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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21화)
10장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2)
칼리어스의 국왕이 기거하며 나라를 굽어보는 왕궁.
국왕 칼번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 여러 가지 서류를 검토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고서 더미에서 문서를 꺼내 하나씩 읽어보던 칼번은 상당히 흥미로운 보고서를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카이사르 토벌대 제 1군 함대장 카미엘이 적군을 격파하여 겐트를 수복하였음. 50여 척의 적 함대를 몰살시키고 적의 본대와 대치 중에 있음]
겨우 5천의 군사로 약 2만의 군사를 전멸시킨 것으로 모자라 작은 철옹성으로 유명한 겐트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은 칼번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강렬한 눈빛.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
그리고 젊은 나이로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검술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사내였다.
게다가 요전의 약품사업은 성공을 넘어서 대륙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칼번은 부마 후보로 그가 슬슬 탐이 나기 시작했다.
제피로스의 집안과 혼담이 오가고 있으나 아직 성사된 결혼이 아니니 잘만 하면 제대로 된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직 정치적 기반을 다지지 못한 왕세자 유피아의 측근으로 상당한 힘이 되어줄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놈 참,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군.”
칼번은 턱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실리아의 콧대를 꺾을 남자는 카미엘뿐이었다.
“여봐라!”
칼번의 부름에 환관이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지금 당장 왕세자와 세실리아 공주를 데려오라.”
“예! 폐하!”
환관은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고, 칼번은 다시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그의 전적을 다시 살펴본 칼번은 칼리어스 기사들의 우상인 알테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칼번은 어쩌면 새로운 전설을 만들지 모르는 사내를 놓치기 싫어졌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환관이 내는 기척에 턱에서 손을 떼었다.
“폐하! 왕세자 전하와 공주마마가 들어 있사옵니다!”
“들라.”
문을 열고 들어온 왕세자와 공주는 왕실의 예법에 맞게 인사를 하여 문안을 하였다.
“찾아계시옵니까, 아바마마.”
“둘 다 앉거라.”
어쩐 일로 집무실로 불려온 두 사람은 어색하지만 오랜만의 대면으로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서 어쩐 일로 소자와 세실리아를 집무실로 다 부르시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아바마마.”
칼번은 말없이 시종이 내온 차를 두 사람에게 권하였다.
향기로운 차 냄새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음! 생전 처음 마셔보는 차입니다. 어느 지역의 차이옵니까?”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세실리아는 이국적인 색감의 차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것은 랭턴 공작의 아들 카미엘이 카이사르의 숲에서 따다 말린 것이라고 하더구나. 정확히 어떤 잎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향이 일품이지 않느냐?”
카미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세실리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칼번은 자신의 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커다란 눈망울은 옥색 진주를 가져다 박은 듯했고, 크고 진한 속눈썹은 가늘고 진한 눈썹과 잘 어울려 보였다.
계란형 얼굴형은 넓지 않고 오뚝한 콧날과 잘 조화가 되어 있었고 적당히 넓은 입술은 앵두처럼 윤기가 있어 미소를 지으면 상당히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칼번은 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너는 어떤 부마가 좋다고 생각하느냐?”
“아바마마!”
세실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쌀쌀맞기로 유명한 얼음공주라도 아버지 앞에 서면 그저 귀여운 딸일 뿐이었다.
귀까지 새빨개진 세실리아를 보며 유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 아바마마께서 점찍으신 공자라도 있사옵니까?”
칼번은 조용히 비상하는 매가 그려진 인장이 찍힌 보고서를 내밀었다.
“카이사르? 카미엘 공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순간 세실리아의 눈이 크게 떠지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유피아는 반색을 표하였다.
비록 가세가 기울었던 집안이기는 하나, 명실공히 공작가문이다.
게다가 그의 집안은 대대로 검공의 칭호를 얻었으며 카미엘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적수가 없기로 유명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타고난 상재를 지녔다는 것.
