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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8화)
Chapter 3 엇갈린 아이들 (2)
로카는 오두막으로 달려가는 어스를 불렀지만, 어스의 작은 몸은 어느새 창고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었다.
로카는 잠시 동굴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어스가 나온 동굴에 들어가기가 왠지 꺼림칙했다.
하지만 로카는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이 있는 언덕 위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는지 약간의 소란이 들렸다.
로카는 재빠르게 통로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놀의 동굴은 놀이나 고블린 같은 소형 몬스터들이 파 놓은 동굴로, 입구만 작지 내부로 들어가면 그럴싸한 공간도 나온다. 더구나 이곳엔 지금은 허물어지긴 했어도 작은 방들이 있었다.
한때 피터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생활했다. 그때는 동굴 입구를 가리고 있는 창고가 피터의 숙소였다.
개조한 놀의 동굴에서 전쟁고아나 떠돌이 아이들을 거두어 생활하다가 인원이 많아지고 전쟁이 길어지자 피터는 마음먹고 오두막을 지었다.
당시 로카는 1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 그런 만큼 동굴에 대해서 훤했다.
그런데 동굴 안에서 들어선 로카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공기에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던 것이다.
왠지 머뭇거려지는 로카였다.
어스가 켜 놓은 모양인지 안으로 꺾어 들자 희미한 등불이 동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헉! 누, 누구?”
로카는 기겁하며 비명을 터뜨리는 동시에 뒤로 돌아서 달렸다. 하지만 로카는 다시 멈춰야 했다. 동굴 밖에서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음성이 커지고 있었다. 아마도 동굴 앞인 모양이다.
전혀 낯선 음성들.
이 시간에 이곳을 찾을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데 낯선 음성들이라면, 더욱이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면 그 대상은 자신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집시들이 추적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카는 다시 몸을 돌려 동굴로 들어갔다.
“허엇!”
눈앞에 피로 칠갑을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놀람도 잠시. 입을 틀어막은 로카는 눈앞의 사내를 살폈다. 피 칠갑한 옷은 틀림없이 낭트 군의 장교 복장이었다.
평소에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든 낭트 군의 장교였다.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야?’
베누스부터 시작해서 레토, 그리고 피터와 아이들, 거기에 연달아 어스도 피에 절어 있더니, 눈앞의 장교까지……. 대체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는 로카였다.
비록 피에 절어 있지만 낭트 군의 장교다.
‘진영이 바로 옆인데…….’
왜 이곳에 장교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어스의 손과 옷이 피범벅이었다. 그렇다면 어스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부대에 신고하러?’
피터와 아이들의 시체, 그리고 피에 절어 있는 장교, 그리고 어스.
뭔가 연결되는 것이 있었다.
눈앞의 장교가 피터와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하지만 어스가 피터를 해친 자들을 이곳으로 데려올 리가 없지 않은가.
장교의 부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치명상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누가 이곳으로 이동시켰다는 말인가.
어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저런 치명상을 입고 스스로 움직이기는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또 다른 사람이 있다?
“허억!”
순간, 누군가에 의해 공중으로 뜨는 것을 느낀 로카는 숨도 내쉬지 못한 채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숨소리라도 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온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어서 대위님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카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겨졌다.
복명하는 소리에 이어 장교 복장의 남자와 두꺼운 회색 로브를 걸친 남자가 화급하게 쓰러진 장교에게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주문이 들리면서 장교의 몸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빛이 감싸는 것도 보였다. 이야기로만 듣던 치유 마법이 분명했다.
“잠깐 멈춰라.”
목에 섬뜩한 느낌이 들 때, 처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리고 눈앞에 장교 복장을 한 다른 사내의 얼굴이 로카 앞에 나타났다. 창백하지만 각이 진 얼굴에 무표정의 눈빛을 지닌 사내였다.
로카는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내에게는 거짓말이 안 통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김새는 달랐지만 마치 트리톤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네가 저분을 치료했느냐?”
“네, 네? 네에…….”
허둥대던 로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
하지만 장교의 눈에 어린 것은 의아함이었다.
“네 손에 피가 묻긴 했지만 그것은 치료한 것이 아니구나. 그저 만진 정도에 불과해.”
“아, 아니에요. 그것이…….”
“어떻게 저분을 이곳으로 옮겼느냐?”
“그, 그것이…….”
“뒷산으로 흔적을 만든 것도 너냐?”
“흐, 흔적?”
장교는 예리하게 하나하나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로카로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연달아 나오는 질문에 로카는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사내의 눈빛에서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로카의 목을 감아 왔다. 기분 나쁘고 섬뜩한 느낌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다, 다른 아이가 있었어요!”
장교는 손을 들어 올리며 흥미로운 듯 물어 왔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느냐?”
“부, 부대에 신고하러 갔어요. 장교님이 다치셨다고…….”
“주변은 다 정리했겠지?”
장교의 말에 로카의 뒤쪽에서 대답이 나왔다.
그러는 순간에도 로카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표식대로 근방에 있는 것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좋아, 이동을 준비해라.”
