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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1화)
5장 토벌의 시작(2)
첫 출정.
카미엘은 자신 앞에 도열한 병사들과 기사단을 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길고 길었던 어둠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 시작은 나와 그대들의 손으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와아아아!
병사들의 사기가 상당히 높았다.
차기 검공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진데다 생계를 위한 토벌이기 때문에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말라. 그러나 투항하는 자들은 살려두어 인부로 사용한다.”
“예!”
대답소리가 일제히 들리는 것을 보니 상당히 훈련이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발하라!”
카미엘을 선두로 행군을 시작하였고 후미에는 물소를 매단 소달구지가 따라왔다.
오랜만에 먼 길을 가는 목동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카미엘의 오른쪽에서 말을 몰던 헥토르는 영주의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자님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소신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일은 내가 아니라 아버님이 지시하신 것일세.”
“아!”
“아버님이 말씀하셨네. 약탈로 흥한 자, 약탈로 망한다!”
루키야 산맥을 호령하는 산채의 두령.
우는 아기도 울음을 멈추게 한다는 공포의 대상.
잔악하기가 지옥의 악귀보다 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의 이름은 켈로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탄탄한 몸은 여인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생사람을 잡아다 살가죽을 벗겨내어 죽이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선망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양 옆으로 미녀를 끼고 양질의 모피더미에서 향락을 즐기고 있던 켈로스는 부하의 보고에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두령! 큰일입니다. 망나니로 알려졌던 카미엘이 군사를 이끌고 산채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보며 켈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들을 탐닉할 뿐이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쾌락을 탐하는 모습은 적나라하게 부하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시선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아!”
“역시 두령님의 숨결은 우리를 흥분시킨다니까!”
이제 서른을 넘긴 젊은 두령은 산채의 모든 여인의 우상이었고, 하루에 한 번씩 여자가 바뀌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자신을 뛰어넘을 자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망해가는 카이사르에서 자신을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연합군이 이득도 되지 않는 자신을 척살할 것인가?
그야말로 천적이 없는 곳에서 유유히 사냥을 즐기는 한 마리 맹수가 된 느낌이었다.
“네놈도 이곳으로 올 테냐? 이 두 년들이 때를 벗겨 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느냐?”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유혹을 던지는 그녀들을 애써 외면한 사내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몰려오는 군사의 수만 1000여명이 넘는다 합니다. 그것도 중무장을 했다고 합니다. 작전을 세워서 그들을 괴멸시키든 도망을 가든 해야 합니다.”
우물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개구리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겪어본 적 없는 일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깟 놈들 천 명이 아니라 만 명이 몰려와도 절대 상관없다. 내가 여기 있는데 놈들이 무슨 수로 진격한단 말인가? 겁쟁이 랭턴의 군대이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선 놈은 망나니 카미엘이다.”
켈로스가 거느린 부하의 수는 2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실제 전투가 시작되어 유효 타격을 할 수 있는 병력이 1000명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몇 백 년을 이어온 산채다.
설마하니 그들이 어찌 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켈로스가 유유자적하게 여인들의 키스 세례를 받고 있을 때 문이 세차게 열리며 한 소년이 뛰어 들어왔다.
쾅!
“두령님! 큰일입니다! 지금 산채가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투항하지 않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고 있습니다!”
“뭣이!”
미처 옷을 갖춰 입지도 못한 켈로스는 밖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열을 갖춘 군사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막아내고 있었다.
치밀한 전투태세는 산적들의 공격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이럴 수가!”
멀리서 화살로 지원을 하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힘들었고 접근한다고 해도 겹겹이 방패로 진을 이루고 있어 공격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말을 탄 기사들은 도망가는 이들을 잡아 척살하고 있었고 투항하는 이들을 줄로 묶어서 진영의 후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죽이지 않는다!”
남자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자 아이들과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두 손을 높게 들며 투항 의사를 밝혔다.
은빛 갑주를 입은 청년은 멀리서 켈로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켈로스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내 갑주와 검을 가져오라! 놈에게 정식으로 도전하겠다.”
우두머리를 처단하면 사기는 꺾이게 되어 있다.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켈로스에게 이것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산채에는 소문이 늦게 당도하는 듯했다. 그로 인하여 켈로스는 승리를 확신하였다.
“네 놈이 카미엘이구나! 쓸데없는 살인은 그만하고 나와 정식으로 겨루자!”
호랑이 가죽으로 장식된 갑주와 투구를 쓴 켈로스가 방패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오자 기사들과 병사들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미친놈이 아닌가?”
“공자님과 검을 섞는다네? 하하하!”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야?”
카미엘은 조용히 하마하여 묵 빛이 나는 검집을 등에 매며 말했다.
“한 쪽 발로 끝내주마. 덤벼라.”
더 이상 굴욕도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켈로스는 붉은 보석이 박힌 검을 빼어들고 돌진했다.
“으아아아! 죽인다! 이놈!”
그래도 다른 산적과는 다르게 자세가 잡혀 있는 것이 괜히 두령이라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달려오는 그를 향해 하품을 해보인 카미엘은 허리를 비틀어 몸을 풀었다.
“하암! 저번부터 말도 안 되는 놈들이 도전을 해 온다니까? 다들 몇 초 안에 끝나는지 보라. 만약 1분을 넘기면 모두에게 술을 돌리겠다.”
와아아아!