칼번은 보고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카미엘이 팔란의 북부의 군사 요충지인 겐트를 공략하였다고 한다. 2만의 적군을 몰살시키고 50여척의 전함을 불태웠다고 하는구나. 게다가 겐트를 공략할 당시 그의 손에는 4천의 군사가 전부였고, 2번의 전투를 치르고 난 후였다고 한다. 어떠하냐, 유피아. 이 정도면 부마 후보로서 충분하다 생각하는데.”
유피아는 평소 카미엘의 그릇이 작지 않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승전 소식은 듣기 좋은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흥! 그렇게 숙녀를 기만하는 자는 절대 저의 부마가 될 자격이 없사옵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제피로스의 영애와 혼담이 오가고 있다 들었습니다.”
칼번은 그녀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딸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왕실에는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이대로 공자를 제피로스에게 빼앗겨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하긴, 그 집 영애도 어지간히 곱긴 하더구나. 수더분한 구석도 있는 것 같고.”
순간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며 닫힌다.
분명히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벼, 별로 그렇지는 않지만…….”
“어떠하냐? 카미엘을 놓고 경쟁하면 이길 자신이 있더냐? 아무리 우리가 마음에 들어도 그쪽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말짱 허사일 것이다.”
서서히 고개를 든 세실리아는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소녀가 이곳에 있는데.”
유피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동생이 조금 까칠하고 공격적인 성향이 있지만 항상 칼번의 손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소자가 카이사르에 혼담을 넣고 오겠사옵니다.”
“세자가?”
“세실리아가 시집을 가지 않아, 소자도 답답하던 차였는데 잘된 일이 아니옵니까?”
정곡을 찔린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유피아를 째려본다.
“왕세자 전하!”
칼번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박수를 쳤다.
“그래, 그리하라. 그럼 이 아비는 막내의 혼처를 알아보마. 어째 그 녀석도 시집을 못 가고 저러고 있으니.”
부자의 얼굴은 환하게 피었으나 세실리아의 표정은 뭔가 미묘하게 복잡해 보였다.
한편, 부마로 낙점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카미엘은 작전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말 공자님의 전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정말 대승이었다.
적은 변변한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퇴각함은 물론이고 엄청난 병력 손실까지 입었다.
만약 이대로 2차 침공까지 막아낸다면 적은 강습을 포기할 확률이 높았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네. 저들이 2차 침공에는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르니. 헥토르가 완패하여 패주할 정도면 보통내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정말 그러했다.
적장 테미안은 정말 전신의 칭호가 아깝지 않을 장수였다.
멀리서 본 그는 화살을 이리저리 피하며 전진하였고, 전장을 호령하는 카리스마가 남달랐다.
만약 그가 아군이었다면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함정을 증설해야겠네. 아, 그리고 내가 뭘 좀 그려보았는데…….”
품속에 움직이는 카미엘의 손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뒤적거리던 그는 마침내 설계도를 꺼내어 펼쳤다.
“오! 공자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상에……. 정말 발명가로 나서셔도 될 뻔했습니다.”
매번 기상천외한 물건을 개발해 내는 카미엘의 두뇌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별것은 아니고, 나중에 본성으로 돌아서도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만들어 보았네.”
함장들과 참모들은 설계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가시그물일세.”
상상만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참혹한 무기였다.
가시가 촘촘히 달린 그물은 독이 듬뿍 발라져 던지는 즉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는 무기였다.
자세히 상상하면 비인도적이긴 했으나, 전쟁에서 인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대량살상이 가능하다면 병력의 차이는 숫자에 불과하네.”
병력의 차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저 현자들이나 쓸 법한 말인 줄 알았던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카미엘은 병력의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뛰어난 전략가임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금부터 그물이란 그물은 모조리 모아오게. 독극물은 내가 어느 정도 확보를 해 놓았으니, 대량의 그물만 있다면 공습이 들어올 쯤에는 사용이 가능할 것이네.”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불현듯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카미엘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투석기?”
밖으로 나간 카미엘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투석기의 바위에 병사들은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위치를 고수하여라!”
카미엘의 등장에도 병사들은 어둠 속의 혼돈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쾅!
“으악!”
내일이면 눈이 오려는지 잔뜩 이나 낀 달무리 때문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아 돌덩이를 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자리를 고수하라! 궁수들과 투석기 병들은 자리를 고수하라!”
