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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6화)
7장 살을 주어 뼈를 취하다(3)


겐트의 성곽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철옹성으로 유명하다.
불철주야 경계를 서는 경계병들로 인하여 성문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살피던 경계병의 눈에 횃불을 든 사내가 얼쩡거렸다.
뭔가 알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내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대수롭게 넘어가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신경이 쓰이는 모야이었다.
자세히 보니 곡괭이와 삽을 들고 와서 무턱대도 땅을 파고 있는 것 같았다.
금일의 수비조장에 배정된 피터는 무척이나 짜증나는 말투로 부하에게 말했다.
“저 미친놈은 아까부터 왜 저기서 삽질을 하고 있단 말인가? 가서 경고를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라.”
“예, 알겠습니다.”
망루에 오른 해적은 신원불명의 사내에게 소리쳤다.
“웬 놈이냐! 어째서 땅이나 파고 있는 것이냐?”
사내는 답이 없었고 병사들은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화살을 쏠지 내려가서 목을 벨지 논의하는 듯했다.
“저런 미친놈을 보았나? 대장! 그냥 죽이시지요. 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대려다가 고문을 해서 죽이는 것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제각각 자신의 취향대로 죽이자고 권고를 하였고 피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화살을 꺼내어 들었다.
“몰이사냥도 꽤 재미있는 일 중에 하나지. 말을 못하는 것들은 동물이다. 그러니 죽여야 마땅하다.”
역시 경계조장이라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병사들은 저마다 활시위를 먹여 아직도 삽질을 하고 있는 사내에게 정조준 하였다.
저마다 키득거리며 오랜만의 여흥거리에 신이 난 듯 보였다.
“저놈을 잡는 이에게 오늘 거나하게 술을 사겠다.”
“오오! 좋습니다.”
망루에서 조준을 하고 있던 사내는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해적에게 말했다.
“어때? 오늘 내기 한번 하는 것이.”
한쪽 눈을 감고 사내의 머리를 조준하던 그는 대답이 들리지 않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이, 왜 대답이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대답이 없자, 활을 놓고 뒤로 돌아선 그는 눈이 동그래져 헛물을 삼켰다.
“웬…… 컥!”
이미 목이 예리하게 베어져 잘려 있었던 그의 머리는 순간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쿵!
아직도 사냥감에게 집중을 하고 있던 피터는 아무도 활을 당기지 않는 것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어이! 뭐하는 것이야? 사냥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무심코 옆을 돌아본 피터는 목이 달아난 채 허물어져 있는 부하를 보며 비상 대기조를 불렀다.
“대기조! 이곳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 엄청난 공포가 그의 몸을 감쌌다.
목 언저리에 느껴지는 이질감.
마치 손가락을 베어 살이 들떠 있는 느낌이 그대로 목에 적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피터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직은 머리가 붙어 있어 살 수 있지만 아마 시간이 조금 더 경과하면 자신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 어떤 놈이 겁도 없이 이 몸에게 몹쓸 짓을 한단 말인가!”
툭!
피터의 뒤에 서 있던 인영은 그의 어깨를 살짝 쳤고, 그의 목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모든 이의 목이 바닥을 구르자, 열심히 땅을 파던 사내는 기다란 장대의 끝에 횃불을 매달아 구덩이에 꽂았다.
복면인과 눈을 맞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성문이 열리며 망루에서 불화살이 쏘아져 올라갔다.
이윽고 횃불 행렬이 이어지며 4000여 명의 정규군이 겐트를 향하여 진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성으로 진입한 병사들은 내성을 무사히 지나 마을의 광장을 지났다.
영주를 위한 성의 옆에 위치한 병영은 이미 사전에 작업을 마친 상태라 경계병이 위치하지 않은 듯했다.
병영은 총 4층으로 되어 있어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 적합해 보였다.
건물은 모두 목재로 되어 있어 불에 타기 안성맞춤이었다.
등에 기름통을 하나씩 매고 온 병사들은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에 기름을 부었다.
석유 냄새가 건물을 감쌌고 카미엘은 횃불을 들고 거대한 건물의 앞에 멈추었다.
끝도 없이 늘어진 건물은 총 4곳이었고 모두 완벽하게 방화 준비를 마쳤다.
쿤트에게 고개를 끄덕여 명령을 내린 카미엘은 기름이 흥건히 고여 있는 건물의 아래에 횃불을 집어던졌다.
