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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7화)
8장 새로운 발견(1)
아직도 전장의 혈 향의 여운 때문에 마성이 꿈틀거리는 카미엘은 자꾸만 역류하는 혈을 다잡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번 역류하기 시작한 진기는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폭주를 멈추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천마신공을 완성하여 광기를 잠재우는 것.
다른 하나는 진기를 역류시켜 광기를 잠재우는 것.
거꾸로 돌고 있는 피를 자꾸만 정상적으로 돌려보내려 하다 보니 심장에 엄청난 무리가 왔고, 혈맥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지체된다면 심장이 터져죽거나 혈액이 공급되지 않은 장기가 죽어버려 폐인이 될 것이다.
카미엘은 죽음 앞에서 엄청난 도박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혈의 흐름을 백회혈까지 끌어올려 단번에 상단전을 타통하는 것이다.
갓난아기의 정수리를 만져보면 성인과는 다르게 물렁물렁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곳으로 숨을 쉬는 아기는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먹으며 자라난다.
나이가 먹어가며 닫혀버린 정수리는 웬만해선 다시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깨달음을 얻어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다면 자연과의 소통수단인 백회혈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카미엘은 바뀌어버린 신체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물리적인 방법으로 화경을 넘어서는 것.
잘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위험한 도전인 것이다.
심장을 잠시 정지시켜서 모아진 압력을 단번에 올린다.
실로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도박이다.
확률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미엘은 역류하는 혈을 막아 심장을 정지시켰다.
잠깐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으므로 신속하게 행하지 않는다면 뇌는 물론이고 신체의 모든 장기가 죽어버릴 것이다.
하단전에 모아진 힘으로 단번에 힘을 모아 혈을 돌렸다.
온몸에 짜릿한 기분이 들며 다시 피가 돌았다.
혈액이 막혀 있다 흐르며 생기는 현상이었다.
이윽고 심장과 머리 부분에 간질간질하고 저린 느낌이 들었다.
백회혈이 자극을 받는 것이었다.
카미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머리 부분이 차갑게 식으며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백회혈을 열지 못한 혈액이 다시 역류하여 혈관을 막아버린 것이다.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얼굴이 터질듯이 부풀어 오르며 꼬챙이로 머리를 마구 쑤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윽고 카미엘은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타통하지 못한 진기가 목구멍으로 올라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각혈을 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카미엘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온몸에는 역한 땀 냄새가 진동하였고 머리는 엄청난 고열로 인하여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식은땀마저 증발해 버리는 엄청난 고열이 계속되었고, 머리의 중앙부분이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카미엘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귀에서 고름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면 폐인이 되거나 머리가 터져 죽어버릴 것이다.
마지막 기회다.
카미엘은 심장에 모여 있던 진기까지 모두 짜내어 백회혈로 올려 보냈다.
쾅!
한 번에 응축시킨 진기를 직선으로 끌어올린 카미엘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충돌이 있은 직후, 눈과 입이 열리며 엄청난 열이 발산되었다.
열은 이내 빛으로 바뀌었고 엄청난 양의 빛 무리가 전방으로 쏘아져 나왔다.
이윽고 정수리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며 빛이 잦아들었다.
향기가 온몸을 감싼 카미엘은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
겐트 촌장의 집.
겐트는 반군이 점령을 한 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은 곳이라 이곳의 토박이 주민들이 아직 남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주의 아들이 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전투를 수행하던 중 중태에 빠져버려 온 마을사람들과 병사들의 마음이 무거웠다.
벌써 나흘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카미엘을 보며 쿤트는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병사들의 사기도 문제이긴 했으나, 사령관의 부재는 군대의 응집력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수도 있다.
피해복구가 순조롭게 진행돼 가는 중이긴 했으나 그가 없이 정상적인 지휘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었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쿤트에게 엘리안은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끼리라도 뭔가 전략을 짜서 방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적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릅니다.”
하루 거리에서 항해를 하던 적군은 어쩐 일인지 뱃머리를 돌렸고, 카이사르의 선발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은 언제라도 병력을 이끌고 상륙을 할 수 있는 의도와 힘을 갖고 있다.
지금 방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피를 말리는 외줄타기와 같았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쿤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엘리안을 노려보았다.
“네 놈은 공자님보다 이곳이 위태로운 게 더 걱정인 것이구나. 이런 놈도 신하라고!”
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지금 당장 한시가 급한데, 이 자는 저렇게 한숨만 쉬고 있으니 엘리안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거기 서십시오! 당신은 이인자이지 않습니까? 좀 책임감을 갖으란 말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를 따라나선 엘리안으로 인하여 카미엘은 혼자 남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카미엘은 오히려 평온한 얼굴이었다.
평온한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머리가 모조리 빠져 내렸다.
그리고는 아기 같은 새살이 돋아나 잡티가 전혀 없는 투명한 피부로 변하였다.
머릿결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윤기 있고 단단한 머리카락이 자리를 잡았다.
환골탈태.
외형뿐만 아니라 근육의 재구성으로 근력을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몸으로 바뀌어갔다.
그야말로 나흘 만에 새사람으로 변한 카미엘은 눈을 억지로 뜨며 일어났다.
순간 눈에서 광체가 나와 온 방을 비추는 듯했다.
“헉!”
힘겹게 숨을 뱉어낸 카미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직 변화된 몸에 적응이 되지 않아 물체가 울렁거리는 듯 보였지만 참을 만하였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결과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몸은 단번에 화경의 경지로 뛰어올랐고, 이미 환골탈태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심장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였다.
아직 심장 부근이 뻐근하지만 몸을 운신하는 데 별 지장은 없어보였다.
활짝 기지개를 켜며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맞던 그의 눈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이제 17세나 되었을까?
