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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21화)
8장. 땡중 서광(2)


두 사람이 탄 자동차는 얼마 후 팔당댐을 지나 남한강 쪽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좌측으로 난 도로를 탔다.
산 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한참 달려 들어갔다.
‘서광사군.’
서광사라는 작은 푯말이 나왔다. 나무판에 페인트로 조잡하게 쓴 푯말이었다.
서광사로 가는 길에 접어든 것은 집을 떠난 지 거의 두 시간 만이었다.
서광사까지 가는 길을 산길로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산길이었다. 차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장혁아, 눈이 제법 싸여 있으니 체인을 채워야겠다.”
“내가 도와줄 거 없어?”
“그냥 차 안에 있어라.”
장호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타이어에 체인을 채웠다.
그리고는 눈 쌓인 산길을 달렸다.
덜컹! 덜컹!
차체가 무척이나 흔들렸지만 장호는 무리 없이 운전을 했다.
그렇게 산길로 접어든지 20여 분 만에 아담한 암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암자는 헌승의 막역지우인 서광이 불도를 닦는 곳이다.
세간에는 그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내리자.”
“그래.”
‘하여간!’
옹벽처럼 둘러 쳐진 화단 밑 공터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장혁은 암자 입구에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서광을 볼 수 있었다.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 날카로운 눈빛을 보면 한마디로 조폭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땡중이 맞아.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스님이라고 생각하겠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장혁의 눈에는 서광이 결코 스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체구도 체구지만 자유분방한 그의 말투가 뒷골목 건달을 보는 느낌 때문이다.
“하하하! 드디어 왔구나. 어서들 와라.”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을 확인한 서광은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맞았다.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걸걸한 목소리에 장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안녕하세요, 스님.”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들어가자.”
서광이 발길을 돌려 휑하니 암자로 들어갔다.
암자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승포 자락이 작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을 맞아 주고 같이 들어가야 정상인데 먼저 휑하니 들어간 것이 추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장혁은 불만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멋대가리 없는 스님이야. 반갑게 맞아 주면 좀 좋아, 분명 추워서 먼저 들어간 걸 거야.”
“후후후,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그러는 것이니 네가 이해해라.”
“아휴!”
참아야지 별수 있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는 장혁을 바라보는 장호의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
‘혁이가 옛날부터 스님을 무척 싫어했었지.’
예전부터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더 그러는 것 같았다.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것을 보면 성격상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려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한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니라 성격상 상성이 좋지 않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혁아, 춥다, 어서 들어가자.”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장혁을 장호가 재촉했다.
암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화로를 가운데 끼고 연신 손을 비비는 서광을 볼 수 있었다.
두 형제가 안으로 들어서자 서광은 비비던 두 손을 얼른 내렸다.
“뭐하냐? 어서 앉아라, 지붕 무너질 일은 없으니까.”
“예, 스님.”
형이 대답을 하며 자리에 앉자 장혁도 말없이 옆에 앉았다.
장호가 인사를 하거나 말거나 서광은 다시금 화로의 곁불을 쬐며 손을 비벼 댔다.
‘에휴! 저렇게 촐싹대는 사람이라니, 형이 법력이 높은 스님이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못 믿을 일이다. 그리고 풍기는 기운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고…….’
예전부터 그랬다.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몇 년 전부터 인연을 이어 오고 있었지만 상성이 맞지 않는지 아무리 봐도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욱 그랬다.
‘아마도 저 기운 때문인 것 같은데…….’
그동안 만나 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감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난 때문인지 서광의 몸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구속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라.”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서광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에게로 다가갔다.
‘사람을 앉으라고 해 놓고는 뭐하는 거지?’
의아한 생각이 든 장혁이 서광을 노려보았다.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없이 지켜보던 장혁은 서광이 불당에 모신 부처님의 한쪽을 들더니 아래로 손을 넣어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꺼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으음, 할아버지의 유진을 복장해 놓은 건가?’
귀중한 법보 같은 것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숨기거나, 후세에 전하기 위해 부처님의 뱃속을 비우고 넣어 놓는다고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진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장혁으로서는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저건가? 할아버지가 남기신 것이…….’
서광이 꺼낸 것은 유지로 감싼 작은 뭉치들이었다.
참화로부터 살아남을 남씨 가문의 일원을 위해 생전의 헌승이 남긴 것들이 분명했다.
자리로 돌아와 앉은 서광은 두 사람 앞에 유지 뭉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 이것들은 너희들 할아버지가 내게 부탁한 것이다. 이제 너희들이 왔으니 살펴봐라.”
“고맙습니다, 스님.”
장호가 합장을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친우가 남긴 것이기는 하지만 난 외인이니 그만 나가 있으마.”
서광은 자신이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암자를 나섰다.
‘같이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예의는 아는구나.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열어 보지 않은 것 같고.’
유지를 묶는 끈은 밀랍으로 봉인이 되어 있었다.
궁금했을 법도 하건만 그동안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장호가 봉인을 뜯고 유지를 풀었다. 그러자 안에서 유지와 비슷하게 싸여 있는 종이 뭉치들이 나왔다.
“으음, 할아버지께서 피난처에서 나온 사람에게 남기신다고 했으니 네가 먼저 봐라.”
종이 뭉치를 장혁에게 내밀었다.
“알았어, 형.”
종이 뭉치들을 받아 든 장혁은 조심스럽게 펼쳤다.
