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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2화)
1장 삶의 의미를 발견하다(2)


“어디가 잘못되었거나 연기를 하는 것이다. 어찌 사람이 한순간에 변한단 말인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똑바로 앞만 보고 있는 카미엘을 보며 예전의 그를 떠올렸다.
망나니, 주정뱅이.
딱히 더 떠오르는 단어도 없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은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라고 하더군. 또 모르지, 나에게 맞아 죽을 날이 가까워서 그런지도.”
역시 랭턴의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렸다.
“하긴,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도저히 구제할 방법이 없다 여긴 랭턴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오늘도 이렇게 어물쩍 넘어간다 생각하니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랭턴은 고개를 저으며 방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쿵!
둔탁한 소리에 놀란 랭턴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다름 아닌 카미엘이 바닥에 머리를 쿵 찧으며 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 가시는 길 살펴 가시옵소서. 아니, 소자가 뫼시겠습니다.”
일어나려는 카미엘의 이마를 손으로 눌러 그를 앉힌 랭턴은 질렸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 좀 누워서 쉬거라!”
돌아선 랭턴에게 카미엘은 연신 절을 하며 외쳤다.
“아버님, 살펴 가시옵소서!”
발걸음이 멀어지도록 카미엘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들을 뒤로하고 집무실로 향하는 랭턴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미친놈. 이제 와서 뭐가 어째? 잠깐, 저놈이 뭔가 숨기는 것이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따위 행동을 할 리 없다. 일단 저놈을 물고를 내고 알아봐야 할 일이다!”
카미엘을 요절낼 목적으로 몸을 날리던 랭턴은 그만 다리를 부여잡은 헥토르에 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제발, 고정하십시오. 기사들도 보는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의 눈이 다시 불안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러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눈치였다.
주위를 둘러본 랭턴은 몸을 툭툭 털더니 돌아섰다.
“험험, 들어가지.”

사람이 어떤 계기가 생기면 철이 들기 마련이다.
카미엘은 확실히 철이 들긴 했으나 그것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전생에 대한 각성.
그것은 온전한 카미엘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넙죽 절도 하고 진찰도 해드렸다.
점혈도 해드려 졸도할 뻔했던 고비도 넘겼다.
결코 카미엘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생의 기억이 각성된 지금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해야 옳은 것인가?
카미엘은 아직도 아까 맞은 머리가 윙윙거리는지 옆통수를 부여잡았다.
“참, 아버님의 성격이 아주 불같구먼. 그러게 삶을 조금 더 모범적으로 살아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닌가?”
카미엘의 인격은 환생을 거치면서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에 전생의 인격이 씌워진다면 아마 사독천일 것이다.
그는 전생을 되돌아보았다.
교주의 자리를 위해서 무조건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렇다 보니 사람답게 살아 볼 기회가 없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배운 의술을 사람 살리는 데 사용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아니면 이렇게 된 마당에 집안에 내려오는 검법을 익혀 정계로 진출하여 효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허리와 턱이 쑤셔서 제대로 된 운신을 하지 못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고 몸을 회복하여 랭턴에게 약초나 캐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카미엘은 방문을 열기 위해 발을 내밀었다.
아직 욱신거리는 허리가 신경 쓰인다.
그러던 그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운기조식을 할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인가? 젊은 몸을 가져도 정신은 젊어지지 않는 것인가?”
가부좌를 트는 카미엘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기의 흐름에 집중한다.
아랫배 부근에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진다.
‘단전이 있다!’
의외의 일이다.
선천적으로 단전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람을 해부해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단전이 아닌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랜만에 부드러운 단전의 느낌에 기분이 좋은지 카미엘은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무공을 수련할 수 있겠어.’
그렇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천마신공은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폭주.
사람의 천성과는 전혀 무관한 폭주라는 개념이 있다.
일단 마공을 접하게 되면 어느 정도 잔인한 손속을 갖게 된다.
그러다 점점 피를 갈구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잘못하면 이성을 놓아버린 상태로 백치가 되는 경우도 있고 주화입마로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났다.
이미 폭주를 경험한 카미엘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이성을 잃어서 사람을 도륙 내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한다.
일이 그렇게 틀어진다면 강호의 공적이 되었던 것보다 더 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초식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상처 치료에 필요한 운기조식이면 충분하다.
한 바퀴 기를 순환시키고 나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몸이 괜찮아졌으니 산과 들로 약초를 캐러 갈 시간이다.
풀이 자라고 동식물이 번성하는 땅이라면 분명 약초가 자랄 것이다.
카미엘은 옷을 챙겨 입고 이불보로 봇짐을 만들었다.
영락없는 보부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워낙에 기상천외한 짓을 하고 다녔던 카미엘이라서 이젠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원래 미친놈이 조금 더 미친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나선 카미엘은 약초 채취에 필요한 장비와 지도를 챙기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영주의 집무실로 들어온 랭턴은 헥토르와 예산에 관한 안건으로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일개 자작령보다 못한 재정으로 거대한 카이사르를 꾸려나가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몇 대째 가난을 겪고 있는지 그 시간을 수기로 기록하려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백수십 년을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오면서 이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공작의 칭호 하나뿐이었다.
젊어서부터 부지런하게 영지를 돌보아온 랭턴 덕분에 그마나 이 정도 유지되는 것이었다.
“올해는 농사도 흉년이라 이 예산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단장과 재정을 함께 담당하는 헥토르는 자신이 만든 장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나무껍질을 벗겨 먹게 생겼군. 다른 교역로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탐사를 해 봐야겠어. 아무리 높은 산맥이라도 뭔가 방도가 있을 터.”
헥토르는 랭턴의 생각을 메모하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탐사대를 꾸려 내일이나 모레쯤 출발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요즘은 어업도 못하게 설쳐대는 해적들이 더 문제로군. 어째 해가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저렇게 날뛰는 것인지.”
카이사르의 가장 큰 문제는 본래의 생업이었던 어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새는 마을 가까이 들어오는 해적들 때문에 어부를 포기하는 주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팔란 섬의 통치가 원활했던 때는 사정이 나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불어났단 말이야.”
이윽고 랭턴은 식은땀이 나는지 불편함을 나타내었다.
“머리가 아프군. 잠깐 쉬었다 하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랭턴을 보며 헥토르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렇게 하시지요. 소장은 가서 차라도 내오라 하겠습니다.”
“그래 주게.”
집무실을 나와 시녀들을 부르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기던 헥토르는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카미엘을 보았다.
“공자님?”
편안한 복장으로 뒤에는 이불보까지 매달고 가는 것을 보니 아마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리라.
헥토르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뭘 잘못 드셨나?”

