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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20화)
9장 전신(戰神) 테미안(3)


한편 카미엘의 함대의 간부들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발명품 앞에 넋을 빼고 있었다.
“어떤가? 이번엔 제대로 된 함정일세. 한 번에 몇 백을 죽이기에 안성맞춤이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살아가긴 힘들 거야. 후후…….”
“…….”
일동들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땅을 통째로 파서 그 안에 크고 잘 벼려진 마름쇠를 집어넣는다.
마름쇠 혹은 철질려라 불리는 이 물건은 뾰족한 부분이 항상 위로 향하여 적의 발을 묶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물며 이것이 함정에 설치되어 있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철질려가 돌아가면서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거기다 이곳에 첨가된 엄청난 물체가 압권이었다.
“찔리는 것만으론 안 된다. 죽든 병신이 되든 둘 중에 하나는 해야 되지 않겠나?”
전갈과 뱀의 독을 섞어 만든 강독과 잘 숙성된 똥물을 뿌려 뾰족한 부분이 닿자마자 독이 퍼져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함대의 간부들은 자신들이 지휘관을 잘 만났다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적군이 이곳을 지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아무리 적의 진군을 막는다지만…….”
조심스레 입을 연 쿤트를 보며 카미엘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아군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내 병력이 다치느니 남의 병력이 다치는 것이 백번 맞다. 그렇지 않은가?”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그의 말은 백번 지당한 것이었다.
간부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을 넘어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고 무서운 면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만약 카미엘에게 밉보였다간 정상적으로 죽기 힘들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카미엘은 잘 숙성된 똥물이 내뿜는 냄새에 머리가 아픈지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자, 다음은…….”
“또?”
“왜? 보기 싫은가? 보기 싫으면 말던가.”
“아, 아닙니다! 소신들이 어찌 함대장님의 작품을 감상하지 않겠습니까?”
살짝 얼굴이 굳었던 카미엘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렇지? 이쪽으로 와보게. 이것은 내가 숲을 지나는 이들을 잡기 위해 만든 것인데…….”
나무에 커다란 대못을 밖은 함정부터 무인 화살발사대까지.
그가 천존살마대에 있으면서 갈고닦았던(?)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설치한 함정들은 정말 기상천외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서 이곳을 지나기 힘들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어차피 그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세.”
카미엘은 자신의 군대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 던 할 사람 같았다.
그런 카미엘의 성격은 차기 영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계속하여 방어약도에 나와 있는 갖가지 함정을 브리핑해 주던 카미엘의 앞에 한 병사가 달려와 부복하였다.
“적군의 깃발을 단 함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합니다!”
“예상보단 조금 빠르군.”
카미엘은 약도를 접어 가슴 속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본대가 아직 당도하지 않았거늘! 하는 수 없다.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예, 공자님!”
성에는 전투준비를 알리는 종이 울리며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망루에 봉화를 피워 주민들을 대피시킨 쿤트는 갑주를 조여 입으며 전방을 주시하였다.
“다시 올 것이 왔군.”


10장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1)


