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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8화)
8장 새로운 발견(2)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행렬은 이윽고 커다란 동굴의 입구에 다다랐다.
“오늘은 다행히도 몬스터들이 횡포를 부리지 않아 금방 도착하였습니다. 이곳부터는 걸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수풀이 무성한 언덕의 중간에 위치한 동굴의 내부에서 풍기는 기운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말을 지키는 몇 명의 병력을 남기고 전원 동굴로 진입하기로 하였다.
여기저기 넝쿨이 우거져 있어 잘못하면 가시에 찔릴 위험이 있었지만 병력들은 이리저리 잘 피해가며 언덕을 올랐다.
이윽고 입구에 도착한 카미엘은 내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중원의 향수를 느꼈다.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
“그다지 기억하기는 싫군.”
생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그곳의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다.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나 마치 천존살마대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앞장선 촌장은 행렬을 인도하였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제가 말씀드렸던 곳이 나옵니다.”
간간히 박쥐가 매달려 있어 생태가 원활이 돌아가고 있는 곳임을 짐작케 하였다.
일반적으로 광산이라 하면 인부들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길을 터놓거나 이정표를 만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폐광이라 말하기 힘들어 보였다.
자꾸만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해 나가던 카미엘은 우뚝 멈춰 선 촌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입니다. 이것이 카이사르 공작께서 이곳을 아끼던 진정한 이유입니다.”
촌장의 안내대로 아래를 내려다본 카미엘은 온몸이 굳어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거대한 옥색 수정들의 향연!
제각기 뾰족한 기둥들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있어 마치 원통에 설탕물을 뿌려놓은 듯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수정들은 보는 이의 소름을 돋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눈으로 보면서도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볼을 꼬집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카이사르 공작은 이곳이 변하지 않고 영유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손이 닿으면 어떻게 변질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사람의 몇 백 배가 넘는 크기의 수정도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수만 년 간 세월의 손길로 만들어졌을 동굴은 자연의 신비 그 자체였다.
알테인은 이곳을 지키고 싶어 겐트를 애지중지했던 것일까?
죽은 이는 말이 없는 법. 정확히 그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이곳이 소중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람 키의 몇 백 배는 될 법한 수정을 한없이 바라보던 카미엘은 문득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거대한 수정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동굴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지하의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은 동굴이 있었다.
그곳은 천마신교의 부교주의 직속기관인 천존살마대가 키워지고 단련되는 곳이었다.
누구든지 살아나가기 힘든 악명 높은 곳으로 유명했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손톱만큼의 온정이 남아 있기도 했다.
그때의 추억들이 떠올라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휘잉!
다시 지하에서 한차례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신선한 바람을 만끽하여 눈을 살짝 감았다.
카미엘 역시 눈을 살짝 감고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느꼈다.
예전 그가 부교주 시절에 느끼던 바로 그 바람이다.
점점 잦아드는 바람을 느끼며 눈을 뜬 카미엘은 바람에 떠다니는 특별한 향기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고개가 돌아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 카미엘은 상당히 익숙한 물체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식물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청심버섯?”
살수들은 어떠한 순간에도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호흡 하나에 임무의 실패는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엄청난 자기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오랜 훈련기간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도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랜 연구 끝에 카미엘은 심연을 차갑게 가라앉히는 약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청심환단’은 심신을 청량하게 만들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이나 흥분으로 인한 실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카미엘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버섯을 관찰하였다.
아마 카미엘은 신기한 것을 보면 쭈그려 앉아 관찰하는 습관을 가진 듯하다.
직접 뜯어서 맛을 본 카미엘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청심버섯이 확실하다.”
생약이나 요리를 해 먹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청심버섯은 몸에도 좋아서 그가 생전에 즐겨먹던 것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혼자 동굴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희한하게 생긴 버섯을 먹고 있는 카미엘에게 다가온 일행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그리 맛있으십니까? 그것은 그저 생버섯일 뿐인데…….”
