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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14화)
Chapter 6 상행, 그리고 이상한 현상 (2)
“강아지 아니야?”
“아, 웬 강아지지? 아직 젖도 안 뗀 놈 같은데?”
마부석에서 내려 강아지에게 다가가던 보데가 갑자기 몸을 돌려 마차 위로 뛰어올랐다.
“왜 그래, 보데?”
“빌어먹을! 놀 새끼야!”
“놀? 잠깐, 잠깐만 멈춰 봐.”
“위험해! 주변에 놀 무리가 있을 거야, 어스!”
“하지만 놀이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 봤어? 뭘 그리 놀라?”
보데는 머쓱하니 머리를 긁었다.
들개라면 몰라도 놀이 대낮에, 그것도 대로에 나타날 리는 없는 것이다.
물론 대로라 해도 마을 변두리에 놀 몇 마리 정도는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떠돌이들이었기에 그리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너무 늙었거나 세력 다툼에서 쫓겨난 상처 입은 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은 놈들이기에 보통은 사람들을 피했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깊은 밤에나 마을 주변을 배회하며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개나 닭 같은 작은 가축을 사냥하곤 했다.
그렇기에 놀은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몬스터였고, 그만큼 미움을 받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가 늘어나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이기에 사람들은 놀을 보면 가만두지를 않고 끝까지 쫓아 죽이곤 했다.
그런데 마을이 멀리 떨어진 곳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놀 새끼가 혼자 있는 것이었다.
“어, 어스!”
어스가 새끼 놀을 주워 길가로 향했다.
보데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가의 수풀로 다가간 어스는 허리를 숙여 놀 새끼를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슬픈 눈길의 어미 놀이 있었다.
이미 한 팔은 뜯긴 상태였고, 가슴 한쪽도 형편없이 뭉그러져 녹색의 피로 칠갑을 한 암놈 놀이었다.
새끼와는 달리 하얀 털과 짙푸른 복장에 녹색 피가 묻어 수풀과 어우러지면서 구별이 쉽지 않던 것을 어스가 발견한 것이다.
놀치고는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도 족장 다툼에서 패한 암놈 같았다.
가르르…….
새끼 놀은 어미의 품에 젖을 물고 가릉거렸다.
피투성이 상태로 새끼를 가슴에 안은 어미는 슬픈 눈으로 어스를 바라보았다.
“네 동족을 찾아 준다고는 약속 못해. 하지만 죽이지는 않을게. 그러니 걱정 말고…….”
차츰 어미의 눈에서 생명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친 손으로 새끼를 어루만지는 어미의 마지막 눈가에는 슬픔 속에서도 안도감이 묻어났다.
새끼 놀은 어스가 떼어 낼 때까지 죽은 어미의 젖을 물고 놓지를 않았다.
잠시 후, 어스는 어미 놀을 길가에 묻어 주고 출발했다.
집을 출발한 지 보름 만에 물건이 동이 났다.
마차는 한가득 물건들을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달린 작은 가게에 물건을 진열한 지 사흘도 안 되어 대부분이 팔려 나갔다. 싸다고 생각한 것인지 물건들이 삽시간에 빠져나간 것이다.
첫 상행으로 얻은 수익은 경비를 제하고도 27골드 8실버 40쿠퍼나 되었다.
32골드 어치의 물건을 사서 출발했으니 한 번 상행으로 얻은 수익이 87%나 되는 것이다,
“하하하. 베누스, 봐요. 27골드라고요. 불과 한 달도 안 되어서 27골드, 아니, 거의 28골드를 벌었다고요. 하하하!”
보데의 웃음이 커졌고, 베누스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남은 물건을 모두 처리하면 30골드 정도는 순수익이 남을 정도의 대박이었다. 더군다나 25일이 채 못 된 시간에 벌어들인 성과였다.
어려서부터 집시들의 상거래를 지켜보며 살아온 베누스로서도 보기 힘든 큰 이문이었다.
“하하. 보데, 이제 겨우 첫 단추일 뿐이야. 물건은 다 구입했지?”
“물론이지. 질 좋은 것으로 다 구입했어.”
“그럼 내일은 좀 쉬고, 모레 아침에 출발하자고.”
“하하. 오늘이라도 출발할 수 있겠는데 뭐.”
“내일은 신전에 가 봐야지.”
“신전에는 왜?”
“베누스와 에리스를 데려가 보려고.”
“정말 신관님들이 축복을 해 주실까?”
“가 보는 거지 뭐. 하하.”
어스의 어색한 웃음이 싱그러운 밤이었다.
베누스의 품에서는 염소젖을 실컷 빤 새끼 놀이 포만감에 기지개를 켜며 잠들어 있었다.
* * *
“비켜!”
“이건 우리 거란 말이에요.”
“이런 잡놈이!”
“아이고오!”
겨우 용기를 낸 보데가 고삐를 움켜쥐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키야 컸지만 비쩍 말라 덩치는 형편없는 보데가 우람한 덩치의 산적들을 어찌 당하겠는가.
어김없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구는 보데였다.
“어라? 이 꼬마 놈은 또 뭐야?”
무서워하지도 않고 멀뚱하니 마차 안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스의 모습에 산적이 황당한 모양이었다.
“어스인데요.”
“누가 네놈 이름 묻디? 내려, 이놈아!”
“파울로, 그놈도 데려가자. 이런 마차에 있는 것 보니 몸값도 받을 수 있겠다.”
“예, 형님.”
형님이라는 자는 보데와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 꼬마 놈을 데려갈 것이다! 꼬마 놈을 찾으려면 몸값을 가지고 오라고 해라! 가자!”
“예!”
“어, 어스……!”
떠나는 마차를 보자 보데는 어스를 불렀다.
