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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4화)
2장 흡수할 계획을 세우다(2)
이른 아침.
카이사르의 아침은 적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했다.
그나마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어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었다.
원래는 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여관과 상점들이 분주하게 장사를 하며 활기를 보여야 할 터였다.
하지만 문을 닫아버린 상점들은 간판만 달고 있을 뿐이었다.
상점가의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홍등가와 빈민촌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져버린 홍등가는 더 이상 예전의 시끌벅적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재화가 돌지 않아 매춘마저도 어려워진 실정이라 창녀들도 삼삼오오 이곳을 떠나는 처지였다.
그런 홍등가의 가장 구석자리에 위치한 선술집.
‘불꽃’이라고 쓰여진 간판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바람이 불어 삐거덕거리는 간판을 본 사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비가 올 것 같군.”
아무래도 오늘은 폭우가 쏟아질 조짐이 보인다. 하늘을 가린 구름과 축축한 바람은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는 빨간색으로 덧칠한 오동나무 출입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내부는 약간의 알코올 냄새가 섞여 이곳이 빈민가의 선술집임을 확신하게 했다.
구석에 마련된 바(bar)에서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촛불을 들고 나타났다.
“촛불이 습기를 잡는 데 좋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헛소리인 것 같군요.”
겨우 촛불 하나로 이렇게 눅눅한 실내를 건조시킨다니, 사내는 후드를 벗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겨우 작은 촛불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래, 꼬맹이는 잘 지내고 있던가?”
그는 아무렇게나 놓아져 있는 의자를 빼어 앉았다.
그러자 여인은 천천히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글쎄요. 제 입장으로는 그게 잘 지내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사내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고 끝내 여인은 남자의 얼굴을 만지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농익은 미소를 지은 여인은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사내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 때문에 온 것이다. 확실한가?”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내일 밤 경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경매?”
사내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여 여인을 자신의 무릎 위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기분 좋게 그의 무릎 위에 올라가 앉으며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요, 경매. 카이사르의 암시장에서 오랜만에 진귀한 물건이 나온다고 골동품에 미친 귀족들이 꽤 많이 참석한다고 해요.”
쪽!
입을 맞춘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것은 믿을 만한 자가 입수한 소식이라 신빙성이 있습니다.”
쪽!
다시 그와 눈을 맞추며 키스를 한 여인은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것이 우리가 찾는 물건이란 말인가?”
쪽!
얼굴을 들어 그의 목에 입을 맞춘 여인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한 자금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확실한 물건이라……. 그렇다면 출처를 알아내야 한다.”
몸을 돌려 그와 마주앉은 여인은 양 다리로 그의 허리를 꽉 조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꼬옥 끌어안고 말했다.
“이미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마침내 그의 손이 여인의 얼굴을 만지자 허리를 감은 다리가 살짝 풀린다.
“아…….”
후두두둑.
밖에는 마침내 우중충한 하늘이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에 농부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아이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단비를 만끽했다.
손을 내려 그녀의 허리와 둔부를 자극하자, 여인은 더욱 거친 숨을 내뱉었다.
“실수 없이 진행하라.”
여인은 대답 대신 그의 입술을 탐닉하였다.
오랜만에 내린 비는 거리의 이곳저곳에 물골을 만들었다.
다그닥 다그닥!
검은색 우비를 입은 사내가 거칠게 말을 달렸다.
여기저기에 작은 웅덩이가 생겨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물이 튀었다.
우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흠뻑 젖은 사내는 말머리를 세워 홍등가로 향했다.
늦은 밤, 홍등가는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하여 활발해 보였다.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는 창녀들이 남아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마를 한 사내는 말고삐를 잡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머, 말 타는 모습이 딱 내 스타일인데? 놀다 가요!”
“나도 말 잘 타는데……. 특히 침대에서…….”
노골적인 스킨십으로 사내의 마음을 녹이려는 여인들이 그의 팔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갔다.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좋아하던 여인들은 이내 실망한 표정을 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좁고 길게 연결된 뒷골목으로 직진하던 사내는 마침내 허름한 여관을 발견하였다.