버섯은 생으로 먹기가 참으로 껄끄러운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버섯을 뭐가 그리 맛있는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음미하는 카미엘을 보며 일행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앉아서 여기에 난 버섯들을 따서 가방에 챙기게. 정력에 엄청나게 좋은 약일세. 아, 그리고 자네 머리숱에도 도움이 될 것일세.”
남성들 최고의 관심사라면 탈모와 성생활일 것이다.
공통 관심사가 나오자 너 나 할 것 없이 냉큼 쭈그려 앉아 빛의 속도로 버섯을 채취하였다.
팔짱을 낀 엘리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한 듯 말했다.
“쯧쯧, 하여간 남자들이란…….”
세인트의 동굴 앞.
100여척의 함대가 질서정연하게 정박해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사내.
테미안은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출정준비를 서두르는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군, 카미엘이 겐트를 점령했다 합니다.”
아침은 신선한 과일과 야채로 시작하는 테미안은 자신의 옆에 놓인 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어 한입 베어 물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숨을 곳을 찾기 마련이지. 당연한 결과다. 그렇지만 의외군.”
“무엇이 말입니까?”
“설마하니 그 꼬맹이가 겐트를 점령할 대담한 생각을 하다니.”
“내부에서 조력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력자? 변절자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테미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변절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 일렀거늘……. 실망이군.”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머리를 땅에 쿵쿵 찧으며 선처를 비는 부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다.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부복을 한 사내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냉혈한으로 유명한 테미안의 눈에 잘못 들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몰살당할지 모른다.
사내는 땅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사과를 한입 베어 문 테미안은 그의 옆을 지나 선박을 내려갔다.
“당연하지. 그랬다간 너와 네 식솔들을 모조리 태워죽일 테니”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부하를 뒤로한 테미안은 등을 돌려 함선을 내려갔다.
선박에서 몸을 내린 테미안을 본 여인이 몸을 날려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앞에 부복한 한 여인을 보며 테미안은 입을 열었다.
“겐트를 포위하라. 실패할 시에는 네년의 목은 물론이고 네년의 식솔들은 잿더미가 될 것을 명심하라.”
“예, 주군.”
테미안은 굳건한 의지를 담은 그녀의 눈을 보며 자신의 은신처로 들어갔다.
9장 전신(戰神) 테미안(1)
어제부터 시작된 꽃샘추위는 병사들의 발과 귀를 꼬투리 삼아 자꾸만 괴롭히고 있었다.
환골탈태를 겪기는 했으나, 혈맥의 상태는 여전히 불안하여 정상의 몸이 아닌 카미엘은 심장 부근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연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남몰래 가슴을 어루만지던 그의 앞에 한 병사가 달려와 부복을 하였다.
“함대장님! 지금 본대와 모종의 세력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본대가?”
본대의 병력은 1만이 되지 않는다.
국가 전력을 가지고 있다 예상되는 반란군에게 발목을 잡힌다면 헥토르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카미엘은 뻐근해 오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헥토르가 승전을 한다고 해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카미엘은 부복하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가서 본대에게 전하라. 뱃머리를 돌려 겐트로 신속히 이동하여 함께 방어를 준비하자 이르라.”
“예, 알겠습니다.”
카미엘은 그에게 비상하는 매가 새겨진 명패를 주어 전령의 임무를 맡겼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기가 스며드는 심장에 지속적으로 진기를 주입해보던 카미엘의 앞에 또 다른 병사가 달려와 부복하였다.
“함대장님, 반란군이 이곳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 합니다.”
어떤 자가 사령탑을 맡았는지 그 얼굴이 궁금해진 카미엘은 함대에 명령했다.
“바다로 나간다. 계획대로 그들을 집어삼킨다.”
닻을 내려 정박 중이던 함대에 출발 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뿌우!
“닻을 올려라!”
돛을 펼쳐 바람의 탄력을 받은 10척의 전함은 힘차게 바다를 갈랐다.