혼비백산하던 병력들은 각 담당관의 등장에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암흑 속에서 펼쳐지는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어서 투석기에 장전을 하라!”
“어디로 돌을 날려야 합니까?”
그저 감으로 사격을 하는지, 적은 작은 불씨하나 사용하지 않는 듯했다.
쾅!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돌덩이에 병력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속히 자리를 잡은 투석기는 돌을 날리기 시작했다.
“쏴라!”
슈웅!
앞도 보이지 않아 정확히 명중하는지, 빗나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적의 공격이 멈출 때까지는 대응사격을 해야 했다.
겨우 한 발을 사격했을까?
전방에서 돌이 날아오는 소리가 멈추었다.
“공격을 멈춘 것 같습니다!”
카미엘은 전방을 주시했다.
“아직이다. 철수하지 말고 대기하라. 놈들은 반드시 재차 공격을 해 올 것이다. 쿤트!”
“예, 공자님!”
“자네는 가서 가시그물을 만들어놓게. 반드시 사람을 죽이기 좋게 만들어야 하네. 명심하게.”
“예, 알겠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새벽에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성을 기습하기엔 어둠이 적격이다.
적들은 이점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무식한 해적 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머리가 좋군.”
다시 성벽은 잠잠해졌고 병사들은 오랜 전투에 지쳐 눈이 풀린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병사들의 사기는 저하 될 것이다.
카미엘은 병력의 절반을 대기시키고 나머지 병력을 다시 막사로 돌려보냈다.
쉬면서도 편하게 발을 뻗지 못하겠지만 피로가 누적되면 전투수행에 차질이 생긴다.
얼마간 전방을 주시하던 카미엘의 감각에 엄청난 속도의 물체가 걸렸다.
“노포다! 조심하라!”
쾅!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 성벽에 꽂히며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성벽 전체가 흔들거렸다.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성벽에 투석기의 지속적인 타격이 가해지면 성벽의 일부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될 것이다.
“도대체 저 많은 공성장비는 무슨 수로 공수하였단 말인가!”
카미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적장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궁병들은 불화살을 준비하고, 투석기에 기름 항아리를 실어 보내라!”
궁병들은 일렬로 정렬하여 활시위를 먹였고,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오른 불화살은 사정거리 안을 밝혔다.
기름 항아리에 불을 붙여 날려 떨어진 곳에 불이나 낙하지점이 밝아졌다.
일렬로 정렬한 궁병들과 투석기는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듯했다.
투석기의 사정거리 뒤로는 보병들이 다음 진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도대체 저들은 재정비가 필요 없단 말인가?”
엘리안의 말대로 테미안이라는 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저토록 병사들을 몰아치면서도 진열의 흐트러짐이 없었고 노포의 조준도 정확했다.
아마도 저들은 야간전투를 체계적으로 훈련한 듯 보였다.
“대단한 사람이군. 철질려와 유황단지를 준비하라!”
곧 있을 진격에 대비하여 철질려와 독극물을 준비한 카미엘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뒤통수를 조심해야 한다. 엘리안!”
“예, 주군.”
“자네는 특임 대를 편성하여 후방에서 들어올 병력에 대비하라!”
“명을 받듭니다!”
아마도 테미안은 그것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전방에서 교란하면 후방에서는 자객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후방으로 독극물을 운반하라. 적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제이슨!”
“예, 주군.”
“자네는 철질려를 가지고 엘리안과 합류하게. 절대 적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하라.”
“예, 주군!”
“파라얀, 쥬드!”
“예, 공자님!”
“자네들은 각각 측면을 방어하게. 지금쯤이면 사방으로 적이 몰려올 것일세.”
“명을 받듭니다!”
사방에 부하들을 배치한 카미엘은 다시 전방을 주시하였다.
“전군은 전투태세를 점하라!”
검을 쥐고 곳곳에 명령을 하달하던 카미엘의 앞에 한 병사가 부복을 하며 말했다.
“지금 사방으로 적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테미안은 투석기를 사격하기 전에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허를 찔린 카미엘은 이를 악물었다.
“오늘밤은 유난히도 길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