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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2화)
5장 토벌의 시작(3)


다음날.
충분한 휴식을 취한 카이사르 군은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던 중 아직도 연기가 올라오는 고지에서 백기를 든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췌한 몰골의 산적들은 협상을 원하는 듯 카미엘에게 대화를 청했다.
“카이사르 군의 수장은 나와서 협상 테이블에 앉으시오!”
협상이란 말에 카미엘의 군대는 폭소하였다.
“푸하하하! 겨우 산적이 협상을 바란다니!”
“정신이 나갔구먼! 하하하!”
병사들의 조롱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산적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의 갈기를 손질하며 뒤에서 지켜보던 카미엘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만약 네 놈들이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것이 싫다면 오로지 죽음뿐이다.”
“아니! 세상에 협상을 하러 온 사람에게 이 무슨 짓인가? 기사라는 사람이 기사도도 없는 것 인가?”
“기사도? 그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나 사용하는 말이다. 너 같은 쓰레기는 그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버러지와 협상을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푸하하하!”
저들은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의 절차 따위는 필요 없다.
그의 거친 언사에 카이사르 군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산적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였다.
“계속 저항을 하고 싶다면 하라. 애초에 병력의 차이가 두 배가 넘었는데 뭘 고민하는가? 고지를 점령한데다 병력도 많은데 왜 고전을 면치 못하는가? 하긴, 도적놈들이 뭘 알 리가 없지만.”
“하하하하!
명백한 도발이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자신들은 카미엘의 군사들과 검을 섞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자존심이 상한 두령 율리안은 조용히 돌아섰다.
“두령!”
“어차피 협상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놈들이다. 게다가 산적이 협상하는 것 보았는가? 돌아간다!”
머뭇거리던 부하들은 결국 두령을 따라 등을 보였다.
피융!
“커억!”
“두령!”
애초에 협상할 마음이 없었던 카미엘은 등을 보인 산적의 두령에 화살을 꽂아버렸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화살은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내밀었다.
심장을 꿰뚫린 몸은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율리안을 앉고 오열하던 산적들은 치를 떨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이따위 치사한 짓을 한단 말인가!”
피융!
“컥!”
“상당히 시끄러운 놈이군. 그러게 애초에 산적 질 따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 없지 않느냐?”
정확히 목을 관통당한 율리안의 심복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피를 뿜어내었다.
이윽고 서서히 눈이 뒤집히며 흰자위만 보였다.
숨을 거둔 것이다.
“네 놈들에게 적용될 전쟁 법 따위는 없다. 손을 들고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산적의 협상단은 머리를 잃어버렸고 끝내는 손을 들어 투항의사를 밝혔다.
협상도 전쟁의 한 단락이며 백기를 걸고 나온 사람은 죽이지 않는 것이 룰이다.
하지만 토벌은 다르다.
법을 지키지 않은 무리들을 벌하는 일종의 법적 제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도적질을 한 자.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모두 포박하라!”
두령과 부 두령이 죽은 산적들은 하나둘 씩 산을 내려와 투항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악명 높았던 산적들이 토벌되는 순간이었다.

산적 때를 토벌하고 금의환향한 카미엘은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개선하였다.
“와아아! 카미엘 공자님 만세!”
“멋있어요, 공자님!”
“당신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오랜 숙원을 이룬 주민들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자금력이 부족하여 토벌은 꿈도 꾸지 못했던 산적을 뿌리째 씨를 말려 버린 것이다.
카미엘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 그 위세를 떨쳤다.
카이사르의 광장에 도착한 카미엘은 그를 마중 나온 랭턴을 확인하고 재빨리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다.
“아버님의 은공으로 도적 때를 토벌하고 귀환하였습니다.”
랭턴은 카미엘을 힘껏 끌어안으며 기뻐하였다.
“하하! 네가 카이사르의 영웅이다!”
와아아아!
시민들은 함께 환호하며 카미엘의 승리를 축하하였다.

