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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15화)
8.휴머노이드 (2)
“우리가 손님을 앞에 두고 너무 먹는 것에만 치중했군. 킁! 아까 말했던 것 자세히 말해 봐. 킁!”
20인분을 먹어 치우고 또다시 5인분을 주문한 후에 처음으로 본론을 꺼내다니. 입맛이 쓰다.
“권투, 킥복싱, 유도, 쿵후, 합기도 등 무술하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정식적인 무술이 아니라 해도 격투에 능한 분이면 괜찮고요.”
“그런 애들은…… 쩝쩝! 우리가 꽉 잡고 있지. 쩝쩝! 내가 아는 애들 중…… 쩝쩝! 권투, 쿵후, 가라데, 특공무술이 일품인 애들 많아. 쩝쩝! 아무래도 실전무술하면 팔을 사용해야 하니까. 쩝쩝!”
꽝!
“헛소리! 킁! 쩝쩝! 무식한 소리야! 킁! 우물우물! 다리를 이용한 공격에 능해야 진정한 무술 인이지. 킁! 진호, 걱정 말라고 내가 실력 좋은 녀석들로 붙여 주지. 킁! 쩝쩝!”
꽝!
“삼신할미 임신했다는 소리보다 어이가 없군. 쩝쩝! 실전에서는 별 필요도 없는 다리 타령은. 쩝쩝!”
이름도 제멋대로 부르는군. 먹으면서 하는 말이라 정신이 사납다. 꽝꽝 치는 탁자에 갈비들이 사방으로 튄다. 계속해서 치다간 탁자가 부서질까 봐 결국 중재에 나섰다.
“일단, 식사부터 하신 후 얘기 나누시죠. 그리고 두 분이 소개하시는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 같으니 추천만 해 주세요.”
“그럴까? 킁! 쩝쩝!”
“그럴까? 쩝쩝!”
둘은 서로에게 질세라 열심히 먹는 것에 열중한다.
“그러니까, 너 말은 게임 만드는데 애들이 필요하다는 거 아냐? 킁! 그런데 싸움에 능한 애들이 왜 필요한 거야? 킁! 오히려 자세가 정확한 애들이 필요한 거 아냐? 킁!”
아무래도 주목적을 숨기고 말하다 보니 이들도 이상함을 느끼나 보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긴 얼굴의 질문에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어떻게 말을 돌리지?
“무슨 상관이야? 우리야 소개해 주면 되지, 안 그래? 그건 그렇고, 얼마나 줄 생각이냐?”
핑곗거리를 찾는데 둥근 얼굴이 도움을 준다. 이 사람에게 내가 고마움을 느끼다니.
“3일 동안 120만원입니다.”
“나쁘진 않네. 킁! 3일에 150만원씩. 내가 최고의 애들을 소개시켜 주지. 킁!”
사실 평생 수련해 온 무술을 카피하는 거라 미안한 감정이 없을 순 없었다. 굳이 120만원이라고 정한 건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좋습니다. 실력 이상이시면 더 지불할 생각도 있습니다.”
“오! 제법 통이 크군. 나도 돈이 필요한데…… 아르바이트나 해 볼까? 난 얼마나 줄래?”
됐거든요. 두 분은 두 분 일이나 하세요.
“하……하, 두 분이 하신다면 당연 최고 대접을 해드려야죠.”
“그니까 얼마? 킁! 1,000만원? 2,000만원?”
긴 얼굴 넌 또 왜 이러니? 두 사람은 내가 싫다니까요!
“크크! 싸구려. 난 최소한 하루 5,000만원은 받을 수 있겠다. 안 그래?”
두 사람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무슨 소리? 킁! 방금 말한 가격은 시간당 가격을 물은 거라고. 킁! 진정한 싸구려는 네가 되는 거지. 푸하하핫! 킁!”
“난 최소한이라고 분명 말했어! 최대한이라면 얼마가 될지 네가 알겠냐?”
“충분히 알지. 킁! 너.보.다.는 높을 거라는 걸. 킁!”
아, 이 아저씨들 또 싸운다. 돈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둘이 아주 상상의 나래를 편다. 1억, 10억이 넘어간다.
조금만 더 지나면 회사 전체를 팔아도, 아니, 전 세계의 돈을 다 두 사람에게 줘도 모자랄 판이다.
아놔! 제발 말 좀 끝내고 집에 가자, 집에 가.
***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최일권은 스승인 김호철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3일간 150만원하다는 게임사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냐는 것. 돈이 필요한 그는 당연히 테스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3일간 합숙을 해야 한다기에 대리운전을 포기하고 동생을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도착하니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고 있는 동생이 보인다.
