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드림 1권 (7화)
Chapter 3 엇갈린 아이들 (1)
로카는 레토를 슬쩍 흘겨봤다.
평소와 너무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한둘이나 데려가던 레토가 아이들을 모두 서커스에 데려간다니, 평소엔 생각도 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아이들은 소란을 떨며 레토의 뒤를 쫓고 있었다.
서커스를 하는 집시 마차들이 들어선 공터에서는 놀 몇 마리가 북을 치며 재주를 넘고 있었고, 피에로 복장을 한 영감이 입장객들에게서 동전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작아도 몬스터인데 놀이, 그것도 몇 마리가 함께 재주나 넘다니,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피에로 옆에선 에리스가 위풍당당하게 아이들을 세고 있고, 그 곁의 레토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간혹 로카를 보며 작은 소리로 웃곤 했다.
정말 이상했다.
욕심이 모가지까지 들어찼다고 소문난 레토가 대체 웬일일까?
레토까지 하면 아이들은 모두 23명으로, 1인당 5쿠퍼씩 자그마치 1실버하고도 15쿠퍼나 되는 거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저토록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로카가 알기에 오늘 특별한 수입은 없었는데, 알지 못하는 왕거니라도 주웠단 말인가.
왠지 모르게 질투심과 함께 불안해지는 로카였다. 그런데 숫자를 세던 에리스가 갑자기 인상을 구겼다.
“왕초, 하나가 모자란데?”
“모자라? 누구? 어스? 어스!”
어스였다.
분명히 잘 따라오고 있었는데 어스가 보이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레토는 어스를 챙겼다.
“이 자식들아! 막내조차 못 챙겨?”
“같이 오고 있었다고요.”
언제부터 어스가 막내였던가.
확실히 오늘 레토는 정상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왕초?”
“빨리 누구를 보내서 어스를 찾아와.”
“에에, 지금 서커스가 시작하는데, 누굴 보내지?”
“빌어먹을! 로카 놈은 남아서 어스가 오면 같이 들어가고 나머지 애들은 들여보내.”
“오케이, 왕초!”
에리스는 희희낙락하며 아이들을 들여보냈다.
로카는 죽을 맛이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안 좋은 것은 자신에게 죄다 맡기는 레토였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다가는 정말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겁쟁이 보데가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었다.
“보데, 넌 안 들어가냐?”
“히히, 어린애들은 몰라도 돼.”
“뭐야? 이런 씨……!”
왈칵 짜증이 나는 로카였다.
그러고 보니 큰애들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에리스나 트리톤, 마르카, 보데, 디오르, 아레스는 서커스 텐트로 들어가지 않고 레토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로카, 어스 오면 들어가. 알았냐?”
“알았어요, 왕초.”
“애들아, 가자. 오늘 실컷 재미 봐라. 하하하!”
“유후! 우리 왕초, 최고야!”
시시덕거리며 레토를 따라가는 14살짜리들을 보며 로카는 부러움이나 억울함보다 이상한 마음이 더 들었다.
레토가 가는 곳은 텐트가 아니라 공터 옆의 마차들이 세워진 곳이었다. 집시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여자?’
로카는 왠지 머리칼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싼 여자라도 한 시간 노는 데 30쿠퍼는 내야 한다. 레토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럴 이유가 없다.
더구나 멍청이 보데나 말더듬이 마르카도 데려가고, 모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아레스까지 데려가다니,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데나 마르카보다는 자신이 따라갈 자격이 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텐트 안에서는 음악소리와 탄성,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문득 어스를 기다리는 자신에게 화가 치미는 로카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아니, 기다리기 싫었다.
“피에로 영감, 나 들어갈래요.”
“안 돼. 너네 왕초가 한 명이 더 오면 같이 들이라 했어.”
“아이 씨! 벌써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네 친구를 데려와.”
“친구 아니에요! 그리고 그 자식은 안 온단 말이에요! 왔으면 벌써 왔지. 그러니 들여보내 줘요!”
“난 모른다. 나는 네 왕초에게 돈을 받았어.”
레토를 잘 아는 피에로 영감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는 로카는 쳐다보지도 않고 놀들과 놀고 있었다.
“아, 좀 들어가자고요오!”
“그러니 네 친구를 데려와!”
“아이 씨! 정말 내 친구 아니라니까! 안 봐! 씨팔!”
“뭐야? 저 모라 새끼가?”
“안 본다고, 안 봐! 누가 보고나 싶데!”
로카는 욕설을 해대며 공터 밖으로 뛰어 나갔다.
로카의 뒤로 피에로 영감의 온갖 욕설이 뒤따랐다.
“젠장, 이 새끼는 어디 간 거야? 뒈져 버렸나?”
로카는 오두막에 왔지만 어스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레토의 해먹에 침을 뱉고 발로 차고 별짓을 다 했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기분 전환은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모은 돈만 해도 16골드 9실버 42쿠퍼다.
어스에게 2골드 6실버만 뺏기지만 않는다면 20골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자 어스 놈이 더욱 미워졌다. 어떻게든 돈을 주지 않고 넘길 방법이 있어야 했다.
어스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이내 독립할 때를 그리며 웃고 있는 로카였다.
