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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22화)
10장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3)
투석기에 돌을 실어 날리던 테미안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송이 같은 놈이 그 정도면 많이 한 것이다.”
아마 적은 지금에서야 방비에 들어갔을 것이고, 측면과 후방은 비교적 허술할 것이다.
“후방으로 자객을 침투시켜 카미엘의 목을 가져오라.”
“예, 주군!”
복면을 한 사내는 이내 몸을 날려 임무수행에 나섰다.
“오늘밤을 기하여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노포를 발사하는 병력에게 명령했다.
“진군하라!”
“와아아아아!”
순간 해변을 메운 함성소리에 테미안의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동공이 확장되었다.
등에 방패를 맨 테미안은 병사들의 최선봉에서 겐트를 향하여 달렸다.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을 감각만으로 피해낸 테미안은 등에서 방패를 꺼내어 들었다.
“방어진을 형성하여 돌격한다!”
어차피 적군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서 무작위로 활을 발사할 것이다.
일자로 거북이 등껍질 같은 진을 형성한 보병은 침착하게 성벽을 접근해 나갔다.
일렁이는 적의 횃불에 보이는 병력들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후훗, 그래도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측면과 후방을 수비하러 간 병력을 제외하고 나니 훨씬 수월한 전투가 이뤄졌다.
테미안의 후방에서 화살로 지워하는 궁병들 덕분에 수비 중인 병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겐트를 점령한다!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벌써 성벽에 사다리를 대었다.
테미안은 사다리의 선두에 올라서 힘차게 성벽을 올랐다.
방패에 갈무리 하였던 깃발을 입에 문 테미안은 처음으로 보이는 적군의 목을 베며 성벽에 올랐다.
푸악!
피가 솟구치며 주인을 잃은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앞뒤 가리지 말고 베어라! 오늘밤 이곳을 점령한다!”
테미안은 열심히 활을 당기고 있는 궁병들에게 몸을 날려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커억!”
다섯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허리가 두 동강 나버렸다.
그의 엄청난 완력에 병사들은 기겁을 하였다.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테미안의 화려한 검술 덕분에 성벽의 팽팽한 균형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적을 베던 그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지척까지 다가온 카미엘의 검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가까스로 카미엘의 검을 피해낸 테미안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오, 네놈이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공자 카미엘인가? 얘기를 많이 들었다.”
몸에서 붉은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카미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내가 천하의 역적에게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참, 유감이군.”
테미안은 자세를 낮춰 잡았다.
순간 카미엘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자세를 잡은 테미안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많이 보고 배워라, 어차피 죽으면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붉은색 잔영을 남긴 테미안은 직전으로 쏘아져 카미엘을 향했다.
챙!
일검을 막아낸 카미엘은 다음수를 예측하여 검을 아래로 내렸다.
챙! 챙!
연속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연거푸 막아낸 카미엘은 손이 저려오는지 어깨가 살짝 떨렸다.
기세에서 우세를 점한 테미안은 검을 어깨에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별것도 아닌 놈이 소문만 무성했군.”
얼굴에 당혹감이 넘쳐나는 카미엘을 보며 테미안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게 애초에 상대가 안 될 전투는 하지 말았어야지.”
이미 심마의 경지를 넘어선 테미안에게 카미엘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눈에 독기를 품은 카미엘은 그런 테미안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훗, 그래도 근성은 있구나!”
퍽!
“컥!”
측면으로 돌며 날린 각 법에 저만치 나가떨어진 카미엘은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쯧쯧, 저항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너와 부하들을 편하게 죽여줄 용의도 있다.”
검을 의지하여 일어난 카미엘은 박장대소하였다.
“푸하하하! 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너 같은 버러지가 날 죽인다니?”
“뭐라? 버러지! 허, 꼬마아이가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아마도 어린나이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어떻게 되었으리라.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테미안은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직 오러 마스터에 오르지도 못한 꼬마아이가 할 소리는 아닌 듯하구나. 하하!”
카미엘은 주머니에서 웬 버섯을 꺼내 씹어 먹었다.
그의 이해 안 되는 행동에 테미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죽기 전에 배라도 채우는 것이냐?”
깊게 심호흡을 한 카미엘은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검지를 까딱까딱하여 테미안을 도발하였다.
“덤벼라, 우리 집 강아지보다 못한 놈아!”
카미엘은 자신의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이 마성을 억지로 잠재워 나타나는 증상임을 알아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이지만 눈앞의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선 다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청심버섯을 꺼내어 한입에 집어삼켰다.
버섯의 향기가 입안을 매우며 심연이 차갑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남자가 한 번 살지, 두 번 살까?’
카미엘은 천마신공을 일주천시켰고, 몸속에서 엄청난 진기가 끓어올랐다.
“어디 그 잘난 실력 좀 보자꾸나!”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테미안을 본 카미엘은 폐부 깊숙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천마수라진격!”
몸을 뒤로 힘껏 젖히며 탄성을 모은 카미엘은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쾅!
이윽고 엄청난 파괴력이 테미안을 덮쳤고,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엄청난 먼지가 흩날리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무공이 떨어진 자리는 움푹 파여 있었다.
“컥!”
