이 사범님한테 배우면 욕먹고, 김 사범님한테 배우면 칭찬하고, 젠장!”
학생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속삭이며 체육관을 빠져나간다. 썰렁하다. 학생들이 나가고 넓은 체육관에 아무 말 없이 눈빛만으로 으르릉거리는 두 사람과 그걸 멍하니 지켜봐야 하는 나.
20분을 기다리다 결국 내가 지루함을 못 참고 침묵을 깨야 했다.
“저…….”
“왜?”
“왜? 킁!”
평범함의 극치. 동시에 날 쳐다보며 누구냐라는 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정말 평범했다.
만난 후 10분만 지나도 절대 기억 못할 얼굴들. 물론, 차이점이 있긴 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왼쪽 사람이 조금 둥근형의 얼굴이고, 오른쪽 사람이 약간 긴 편의 얼굴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의 뜻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지금에서야 말을 붙였냐. ……그런 표정.
“저는 김 관장님의 소개로 온 이진하라고 합니다.”
“어느 김 관장님? 여기 졸업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관장이고 사범이야.”
둥근 얼굴의 말에 그렇겠다 싶어 말을 덧붙였다.
“청담동에서 태권도장 하시는 분인데 며칠 전 연락했다고 오늘 가 보라고 하시던데요?”
“아, 용준이 형님! 맞아, 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었지.”
“그런데 무슨 일로? 킁!”
긴 얼굴이 끼어든다.
“제가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술하시는 분들을 소개받을까 했더니 두 분을 찾아가 보라고 하시던데요. 그래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왔네. 용준이 형님의 부탁이니 신경 써야지. 킁! 근데, 점심시간인데 밥은 먹었나? 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으러 가자.”
긴 얼굴의 ‘킁!’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표정으로 나타낼 순 없었다. 점심시간이니 한 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들을 따라나섰다.
웬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맞나 싶어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우물우물! 젊은 사람이 음식을 깨작거리면 쓰나? 여기 고기 10인분만 더 주세요.”
깨작거리다니 익은 고기가 있어야 먹지.
익은 건지 안 익은 건지 색깔만 변하면 닥치는 대로 먹고 있는 두 사람 덕분에 때 아닌 오해다. 두 사람 앞에 버려진 갈비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들은 갈비는 뜯지 않았다. 갈비가 왜 갈비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오로지 고기만을 탐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