‘요정(elf).’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걸어오는 인영을 발견한 사내는 그에게 우산을 씌우며 말했다.
“테미안 님?”
테미안이라 불린 남자는 말없이 품속에서 직사각형의 종이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종이를 받은 사내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를 인도하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말고삐를 넘긴 테미안이 입구를 향해 걸어가자 그는 말을 몰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구에는 묘령의 여인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의 우비를 받아주었다.
“지하로 내려가시면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안내를 받은 그는 묵묵히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낡아 있지만 오래된 건물이 내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투명한 유리로 된 통로 밖에서 나체의 여인들에 끈적끈적한 춤사위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유리통 안의 여인들은 그에게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내며 유혹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떤 남자라도 한 번쯤은 걸음을 멈추고 감상할 만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무신경하게 지나쳤다.
지하에 마련된 장소로 들어간 그의 눈에는 이채로운 광경이 들어왔다.
극락!
여자와 술이 넘쳐나는 곳.
오로지 대륙의 상위 0.1%만이 출입 가능한 경매장이다.
나라와 국적은 상관없다.
출신과 성분도 전혀 상관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한 이곳은 오직 돈만이 명예였다.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없는 미녀들은 중요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로 술과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들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아직도 무표정한 테미안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한 여인을 잡아 세웠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다.”
그의 말을 들은 여인은 작은 방으로 안내하였다.
간단한 탈의와 목욕이 가능해 보이는 방으로 들어온 여인은 손수 그의 옷을 벗기며 말했다.
“목욕을 하시겠습니까?”
“필요 없다.”
잘 건조된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던 그녀는 테미안의 손짓에 밖으로 나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테미안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나왔다.
크고 날카로운 눈매.
오뚝한 콧날과 약간 도톰한 입술.
무엇보다 갸름하지만 선이 살아 있는 얼굴형 때문에 작은 얼굴임에도 인상이 강해보였다.
꽃미남이라기보다는 쾌남에 가까운 그의 외모는 음식과 술을 운반하던 아름다운 미녀들조차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다.
적당히 몸에 달라붙어 편안한 옷은 그의 탄탄한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주변 남자들로 하여금 경쟁심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았다.
‘테미안.’
자리에 몸을 기댄 그는 손을 들어 미녀들을 불렀다.
이윽고 아름다운 여인이 다가와 그의 귀에 속삭였다.
“필요하신 것이라도?”
시원한 청 발을 쓸어 넘긴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위스키 한 병. 가능하면 독한 걸로.”
그 누구라도 한 번쯤 야한 망상이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귓속말을 하는데도 냉랭한 태도로 일관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여인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무대에 불이 켜지고 아름다운 미녀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대기하였다.
경매가 시작되는 것이다.
경매의 시작을 본 이들은 저마다 경매에 사용되는 숫자판을 점검하였다.
오늘 나오는 물건은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기하학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기에 경매에 나온 사람들의 눈은 긴장으로 물들었다.
마침내 검은색 나비넥타이와 하이 햇(high hat)을 쓴 중년남자가 정갈하게 정돈된 콧수염을 뽐내며 등장했다.
모자를 벗어 관중에게 인사한 중년인은 박수갈채 속에 자기소개를 하였다.
“오늘 경매의 진행을 맞은 루피에르입니다. 오늘도 골든 클래스 옥션에 참가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마침 술과 간단한 안주를 들고 찾아온 여인의 기척에 손가락으로 놓고 가라는 표시를 한 테미안은 독주를 통째로 개봉하여 한 모금 맛을 보았다.
향기로운 첫 맛과는 다르게 목구멍부터 혓바닥은 물론이고 코까지 얼얼하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좋군.”
깊은 술맛에 감탄사를 내뱉은 그는 다시 무대를 주시하였다.
“사설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고객님들에게 득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경매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물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미녀가 들고 나온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패망한 국가 주피타르 제국의 명장 한트의 검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역시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물건이 나왔다. 시대를 풍미한 장수의 검.
