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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4화)
Chapter 1 피터의 아이들 (3)
“아아!”
단 한 방에 로카는 모든 의지를 상실한 모양이었다. 레토의 발밑에서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더 이상 버텨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레토는 그런 놈이었다.
발가벗겨서라도 숨긴 것을 찾아낼 놈이었다.
레토는 로카의 입에서 가죽 장갑을 빼냈다.
진득한 침이 범벅된 장갑으로 레토는 로카의 얼굴을 때렸다.
철썩! 철썩!
“이젠 내놓을 마음이 생기냐. 새끼야! 하하, 이거 봐라!”
언제 숨겼던 것일까?
로카는 주섬주섬 이곳저곳에서 3실버나 꺼냈다.
“더 나오면 죽는다?”
“…….”
로카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토는 로카의 몸을 모두 만져 본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에리스, 이 새끼 다시 잡아!”
“와, 왕초, 더 없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읍!”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다시 로카의 입으로 쑤셔 넣는 레토를 말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고블린 새끼보다 못한 새끼! 그새 골드에 실버까지 숨겨? 너 오늘 좀 죽어 봐라!”
퍽! 퍽!
“윽! 욱!”
“너 같은 새끼는…….”
영악한 놈은 영악한 만큼 위험하다. 밟을 때 확실하게 밟아 놓지 않으면 언젠가 비수를 꽂는다.
오랜 떠돌이 생활을 통해 레토가 배운 확실한 진리였다.
왕도 낭트라에서 떠나 이따위 전장에서 모라 노릇하며 헤매는 이유도 모두가 로카같이 영악한 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칼을 맞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레토는 왕초로서 절대 로카 같은 놈을 용납할 마음이 없었고, 그것을 제지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레토를 막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만둬요.”
“어스?”
묵묵히 제 일만 하던 어스였다.
피터의 모라인 중에 나이로는 어스가 가장 어렸다. 자연스럽게 어스는 로카 놈에게 항상 끌려 다녔다. 한데 그런 어스가 지금 로카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만둬요. 그만큼 때리고 돈도 가졌으면 됐잖아요.”
“어, 어스…….”
트리톤과 아레스는 어스를 만류했고, 에리스나 다른 아이들은 레토의 눈치를 살폈다.
레토의 말을 거역하는 아이는 누구든 냉혹한 보복에서 넘어갈 수 없음을 알기에 아이들은 어린 어스가 염려스러웠다.
어리다고 넘어갈 레토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레토의 분노에 대항할 아이는 없었다.
“다시 말해 볼래, 어스?”
“그만 놔줘요.”
“……!”
레토가 어스와 로카를 번갈아 봤다. 전혀 아닌 녀석의 대항에 잠시 멈칫한 것이다.
“아저씨가 이런 짓을 한 걸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으실 걸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평소에 말이 없어서 그렇지, 말을 하면 피터 아저씨도 이야기를 들어주곤 할 정도로 생각이 깊은 아이가 바로 어스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대는 피터 아저씨가 아닌 왕초 레토였다.
“이 자식이! 지금 날 협박하는 거냐?”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로카가 다친 것을 알면 아저씨가 왕초에게 물으실 거고, 그렇게 되면 5골드짜리 금화 이야기도 해야 하잖아요.”
“……!”
맹랑한 놈이다.
가장 어린놈이 자신도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로카가 다친 것을 보면 피터는 틀림없이 추궁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금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레토는 금화까지 내놓을 마음이 없었다. 아니, 돈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서도 나와서는 안 된다.
레토 자신도 생각지 못한 부분을 어스가 가르쳐 준 것이다.
“누구든 오늘 이야기를 하는 놈은 죽을 줄 알아! 알겠어!”
“네, 왕초!”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놈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로카 놈이 더욱 거슬리는 레토였다. 바닥에 쓰러진 그대로 애처롭게 올려보는 놈의 눈이 너무 능청스러웠기 때문이다.
“고블린 새끼! 한 번만 더 수작을 부렸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레토의 발길이 사정없이 로카의 아랫배에 박혀들었다.
퍽!
* * *
“나보고 고블린 새끼라고……?”
“…….”
“리자드맨보다 더 추잡한 자식이 무슨! 우리에게나 큰소리치지 조금만 큰 사람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진짜 리자드맨같이 지저분하고 야비한 놈이 그 자식이라고!”
어스의 부축을 받아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은 로카였다.
어스가 개울에서 물주머니에 물을 떠 오는 동안에도 로카는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어스에게 들으라는 의미였다.
“그 자식은 웃는 얼굴로 사람을 잡아먹는 라미아 같은 놈이야! 알아? 피터만 없으면 우리를 들들 볶는 거…….”
“물 좀 마셔.”
“리자드맨 자식! 분명히 그 어미가 라미아고, 그 애비는 리자드맨일 거야! 두고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어스를 보며 로카는 눈동자를 빛냈다.
“킥킥. 두고 봐, 피터에게 일러 버릴 거야. 히히.”
“……!”
“킥킥. 그 자식, 오늘 번 돈을 꿀꺽 삼키려고 작정했거든. 요즘 그 자식, 베누스에게 반해서 돈이 많이 필요할 거야.”
“베누스?”
“왜 있잖아, 낭트 병사들 따라다니는 마차 말이야.”
“집시들 말이야? 서커스는 5쿠퍼면 되는데?”
“풋, 자식. 아직 넌 어려서 모르는구나? 그 집시 마차가 사실은 병사들하고 응응응 하는 데거든.”
