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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3화)
6장 망망대해를 향하여(2)
이른 아침 단상에 오른 헥토르는 신병교육 담당관으로 이곳에 참석하였다.
기사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헥토르는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하여 결국 자신이 신병들을 교육시키기로 한 것이다.
오른쪽에 붉은색 완장을 착용한 그의 얼굴에는 카리스마를 넘어서 공포의 기운이 물씬 풍겨났다.
군기라는 것은 처음이 중요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사들은 자신들이 초반에 행하였던 군기든 행동을 후임 병들에게 강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압적이지만 군의 기강이 유지되는 것이다.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헥토르는 단상 아래의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역시 바짝 긴장하여 목석처럼 굳어 있는 신병들은 벌써 군기가 바짝 든 듯했다.
신병들의 명단을 확인한 헥토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이곳은 기본교육이 행해지는 2개월간 금주와 금연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군율도 다스린다. 둘째,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지 않는 자는 하극상의 죄를 물어 엄하게 처벌한다. 셋째, 병영의 생활강령을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퇴소를 명한다.”
부동자세로 헥토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신병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넘쳤다.
“이제 앞으로 그대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훈련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음의 준비들을 하기 바란다.”
이야기를 마친 헥토르는 단상에서 내려왔고 모병관과 교관들은 각자 젊은이들에게 생활관 배정과 병과를 통보하여 주었다.
아직 분위기가 파악되지 않은 신병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교관들은 거칠게 외쳤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한 놈들이 있구나! 지금 즉시 한명의 교관 앞에 한 줄씩 질서정연하게 정렬한다! 신속하게 움직여라!”
“저기요…….”
“군대에서는 ‘요’자를 붙이지 않는다! 무조건 ‘다’와 ‘까’로 끝난다. 알겠나?”
“예…….”
“알겠나! 대답은 무조건 목창이 터져나가도록 한다. 다시 그따위로 말했다간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주마!”
“예! 알겠습니다!”
일반적인 신병교육대의 모습이다.
처음 겪는 군대의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기사단에서 차출된 교관들은 전투에서 터득한(?) 거칠고 격한 언사를 남발하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가차 없는 구타도 서슴지 않았다.
퍽퍽!
“으악!”
“똑바로 서란 말이다! 이곳이 네놈의 방구석인 줄 아느냐?”
“죄,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왕좌왕 정신이 없던 연병장은 질서정연하게 정돈이 되었다.
역시 말보다는 주먹의 효율이 좋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인 듯했다.
구타로 인한 군기는 병사들의 이빨을 갈게 만들겠지만, 그만큼이나 오래도록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보병에서 궁수의 보직을 받은 놈들은 내 앞에서 일렬로 정렬한다.”
“해군에서 궁수의 보직을 받은 놈들은 이쪽이다!”
길게 늘어선 신병들은 각자 자신이 교부받은 종이를 들고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각자의 생활관의 번호를 배정받은 병사들은 교관의 앞에 일렬로 정렬하였다.
“각자 배정받은 생활관에서 대기한다. 대기 중에 이빨을 보이는 놈은 아주 신들린 듯이 쳐 맞을 줄 알아라!”
교관이 괜스레 으름장을 놓자, 병사들은 더욱 긴장하여 질서정연하게 생활관으로 이동했다.
갈색 벽돌로 만들어진 생활관은 역시 남자들의 공간답게 장식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관물대는 굉장히 삭막해 보였다.
40명이 반으로 나누어진 마루에 걸터앉았는데, 그곳이 병사들의 취침공간이었다.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병영에 들어온 이들은 무척이나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었다.
병사들은 긴장을 풀기 위하여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서 교관이 들어오기 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저기, 어디서 오셨소?”
“동부에서 왔소.”
순박한 시골청년이 떠오르는 외모를 한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미청년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북부에서 왔소. 설마하니 보병으로 보직을 받을 줄은 몰랐소. 궁수가 살아남기 편하고 전투도 쉽다고 하던데…….”
그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예쁘장한 청년은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목석같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시골청년은 문을 박차고 들어온 교관에 의하여 다시 부동자세로 들어갔다.