안에서 작은 두루마리 두 개와 헌승의 유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봉투 두 개가 나왔다.
“형! 이건 형 거 같은데.”
남장호라 이름이 써져 있는 편지 봉투를 장혁이 내밀었다.
“하, 할아버지!!”
유려한 필체의 붓글씨로 쓰인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바라보며 장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크으으, 할아버지께서 남에게도 남기셨구나.’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는 자신의 진짜 성씨를 비록 못 쓰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을 언제나 친손자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장호는 편지를 두 손을 꽉 쥐었다.
장혁은 감정을 애써 눌러 참는 장호를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자신과 평생을 같이할 가족이라며 장호를 위해 줄 것을 늘 당부했었다.
결혼을 반대한 탓에 전쟁에 참전해 자신보다 먼저 간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장호를 통해 풀고자 했던 것을 기억하기에 장혁은 따뜻한 눈으로 장호를 바라보았다.
‘형, 형은 언제나 우리 가족이야. 비록 남씨라는 성은 같이 쓰지는 못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신 것은 형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것일 테니 형이 이해해. 후우, 나도 어서 읽어 보자. 내게 무엇을 남기셨는지 알아야 하니까.’
장호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는 것을 보며 장혁도 할아버지가 남긴 봉투를 열고는 편지를 꺼내 읽어 나갔다.
편지 안에는 가문에 대한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무도 놀라운 비밀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장손 장혁은 보아라!
안타깝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면 가문이 횡액을 면치 못했을 것이니 마음이 착잡하구나.
그나마 네가 무사히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천운이 닿은 것이라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구나.
큰일을 겪어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겠지만 너에게 전할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기니 남가의 자손으로서 가문의 유명을 지켜 주었으면 고맙겠구나.
어려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내렸으니 본가에 내려진 사명이 남다름을 너 또한 이미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본가는 대대로 민족의 역사를 지켜 온 가문이다.
음지에 숨어서 민족의 중흥을 위해 힘써 온 것이 바로 본가가 해 온 일이었다.
본가의 명운이 나의 대에서 끝난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또한 정해진 운명인 것을 어찌하랴!
하늘로부터 소명을 받은 역사의 지킴이로서 역할은 나로서 끝이 나겠지만 가문의 또 다른 사명은 이제부터가 네가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문(文)으로 민족의 참된 사(史)를 지켜 내지 못하게 되었기에 이제부터 네가 무(武)로서 지켜 가야 하는 것이다.
서광이 너에게 전한 권(券)에 본가에 전해지는 무(武)의 뜻이 담겨 있으니, 그것을 통해 민족의 역사를 지키라는 사명이 너에게 내려졌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장혁아!
갑작스러운 말이라 당황스럽겠지만 앞으로는 이는 기필코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에게 원하지 않는 운명을 짊어 준다 이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말고 간절한 부탁이니 가문의 사명을 이어 나가 주었으면 하는구나.
장호 또한 서광이 전해 받은 뜻을 이어 너를 도울 테니 앞으로 닥쳐올 대환란을 막아 민족의 정기를 지켜 주기를 바란다.
자세한 이야기는 동봉한 권에 적혀 있으니 읽어 보도록 하고, 할아버지가 너와 장호를 언제나 사랑했음을 알아 주었으면 고맙겠구나.
그리고 장호는 아픔이 많은 아이이니 네가 잘 위해 주거라.

‘어디…….’
자신에게 남겨진 편지를 다 읽은 장혁은 무거운 마음으로 같이 있던 종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안에는 그동안 몰랐던 가문의 비사와 앞으로 장혁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아! 할아버지께서 이런 일을 하고 계셨구나.’
기록된 것에 따르면 배달민족의 역사를 지켜 가는 가문은 두 곳이었다.
최씨 가문은 역사를 기록해 가고, 이를 바탕으로 장혁의 가문인 남씨 일족은 역사를 지켜 가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씨 가문은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모습을 감추었지만, 남씨 가문은 사명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뿌듯하구나.’
그저 평범한 한학자 집안이 아니었다.
두루마리의 초입만 읽었는데도 그동안 가문에서 해 온 일을 보며 가슴이 떨렸다.
자신의 가문은 배달민족의 태동된 이후 역사를 지키는 천명을 수행하고 있었던 은자 가문이었다.
장혁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배달민족을 위해하려는 자들을 찾아내 계책으로 단죄를 내리는 일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느끼는 순간에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문이 참화를 당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문(文)으로서 단죄가 안 된다는 것이니 이제부터 무력을 사용해 단죄를 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그것이 바로 내 운명이고.’
운명을 예감하는 전율을 느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서가 아니더라도 장혁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두루마리에 담겨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으음, 할아버지가 남기신 뜻은 알겠지만, 지금은 누가 진정한 죄인들인지 모르는 이상 쉽지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언급하신 대로 일제시대 때 숨어 버린 최씨 가문의 생존자를 찾아야 한다는 뜻인데…….’
남씨 가문에서 올바른 역사를 지켜 가려면 최씨 가문에서 써 내려간 사서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역사를 좀 먹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민족을 배신한 배덕자들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아야 새롭게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씨 가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할아버지 또한 가문의 참화로 몰아넣은 자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당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찾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에 뿌리박혀 민족의 정신을 갉아먹는 자들을 응징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기록자인 최씨 가문을 찾는 것이 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