“오빠! 오늘도 왔네?”
“응. 한 3일간 못 올 것 같아서.”
“그렇구나, 몸 조심히 다녀와.”
밝은 얼굴로 웃는 미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본다. 이틀에 한 번씩 짧은 시간밖에 못 보지만 이 순간이 일권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와, 오빠 최고! 그렇지 않아도 매운 게 먹고 싶었는데. 오늘 공원에서 놀다가 스테이크를 먹었거든. 맛있긴 한데 아무래도 매운 게 좀 당기더라구.”
환자용 식탁 위에 떡볶이를 먹으며 연신 조잘댄다.
벌써 2년 넘게 병실에만 누워 있는 미호가 지난달부터 리얼월드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건 일권도 알고 있었다.
신기하다며 조잘대는 미호 덕분에 그도 잠시 접속해 보았다. 회원 가입 시 준 1,000원으로 몇 가지를 사 먹어 보기도 했었는데 지금 미호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게임 머니는 아직 있어?”
“으, 응. 아직 많이 남았어.”
일권은 미호의 말과 눈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대충은 안다. 아마 지금쯤 돈이 떨어졌을 것이다. 일주일에 충전해 주는 만 원, 움직이지 못하는 미호에겐 어쩌면 삶의 재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옆에 있던 낡은 헤드셋을 쓴 일권은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2만 원을 충전했다. 내일부터 있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면 부담스러운 금액이겠지만 그 아르바이트 덕분에 다소 여유가 생긴 탓이다.
“너무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지내, 알았지?”
“응, 조심히 잘 다녀와.”
둘 사이엔 고맙다라든지 미안하다는 말이 없었다. 처음 6개월 동안 병실만 오면 그런 말로 서로 눈물을 흘려야 했기에 이제는 담담한 편이었다.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일권은 평소의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에게 있어서 미호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돈을 벌기 위한 힘겨운 삶일 뿐이었다.
최일권은 테스트에 앞서 젊은 사장이 얘기한 ‘150만원+α’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눈앞에서 움직이는 화면을 보며 이번 테스트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조금 전 보이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눈앞에서 마네킹 모양의 더미와 싸우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싸움은 금방 끝이 났다. 하지만 이어지는 싸움에선 더미를 제압하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더미가 발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스터로 나선 킥복싱 선수는 5판이 지났음에도 더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쉽다, 아쉬워.”
“뭐가 아쉽다는 말이에요?”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에 질문을 한 이는 젊은 사장. 이름을 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플러스 알파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더미는 허실(虛實)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음,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그냥 간단히 보여드리죠. 한 번 서 보시겠어요.”
젊은 사장을 마주보고 설명을 이었다.
“자, 제가 사장님을 공격할 테니 막아 보세요.”
그 말과 함께 최일권은 왼손을 앞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했다. 움찔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사장.
꽤나 운동을 했나 보다. 하지만 더미와 마찬가지로 허실(虛實)에 대해선 잘 모르나 보다. 순간 오른손을 그의 얼굴로 찔러 넣었다.
“아!”
사장의 얼굴 앞에 주먹을 멈추자 뭔가를 깨달은 모양.
“자, 어느 정도 알 것 같죠? 그럼, 다시 공격할 테니 막아 보세요.”
똑같은 패턴으로 왼손으로 공격할 듯이 하다 오른손으로 공격. 젊은 사장이 잘 막았지만 오른손 또한, 허(虛). 다시 어깨를 살짝 비틀며 왼손을 어퍼컷처럼 날린다.
주먹이 턱밑에 머물자 그제야 이해한 듯 보였다.
“이거 의외로 쉽지 않군요. 몇 번이고 허(虛)라니……. 알고 있어도 못 막겠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 격투에선 그렇지 않아요. 누가 멍하니 막고만 있겠어요. 만일, 사장님이 오른손을 막으며 반격을 해 오면 저의 마지막 어퍼컷은 방어를 위해 공격을 못했겠죠. 즉, 제가 한 공격은 허일 수도 실일 수도 있어요. 실패하면 허이고 성공하면 실이고. 허허실실이라는 말 자체가 좀 애매한 편이죠.”
“그래요? 그럼, 최일권 씨도 막지 못하는 건가요?”
최일권은 눈앞에 빛나는 눈으로 물어보는 젊은 사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설명이 자세해졌다.
“그건 아니에요. 사장님의…….”
“진하, 이진하라 불러 주세요.”