쾅!
“어떤 새끼가 주둥이를 나불댄 것인가? 너야?”
거칠게 맨 앞에 앉아 있던 청년을 노려본 교관은 몸을 날려 그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퍽!
“윽!”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을 짓는 청년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교관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벨트를 풀어 헤치며 말했다.
“허허, 이 새끼 보게. 신음소리를 내? 그래, 오늘 날 잡았다. 넌 오늘 뒤질 줄 알아라!”
퍽퍽!
무자비하게 신체의 이곳저곳을 구타당하는 청년은 무방비로 막사의 바닥을 굴러다녔다.
교관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막사의 끝에서 쓰러져 있는 청년에게 소리쳤다.
“어디서 엄살인가? 빨리 제자리로 튀어오지 못하겠나?”
헐레벌떡 자리로 돌아온 청년을 내려다본 교관은 도끼눈을 하고 신병들에게 소리쳤다.
“앞으로 쓸데없이 교관 앞에서 이빨보이는 새끼는 저렇게 될 줄 알아. 알겠나?”
“예.”
“허허, 단체로 명줄을 단축하는구나!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되나? 좋다. 지금 당장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선착순 3명을 제외한 놈들은 오늘 식사 없다!”
퍼뜩 정신을 차린 청년들은 부리나케 다리를 움직여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서로 눈치를 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연병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중에 반응이 느리거나 눈치가 없는 자들이 낙오했고, 오로지 3명이 앞줄에 서 있었다.
미쳐 숨을 고르지도 못한 병사들의 앞에선 교관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명 선착순 3명이라 했는데 꽤나 많은 인원이 늦장을 부렸군. 다시 기회를 주겠다. 선착순 3명 제외하고 연병장 끝을 찍고 돌아온다. 선착순 1명이다! 뛰어라!”
우르르 연병장을 질주하는 병사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반면 선착순에서 살아남은 3명은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생존자를 바라보던 교관은 불현듯 소리를 질렀다.
“오호, 전우들은 죽어라 땀을 빼고 있는데, 네놈들은 어째 표정이 여유롭다? 좋아, 엎드려뻗친다. 실시!”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병사들을 본 교관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주 몸이 간질간질한가 보지? 지옥을 원한다면 보여줘야지.”
기겁을 하며 엎드려뻗쳐를 실시한 병사들의 자세에는 벌써 각이 잡혀 있는 듯했다.
삼삼오오 도착하는 병사들은 먼저 엎드린 병사들의 눈치에 따라 차례대로 연병장에 엎드렸다.
손에 지휘봉을 딱딱 거리며 병사들의 주위를 빙빙 돌던 교관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교관의 말을 허투루 들었다간 오늘과 같은 일이 무한 반복된다. 명심하기 바란다.”
“예!”
이젠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대답하는 신병들을 보며 교관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훈련에 필요한 기합을 넣은 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박건조의 현장에 들른 카미엘은 장인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자신의 설계도면에 대한 토의를 가졌다.
해적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해전에 특성화된 선박이 건조되어야 하는데, 카이사르에는 그럴 만한 선박이 존재하지 않았다.
카미엘이 직접 만든 도안을 살펴본 장인들의 수장인 안톤은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니까 공자님의 뜻은 알겠는데,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인들은 이런 선박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금시초문이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설계도면을 만들어 오지 않았나? 자네들이 만들지 못하면 대륙에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하겠는가? 카이사르의 선박 장인은 세계 최고라 들었네만.”
자타공인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카이사르의 선박 장인들은 자신들의 자부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였다.
장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망치를 잡는다.
안톤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에휴, 공자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놈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몸이 두 쪽이 나도 만들어보지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번 작업으로 자네들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네.”
안톤은 카미엘이 만든 도면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 전함이라 하여도 사실 범선과 많이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장까지 된 전함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네. 이로써 우리도 뛰어난 전함을 갖게 되는 걸세. 최선을 다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일단 망치를 잡기로 한 것, 깜짝 놀라게 해드리겠습니다.”
장인들은 결의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카미엘은 그들의 어깨를 두르려주며 격려하였다.