하지만 어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대로 떠난다면 누가 있어 어스를 구해 주겠는가.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다시는 어스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보데는 덜컥 겁이 났다.
후다닥 뛰어간 보데는 달려가던 마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 안 돼요! 어스를 내려줘요!”
끼히이이힝―
어디서 용기가 난 것일까?
달리던 마차 앞을 가로막자 말들은 반사적으로 앞발을 번쩍 치켜들며 멈춰 섰다.
고삐를 쥔 산적과 상관없이 주인을 알아본 말들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이이, 미친놈의 새끼가!”
고삐를 쥐고 있던 파울로가 치를 떨며 욕을 퍼부을 때, 마차 옆에 있던 졸개 중 하나가 튀어나와 그대로 보데의 아랫배를 걷어차 버렸다.
“아악!”
“보데!”
놀란 어스가 보데를 불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속절없이 마차는 다시 출발했던 것이다.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구르던 보데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 얘야, 이제 그만해라. 어쩌겠느냐?”
보데를 측은하게 여긴 노인 몇이 나서 말렸지만, 보데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다시 마차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얘, 얘야!”
끼이히히힝!
두 필의 말이 또다시 두 발을 치켜들며 멈춰 섰다.
또다시 보데가 막아선 것이다.
“어스를 내려 줘요!”
“저, 저런 개잡놈의 새끼! 얘들아, 아예 죽여!”
“예, 형님!”
고삐를 쥐고 있던 파울로가 마부석 뒤에 걸쳐 놓은 클레이모어를 주워 들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이 고블린 새끼, 안 비켜!”
“어, 어스를 놔주면 비켜 줄게요…….”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보데는 그래도 말을 마쳤다.
겁 많기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보데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겁이 났지만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고블린 새끼가! 에잇, 죽어라!”
“잠깐, 파울로!”
화가 난 파울로가 양손으로 들어 올린 클레이모어를 내려치려 할 때, 다시 형님이라는 자가 막았다.
“그 새끼 죽으면 집에 연락할 놈이 없지 않냐?”
“그거야 그렇지요.”
“죽이지는 말고 죽지 않을 정도만 만져 줘라!”
“예, 형님!”
말을 마치자마자 파울로는 들어 올린 검을 비스듬히 눕혀 보데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퍽!
“아악!”
피를 쏟으며 쓰러진 보데를 다시 몇 차례 내려치던 파울로는 클레이모어를 내던지고 발로 차고 밟기 시작했다.
“이 잡놈의 새끼!”
그저 때리는 대로 맞던 보데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파울로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자 파울로는 괴성을 지르며 두들겼다.
“으아아! 이 개잡놈!”
“이, 이보게들, 그러지 말게. 아직 어린아이가 아닌가.”
보데를 따라온 노인들이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나섰다.
하지만 산적들에게 무슨 노소의 구분이 있겠는가.
“이런, 앵앵대기는! 얘들아, 저 늙은이들도 치워라!”
“예!”
하는 짓 그대로 비류들이었다.
산적들은 거침없이 나이 든 노인들을 걷어차고 주먹질을 해 댔다.
애처로운 비명이 터졌지만 누구도 말릴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 칼은 휘두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결국 노인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만해요!”
“어, 어스야! 으흐흐흑!”
급기야 어스가 마차에서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파울로의 발을 부여잡고 두들겨 맞다가 어스의 모습을 발견한 보데는 서럽게 울었다.
“여기 돈 있어요. 가지고 그냥 가요.”
“뭐? 이 콩알만 한 놈의 새끼가? 돈이라고?”
형님이라는 자는 어스의 손에서 냉큼 주머니를 잡아챘다.
촤르르.
못해도 40골드는 되어 보였다.
그야 말로 왕거니를 턴 것이다.
마차의 물건들도 물건이지만, 현금으로 40골드면 장물로 넘길 물건 2, 300골드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파, 파울리 형!”
“으하하하하!”
입이 귀에 걸리며 대소를 터뜨리는 두목, 파울리였다.
장물을 넘기고 당분간은 성읍에서 여자들과 넉넉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얘들아, 그만 가자!”
“예, 두목님!”
“놔! 이 자식아!”
“우리 어스를 내려 주고 가요! 돈도 받았잖아요!”
“하! 이런 놀 새끼! 우리 형님이 데려가신다고 하잖아!”
진드기도 이런 진드기가 없었다.
클레이모어로 몇 차례 두들기다 죽을 것 같아 발로 밟은 것인데,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놓지를 않는 것이다.
“놔주라고 해요. 어허허헝, 제발 우리 어스 좀 놔줘요!”
눈물콧물을 다 뽑으며 사정하는 꼴을 보니 측은하기도 한 파울로였다.
하지만 40골드나 되는 거금을 품에 넣고 다니는 아이를 그리 쉽게 놔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놀 새끼! 이번에는 아예 죽어 봐라!”
퍽! 퍽! 퍼퍽!
“악! 아악!”
“이, 이보게, 제발……!”
바닥에 뒹굴며 신음을 흘리던 노인들도 두 손을 모아 빌며 두목이라는 자를 향했다.
“이런 빌어먹을 영감들이 뭐 하는 짓이야! 얘들아, 아예 명년 오늘을 제삿날로 만들어 줘라! 너무 오래 살아 더 이상 살기가 싫은가 보다!”
“옛, 두목님!”
“이, 이보게들……!”
힘껏 복창한 산적 몇이 무기를 들며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두려움에 뒷걸음을 쳤지만 힘없는 노인들이 무기까지 든 산적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으으으…….”
“아, 안 돼!”
어스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하지만 누가 어린아이의 말을 듣기나 하겠는가.
“으아악!”
노인 하나가 도끼에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잔혹하게도 놈은 곧장 죽인 것이 아니라 도끼로 머리통을 깨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