“충!”
“잘했다. 그래, 네 이름은 뭐지?”
“로…… 로카입니다.”
“그래, 로카. 정말 잘했구나. 잘 가거라.”
“자, 잠깐요. 잠깐만 멈춰요!”
왜 그런지 몰라도 장교의 말은 마지막 인사 같았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하는 말처럼 로카에게 들린 것이다.
“대…… 위님이 나도 데려간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
“나…… 중에 사, 상을 준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장교의 눈에 어린 것은 강한 의심과 살기였다. 로카는 장교가 자신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카는 위험을 감지했다.
이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어린아이들까지 살해한 자들이다. 피터와 아이들을 비참하게 죽였으면서 그것을 정리했다고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당장에라도 심장이 멈춰 버릴 것 같았다.
그때, 로카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 그리고…….”
“뭐냐?”
“창고 앞에 사는 아이들을…….”
“……!”
모험이었지만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교의 눈빛이 그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표식을 남기셨다고…….”
하지만 장교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다시 어렸다.
무엇을 실수한 것인가.
로카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조, 조금 있으면 큰아이들이 돌아올 거예요. 그들도 정리해야 해요.”
“정말이냐?”
“지금쯤 집시 마차에서 돌아오고 있을 거예요.”
“우리도 그 표식을 보고 온 것이다.”
장교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 셋이 남아 나머지를 정리하고 모두 귀환한다!”
“충!”
“대위님은 어떠시냐?”
“일단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응급처치가 잘되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 만약을 위해 동굴은 허물고 아이도 데리고 간다!”
“충!”
로카는 비로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너무 긴장했음을 깨달았는지 아랫도리에서 왠지 차갑고 척척한 느낌이 올라왔다.
“아저씨!”
로카의 말을 듣자마자 달려온 길이었다.
오두막의 참혹한 광경 속에서 피터가 쓰러져 있었다. 미약하게 숨은 쉬고 있었지만, 상처도 심각한데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상태였다.
레토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어린 로카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을로 도움을 요청하려 나가려던 어스는 그 순간, 동굴의 장교에게서 떼어 낸 물건이 떠올랐다.
멈춘 심장도 다시 뛰게 했으니 피터에게도 효용이 있을지 몰랐다. 어스는 품에서 꺼낸 두꺼운 가죽 주머니를 열고 장교가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피터의 옷을 풀고 그 물건을 심장이 있는 곳에 올려놓았다.
요행히 어스의 판단은 맞았던 모양이다. 기대하던 현상이 나타났다. 그 장교에게서 나타났던 것처럼 암적색의 기류가 심장 부위에 파고들며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으허허헉!”
“아, 아저씨!”
이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피터가 깨어났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던 피터가 어스를 발견했다.
“어, 어스…….”
“네, 아저씨. 어스예요, 어스.”
“그래…… 어스.”
“괘, 괜찮으세요?”
“아저…… 씨를 일으켜 다오.”
서둘러 정신을 차려야 했다. 머뭇거리다가는 어스마저 죽이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심장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찌 된 영문인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이 사지로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도 아직은 움직일 힘이 남은 것을 보니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가슴에 붙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으음…… 이건 무엇이냐?”
“모르겠어요. 꼼짝도 못하고 죽어 가던 장교가 이걸 심장에 올려 달래서 그렇게 해 줬더니 살아났어요.”
“왜…… 안 떨어지느냐?”
“안 떨어져요? 여기…….”
“허어억! 이, 이리…….”
심장에서 정사각형의 물건을 떼어 낸 피터는 마치 숨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주머니안의 물건을 확인하는 피터의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손이 잘렸는데도 다시 자라났어요. 이상하지요?”
“여, 역시 이것은…… 리…… 멤버 다이스!”
어스의 말과 아직도 남아 있는 암적색 기류는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
‘마나를 먹는다고? 하지만 이 기운은…….’
그랬다. 틀림없는 리멤버 다이스였다.
평생을 그 흔적이라도 찾기를 원했는데, 죽음에 이르는 엉뚱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Chapter 4 리멤버 다이스 (1)
리멤버 다이스(Remember Dice).
기억 주사위, 혹은 메모리얼 다이스(Memorial Dice)라 불리는 살아 있는 마나의 집합체.
전설에 의하면, 이것은 인간이 만든 물건이 아니다.
아득한 옛날, 신족들 중에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존재들이 나타나니, 신께서는 그들을 현상계로 내쳤다.
그들은 신께서 창조하신 현상계에서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상계는 파괴되어 땅거죽과 하늘이 벗겨지고 처참과 황폐함만이 뒤덮었다.
이때, 신께서는 어리석은 반역의 무리를 다시 어두움가운데 내치니 그곳을 마계라 불렀고, 그들을 마족이라 칭했다.
한편, 신의 은총으로 회복된 현상계에는 새로운 질서가 부여되었다.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새로운 질서 가운데 행복했고, 또한 신을 섬기며 기쁨과 만족을 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투기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마계로 쫓겨난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