한 명 한 명 일일이 격려를 아끼지 않던 카미엘의 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는 익숙한 여인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싱그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
바로 엘레니아였다.
양 옆으로 쭉 찢어진 카미엘의 입을 본 장인들은 익살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야, 공자님 대단하십니다. 이곳까지 도시락 싸들고 쫓아오는 여인도 다 있으시고!”
“게다가 엄청난 미인이잖아? 능력도 좋으시네!”
“부럽습니다!”
조금 머쓱해진 카미엘은 헛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진 것을 보니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험험, 그런 것 아니네. 그저…….”
한때 망나니로 불린 카미엘의 과거를 생각하면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 법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난봉꾼은 실제 연모하는 여인에게 약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안톤은 한쪽 눈을 감으며 카미엘에게 말했다.
“에이, 손도 안 잡았는데 도시락 싸들고 찾아오는 여인도 있답니까? 최소한 하룻밤 함께 지새워야 내 남자다 하고 쫓아오는 거지.”
“아니, 하룻밤은 아니고…….”
카미엘이 뜸을 들이자 순간, 장인들의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가며 관심이 집중되었다.
남자들은 나이와 지휘의 고하를 막론하고 연애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눈치를 보던 카미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선박 건조되면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하세.”
“에이!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연애에 관한 이야기의 여운을 남긴 카미엘은 돌아서 엘레니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인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새로운 도전에 금세 마음이 동하였는지 각자 일터로 돌아갔다.
멀리 손을 흔들고 있는 엘레니아를 보는 카미엘의 표정은 어쩐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한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카미엘은 문득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 세상 가장 닮은 여인.
‘설란!’
엘레니아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 카미엘은 그것이 정확이 어떤 감정인지 깨닫고는 상당히 마음고생을 하였다.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지나간 여인에 대한 집착의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카미엘은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달려간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녹아내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이곳까지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후작께서 보시면 경을 칠 일입니다.”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는 엘레니아를 보는 카미엘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럴수록 웃음만 짓는 그녀를 보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늘 제가 무엇을 만들어 왔는지 보시겠어요?”
바구니 속에는 직접구운 빵과 카미엘이 즐겨먹는 생선요리가 들어 있었다.
“오! 생선요리! 직접 만드신 겁니까?”
“그럼요! 이렇게 보여도 신부수업을 꽤 여러 해 들어온 걸요. 자, 여기 앉으세요.”
직접 준비한 돗자리를 꺼내어 깔끔하게 바닥에 깐 그녀는 자신의 옆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엘레니아의 미소를 본 카미엘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설령 그녀가 설란의 대신이라도 상관없었다.
‘언젠가 살면서 다 갚아주겠습니다.’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은 그는 빵을 조금 떼어 맛을 보았다.
“제가 알려드린 들꽃을 따다 넣은 모양이군요.”
“네. 먹을 만한가요?”
“먹을 만하다니요…….”
살짝 어두운 그의 표정을 살피던 엘레니아는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게 먹을 만하다니!”
흥분하는 카미엘을 본 그녀는 머쓱해져 살짝 속이 상한 듯했다.
“먹을 만하다니요. 이건 먹을 만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다고 하는 겁니다. 정말 둘이서 먹다가 한 명이 졸도해도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장난임을 알아차린 엘레니아는 그의 가슴팍을 살짝 치며 말했다.
“뭐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에잇, 장난꾸러기 같으니!”
“하하, 미안합니다.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지 뭡니까?”
“흥, 몰라요!”
토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본 카미엘은 조용히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와 밀착이 된 엘레니아는 손을 뿌리치면서도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다.
“왜 이래요? 귀찮게 정말…….”
그러면서도 그의 품으로 쏙 들어온 엘레니아는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미엘, 당신이 좋아요.”
살아생전 그녀를 다 안으려는 듯 말없이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인들은 거칠게 톱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왜 하필이면 사람 일하는 앞에서 저러실까? 에잇! 오늘따라 왜 이렇게 톱질이 안 돼?”
망치질을 하는 이들 또한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
퍽퍽!
“마누라! 오늘따라 그대가 참 보고 싶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