카이사르의 홍등가는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주머니가 두둑하게 돈을 번 토벌대가 복귀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의 스트레스는 혼자의 능력으로 풀기 힘든 것이다. 남자의 스트레스는 오직 여자만이 풀어줄 수 있다.
전장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하룻밤 향락으로 풀어버리려는 이들로 골목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홍등가의 골목 끝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불꽃’은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은 듯 인기척이 없었다.
이곳이 아니라도 술집과 사창가에 자리는 많다.
문을 한번 열어본 이들은 실망한 듯 돌아섰지만 이내 아름다운 여인들의 유혹에 기분이 좋아져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왔지만 실내에는 오로지 작은 촛불 하나가 놓아져 있을 뿐이었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남녀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 카미엘이라는 꼬맹이가 잘 지내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된 것인가?”
남자는 독주를 한 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었고 여인은 빈 잔을 채웠다.
쾅!
“어찌하여 말이 없는 것 이냐? 나에게 절대 두 번이란 없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여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독주를 한 번에 마신 남자는 이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병을 통째로 들었다.
그는 병을 한 번에 비워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분명히 어찌 된 것인지 물었다!”
퍽!
병에 머리를 얻어맞은 여인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잘못하면 머리가 함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의 몸이 떨려왔다.
“설마하니 그 놈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 멀리 병을 집어던진 테미안은 출구의 문고리를 잡았다.
“내가 아는 마리아는 오늘 머리를 얻어맞아 죽었다.”
문을 연 그는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다급해진 그녀는 그의 바지자락을 잡으며 애원했다.
“아, 안 돼! 그러지 말아요! 제발!”
그의 발에 매달려 얼굴을 비비는 그녀의 얼굴에는 피와 눈물이 뒤섞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그녀를 억지로 때어낸 테미안은 몸을 숙여 눈을 마주하였다.
커다란 눈망울은 두려움으로 물들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서서히 떨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턱을 손으로 집은 테미안은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죽이진 않겠다. 그래도 몸을 섞은 정이 있는 년이라 온전히 살려 놓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
“테미안!”
뜨거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해도 테미안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손을 자르라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다리를 달라 하시면 드리지요. 제발,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요. 당신이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어요. 아! 그렇지. 카미엘을 죽이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그녀에게 테미안은 절대적인 존재인 듯했다.
그저 실연의 감정을 넘어서 공포가 서린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말없이 등을 보이던 테미안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카미엘을 죽인다고 하였나?”
“당신이 시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일게요. 정말이에요!”
테미안은 그제야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조금은 누그러진 눈길로 그녀를 바라본 테미안은 그녀를 안아들고 술집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상의를 찢어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였다.
그의 품에 안긴 마리아는 무서운 악력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아, 테미안! 제발, 다시는 저를 버린다고 하지 말아요!”
테미안은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상을 주지 않던가? 앞으로 말을 잘 듣는 다 약속하면 용서하고 작은 상을 주겠어.”
“정말, 정말이죠? 다시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테미안은 조용히 그녀의 입술과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거칠어지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자 테미안은 이내 입술을 떼었다.
“다시 내가 실망하면 그땐 정말…….”
그녀는 몸을 돌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폐부 깊숙이 그의 향기를 저장하며 말했다.
“다시는,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테미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읊조렸다.
“조금 있으면 우리의 세상이 온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세상이 온 다…….”


6장 망망대해를 향하여(1)


예전의 광영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카이사르의 중앙 광장.
커다란 게시판 앞에는 마을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자자, 줄을 서시오!”
게시판에 붙은 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문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군 모집.
18세 이상 건장한 남성이면 누구나 지원가능.
실적에 따라 기사로 승급할 수 있는 기회부여 / 전투병과 무작위 부여.
급여 : 한 달에 3골드
기본급여 외 전투성과급 지급 / 전리품 공동분배

이제 18세가 지난 청년들 중 농사나 어업에 종사하기 힘들거나 군에 뜻이 있는 이들은 모두 나와 모병에 동참하고 있었다.
모병관으로 참석한 쿤트는 오른팔에 노란색 완장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다음,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데니스라고 합니다.”
“나이는?”
“이제 19세가 되었습니다.”
“호패를 보여주시오.”
카이사르에서 얼마 전 시행한 호패제도는 각자의 출생년도와 간략한 인적사항을 기재한 호패를 배부하여 지니고 다니는 법이었다. 카미엘이 고안한 호패제도는 여러 부분에서 뛰어난 효율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남부에서 이곳까지 오셨군. 좋소, 내일 아침 병영 앞으로 나오시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기쁨을 표하며 마을 광장을 등지며 하늘을 날듯 뛰어갔다.
격하게 기뻐하는 데니스를 본 쿤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차례의 청년을 맞았다.
“다음!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그의 앞에선 청년은 뭔가 중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쩐지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 가늘어 보이는 이목구비는 잘못하면 여인으로 오인받기 쉬워보였다.
아니, 여인이라고 우기면 그 누구라도 반박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남자는 것이 의외라고나 할까?
“에실리안이라 합니다.”
“에실리안이라…… 호패를 보여주시오.”
호패를 들여다본 쿤트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남성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에실리안의 외모에 쿤트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당신, 정말 남성이 맞는 거요?”
“그걸 말이라고 한답니까? 내 비록 외관이 좀 그렇지만 검술 하나는 쓸 만합니다. 원하시면 이 자리에서 보여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할 말이 없소만…….”
당당한 그의 태도에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한 쿤트는 이내 의심을 지우며 말했다.
“에잇, 계집이 뭐 때문에 이곳 중앙 카이사르까지 온단 말이오? 내일 아침 병영 앞으로 나오시오.”
“감사합니다.”
기쁨의 미소를 지은 에실리안은 몸을 돌려 여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시오, 젊은이!”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살짝 놀란 에실리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예?”
“병영은 영주 성 앞에 있다오. 늦지 마시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미소를 짓고 있는 쿤트에게 고개를 숙인 에실리안은 등을 돌려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의심이 거둬지지 않은 쿤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 순서의 청년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