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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19화)
9장 전신(戰神) 테미안(2)


한바탕 폭풍이 쓸고 지나간 전장에는 카이사르 해군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카이사르 만세!”
“칼리어스 만세!”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병사들은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카미엘 역시 이곳저곳에 생긴 상처에서 적지 않은 피가 흐름에도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듯 함성을 질렀다.
무려 50대 10의 싸움.
누구도 대승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만큼 승리의 기쁨도 진하였다.
검을 쥔 카미엘은 있는 힘껏 함성을 토해냈다.
“칼리어스 만세!”

***

팔란으로 향하는 길목.
그곳에는 이미 테미안의 함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해적으로 위장하여 카이사르를 압박하였지만, 때가 되었다고 느낀 테미안은 자신의 정체를 랭턴에게 노출시키기로 한 것이다.
함대의 중앙에 위치한 테미안은 말린 과일과 아몬드를 먹으며 전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항상 저녁식사를 이런 식으로 행하는 터라 그와 식사를 해 본 이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이 전혀 없는 식단을 고수하기 때문에 기름진 음식이라고 해봐야 견과류 정도일 것이다.
“테미안 님.”
어느 새 밧줄을 잡고 올라온 사내를 보며 테미안은 그저 고개들 돌렸다.
“랭턴의 본대가 이 근방을 곧 지날 것 같습니다. 준비할까요?”
그는 말없이 손을 들어 긍정의 의사를 표할 뿐이었다.
다시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 사내는 부하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한참 식사를 즐기던 그의 눈에 멀리서 접근중인 함대가 보였다.
이윽고 몸을 날린 그는 놀랍게도 3층 건물 높이를 뛰어내려 가볍게 착지하였다.
“전투를 준비하라.”
땡땡땡!
병사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정규군이 함성을 지르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신호 하나만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가며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의 훈련 상태가 최상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테미안은 직접 나팔을 들어 진을 형성한다는 신호를 울렸다.
뿌우!
엄청난 폐활량이다.
옆에 있던 참모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질 만큼 우렁찬 나팔이 울리자 50여 척의 함선이 반원의 형태를 펼치며 적을 포위할 준비를 하였다.
가시거리에 들어온 함대는 카이사르의 비상하는 매의 깃발을 나부끼고 있었다.
테미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노포와 투석기를 준비한다.”
그의 수석 참모인 헤리슨이 푸른색 깃발을 들어 올리자 각 함대의 망루에 같은 깃발이 올려졌다.
기수들은 깃발을 들어 올려 테미안의 신호를 기다렸다.
테미안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속으로 밤바다의 성난 파도가 일렁인다.
조금씩 파도의 리듬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발사.”
기수들의 깃발이 일제히 내려지며 본격적인 사격이 시작되었다.
슝슝슝!
50여개의 바윗덩이가 달빛을 가르며 카이사르 진영으로 날아갔다.
펑!
절반은 명중하였고 나머지는 바다에 파장을 만들며 가라앉았다.
공성전에서 쓰이는 대형 활인 노포의 거대한 화살이 선체로 날아가 박히며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다.
잠시 주춤거리던 카이사르의 함대는 반격을 해왔다.
“테미안 님!”
무작위로 떨어지는 바위덩이에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참모들은 그를 선실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거절하였다.
“그래서 어디 군인이라 하겠는가? 바다에서 살아왔다는 사람들이…….”
슈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바위덩이를 보며 병사들은 그저 눈을 질끈 감을 뿐이다.
우왕좌왕 뛰어다녀 봤자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에 테미안은 미리 훈련을 실시했던 것이다.
“어찌 참모라는 자들이 병사들만 못하단 말인가!”
펑!
“으악!”
“내, 내 다리!”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
테미안은 직접 부상당한 병사를 선실로 옮겼다.
“위치를 고수하라. 혼란을 야기하는 자는 군율로 엄히 다스린다.”
다치지 않은 군사들은 멀쩡한 자신의 팔다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재장전을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참모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는 하지만 바위가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겁을 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 본연의 감정마저 통제하는 냉혈한 테미안을 보며 참모들은 자신들의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더 이상 앓는 소리를 했다간 그의 손에 직접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체와 부상병을 옮기는 참모들을 보며 테미안은 다시 나팔을 불었다.
뿌우, 뿌우!
다시 일자진으로 진을 바꾼 테미안은 기수에게 발사를 명령하였다.
“계속하여 투석기와 노포를 날리라!”
테미안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계속하여 원거리 사격을 실시하였다.
화력에 있어 동등한 위치를 점하여 전투에 임하던 두 함대의 균형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
테미안은 빨간 깃발을 흔들었고, 기수는 지하로 내려가 신호를 주었다.
이윽고 선미의 가장 앞부분에 문이 열리며 거대한 작살이 날아갔다.
슝!
공기의 파공성이 옆에서 들릴 정도로 육중한 작살은 카이사르 해군의 전함 정중앙에 정확히 들어갔다.
이윽고 선체의 지하로부터 침수가 일어나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하였다.
대열의 맨 첫 번째 전함들이 침수에 허덕이고 있을 때, 테미안은 다시 검은 깃발을 흔들었다.
기수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 검은 깃발을 보였고, 작살에 연결된 도르래에 대기하던 병력들이 온 힘을 다하여 줄을 감았다.
선박을 인양할 때 쓰이는 굵은 밧줄은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아 이대로라면 작살이 박힌 선박들은 테미안의 함대와 백병전도 불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백병전을 준비한다.”
사력을 다하여 노를 젓던 병사들은 지상으로 올라와 테미안의 지시대로 백병전을 대비하였다.
“모조리 쳐 죽여라, 포로는 필요 없다!”
백병전용 밧줄을 잡은 테미안은 동공을 크게 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피를 갈구하는 악귀 같은 미소를 본 참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껏 즐겨라! 오늘밤은 칼리어스 졸개들의 피로 목욕을 할 것이다! 크하하!”

