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카미엘 전기 1권(14화)
6장 망망대해를 향하여(3)


토벌을 준비한 지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다.
해군의 규모가 3만을 넘어섰고 투석기와 노포를 장착한 신형 전함의 건조도 80퍼센트 이상 진행되었다.
1차 토벌 원정대의 편성을 시작하기 위하여 랭턴을 비롯한 카이사르의 중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전 상황판과 해상지도가 중앙에 놓아져 있고, 재떨이와 음료가 준비되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회의가 진행될 모양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장의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카이사르의 사활이 걸린 대 토벌 전을 시작한다. 파병은 총 3번에 걸쳐 이루어지며 선발대는 카미엘이, 본대는 헥토르, 후발대는 가르시아가 사령탑을 맞는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해적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고, 팔란 성은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언젠가는 치러야 할 과제였음으로 카이사르의 중역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지금 급파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는 약 2만이다. 선발대 5천, 본대 1만, 후발대 5천으로 구성한다. 카미엘이 선발대로 진지를 구축하면 본대가 도착하여 진격을 준비하고, 후발대가 물자를 조달하여 진격을 시작한다. 진격의 시작점은 이곳, 팔란의 최남단인 멜린으로 한다. 카미엘은 선발대가 준비가 되는 대로 당장 출발하여 멜린에 진지를 구축한다. 본대가 준비되는 데 약 열흘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검은색 군복을 입은 카미엘은 자신이 배정된 선발대의 구성을 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얼마나 전투를 치러왔던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각 함대의 함대장을 맡은 이들은 철저하게 전투에 대한 준비를 하여라. 그대들의 임무가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카미엘을 비롯한 함대장들은 부복을 하며 소리쳤다.
“충! 소신, 온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진격로를 확보하겠나이다!”

팔란의 북부에 위치한 세인트.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이따금 카이사르만을 지나가는 상선들은 일부러 팔란의 북부를 경유하지 않고 멀리 돌아가는 항로를 택한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카이사르의 해적은 잔악하기도 하지만 정형화 된 전투기술로 칼리어스의 해군조차 상대하기를 꺼려한다고 알려져 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어 예전의 강렬했던 화산폭발이 몇 차례나 있었음을 가늠케 해주는 동굴은 마그마가 굳으며 생긴 자연의 산물이었다.
화강암 동굴에는 각종 진귀한 보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중앙에는 시원한 청 발을 뒤로 넘긴 청년이 상의를 탈의한 채 체력단련에 한창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근육은 군더더기 없이 갈라져 자리가 잘 잡혀 있었다.
보통 성인 여성의 몸무게를 훨씬 상회할 만한 크기의 역기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근력 강화에 매진하는 듯했다.
동굴에 그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였다.
“테미안 님.”
언젠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부복을 한 여인이 대화를 청하였다.
여인의 허리만한 팔을 굽혀보며 발달 정도를 가늠하던 그는 등을 보인 채 말했다.
“무슨 일이냐?”
“카이사르에서 해적을 토벌한다는 공문을 내렸다고 합니다. 병사 육성이 한창이며 전함의 구축이 거의 다 끝났다 합니다.”
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은 탄탄한 가슴골을 따라 흘러 복근에서 8줄기로 갈라졌다.
“카미엘…….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한 것인가?”
“어찌할까요? 지금이라도 압박을 가할까요?”
동굴 벽에 달린 발걸이에 하체를 고정시킨 테미안은 거꾸로 매달려 말했다.
“아니다. 그냥 두어라. 사냥은 천천히 그 긴장감을 음미해야 제맛이다.”
양쪽 손에 거대한 역기를 든 테미안은 그대로 상체를 구부려 복부에 자극을 가하였다.
전투 시 장기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갑옷은 바로 근육일 것이다.
성인 남자의 몸무게를 훨씬 뛰어넘는 역기를 들고도 가볍게 복근운동을 하는 테미안을 보며 여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자취를 감추었다.