화악!
순식간에 피어오른 불길은 건물 전체를 태우며 올라갔고 매캐한 연기가 옥내를 메우자, 반군들은 혼비백산하여 건물 안을 뛰어다녔다.
“불이야! 불이야!”
“신속히 밖으로 대피해라!”
한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밖으로 뛰쳐나온 해적들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쏴라!”
핑핑핑!
“뭐, 뭐야!”
“커헉!”
무작위로 발사되는 화살을 맞은 해적들은 쓰러져 갔고 살아남은 이들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뒤에는 불길이 거세게 일고 있고, 앞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이 기다리고 있다.
퇴로가 차단된 해적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모조리 죽여라! 포로는 없다! 정규군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몰살시켜라!”
카미엘은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해적들의 목을 단번에 치며 외쳤다.
“으악! 이런 악마 같은 놈들!”
“흥, 네 놈들이 정규군에게 악마라 칭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푸악!
시뻘건 피가 그의 얼굴에 튀었지만 개의치 않고 다음 목표를 찾아 검을 들었다.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반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어갔다.
카미엘은 엘리안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깔끔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뒤처리.
그는 타고난 살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내였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무조건 베어라!”
카미엘의 검이 다음 목표를 향해 들어질 즈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사내가 육중한 언월도를 들고 나타나 소리쳤다.
“중앙으로 집결하라! 도망가지 마라! 도망가면 놈들의 손에 죽을 뿐이다!”
커다란 언월도를 든 사내는 걸걸한 목소리에 힘을 주며 부하들을 독려하였다.
그의 뒤를 따르는 다수의 지원군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카미엘은 엄청난 덩치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적군의 수장인 듯 보였다.
검을 높이 치켜든 카미엘은 목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적의 지원군과 병력의 연합을 저지하라! 네놈이 이곳을 집어삼킨 역적이구나! 오늘 네놈을 친히 벌하여 주마!”
“애송이 같은 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순간 카미엘의 시야를 가득 채운 사내는 힘차게 말을 몰았다.
그야말로 바윗덩이가 돌진하는 느낌이 들었고, 카미엘은 손을 고쳐 잡았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말을 향해 몸을 날린 그는 칼을 아래로 휘둘러 말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이힝힝!”
털썩!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말에서 떨어진 사내는 전혀 충격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사내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오호, 꼬맹이가 잔머리 꽤나 쓰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오늘이 너의 기일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직 검술이 완성되지 않은 카미엘은 바짝 긴장하였다.
어깨에 언월도를 들쳐 맨 사내는 카미엘을 향하여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왔다.
일반 성인 남성의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육중한 언월도를 한 바퀴 휘두른 그를 본 카미엘의 눈은 크게 확장되었다.
붕!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 없을 것 같은 언월도를 빠르게 휘두른 사내는 이윽고 방향을 바꾸어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쿵!
흡사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온 땅이 들썩였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는 전투방식에 카미엘은 식은땀을 흘렸다.
중원에서도 저런 괴물을 본 적이 없는 카미엘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것을 깨달았다.
일정한 형식은 없으나 거대한 언월도를 마치 제 몸처럼 휘둘러 변화무쌍한 검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검술은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보장하기 힘들어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무지막지함에 카미엘은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어째, 아까의 패기가 전혀 없어진 듯하구나. 역시 애송이에 불과하였구나!”
단지 두수를 받았을 뿐임에도 카미엘의 몰골은 만신창이였다.
속전속결로 승부를 짓지 않는다면 카미엘에게 내일의 태양은 뜨지 않을 것이다.
입술을 굳게 다문 카미엘은 사력을 다하여 몸을 날렸다.
‘일검이다!’
마치 독사가 먹이를 사냥하는 것 마냥 쏘아져나간 카미엘은 사내 다리를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팅!
가볍게 일검이 저지당하였고, 카미엘은 그대로 몸을 틀어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신속히 위치를 변경하여 카미엘의 검을 피해낸 사내는 각 법으로 그의 등을 걷어 차버렸다.
퍽!
“큭!”
마치 고목이 쓰러지며 등을 덮친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온몸이 저려왔다.
하마터면 피를 게워낼 뻔한 카미엘은 자신이 수세에 몰렸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카미엘은 사내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서 엄청난 예기가 폭발하였다.
“나는 이곳의 총사령관이다!”