“하하, 진하 씨가 공격을 하게 되면 어깨나 허리의 움직임으로 공격 방향을 알 수 있어요.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은 그걸 보고 피하거나 막거나 하는 거죠. 권투 선수들의 경우, 잽을 1초에 5번 이상 날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그걸 본능적 피하는 선수들도 있어요. 흔히, 이런 걸 청경(聽勁)이라고 표현할 수 있죠. 하지만 청경보다 쉬운 예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몸에 자신의 손이나 몸이 붙어 있는 경우죠. 상대방의 움직임이 몸으로 전해지니까 훨씬 알기 쉽거든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청경을 알고 있어요. 막 싸움에서 상대와 붙어 있을 때 보지도 않고 날아오는 주먹을 피해 상대방의 몸을 흔들거나 꽉 조이거나 하는 것도 청경의 일종이에요.”
“맞아요! 생각해 보면 무의식중으로 뒤에서 올라오는 다리나 빠져나가려는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하게 봉쇄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이러한 청경을 수련할 수도 있는 건가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두 사람이 마주 본 상태에서 각각의 손을 얼굴 앞쪽에 올린 후 맞대고 공수를 반복하는 거죠. 이때, 공격을 받는 쪽은 공격을 무력화시키면서 진행해야 해요. 이걸 중국 태극권에선 추수라고 하죠.”
이진하는 정말로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같이 테스트로 참석한 나머지 인원들도 이 둘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본다.
한참을 물어보던 이진하는 감사를 표하곤 두 테스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더미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최일권이 보기에는 약간은 어색해도 허실에 대해 정확히 적용된 모습. 10판째의 더미와 테스터의 대결은 지금까지완 달랐다. 테스터 2명은 약간의 변칙적인 방법으로 10여분 만에 간신히 이겼다.
옷을 입고 힘겹게 나오는 두 사람.
“오후 4시부터 한 번 더 하시면 됩니다. 편안히 이곳에서 구경을 하셔도 좋고, 예약해 둔 식당에서 마음껏 드시고 숙소에서 쉬다가 오셔도 좋습니다. 대신, 컨디션은 최상으로 유지해 주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두 분 들어가시죠.”
최일권은 유도를 하는 사람과 함께 테스트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둥근 원 모양에 여러 개의 장비들이 붙어 있는 요상한 장치를 메이드 복장의 아가씨가 열심히 닦고 있었고 우리 셋을 확인한 그녀는 일을 마무리하고 뒷문으로 나갔다.
“옷을 벗으시고 저기 사람 모양의 기계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미 설명에서 들은 두 사람은 어느새 옷을 훌훌 벗는다. 최일권이 먼저 사람 모양의 기계에 몸을 기댔다. 차가우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포근한 느낌이 등에서 느껴진다.
지이잉!
기계의 작동음과 함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몸을 덮어 온다.
최일권은 기계 옷을 입고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움직여 보니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움직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진하의 목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번쩍인다. 그리곤 고풍스러운 도장. 최일권은 리얼월드에 접속할 때와 같은 현상이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술의 이름과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들을 말해 주시면 됩니다.”
최일권은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에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술을 생각해 봤다. 너무 잡스럽게 많다.
두 스승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들과 군에서 배운 것들, 스스로 찾아 공부했던 것들.
“이것저것 많은데…….”
“다 보여 주세요. 지치시면 자동으로 기계 작동이 멈추게 되니 그때까지 편하게 하셔도 되니까요.”
“그럼, 군에서 배운 특공무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최일권은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특공무술의 식(式)을 시작했다.
9.슬렘 지구 (1)
3일간의 테스트 기간 동안 최일권은 단 한 번도 더미에게 지지 않았다. 또한, 나머지 9명의 테스터들의 분신과 더미가 한꺼번에 덤벼도 칼 한 자루를 쥔 그를 이기지 못했다.
아라는 그를 연구하고 싶어 했다. 물론, 나도 그의 강함의 비결을 알고 싶었다.
최일권. 올해 나이 스물여덟. 어릴 때부터 격투기에 재능이 있었으며, 20살 때 군에 들어가 707특임대로 전출. 23살 때 NIS(국가정보원)로 자리를 옮긴 후 국제적인 특수공작에 참여.
2036년 8월, 일본에 의해 납치된 NIS요원 구출 작전 성공.
2036년 9월, 파기.
……(중략)…….
2039년 1월, 미얀마 국제 테러 조직 소탕 후, 돌연 제대
2039년 3월, 그를 제외한 일가족 교통사고. 양친 사망.
11살 어린 당시 15세의 여동생 최미호는 아무 상처 없었음. 하지만 정밀 검사 도중 뇌종양 발견. 뇌종양 음성 판정.
1차 수술 후, 2040년 4월 재발. 하반신 마비 증상으로 입원. 약물 치료 시작.
1년이 넘는 약물 치료로 약물에 내성이 생김.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하고 있으나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못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