독립을 하기 위해 가장 큰 걸림돌도 레토였다. 독립할 때까지 50골드를 모으는 것이 로카의 목표였다. 한데 레토가 요즘처럼 감시를 하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누워 있다 보니 레토의 짓거리가 아무래도 찜찜했다.
“대체 무슨 돈이지?”
순간, 로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던 것이다.
화장실을 찾은 로카는 똥을 퍼내는 뒤쪽으로 돌아갔다.
7일에 한 번씩 똥을 퍼내는 구멍은 항상 똥찌꺼기가 묻어 있었지만 로카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속으로 고개를 디밀고 위쪽을 더듬었다.
“……?!”
없었다.
통을 넣는 구멍은 있었지만 돈이 든 통은 없었다.
“으아아…… 이 라미아 새끼!”
레토가 떠올랐다.
어제 똥 속에서 나온 골드를 숨기려 통을 꺼내려다 기척이 들려 멈췄다.
그때, 화장실에 있던 것은 왕초 레토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대 치고 갈 놈이 모르는 척 냄새 난다며 씻으라고 야단을 치더니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갔다.
틀림없다. 그놈이 분명했다. 그때 이미 놈은 눈치를 챈 상태였던 것이다.
왜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눈앞이 캄캄했다.
비로소 레토가 오늘 보여 준 행동이 이해가 되는 로카였다.
통 속에는 어스에게 건넬 몫까지 들어 있으니 거의 20골드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그러니 놈은 오늘 호기를 부린 것이다.
문득 창고 쪽으로 눈에 익은 뭔가가 보였다.
돈을 넣어 둔 통이었다.
“으아아아!”
아무리 고함을 질러 봐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로카는 집시들이 있는 공터로 달려갔다.
도중에 신이 나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만났다.
난생처음으로 서커스를 구경했으니 신이 날 만도 했다. 하지만 로카는 그 모습에 통곡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도 흘려버리고 로카는 달렸다.
* * *
“크으…… 로, 로카…….”
“으아아…… 아저씨?”
로카는 기겁하며 손을 뿌리쳤다. 피 칠갑된 손으로 로카를 잡은 것은 피터였다.
피터의 오두막은 지옥과 같은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저곳에 아이들이 처참하게 죽어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이나 벽은 그 작은 몸뚱이에서 나온 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었다.
“우욱!”
구토가 넘어왔다.
그토록 많은 시체를 봐 왔지만 지금처럼 징그럽고 무서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피터의 상처도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처참했다.
“아, 아저씨……!”
“로, 로카……. 레토는……?”
레토의 이름을 듣자 로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로…… 카…….”
힘없이 손을 뻗는 피터를 피해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로카는 오두막 뒤편으로 달렸다.
살아남으려면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피터는 치명상을 입었고, 집시 여자들과 함께 있는 아이들 외에 먼저 돌아온 아이들은 모두 죽은 것 같았다.
지금쯤 레토와 베누스의 시체도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추적대가 이를 것이고, 시간이 없었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레토가 아니더라도, 레토가 목을 매는 베누스에게 조금이라도 해코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집시의 마차를 뒤진 것인데, 마침 잠든 레토와 베누스를 발견한 것이다.
어떡할까 고민하는 중에 베누스가 깨어났다.
로카의 손에 들린 대거에 놀란 베누스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엉겁결에 대거를 휘둘러 버렸다.
이어서 눈을 뜨던 레토의 벌어진 입에 대거를 박아 넣었다.
죽음, 아니, 살인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침상은 피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로카는 정신없이 오두막으로 달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오두막으로 달린 것인데, 그곳에서는 오히려 더 비참한 일이 벌어진 상태였다.
집시의 마차에 다녀오는 잠깐 사이에 어떻게 이런 비참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피터의 고통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레토의 놀라 치켜뜨던 눈빛과 겹쳐졌다.
그것은 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피터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돌아가 피터를 살펴야 하지만, 지금 로카의 머릿속에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직 집시의 마차에 들어가지 못하고 순서를 기다리던 디오르가 로카를 봤을 수도 있었다.
자칫 오두막도 자신의 소행이라 오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도망치려니 이 밤에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최대한 도망쳐야 하지만 이 밤에 함부로 진영을 벗어났다가는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너무 무서운 상상이었다.
그때, 로카의 머리에 떠오른 곳은 하나였다.
놀의 동굴.
피터의 아이들만 아는 비밀 장소였다.
커다란 고목이 가리고 있어 옆으로 돌아서야만 발견할 수 있거니와, 어른도 허리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었다.
더욱이 그곳에는 큰애들은 모르는 비밀 장소도 있었다.
“어스!”
로카는 반색을 하며 어스의 손을 잡았다가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섰다.
어스의 손이 온통 피로 범벅이었다.
“뭐, 뭐냐?”
“…….”
여전히 말이 없는 어스.
로카는 뭔지 모를 두려움에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피, 피터 아저씨가…….”
“아저씨?”
“아이들도…… 다…… 죽었어.”
어스의 눈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로카였다. 어스가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뒤로 물러서는 로카의 곁을 어스가 스치며 달려갔다.
“어, 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