도서관으로 들어온 카미엘은 지리에 관련된 서적들을 찾았다.
책이라면 숙면에 필요한 수면제라 생각했던 예전의 카미엘이었기에 지리나 역사에 대하여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정말 주위에 뭐가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본적이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까지 책과 담을 쌓고 산단 말인가?”
독천 역시 평소 독서를 즐겨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까지 담쌓고 살지는 않았다.
웬만해서는 출입하지도 않았던 곳이라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사서가 따로 있지 않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하는 수 없다. 한 권 한 권 표지라도 훑어보는 수밖에.
어차피 해가 지려면 시간도 많이 남았고 어떤 책이 있는지도 궁금했던 그는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제왕 학, 경제론, 카이사르 지리. 아, 여기 있군.”
주황색 표지로 깔끔한 외관을 갖춘 지형 설명서였다.
그나마 글이나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런 것도 다 있군.”
지형 설명서의 옆에는 뭔가 대단히 오래된 책이 꽂혀 있었다.
“뭐야, 저건?”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 뭐라 적힌 것인지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물건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무심코 책을 꺼낸 카미엘의 눈은 터질듯이 확대되었다.
‘한자!’
행여 누가 들을까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 하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책을 꺼내어 읽어 내려갔다.
책에 나와 있는 첫 번째 글귀는 이러했다.
[천마신공(天魔神工)]
‘천마신공? 이럴 수가 있나!’
번역본까지 떡하니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보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음이 분명했다.
모르는 이가 보기에 한자로 기술되어 있는 천마신공은 그저 고서적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천마신공을 배우고 성취를 이루었던 카미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만한 비급이 이런 곳에서 잠자고 있었다니!
흥분되는 마음으로 일단 비급을 챙겼다.
어쩌면 불완전한 비급의 일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였다.
카미엘은 품안에 잘 갈무리한 비급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중략. 천마신공의 오의는 #$%^ 이다. %$^#&*&&^#$를 조합하면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으며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초식을 전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 이며 이 #$%$%^는 %^^%&이며 %#^%&이다. ……중략.]
한참이나 책에 빠져들었던 카미엘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날판이었다.
“무슨 책이 이따위란 말인가?”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전부다 지워지거나 상형문자로 되어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번역본 역시 상태는 같았다.
이것은 분명 완전한 천마신공이 분명하다.
천천히 읽어본 카미엘은 자신이 왜 폭주를 하였고 피를 갈구하였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중원에서 전수받았던 천마신공은 중간이 잘려나간 비급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교주의 제자들은 모두 반쪽짜리 천마신공을 가지고 연마를 했던 셈이다.
“하필 정작 중요한 부분만 이따위란 말인가!”
만약 이 상태라면 지금 찾아낸 기연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천천히 번역본과 대조하던 카미엘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온전한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마공이 세상에 나와 질서를 어지럽힐까 두려워 원본은 팔란이라 하는 커다란 섬 한가운데……]
“뭣이!”
지금은 해적들이 창궐하여 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 되어버린 팔란섬은 가끔 해적들을 피한 배들이 소식을 알려주는 정도였다.
영지의 면적의 일할을 차지하는 팔란섬은 그 규모로 보면 꽤 넓은 편이었지만 워낙에 거리가 멀어서 원활한 통치가 힘든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해적들이 판을 쳐서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곳에 완전한 비급이 숨겨져 있다!
만약 반쪽짜리 무공이 아니라 완성된 천마신공을 몸에 익힌다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카미엘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곳까지 간다는 말인가?”
가깝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초상비로 물위를 뛰어간다 해도 아마 지쳐서 물에 빠져죽을 정도의 거리였다.
“역시 배로 움직여야 하는데……….”
아마 그곳으로 가는 배는 해적선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천마삼경의 원본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다!
어떻게든 무공을 습득하지 않으면 오장육부가 터져 죽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해적 놈들!”
쾅!
테이블을 세차게 내려친 카미엘은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네놈들을 도륙내고 천마신공을 손에 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