병사들은 분주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선미에 올라서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겨울바람을 맞던 카미엘의 곁으로 쿤트가 다가왔다.
“함대장님, 지시하신 사항을 모두 점검하였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알겠다. 돌아가 내 지시를 기다리라. 오늘은 반드시 승전한다.”
“예, 함대장님!”
쿤트는 카미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계속하여 전방을 주시하던 그의 귀로 관측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함대장님! 전방에 적 함대가 출몰하였습니다!”
카미엘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 함대는 현재 위치를 고수하며 사격을 준비한다!”
군대는 노포와 투석기를 장전시켜 카미엘의 신호를 기다렸다.
“예상보다 규모가 훨씬 크군.”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해적선의 수는 어림잡아 50여대가 넘어 보였다.
고작 열 대로 50여척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꿈같고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함대를 믿어보기로 한다.
꿀꺽!
병사들은 점점 가까워지는 적 함대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 말 없이 전방을 주시하던 카미엘은 마침내 사격을 명령하였다.
“쏴라!
피융!
슈웅!
거대한 화살과 바위덩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펑!
열기를 한껏 머금은 돌덩이가 적의 대열 첫 번째 함선에 적중하였다.
선제타격에 성공한 카미엘은 다시 사격을 명령하였다.
“계속해서 발사하라!”
핑핑핑!
아군의 화살이 적군 함대에 명중하며 들어가자, 적 함대에서 반격을 해왔다.
엄청난 숫자의 돌덩이들과 화살이 하늘을 까맣게 덮었다.
쾅쾅!
“으악!”
“컥!”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내며 날아온 돌덩이가 함선의 이곳저곳에 떨어지며 순식간에 벌집을 만들고 말았다.
함선이 벌집이 되는 만큼, 병사들의 피해도 속출했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화살을 뿌려대는 적 함선을 보며 카미엘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 장전하라!”
“재장전!”
투석기와 노포가 장전되자 카미엘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쏴라!”
“발사!”
슈웅!
궁수들도 활시위를 먹였다.
핑핑핑!
한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카미엘은 퇴각명령을 내렸다.
“뱃머리를 돌려 퇴각하라!”
땡땡땡!
퇴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불에 탄 10척의 함대가 후퇴를 시작하였고, 적은 맹추격을 해왔다.
“노를 저어라! 신속하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궁수들은 계속하여 적에게 화살을 쏘며 저항을 하였고, 지하에서는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카미엘은 점점 속도를 올리는 적과 바다 위를 동시에 번갈아보았다.
‘조금만 더.’
도망가는 카이사르 해군을 미친 듯이 추격해오는 반란군은 카이사르 함대의 전멸을 목표로 하는 듯했다.
아군의 피해가 속출했지만 카미엘은 여전히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아오는 적의 화살과 바위덩이라 병사들을 후려쳤지만 그는 미동치 않았다.
부하들의 비명 소리를 뒤로하며 바다 위를 지켜보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빨간색 깃발을 올려라!”
순간, 잔잔한 물결이 일며 거대한 밧줄에 당겨졌다.
전속력으로 노을 젓던 적 함대는 거대한 밧줄에 선미부분이 걸려 순식간에 겹겹이 충돌을 일으켰다.
콰쾅!
거대한 선박끼리 부딪히는 바람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하였고 배의 이곳저곳에 심각한 파손을 가져왔다.
카미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앞뒤 가리지 말고 무조건 퍼부어라!”
쾅!
적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쳤지만 이미 엉덩이에 머리를 박은 배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들의 씨를 말려라! 계속 퍼부어라!”
노예들은 반대로 힘껏 노를 저었지만 50척이나 되는 함선들이 혼선을 빗어 단시간에 탈출하기는 힘들어보였다.
슈웅!
쾅!
순식간에 발이 묶인 반란군은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전멸할 위기를 맞고 말았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함대를 전멸시키기란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인 듯했다.
“적을 섬멸하라!”
카미엘은 불타는 적 함대를 보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