겐트의 벌목장.
여기저기에서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톱질 소리와 도끼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카미엘이 망치와 줄자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카미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한 가지에 몰두하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인 남성의 허리둘레만한 원형 틀에는 예리한 톱니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중앙에는 용수철이 달린 원판이 달려 있어 뭔가에 반응하도록 만든 듯했다.
마을 청년들과 병사들을 끌어 모아 나무를 나르던 쿤트는 쪼그려 앉아서 또 뭔가를 만들고 있는 카미엘에게 다가갔다.
“참으로 희한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은 무엇이 쓰는 물건입니까?”
잠시 손을 가져다 대려던 그의 보며 카미엘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어어, 조심하게! 잘못하면 자네의 손목이 날아갈 테니.”
“예? 혹시 이것은…….”
카미엘은 대답 대신 굵은 나무를 덫의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철컥!
건장한 사내의 어깨 넓이만한 나무가 한 순간에 아작이 나버렸다.
쿤트는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조각이 나버린 나뭇조각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다. 이 정도하면 손목이 아니라 허리가 통째로 두 동강이 나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허리를 잘라 버릴 만한 크기도 준비를 해 두었네.”
카미엘은 작업 공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덫을 가져와 펼쳤다.
태엽의 원리를 이용하긴 하지만 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릴 듯했다.
끼익!
“걸리면 즉사할 수밖에 없지. 후훗.”
쿤트는 카미엘의 사악한 미소를 보며 몸을 떨었다.
만약 저런 사람을 적으로 만났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하니 오름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카미엘은 한아름으로 다 재지도 못할 통나무를 덫에 올려놓았다.
쾅!
엄청난 쇠의 마찰음이 들리며 거목의 일부분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꿀꺽!”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덫이 설치되면 병사들에게 함부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이르게.”
“예……. 알겠습니다.”
어쩐지 공자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의 착각이었을까?
다시 장비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카미엘은 자신 앞에 부복한 엘리안의 등장으로 멈추고 말았다.
“주군, 큰일입니다.”
“큰일이라니?”
“카이사르의 본대가 반군 무리에게 대패를 하여 북쪽으로 패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본대가 대패를 했단 말인가? 천하의 헥토르가!”
기사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헥토르의 패배는 카미엘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설마하니 대패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령탑에는 블랙다이아몬드의 테미안이 있었겠지요.”
“블랙다이아몬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요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은 해적이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소인도 알 수는 없습니다만, 단체의 수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백수십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불한당의 정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해적으로 위장하여 세력을 키우고 있었겠지요. 자세한 것은 더 깊이 조사를 해야 하겠습니다만, 저의 예상으로는 몇 년 안에 카이사르 본토로 진격을 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백주대낮에 얼굴을 들고 다닐 처지가 아닐 테니.”
“테미안이라면 능히 그럴 능력이 됩니다. 아니, 그러고도 남을 인재입니다.”
카미엘은 요전에 있었던 첫 전투를 되새긴다.
신속하고 빠른 진법의 전개.
공격 배열의 적절한 교체.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의 인물인 줄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자네는 지금 당장 바다 위의 헥토르를 찾아오도록 하게. 이곳까지 상륙만 한다면 그들도 목숨을 건질 수 있어.”
“예, 알겠습니다.”
엘리안은 다시 숲으로 몸을 날려 그들의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던 쿤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블랙다이아몬드라는 집단의 존재가 정확한 정보라면 큰일이 아닙니까? 반란군이 형성된 것이니.”
카미엘은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해적의 탈을 쓴 반란군 세력.
그들의 구체적인 규모와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무엇 하나 결단내리기 힘들었다.
카미엘은 다시 연구에 몰입했다.
“테미안인지 나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이것에 걸리면 허리가 두 동강나게 되어 있네.”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신뢰가 가는 것은 카미엘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 쿤트는 다시 산을 내려갔다.