카이사르의 해군이 출정준비를 마치고 전함 앞에 도열해 있었다.
단상에 오른 카미엘은 이번 작전의 총 책임자로서 사령함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산적 토벌에 이어 우리 카이사르가 백수 십 년 억압되었던 한을 푸는 날이다.”
질서 정연하게 도열한 병사들의 눈에는 예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일당백이다. 그 누구도 우리의 함대를 이길 수 없다.”
쿵! 쿵! 쿵!
진군의 준비를 알리는 북이 울리며 카미엘은 검을 높이 빼어들었다.
“원수의 심장을 빼내어 조상님들의 묘비에 바치자! 우리가 흘렸던 눈물을 피로써 되갚아주자!”
와아아아!
절반 이상이 전투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전원 탑승하라!”
척!
일사분란하게 상선하는 병사들의 몸놀림에 각이 잡혀 있었다.
아마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성과일 것이다.
“닻을 올려라!”
펄럭!
갑판에 올라선 카미엘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뱃길에 올랐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곳에는 그가 평생 이루지 못했던 무공의 경지를 강론할 무공서적이 있다.
무인으로서 이보다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물살을 가르며 수면을 미끄러져나가는 함선의 선미에 올라선 카미엘은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한껏 바람을 머금던 카미엘은 바람에 섞인 여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작은 점이 되어가는 선착장에 한 여인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엘레니아?”
뭐라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카미엘은 함선의 후미로 달려가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그를 발견하였는지 엘레니아는 껑충껑충 뛰며 두 손을 흔든다.
그는 이번 작전을 결단코 성공시킨다는 결심을 하였다.
‘엘레니아든 설란이든 상관없다! 내가 지켜낼 여인이다!’


7장 살을 주어 뼈를 취하다(1)