커다란 눈망울과 앵두 같은 입술은 곱게 따내려놓은 양 갈래 머리와 조화를 이루어 마치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소녀는 몹시도 놀라워하는 눈으로 카미엘을 바라보다가 문득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트리며 멀찌감치 도망가 버렸다.
“꺄악!”
아마도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게 변하여 놀라 도망을 갔으리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비명을 지를 만한 외모라.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바람을 만끽하던 카미엘은 문득 아랫도리가 시려 오는 것을 느꼈다.
“음?”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본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확장되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구경하느라 기분이 좋아졌는지 하늘을 향해 한껏 기지개를 켠 물건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으악!”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간 카미엘은 이불을 뒤집어쓰며 투덜거렸다.
“아니, 사람이 쓰러졌으면 쓰러진 거지 옷은 왜 벗기고 난리야!”
촌장 델피엘은 손녀와 함께 마주앉은 카미엘을 보며 연신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안 그래도 준수한 외모는 며칠 앓고 나더니 더욱 빛을 발하였다.
그런 영주의 아들이 자신의 손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밥만 먹고 있으니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가 마음에 든 것이리라.
델피엘은 몹시도 얼굴이 빨개진 손녀를 보며 말했다.
“뭐하느냐? 공자님의 잔이 비어 있지 않느냐?”
한나는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그의 튼실한 물건 덕분에 얼굴이 화끈거려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험험, 괜찮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하시게.”
물건을 공개한 장본인도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닌 듯 보였다.
카미엘은 그저 이 가시방석 같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허허, 봄은 계절의 여왕이니만큼 낭만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촌장은 연신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문득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갈 길을 잃은 카미엘의 포크를 본 촌장은 바구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어지간해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자연산 송이버섯이었다.
“이곳 겐트의 산에는 송이버섯이 유명합니다. 보십시오, 길고 곧게 뻗은 것이 참 튼실하지 않습니까?”
“풉!”
물을 마시던 한나는 사레가 들려 할아버지의 얼굴에 분수를 발사했다.
귀까지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며 카미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웬 개망신이란 말인가!’
아직도 온전치 않은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던 카미엘은 화제를 전환시킬 필요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특이한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그곳은 어떤 곳인가?”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하며 던진 미끼를 정확히 문 듯, 촌장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카이사르 공작께서는 이곳을 무척이나 애지중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이 인구는 적으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고 황금어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을의 지형을 간략화하여 만든 지도를 가져온 촌장은 마을 북부에 위치한 광산을 가르치며 말했다.
“이곳은 잡다한 몬스터들이 출몰하곤 하는데, 그로 인하여 블랙다이아몬드 단원들이 이곳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지나치곤 했습니다. 정작 이곳이 겐트의 가치를 논하는 정확한 척도일 텐데요.”
카미엘은 지도를 살피며 촌장에게 물었다.
“그저 평범한 폐광이 아닌가?”
촌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은 저와 함께 이곳으로 가시지요. 아참,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하셔야 할 것입니다.”
“알겠네.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을 편성하겠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한참이나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하는 것을 보니 흥분을 감추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이동하면서 필요한 식량과 혹시 모를 숙영에 대비하여 야영 장비를 마련하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공자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수고해주시게.”
자리에서 일어난 카미엘이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하자, 촌장은 한나에게 말했다.
“어떠하냐? 네 신랑감으로 아주 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자꾸만 그의 튼실한 버섯(?)이 생각나 머리가 아팠던지 한나는 고개를 획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흥! 몰라요, 그런 것!”
쾅!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자기 벼락처럼 소리를 지르니 촌장은 그저 눈만 끔뻑끔뻑 할 뿐이었다.
“아니, 저게 오늘 뭐를 잘못 먹었나? 왜 저러는 것이야!”
말을 탄 카미엘과 쿤트는 앞장선 촌장의 등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곳에 뭐가 숨겨져 있기에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데려간단 말입니까?”
“글쎄, 나로서도 알 길은 없네. 엘리안, 자네는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의 뒤에서 주위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며 말을 몰던 엘리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입니다. 겐트는 어획량이 풍부하고 군사적 요충지라는 것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앞을 보지 않고도 상황을 판단하는 엘리안을 본 쿤트는 비꼬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앞도 안 보고 잘 가는군. 혹시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은 아닌가?”
요전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 쿤트에게 엘리안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야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하지만 상대할 가치가 없어도 쳐다보지 않기도 합니다. 뭐랄까? 보통 개가 짓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뭐, 뭣이! 보자보자 하니까!”
“보면 어쩔 것 입니까? 목이라도 따시렵니까?”
“그런데 이놈이!”
“이놈이라니요? 불만 있으시면 실력행사를 해 보시던가요.”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둘을 본 카미엘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싸움은 연무장에서나 하고 병사들 앞에서 자중하게. 어린아이도 아니고!”
카미엘이 호통을 내리고서야 두 사람은 고개를 돌리며 싸움을 멈추었다.
“흥!”
동물과 남자의 유사성은 참 많다.
자기들끼리 우열을 가리기를 좋아하며 전투를 즐겨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둘은 참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묵묵히 말을 몰고 있는 촌장에게 다가간 카미엘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말했던 광산은 얼마나 남았는가?”
“조금 있으면 도착합니다. 지루하셔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아니, 지루하지는 않네. 이곳의 경관이 참으로 아름다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어.”
빈말이 아니라, 이곳의 경치는 정말로 장관이었다.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아 희귀한 식물들과 어우어진 숲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카이사르 공작께서는 이곳을 애지중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팔란 지역을 통틀어 이곳만큼 심혈을 기울인 곳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은 이곳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려 많은 노력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