카이사르 본대의 사령탑.
헥토르는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화살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가슴에 흉터가 남은 것이다.
앞으로 랭턴 부자의 얼굴을 볼 낮이 없다 생각한 헥토르는 최선을 다하여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본대의 간부들을 모두 소집시킨 헥토르는 앞으로의 방향을 토론하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
“이번 전투에서 아쉽게 패배했으나 아직 전세가 기운 것은 아니다. 방금 공자님의 전령이 당도하였다. 자랑스럽게도 전함 50척을 가진 함대를 몰살시켰다고 한다. 지금 겐트에 진을 치며 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우리도 하루빨리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여기저기에 붕대를 칭칭 감은 함장들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열한 전투 속에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이곳저곳이 부러지거나 관통을 당하여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적의 수장이 얼마나 맹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그를 뛰어넘는 인재가 있다.”
함장들은 전적으로 상당히 수긍하는 눈치였다.
“카미엘 공자의 비상한 두뇌와 검술이 우리에게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이번 토벌 전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장담할 수 있다.”
헥토르는 상황판에 올려 진 본대의 함선 수를 헤아려본다.
“남은 전함의 수는 총 15척. 공자님의 함대의 규모가 8척인 것을 감안하면 다음 전투가 절망적이지 않다. 우리가 유동 가능한 병력의 수가 어떻게 되는가?”
“사망자와 부상자까지 제외하면 4천 명 정도 됩니다.”
“본인의 과실로 병력의 절반을 잃은 것은 내 가서 공자님에게 직접 문책을 맡길 것이니 그대들은 앞으로 있을 수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놓게.”
“알겠습니다, 함대장님.”
헥토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려서 망나니로 통했던 공자가 설마 이렇게 훌륭하게 클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늘은 아직 우리 편인가 봅니다,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