카이사르의 바다에 봄이 찾아와 향긋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 다녔다.
이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봄의 따사로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친다.
카미엘은 중원의 봄도 이렇게 눈부셨나 하는 생각을 한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겨울바다를 질주하는 그의 전함은 이미 해적이라는 이들의 세력권 안에 들어와 있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해적이 일개 영지를 집어삼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미엘은 랭턴의 추측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적을 통합하고 반군을 조직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얘기다.
물론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생각은 카이사르의 가신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만약 이번 토벌 전에서 이들이 반군세력이라는 증거가 포착되면 칼리어스 전체의 토벌 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팔란을 집어삼킬 정도의 병력이라면 최소한 만 단위를 넘어섰을 것이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다면 카이사르에 병력이 투입될 것이고, 랭턴은 젊은 시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망망대해에 자신의 미래를 점치던 카미엘의 귀에 부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함대장님! 약 5km전방에 정체불명의 함대가 접근 중입니다.”
보고를 접한 카미엘은 선미로 향했다.
망원경이 발달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를 가능하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카미엘의 함대를 박살내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제기랄…….”
수평선을 가득매운 함대를 본 카미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카이사르 만에서 함대를 본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의 함대라면 분명한 적일 것이다.
“각 함대에 알려라!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피융!
불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각 함장들은 카미엘의 신호에 따라서 전투태세를 준비하였다.
땡땡!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병사들은 신속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본 카미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란군이 확실하다!’
격동적인 레드드레곤이 그려진 깃발은 그들이 대륙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함대라는 것을 증명했다.
“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사격을 실시하라!”
투석기에 돌을 올려 머리 부분을 밧줄로 고정시켰다.
직격으로 맞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격을 담당한 투석기 병은 칼로 밧줄을 잘랐고, 관성의 법칙에 의하여 돌덩이는 포물선을 그렸다.
슈웅!
쾅!
카미엘의 사격이 적중하자, 이윽고 적의 반격이 시작되는 듯했다.
슈웅!
펑!
놀랍게도 그의 함선으로 날아온 것은 다름 아닌 바위덩이였다.
“으악!”
“사람 살려!”
‘투석기? 투석기를 장착한 전함이 우리 말고 또 있었단 말인가!’
적어도 카이엘의 상식선에서는 아직 전함을 전투화 시켜 타고 다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박을 건조하던 장인들도 상당히 고생을 했던 것이다.
시각적 충격과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카미엘의 함선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50척은 넘어 보이는 적 함대가 한 번 사격을 하면 마치 일식이라도 진행되는 양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후퇴한다! 노포를 준비하라!”
도르래에 화살을 장착한 노포병은 카미엘의 신호를 기다렸다.
곧 있으면 다시 사격을 가해올 것이다.
카미엘은 궁수들을 대기시키며 함선 지하에 소리쳤다.
“궁수들은 불화살을 준비하라! 노를 저어라!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화살에 석유를 두른 궁수들은 활시위를 먹였고, 지하에서는 후끈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카미엘은 지체 없이 사격 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발사하라!”
촤라락!
거대한 화살이 직선으로 쏘아져나가 적 함선의 아랫부분에 박히며 구멍을 냈다.
그 위로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렸고, 함선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앞줄의 일부에 불과했고, 적 진영에서는 다시 사격을 가해 왔다.
피해를 입은 함선은 속도를 줄여 뒷줄로 이동했고, 처음의 공격의 강도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계적인 전술을 운용하는 것을 보니, 최소한 해적이 아니라는 예상이 적중한 듯했다.
슈웅!
다시 한 번 돌덩이가 해를 가렸고, 그 사이에는 작은 불꽃들이 자리 잡았다.
펑!
“으악!”
“끄아아악!”
“대열을 유지하라! 굴하지 말고 발사하라!”
슝슝슝!
퍽퍽퍽!
“컥!”
“으악!”
병사들의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함선을 굴러다니며 아수라장을 연출했고, 카미엘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고, 지략에 능통해도 매에는 장사가 없다.
병력의 차이가 무시하지 못할 진리라는 것을 세삼 느낀 카미엘의 목 줄기에는 핏줄기 불거져 나왔다.
“흔들리지 마라!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면 헛되이 죽을 뿐이다!”
카미엘의 독려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피해를 복구하기엔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지하에서는 열심히 노를 젓고 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앞으로 나가는 데 힘이 들었다.
“자리를 고수하라! 노포와 화살을 장전하고, 투석기에 기름을 실어 날려라!”
항아리에 기름을 올리고 그 위에 불을 붙여 투석기에 실어 날렸다.
슈웅!
퍼엉!
함선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위로 화살이 쏟아지고 아래로는 노포가 뚫고 들어와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방금과 마찬가지로 일부를 타격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다시 날아온다! 대비하라!”
슈웅!
펑!
“으악!”
“내 다리!”
무작위로 떨어지는 바위덩어리에 대비할 것이라고 해봐야 마음의 준비뿐일 것이다.
적의 끈질긴 추격을 저지할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고, 카미엘은 눈을 감았다.
이제까지의 행보가 쉬운 길은 아니었으나 최고의 악제를 만나니, 정신이 확 드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정전하며 자리를 고수하라! 곧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팽팽하게 활시위를 먹이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적의 피가 아닌 동료들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피가 맺힌 활시위에 얼굴을 가져다대는 병사들의 표정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멸은 기정사실로 다가올 것이다.
“쏴라! 무조건 활을 당겨야 한다!”
핑핑핑!
화살이 하늘을 날아 함선을 향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입수하고 말았다.
순간 돛이 펄럭이며 배에 속력이 붙는다.
“바람이 분다! 신속하게 돛의 방향을 조절하여 바람을 탄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람이 불었고, 거대한 돛은 바람을 한껏 머금어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적군은 추격을 포기하고 뱃머리를 돌렸다.
멀어져 가는 적 함대를 보며, 카미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전군이 몰살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다.
“각 함장에게 가까운 섬에 정박한다고 알려라.”
노란색 깃발이 펄럭거리는 것을 보며 함장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