전투가 멈춰진 전장을 홀로 질주하는 켈로스를 보는 병사들은 어쩐지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놈들! 오늘이 네놈들의 제삿날이다!”
하늘을 무려 4미터나 날아오른 켈로스는 수직으로 카미엘의 머리를 노리며 들어왔다.
사람은 보통 점프를 해도 3미터나 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도약이라 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속으로 감탄을 하였지만 이어서 일어난 상황에 탄성을 질렀다.
퍽!
함께 점프를 한 카미엘은 공중에서 돌려차기를 하여 켈로스의 머리를 정확하게 가격하였고 그는 땅으로 고꾸라지며 기절을 하고 말았다.
“뭐야? 겨우 한 대 맞았다고 기절을 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싱겁지 않은가? 그냥 한 손가락으로 할 걸 그랬어.”
“푸하하하하!”
“저러고도 두령이라고 다닌 거야? 기가 막히는 구나! 하하하!”
카미엘을 시작으로 병사들과 기사들은 켈로스를 조롱하였고 그것을 들은 산적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에 쑤셔 박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켈로스를 보며 산적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챙!
투항의사를 밝히는 이들을 향해 카미엘은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적’자 들어가는 놈들을 가장 싫어한다. 산적, 도적, 비적, 해적 등.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살아 있을 필요가 없지만 특별히 카이사르 공작의 선처로 살아난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라!”
줄줄이 포박 당한 산적들이 마을로 출발하였고 카미엘은 남아 있는 병사들과 목동들에게 말했다.
“이곳에 쓸 만한 물건은 모조리 챙겨라! 식량과 자재, 가죽 등 돈이 된다면 모조리 챙겨라! 가능하면 집으로 쓰던 것들도 모조리 해체하여 가져간다. 자재를 제외한 것들은 전리품으로 그대들의 주머니에 넣어라!”
와아아아!
우마차에 가득실린 자재들은 나무를 비롯하여 선박을 건조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제 켈로스의 산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집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목적을 이룬 카미엘은 산채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재화를 전리품으로 나누었고 병사들과 기사단의 사기는 더욱 증진되어 하늘을 찔렀다.
일부러 말투를 거칠게 하는 등 카미엘은 병사들과 최대한 동화되려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뢰는 더욱 두터워져 갔다.
켈로스의 산채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토벌에 들어간 카이사르 군은 여세를 몰아서 10군데가 넘는 산채를 공중분해시켰고 남아 있는 산적들은 연합을 하여 대규모 조직을 형성하기 이른다.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산적들은 기세등등하게 함성을 지르며 카이사르 군을 농락하고 있었다.
“카이사르의 고자들아! 어서 덤벼라! 겁먹어서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는 것이냐?”
무려 5천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인 산적들은 능선을 따라서 위치하여 눈앞의 고지를 탈환하지 못하면 카미엘에게 승산이 없어 보였다.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전략상 가장 어려운 작전에 해당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방어를 하는 병사들은 위치상 유리함을 점하고 있어 올라오는 적들을 베어내기만 하면 된다.
고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산적들은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이제 겨우 2천명이 모인 카이사르 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산적들을 보며 칼 같이 정렬해 있었다.
“이제 나무는 충분하다. 선박을 건조하기 충분한 자재가 모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비는 필요 없다.”
카미엘은 병사들의 뒤로 보이는 수많은 투석기와 발리스타를 보았다.
그동안 해왔던 전투방식과는 다르게 이제부터는 남자다운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삼일이고 일주일이고 계속하여 퍼부어라! 폭격을 시작하라!”
불을 붙인 바위덩이들과 기름이 들어 있는 대형 항아리를 투석기에 장착하여 무차별 폭격을 시작하였다.
“쏴라!”
쾅!
슈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기름통과 불덩이 들은 고지 이곳저곳 퍼져 있는 산적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정확도는 필요 없다.
어차피 산에 불을 지르면 그만이었다.
“으, 으악!”
“사람 살려!”
고통스러운 비명이 메아리쳤지만 카미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만이다.
가을산은 건조해서 불이 훨씬 더 잘 붙는다. 아마 지금쯤 낙엽에 불이 붙어서 거의 산불을 방불케 할 것이다.
펑펑!
카이사르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이곳만 넘으면 산적들을 송두리째 없앨 수 있다. 공격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크아아악!”
“악마 같은 놈들!”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폭격에 일부 산적들은 산을 내려왔다.
산불이 나는 경우 반은 질식사를 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살기 위해 산을 내려온 산적들은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쏴라!”
핑핑핑!
그들에게는 어김없이 화살 세례가 떨어졌다.
퍽퍽퍽!
“으악! 사, 사람 살려!”
“살려줘!”
이제 산적들에게 선택권이란 없어 보였다.
죽던지 항복을 해서 목숨을 연명하던지.
초극강수를 둔 카미엘은 더욱더 병사들을 독려했다.
“저곳을 넘어 진격하면 저 놈들의 창고가 나온다! 저곳만 넘으면 제군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져 있을 것이다!”
와아아아아!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돌렸으면 산적 토벌 두어 번 참가하면 가난을 면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공격에 열을 올리는 병사들은 힘든 줄도 모르고 돌을 나르고 기름을 끓였다.
“밤낮으로 퍼부어라! 끊임없이 공격하라!”
카미엘은 그대로 밤이 깊도록 공격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