겨울의 끝자락을 달리는 테미안의 함대는 겐트의 지척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마 성의 망루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봉화에 불이 피워진 것을 보니, 강습에 대하여 준비하는 듯했다.
테미안은 미소를 지었다.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더니, 놈들이 꽤나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해상에서 육지의 상륙로가 보일 때까지 병력의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래도 선상보다 성을 사수하며 버티겠다는 뜻일 것이다.
어렵사리 빼앗은 교두보를 다시 잃기는 싫어 문을 걸어 잠근 것이리라.
멀리 보이는 뭍에는 꽤나 단단한 방비를 갖춘 듯 보인다.
여기저기에 놓은 목책은 상당히 단단해 보였고, 그 위에는 궁수들과 소형 투석기가 다수 위치해 있었다.
그야말로 요새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았다.
“육지에 들어서자마자 대열을 갖추고 공성장비를 조립한다.”
“예, 알겠습니다!”
동분서주하는 겐트의 병력을 보며 테미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시원하게 들이받아 주마!”
이윽고 함대가 지상에 닿자, 병력들이 하선하였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등에는 원형방패가 달려 있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방패는 칼리어스의 것보다 뛰어나 보였다.
속속들이 지상에 내려오는 테미안의 군대의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슝슝!
화살과 투석기가 바람을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방패를 들어라!”
퍽퍽!
“으악!”
“컥!”
해상에서 사용하는 투석기의 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육중함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바위가 떨어지는 곳마다 시신조각이 낭자하였고, 화살이 스친 곳은 병사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목책을 엄폐물 삼아라! 신속하게 움직여라!”
테미안은 전방으로 몸을 날려 병사들과 함께 목책을 향해 달려갔다.
전력질주를 하던 병사들이 하나둘 땅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땅으로 꺼져버린 병사들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으, 으억! 살려줘!”
“끄아아악!”
테미안은 그 속에서 지옥을 보았다.
똥물과 독물이 섞여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구덩이에 빠진 병사들은 눈이 뒤집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굴러다니는 철질려의 모서리에는 병사들의 살점이 붙어 있었다.
“이런 지독한!”
냉혈한 테미안마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극악무도한 함성은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설치한 장본인을 생각하니 테미안은 오히려 미소가 그려졌다.
“어지간히 하는구나, 꼬마야!”
테미안은 재빨리 몸을 날려 화살을 피하며 목책사이로 몸을 숨겼다.
빗발치는 화살과 무작위로 떨어지는 바위덩이들 때문에 해변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와중에 목숨을 부지한 병사들은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린 채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진격인가, 아니면 퇴각인가.
테미안은 전방을 주시하였다.
“돌격하라!”
후방에서 공성망치가 달려오고 있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돌격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고 해변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테미안 역시 등에 원형방패를 앞세워 돌진하였다.
슝슝!
머리를 스치는 화살의 비를 피해내며 지그재그로 성문을 향하여 달렸다.
그야말로 전신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성문에 거의 다다를 즈음 그는 자신을 향하여 날아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피해냈다.
예리하게 벼려진 비수가 그의 잔영을 스치며 땅에 박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인은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테미안은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덫에 결려 죽어 가는 병사들을 보았다.
각가지 곰덫이 튀어나와 발목을 자르는가 하면, 거대한 덫이 튀어나와 허리가 잘리는 병사도 있었다.
“아악, 내 다리!”
아킬레스건이 잘려서 못 움직이는 사내와 정강이가 부러진 사내는 서로 부축하며 전장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윽고 다시 땅이 꺼지면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도 없는데 화살이 날아오는가 하면 갑자기 땅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벌써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온전한 시체를 찾아보기 힘든 지옥은 다름 아닌 카미엘의 작품일 것이다.
성벽에 오르기도 전에 줄줄이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아무리 테미안이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희한한 함정은 그를 상당히 혼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테미안은 목청껏 외쳤다.
“돌격하라! 적의 치졸함에 굴하지 마라!”
진격하는 병사들은 3분의 1이 함정에 걸려 죽거나 화살에 맞아 죽어 버렸다.
그래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던 테미안은 멈추어 설수 밖에 없었다.
성벽의 아래에는 독을 칠갑하여 색이 변한 철질려가 수없이 박혀 있어 다가서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카미엘의 철저함에 테미안은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
“하하!”
독기가 바짝 오른 테미안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성벽을 올라라!”
가죽으로 만든 전투화는 철질려에 뚫려 상처를 만들었고, 병사들은 사색이 되어 죽어갔다.
하늘에서는 돌덩이와 화살이 떨어지고 지상에는 이름 모를 함정이 즐비하여 발 디딜 곳이 없었지만 그래도 진격은 계속되었다.
전우들의 시체를 발판삼아 성벽에 도착한 병사들을 향해 테미안은 외쳤다.
“방어진을 형성하라!”
척!
일사분란하게 방패를 일렬로 붙여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성벽에서는 뜨거운 기름이 쏟아져 병사들이 화상을 입었다.
“아악! 내 얼굴!”
“눈이 안 보여!”
저마다 부상당한 부위는 달랐지만 그들은 이제 불구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제대로 기름이 부어진 것을 본 성벽의 병사들은 불화살을 장전하였다.
핑핑!
“으악!”
거센 불길이 병사들의 온몸을 불태우며 사람살이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무리 바닥을 구른다지만 한 번 일어난 불길은 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서 사다리를 준비하라!”
한손에는 방패를 들고 사다리를 이동시키던 병사들은 속력을 내 성벽에 사다리를 대었다.
돌덩이가 마구 쏟아져 접근이 쉽지 않아 낙사를 면치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성벽을 오르는 병사들을 앞 세워 공성망치가 도착하였고 굳건한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성벽을 넘어야 한다! 성문을 두드려라!”
쿵!
한 번 타격이 될 때마다 성문은 심하게 흔들렸지만 결코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어 성문을 타격하던 병사들의 머리 위로 다시 뜨거운 기름이 쏟아졌다.
“으악!”
순간 테미안의 동공이 크게 열린다.
이대로라면 공성망치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서 떨어져라! 몸에 불이 붙을 것이다!”
이미 온몸이 다 익어버린 병사들은 차가운 바닥을 굴러다녔고 어김없이 하늘에서는 불화살이 떨어졌다.
화륵!
“크악! 사, 사람 살려!”
불덩이가 된 병사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괴성을 질렀고, 공성망치는 마침내 불에 타 버렸다.
테미안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결코 이 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어서 퇴각하라!”
뿌우!
마침내 퇴각나팔이 울리고, 병사들은 앞다투어 전장을 빠져나갔다.
테미안 역시 병사들과 함께 자신들이 상륙했던 함대로 돌아갔다.
달리는 내내 그의 눈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이래야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