갑자기 찾아온 충격으로 각혈을 한 테미안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 다행이군. 너무 약해서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했더니 제법이구나!”
검을 밀어낸 테미안은 검을 아래에서 위로 그어 들어왔다.
붉은색 잔영이 일며 뜨거운 기운이 물씬 풍긴 그의 검을 피해낸 카미엘은 몸을 돌려 측면을 노리며 들어왔다.
캉캉!
아까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팽팽하게 반전되었다.
카미엘이 밀리는가 싶더니, 테미안이 밀리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의 승부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지던 두 사람의 대결은 한 병사에 의하여 깨지고 말았다.
“지원군이다!”
“와아아아!”
순간 엄청난 함성이 성벽 근처에서 울려 퍼지며 테미안의 군대를 도륙내고 있었다.
앞뒤로 압박하는 카이사르 군에 테미안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헥토르!”
“젠장!”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낮에 성을 돌파하려 병력의 3분의 1을 쓴 상태라 테미안의 군대는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카미엘이 그물이 소량 만들어져 전장에 투입되었다.
촤락!
멀리 던져진 그물에 걸린 병사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곳저곳에 선혈을 뿌려댔다.
“으악!”
“내 얼굴!”
머리와 얼굴이 갈고리에 걸려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도망가려 발버둥 칠수록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고 그 위로 카이사르 군은 끓는 기름을 부어버렸다.
상처가 난 곳이 악화되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병사들도 있었다.
적은 수량이었지만 가시그물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헥토르의 등장과 가시그물의 완성으로 전세는 급반전 되고 있었다.
테미안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난 것이다.
“분명 제대로 방비를 하라고 일렀건만!”
테미안이 파견한 추격대가 임무에 실패한 듯했다.
카미엘은 패닉에 빠져 있는 그를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역시 역적의 무리는 정규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제 알겠느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입술을 깨문 테미안은 몸을 날리며 외쳤다.
“퇴각하라! 신속히 퇴각하라!”
헥토르는 도망치는 테미안을 보며 외쳤다.
“저놈을 잡아라! 적장의 목을 취해야 한다!”
“와아아아!”
퇴각하는 테미안 군은 카이사르 군의 검에 수많은 목이 달아났고 남은 병력은 전력을 다하여 전장을 벗어났다.
“끝까지 추격하라! 어차피 함선을 불태웠으니 돌아갈 길도 없다!”
환한 미소로 헥토르를 바라보던 카미엘도 몸을 날려 추격전에 참여하였다.
“궁수들은 나를 따르라!”
등에 활을 맨 카미엘은 전력으로 적군을 추격하였다.
전력으로 해변을 질주하는 테미안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전함을 향하여 달리고 또 달렸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해 열심히 발을 굴렸다.
하지만 전력질주를 하던 테미안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였다.
야간작전으로 불이란 불은 모조리 점등시켰다.
헌데 전함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니.
“설마!”
그는 불현듯 갑자기 나타난 헥토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빌어먹을!”
전함에 거의 다 도착한 테미안과 병사들은 불타고 있는 전함을 보며 망연자실하였다.
이대로라면 패주를 할 수도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맞보는 패배의 쓴맛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흘러내렸다.
“으하하하!”
절로 박장대소가 흘러나왔다.
“꼬마아이에게 제대로 당하였구나! 크하하하!”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며 병사들은 체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말없이 검을 꺼내어 앞을 향하여 내밀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신나게 피 맛이나 보다 죽자!”
머뭇거리던 병사들은 그의 확장된 동공을 보자 전의가 옮겨 간 듯, 검을 앞으로 내쥐었다.
“우리만 죽을 수 없다! 저승길 길동무로 저놈들을 데리고 가자!”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적군을 바라보던 테미안의 귀에 다급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미안 님! 전방에 아군으로 보이는 전함이 보입니다!”
등을 돌린 테미안은 멀리서 불빛을 발하며 깃발을 흔들고 있는 전함을 보았다.
분명 자신이 속한 블랙다이아몬드의 깃발이었다.
패주하는 헥토르를 추격하다 역공을 당한 전함이 분명했다.
“모두 바다로 입수하라! 헤엄쳐서 전함으로 돌아간다!”
첨벙!
하나둘씩 잠수를 하여 전함을 향하여 헤엄을 쳤다.
슝슝슝!
날아오는 화살에 병사의 태반이 목숨을 잃었고, 처음 강습을 했던 병력은 어느 새 10분의 1도 남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테미안은 이빨을 깨물었다.
‘다시 만나면 반드시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주마!’
11장 바다에서 만난 그녀(1)
팔란 본성의 영주 집무실.
랭턴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들이 없는 집에 홀로 남은 사지에 나간 자식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심한 놈. 아무리 위급하지만 전령 하나를 못 보낸단 말이냐?”
상황을 뻔히 알고 있어도 편지 한통 없는 아들이 야속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야심한 밤.
조용히 집무실에 인기척이 들린다.
똑똑.
“누구냐?”
혹시나 아들의 안부일까, 노심초사하며 직접 문을 연 랭턴의 동공은 심하게 확장되었다.
“왕세자 전하!”
즉시 부복을 하는 랭턴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늦은 밤 왕세자가 자신을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일어나게.”
그를 일으켜 세운 왕세자는 집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