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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9화)
Chapter 4 리멤버 다이스 (2)
마계는 파괴된 현상계의 황폐한 모습 그대로였고, 그 위에 신의 은총을 제하니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렇기에 밝은 현상계는 언제나 마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다시 현상계를 차지할 방도를 모색한다.
절치부심하던 그들이 방법을 마련하니, 곧 스스로의 피로 자신들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고 현상계로 침투시키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피조물이 바로 마물과 몬스터들이다.
마물과 몬스터가 현상계에 피바람을 일으키며 원망과 한탄의 절규가 사무치자 마족들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믿음으로 힘을 얻는 신족들과 달리 마족들이 가진 힘의 원천은 저주와 사무치는 원한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들은 마계의 문을 부수고 현상계로 뛰어들었다.
이후 현상계의 모든 피조물은 멸절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신족들이 나타나 현상계를 위해 마족들과 부딪치니, 그것을 신마대전이라 불렀다.
하지만 신족들은 마물과 몬스터들을 부리는 마족들의 힘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이에 현상계의 인간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마물과 몬스터들은 너무 강해 당해 낼 자가 드물었다.
이에 신족들은 자신들의 힘을 전수할 존재를 인간들 중에서 찾고 그들에게 힘을 나누어 주었다.
힘을 얻은 인간들이 신족과 함께 동역하니, 결국 마족들을 물리쳐 마계로 유폐시킬 수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 힘의 하나가 바로 리멤버 다이스라고 했다.
전쟁의 막바지에서 마족들은 자신들이 밀리는 원인을 인간들이라 보고 향후를 위해 인간들을 포섭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중 가장 큰 목적은 신족이 만든 리멤버 다이스를 오염시키는 일이었다.
결국 그 작전은 마족들이 마계에 항구적으로 유폐되기 직전, 리멤버 다이스에 마황의 피를 주입시키는 것으로 성공하게 된다.
그것도 마황의 심장에서 빼낸 피였다.
그런 까닭에 마족들이 유폐되고 신계로 돌아가기 위해 리멤버 다이스를 회수하던 신족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리멤버 다이스를 접촉한 하위 신족들이 정신이 혼미해져 같은 신족들을 해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상계를 향한 무차별 공격이 감행되었다.
신족들은 난감함에 빠졌고, 현상계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뒤늦게 밝혀진 원인은 뜻밖에 리멤버 다이스였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하위 신족들은 치료를 받았지만, 현상계를 떠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몸이 이미 마족들처럼 변해 있었고, 신계보다는 마계의 기운에 익숙한 존재로 변형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바로 드래곤이다.
모든 문제는 리멤버 다이스에 있었다.
그 힘이 너무 강력해 현상계에 버려 둘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신계에 가져갈 수도 없었기에 신족들은 결국 그것을 파괴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족들의 힘으로 파괴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신족들의 힘에 각성한 인간들의 힘이 결합되었고, 그 속에 힘의 근원이라는 마황의 심장 피가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신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힘을 나누어 하늘의 영원한 산에 영원히 폐기하는 것이었다.
결국 리멤버 다이스는 모두 열두 개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기 신계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그때 마룡이라 불리는 블랙 드래곤에 의해 조각 하나가 마계로 흘러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마계의 2차 발흥을 주도한 힘이 이 리멤버 다이스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 이때부터 그것은 리멤버 다이스란 이름으로 불렸다. 마황의 충신들이 리멤버 다이스를 다시 조각내어 주사위 모양으로 세상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원래 리멤버 다이스는 신족의 힘을 품은 신물이었다. 하지만 마황의 피에 오염되자 리멤버 다이스는 차츰 마계의 권위[Majesty]가 되었다.
무엇보다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귀물이 리멤버 다이스였다.
이것을 소유하면 죽음에 당면한 사람도 살린다고 알려져 있고, 마나의 운용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특히 마계의 마물을 소환하고 통제하는 데에는 탁월한 힘을 나타낸다고 알려졌다.
다만 일정한 방법이 아니면 오히려 마나가 잡아먹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유명한 사건으로는 100년 전, 문화대륙 테헤란의 식민지였던 아모라스 대륙을 해방시킨 영웅 크레시가 리멤버 다이스의 힘을 얻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전설에 영웅 크레시의 죽음에도 리멤버 다이스가 얽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문에는 지금까지도 크레시의 추종자들이 있어 그것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또한 문화대륙 테헤란의 아크란 제국에서 이 리멤버 다이스를 찾기 위해 아모라스 대륙에 사자들을 보내 100년 동안이나 헤집고 다니는 중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리멤버 다이스는 많은 비밀을 안고 있는 기물이었다.
피터는 탄식을 토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리멤버 다이스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을 쫓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리멤버 다이스의 힘으로 마물을 소환하던 장면을 들켰기에 자신을 살려 둘 수 없던 것이고, 아이들까지 모두 죽여야 했던 것이다.
만약 리멤버 다이스의 힘으로 운용되는 것임을 알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는 서둘러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이 리멤버 다이스라면 더더욱 머뭇거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추적자들은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피터로서는 절대 리멤버 다이스를 넘겨줄 수 없는 일이었다.