도처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비록 기습을 당하긴 했으나 반군의 저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팽팽한 공방을 거듭하는 전세는 어느 한 곳의 우세를 점치기 힘들어 보였다.
만약 그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얘기였다.
카미엘은 승부를 띄우기로 결심했다.
“하아…….”
대지에 스며든 피의 기운을 한껏 들이마신 카미엘은 천마신공을 일주천시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의 강렬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며 몸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넘쳐났다.
이윽고 그의 몸에서 점점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을 토해내는 카미엘을 보며 사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그의 몸에서 나오는 예기는 예사의 것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윽고 눈을 뜬 카미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만에 피를 보게 만드는구나…….”
천천히 고개를 든 카미엘의 두 눈은 벌써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카미엘의 얼굴의 이곳저곳에 불거진 핏줄은 혈액의 이동이 그대로 보였다.
“하! 이 향기로운 냄새. 실로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살가죽의 향기란 말인가!”
괴상하게 변해버린 카미엘을 본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카미엘은 미친 듯이 웃으며 몸을 흔들었다.
“내장을 씹어주마! 크하하!”
가슴 속으로 혈 향을 한껏 삼킨 카미엘은 사내를 향해 힘껏 검을 내리쳤다.
쾅!
검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볼 수 없는 파괴음이 들리며 땅이 4미터나 패였다.
가까스로 그의 검을 피해낸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하면 저런 파괴력이 나온단 말인가?
“크하하! 오늘의 저녁식사는 네놈의 머리통으로 하겠다!”
카미엘은 진기를 끌어올려 손끝에 집중시켰고 그의 손톱은 마침내 붉은 빛을 머금었다.
그의 광기어린 눈을 본 사내는 문득 악귀의 현신을 본 듯 착각이 들었다.
“악마의 자식인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미 붉은색으로 물든 카미엘의 눈에서는 눈동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하게 된다면 사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언월도를 횡으로 내려잡은 그는 발도의 자세를 취하였다.
저렇게 광분한 상태라면 의외로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그야말로 비호처럼 그에게 날아오른 사내는 동공이 터질 듯 확대되고 말았다.
“크하하하!”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리는 카미엘의 손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운이 퍼져 나와 사내를 끌어당겼다.
발버둥 칠수록 강하게 그의 몸을 빨아 당기는 붉은 기운에 사내의 눈은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 악마다! 이놈은 악마다! 으악!”
“크하하! 비천하기 짝이 없는 놈이 감히 나를 우롱하려 드는구나!”
서서히 사내의 얼굴에 다가온 그의 손은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끄아아아!”
눈, 코, 입.
구멍이란 구멍에서 혈액이 뽑아져 나와 그의 손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갔다.
마교의 비전인 흡성대법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만 동동 구르던 사내는 이윽고 살가죽만 남기고 바닥에 흘러져 내렸다.
“크아아!”
카미엘이 그토록 염려하였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적의가 있든 없든 간에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자행할 것이다.
“주, 주군!”
카미엘이 대결을 벌이는 사이 병사들을 지휘하던 쿤트는 동공이 찢어질 듯 확장되었다.
“어, 어찌하여!”
피를 갈구하는 악귀로 변한 카미엘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피를 향해서 돌진하였다.
악귀로 변한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줄행랑을 쳤다.
“사, 사람 살려!”
‘안 돼!’
폭주를 시작한 카미엘은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자아와 본능이 충돌을 일으키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괴성을 질렀다.
그의 이성과 광기가 싸움을 시작한 듯했다.
마치 짐승의 숨소리를 내던 카미엘은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
“헉!”
순간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카미엘은 재빨리 가부좌를 틀었다.
어서 빨리 자신의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진기를 운용하던 그는 갑자기 폭주하는 심장 때문에 한 움큼 피를 게워냈다.
“컥!”
후두부로 충격이 전해져 코가 시큰거리며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기가 역류하여 주화인마를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온몸의 혈액이 거꾸로 돌며 그의 얼굴에서 핏기를 앗아갔다.
카미엘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확신한 쿤트는 병사들을 모아 그를 호위하였다.
“공자님을 보호하여라!”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카미엘의 주위로 병사들이 몰려들어 그를 호위하였다.
“호위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해적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척살한다!”
쿤트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자 카이사르의 미래인 카미엘이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죽을상을 하였다.
“공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