“응응응…… 이 뭐지?”
순간, 마시던 물을 뿜어내는 로카였다.
평소에 말이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얼마나 다른 아이들과 대화가 없었으면 집시 마차와 여자들 이야기도 모른다는 말인가.
집시 마차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릴 때부터 이미 낭트 15연대의 진영 주변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 미련한 보데까지도 어떻게 했는지 여자를 안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니, 여자에게 안겨 젖가슴만 빨다가 결국 한 시간 만에 쫓겨났다고 한다.
어쨌든 보데에게 그것은 영광의 전적이었고, 피터의 아이들에게 그것은 모라로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스는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라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면 이놈은 끝까지 모를 놈이었다.
로카는 장황하게 과장을 섞어 가며 자신의 전적도 꾸미며 집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래서 레토가 반했거든. 그런데 그 베누스라는 여자가 보통 비싸야지 말이야. 자그마치 2실버야, 2실버. 하하, 말이 돼? 2실버면 200쿠퍼야! 한 시간 동안 여자 가슴 좀 만진다고 200쿠퍼나 내?”
“……?”
“더군다나 하룻밤 잠을 자려면 5실버래. 하하하, 미친놈이지. 틀림없이 레토 그놈은 미친 거야. 라미아가 낳은 잡종 새끼! 카악, 퉤!”
로카가 뱉은 가래에는 아직도 핏기가 남아 있었다.
우겨 넣은 가죽 장갑으로 인해 볼 안쪽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그 새끼, 피터에게 돈을 뺏기고 나면 죽으려 할걸? 하하하하, 베누스는 보고 싶고 돈은 없고…… 킥킥킥, 아마도 한동안 죽고 싶을 거야.”
“아저씨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려면 로카도 당할 텐데.”
“나? 살짝 말하는데 설마 레토가 알까?”
어스의 눈이 빤히 로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걸 어떻게 삼켜?”
“너, 너, 본 거야?”
어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로카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정도에 당황할 로카는 아니었다.
약간은 어색했지만 어스는 경계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뱃속에 든 것을 누가 알겠어?”
그랬다. 뱃속에 든 은화를 누가 알겠는가.
하루만 지나도 오늘 사건은 잊힐 것이다.
그때 즈음이면 똥과 함께 나온 실버를 찾아 감추면 된다.
물에 씻으면 깨끗할 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어스가 계속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마, 나오면 절반은 네 몫으로 줄 테니. 자식이…….”
그때, 로카는 순간적으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순진하게만 보이는 어스의 눈이 향한 곳은 로카의 배꼽 부위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로카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어스를 생각지 않은 모양이다.
어스에게서 혁대를 뺏어 들면서 로카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틀림없이 혁대는 상납될 것이고, 레토는 날로 삼킬 것이 분명했다.
커다란 금화가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레토는 의심이 많은 왕초였다.
그래서 금화 하나를 품에 넣고 은화 두 개를 삼켰다.
원래는 금화를 삼키고 싶었지만 너무 컸기에 일단 은화라도 삼키려 했다.
아이들이 몰려들고 레토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은화 세 개를 숨기면서 금화 하나는 배꼽 부위에 꽂았다. 허리끈이 묶인 부위였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모라들이 시체들을 뒤질 때 가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 배꼽 부위라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보통 모라가 시체를 털 때는 갑옷이나 멀쩡한 옷을 벗긴다. 이후에 겨드랑이에서 가슴, 옆구리, 다음으로 허리와 허리 뒷부분을 쓰다듬은 뒤에 사타구니와 양쪽 허벅지에 이어 종아리를 살피고 신발을 푸는 수순으로 시체를 털어낸다.
이때, 대부분 배꼽 부위는 허리띠를 자르는 것과 허리 뒷부분을 만지는 것으로 넘어가게 된다.
배꼽 부위는 무엇을 숨기기가 비교적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숨을 쉬다 보면 배꼽 부위가 움직이고 자칫 흘러내리거나 해서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거칠게 움직이는 전장에서 누가 귀중품을 배꼽 부위에 숨기겠는가.
레토도 로카의 배꼽 부위를 그렇게 지나쳤다. 로카의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누구도 모르게 5골드 2실버를 챙긴 로카였다.
그런데 어스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니, 로카는 시간이 갈수록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새끼, 봤어?”
“…….”
“말하면 죽을 줄 알아! 알겠어?”
말없이 로카를 바라보던 어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새끼! 어디 가?”
“…….”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어스를 보자 로카는 다급해졌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서!”
급히 일어났지만 명치가 결려 몸을 펴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아랫배도 심하게 뻐근해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거기 서란 말이야!”
“어스…….”
로카는 말없이 걷기만 하는 어스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말도 없이 자신들과는 다른 곳을 바라보는 놈이었다.
지금도 놈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걷고만 있다.
“어스, 나누자. 내가 나눠 줄게.”
“…….”
어스는 멈춰 서서 해지는 언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쪼끄만 자식이 바란 것이 바로 그거였던 것이다.
왠지 억울한 로카였다.
“하, 하지만 내가 숨긴 것이니 내 거야. 더군다나 내가 보데 자식이 지나치려는 시체를 다시 찾았잖아.”
“…….”
어스는 로카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하긴 혁대에 숨긴 동전들을 발견한 사람은 어스였다.
“그래, 나누면 될 거 아니냐? 1골드 줄게! 야, 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