피터 자신의 꿈과 평생의 소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스!”
“예, 아저씨.”
그들은 피터가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곳까지 쫓아왔다.
어스가 구했다는 장교도 틀림없이 그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이 어디로 피하든 그들은 끝까지 추적해 올 것이고, 어차피 도주가 불가능하다면 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몸으로는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문득 피터는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 냈다. 어스라면 모험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피터는 어스의 작은 어깨를 굳게 붙잡았다.
“어스, 이것을 절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그걸 왜…….”
“아저씨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지키겠다고 약속해 주겠느냐?”
“하지만 이것은 제 것이…… 아닌데요.”
피터는 새삼스런 눈빛으로 어스를 바라보았다.
나이 많은 아이들이 어린 어스에게만큼은 강짜를 부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아이가 항상 반듯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기에 너라면 믿을 수 있어.’
피터는 따뜻하게 어스를 바라보다 마음을 굳혔다.
“어스, 약속해 다오. 그가 누구든 너는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 그는 이 물건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이 물건을 그에게 주어서는 안 돼. 약속해 주겠니?”
“예에…….”
어스는 피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모깃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풀 죽은 어스의 모습을 보며 문득 피터는 미소를 머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를 끝까지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벌써 심장에서부터 무리가 오고 있었다. 너무 많은 피가 빠져나간 상태였던 것이다.
리멤버 다이스의 효능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임을 피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힘이 있을 때 어스를 숨겨야 했다.
“어스, 탁자를 치워 다오.”
“하지만 먼저 치료부터…….”
“아저씨 걱정은 말고 어서 치워 다오.”
“예, 아저씨.”
큰 탁자는 아니더라도 어린 어스가 치우기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어스는 두 발을 벽에 대고 등으로 탁자를 밀어냈다.
“잘했구나, 어스. 이제 카펫을 걷어 보렴.”
“아저씨, 이건 뭐예요?”
사실 카펫이라 할 수도 없는 얇은 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을 들어내자 나무 바닥에 작은 구멍이 보였다.
피터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어른 하나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한 통로가 있었다.
“아저씨, 이건…….”
“어스야, 시간이 없구나. 아저씨의 말부터 들어주렴.”
“아, 아저씨……!”
어스는 생소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좀 전에 피터가 쓰러져 있을 때도 느끼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온몸을 사로잡았고, 이내 어스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어스. 잘 들어라. 지금 너는 이 속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며칠간은 이곳을 나와서는 안 된다. 알겠니?”
“아저씨…….”
“난 우리 어스를 믿는단다. 우리 어스는 용감하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지만, 어스는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어스. 착하구나. 그리고 이 속에서 나오면 이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렴. 약간의 돈도 준비되어 있으니 너라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게다.”
“……!”
“만일 네가 다음에 혹시라도 히아데스 왕국을 찾을 일이 있다면 이튼 영지를 찾아가거라. 그리고 이튼 영주에게 아저씨의 이야기를 해 주렴. 이 반지가 아저씨를 증명해 줄 것이다.”
“아저씨…….”
피터는 반지와 주머니 하나를 어스에게 건넸다.
며칠 전, 어스가 피터에게 주었던 바로 그 주머니였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어서, 어서 가거라, 어스.”
“아, 아저씨……!”
“어스, 부탁하마. 누구에게도 그것을 보여 줘서는 안 된다. 알겠니? 기억해라, 어스. 다른 아이든 누구든 절대 보여 줘서는 안 돼! 누구에게 빼앗겨서도 안 되고,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해. 알겠니, 어스?”
“네, 아저씨.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겠어요!”
소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큰아이들의 소리였다. 무슨 일인지 아이들이 피터를 부르며 달려오는 모양이다.
“어스, 어서! 어서!”
어스는 피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급한 피터를 얼굴을 보면 따라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왠지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두려움에 어스는 좀체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아저씨, 어스를 버리지 않으실 거죠?”
“그래, 어스. 아저씨는 우리 어스를 버리지 않는단다. 다만 우리 어스를 만나려면 한참을 지나야겠구나.”
“하하, 아저씨와 같이 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좋아요.”
“그래, 어스. 어서 들어가거라.”
“네, 아저씨…….”
피터는 갑자기 어스를 가슴에 끌어안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뒤, 어스가 통로로 들어가자 피터는 서둘러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다시 카펫을 덮었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미련도 없었다. 죽음에 이르러 찾은 리멤버 다이스지만 아깝지도 않았다.
언젠가 어스가 자신이 꿈꿨던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가슴 한쪽이 따뜻해 오며 기쁨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힘을 남길 필요도 없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던 피터는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일으켰다. 상처 부위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약간 인상을 찌푸리던 피터는 탁자의 한쪽 다리 부분을 발로 차 부숴 버렸다.
이젠 놀의 동굴에 있다는 그자를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어스가 나올 때 즈음이면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설혹 리멤버 다이스를 추적한다고 해도 어스를 찾을 리는 없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결심한 피터였다.
오두막 밖으로 나서는 그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차가운 빛을 뿌리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최소한 5클래스는 넘어야 자연스러운 사용이 가능하다는 마법사들의 전유물, 아이스 소드(Ice Swor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