검의 손잡이에는 붉은색 루비가 박혀 있는데, 그 안에는 주피타르의 상징인 블랙 드레곤이 새겨져 있었다.
보물급의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지금부터 입찰을 시작하겠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10만 골드입니다.”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매에 들어갔다.
저마다 번호판을 들고 가격을 말했다.
“10만.”
“51번, 10만 나왔습니다.”
“15만.”
“59번, 15만 나왔습니다.”
이곳의 물건은 낙찰되는 동시에 보물을 얻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항상 과열양상을 보였다.
시작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영지의 1년 치 예산에 맞먹는 금액이 나왔고 경매는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자, 850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천만!”
“아까 그 분이시군요. 56번, 1000만! 더 없으십니까? 주피타르의 명장 한트가 사용하던 진검입니다. 더 없으십니까?”
눈치를 살피던 사회자는 오른 손을 들었다.
“셋을 세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낙찰! 한트의 검은 56번 손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지며 낙찰에 성공한 남자는 흥분을 감추기 못하는 듯 만세를 불렀다.
기뻐하는 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 진행자는 계속하여 경매를 이어갔다.
“축하합니다. 낙찰된 물품은 경매가 끝나면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오늘의 메인이벤트라 할 수 있는 물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손짓과 함께 황금빛 상자가 등장했다.
상자를 들고 나온 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 뚜껑을 개봉하였다.
메인이벤트를 시작하자 객석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오늘의 이 물건은 칼리어스의 제 1대 검공, 카이사르 공작의 검법서입니다. 감정결과 진품으로 판정되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오랫동안 암호화되어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합니다! 경매 시작가는 100만 골드입니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번호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100만!”
“81번, 100만!”
“200만!”
“102번, 200만!”
“300만!”
“99번, 300만!”
순식간에 금액이 뛰어오르는 경매현장의 열기는 아까의 분위기와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과열되었다.
독주를 한 모금 들이킨 테미안은 번호판을 들며 말했다.
“1000만!”
순간 정적이 흐른다.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유지하며 슬쩍 미소를 흘렸다.
“오! 젊으신 분이 주머니가 상당히 무거우신가 봅니다. 33번, 1000만! 더 없으십니까?”
여유로운 33번의 사내는 자리를 정돈하고 객석에 인사를 할 준비를 하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는 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1500만!”
“오오!”
객석이 술렁이며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테미안과는 대조적으로 부드러운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은 잘못 보면 여인으로 오인할 정로도 빼어난 외모를 자랑했다.
“오늘따라 젊으신 갑부 분들이 많이 참석하셨군요. 93번, 1500만! 더 없으십니까?”
자작령의 2년 치 예산이 넘어가는 액수가 나왔기에 관중은 낙찰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듯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테미안의 눈이 심하게 흔들린다.
이윽고 냉정을 되찾은 그는 번호판을 들고 외쳤다.
“2000만!”
“33번, 2000만 나왔습니다! 오늘 정말 화끈하게 쓰시는 군요! 다른 낙찰자 분 있으십니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본 테미안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고민을 마친 듯 93번 청년은 조심스럽게 번호판을 들었다.
“3000만!”
웅성웅성
“3000만! 농담은 아니시겠죠? 93번, 3000만 나왔습니다!”
사회자와 입찰자들은 조심스럽게 33번 청년에게 눈을 돌렸다.
“4000만!”
93번 청년의 동공이 과도하게 확장된다.
“33번, 4000만! 4000만이 나왔습니다. 93번 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순간 정적이 흐른다.
꿀꺽!
냉정함을 유지하던 테미안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4000만 골드가 걸린 경매에서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경매장의 이목이 93번 청년의 얼굴에 쏠리기 시작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방황하던 손은 이내 멈추어 술병을 집는다.
“입찰을 포기하시는 것입니까?”
93번 청년은 인상을 확 구기며 병째로 술을 한 모금 시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합니다! 33번 손님이 낙찰되었습니다!”
짝짝짝!
테미안은 조용히 일어나 고개를 숙여 관중에게 감사를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