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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15화)
Chapter 6 상행, 그리고 이상한 현상 (3)
“안 돼요! 안 돼!”
아무리 외쳐도 어린 어스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들 때문이었다.
어스는 가슴이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어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터져 나왔다.
겁에 질린 노인들의 비명 소리와 선홍색 피를 보자 흥분한 산적들은 광소를 터뜨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핫하하하하!”
화아아아아!
노인들의 죽음이 경각에 달했을 때, 갑자기 날아온 불덩이가 무기를 휘두르려던 두 산적을 감싸 버렸다.
“으아아악!”
불꽃에 휩싸인 두 산적이 몸부림치며 땅을 굴렀지만, 누구도 불덩이가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단 두 사람만은 분명히 보았다.
어스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보데와 불꽃이 날아가는 것을 옆에서 목도한 두목이었다.
“이, 이이!”
말을 더듬거리며 손가락을 들어 어스를 가리키던 두목은 그만 마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스의 두 눈 속에 나타난 선명한 불꽃이 마치 자신을 덮쳐 올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두목은 빈 몸으로 내달렸다. 약탈한 것이고 뭐고 없었다.
불덩이에 휩싸인 동료는 구할 생각도 못한 채 산적들도 두목을 쫓아 내달렸다. 마법사가 나타났으니 살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을 단숨에 태워 죽일 정도면 대단한 마법사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스가 쓰러진 노인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어스의 입에서 백색과 선홍색의 기류가 나오더니 노인의 입으로 오가는 것을 보며 보데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견딘 것만으로도 용한 보데였다. 하지만 잠시 후 보데는 억지로 깨어나야 했다.
왠지 어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정신을 잃었던가 보다.
아직도 매캐한 탄내가 나는 가운데 보데가 깨어났을 때, 옆에서 어스가 잠을 자듯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보데는 다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도망을 치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검과 도끼로 무장한 동료가 두 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도 약탈한 것까지 팽개치고 도망쳐야 했다.
자신들은 베울 산맥 서북 지방에서 악명이 자자한 산적들이다. 산맥 근처 영지에서는 병사들도 한 수 접어주는 파울리 산적단. 그 명성이 이번 약탈에 스스럼없이 나서게 된 이유였다.
산적들에게 악명만큼 유익한 것은 없다. 악명이 클수록 대항하는 마을이나 상단들이 적기 때문이다. 파울리 두목은 자신의 악명이 더 커지기를 원한 것이다.
가을걷이를 마치는 이맘때면 항상 약탈질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이번 길은 큰맘을 먹고 나선 길이었다. 간혹 대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마을까지는 약탈을 해 봤지만, 이번처럼 대로 가까이 있는 마을까지 약탈한 적은 없던 것이다.
생각과 달리 그들은 승승장구했고, 두목의 악명도 충분히 날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토록 비참하게 도망치다니.
마법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너무 무력한 자신들의 모습에 황당한 산적들이었다.
하지만 더 황당한 사람은 두목 파울리였다.
사실 근래 세력이 늘어나면서 간이 커지기도 했지만,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있으려니 뭔가를 한 번 정도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대로변 가까이까지 원정 약탈을 나온 것이다.
대로 근교의 마을에서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도 부족하다. 대로변에 가깝다 보니 이웃 마을과 교통이 빈번했고, 그러다 보니 상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경단을 꾸렸기 때문이다.
강한 자경단과 마주치면 아무리 세가 커도 당한다.
그렇기에 새벽에 공격을 했다.
밤중의 이동은 몬스터가 문제였지만 방법은 있었다. 오거의 분비물을 몸에 문지르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접근도 안 하기 때문에 파울리는 간만에 그 방법을 사용했다.
다른 오거라도 만나게 되면 끝장이지만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었다. 과연 새벽 공격에 마을들은 너무 쉽게 무너졌다.
하긴 몬스터도 잠이 드는 새벽에 약탈을 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새벽에 도착하려면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밤중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산적들이 들이닥칠 줄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지난 며칠 동안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약탈을 마치고 나오던 중에 두목 파울리는 마을로 들어서던 마차 한 대를 발견한다. 보물은 아니었지만 탐나는 물건으로 가득한 마차였다.
그런데 부하를 두 명이나 잃고 지난 열흘 동안 탈취한 것들도 모두 잃은 채 도망을 쳐야 했다. 그것도 조그만 어린아이 때문에.
파울리와 동생 파울로는 서로 마주 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눈에서 불꽃이 나와 산적 두 사람을 태워 버렸다니. 더군다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도끼에 두개골이 깨져 죽어가던 노인도 자신의 이상한 행동으로 살려 냈다고 했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시들도 버린, 죽어가던 베누스가 살아난 것도 이상했다. 어스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것밖에 없었다. 에리스의 썩은 머리통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화장실 아래에 있을 때도 불덩이가 폭발하고도 멀쩡했다.
어리지만 생각이 깊은 어스에게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보데가 시끄럽게 떠벌리는 소리도 부담이고 눈빛도 부담이지만, 자신도 기억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그것이 더 큰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어스였다.
보데도 비로소 그것이 느껴졌는지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런 어스가 보데는 이상하기만 했다. 보데에게는 자랑스럽고 좋기만 한 어스였기 때문이다.
“헤헤. 어스, 그나저나 우리 이젠 부자다.”
“그냥 주고 오자니까…….”
“네 말대로 다 주고 왔잖아. 하지만 마을 어른들이 챙겨 주는 것을 어떻게 놓고 와. 억지로 실어 주셨단 말이야.”
“알았어. 일단 마차가 찼으니 집으로 가.”
한마디에도 움찔하는 보데를 보자 어스도 말을 돌렸다.
“헤헤. 그래, 어스. 집으로 가자. 에리스도 보고, 베누스도 보고…… 헤헤, 다들 좋아할 거야. 오늘은 그럼 이란의 집에서 자야겠다. 그치?”
“응, 오랜만에 이란의 집 아주머니 요리도 먹고.”
“그래, 헤헤. 난 베누스가 만들어 주는 음식 말고는 이란의 집 아주머니 음식이 제일 맛있더라. 어스, 넌 어때?”
“나도…….”
어스는 자꾸만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상념을 떨쳐 버리고 보데와 함께 마부석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두 말, 에크와 보크는 두 주인의 수다에 아랑곳 않고 제 갈 길을 찾아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이미 2년이 넘게 같이 다니다 보니 이젠 알아서들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 해거름의 태양이 지는 곳에 이란의 집이라는 여관이 보이고 있었다.
* * *
“……!”
어스는 의도하지 않게 잠이 깼다.
잠결에 누군가의 비명을 들은 것 같았다.
아직은 쌍둥이 달 중 하나인 어센드도 서쪽으로 넘어가지 않은 시간. 태양은 어둠 속에서 동쪽 하늘로 부지런히 달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깊은 잠에 빠진 보데를 보자 문득 부러움이 드는 어스였다.
요 이틀간 어스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고, 속삭이는 이야기도 귀에 생생히 들어와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날 이후로 이상해진 어스였다.
비명에 이어지는 소리를 따라 여관에서 나와 보니 뒤편의 화목용 숲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끼리 서로 싸우는 모양인가 보네? 아무리 새벽이라도 대로변까지 몬스터들이 나오다니.’
어스는 망설였지만 결국 숲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분명히 어린애의 우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숲에 들어선 어스가 처음 발견한 것은 놀과 그렘린 무리가 사람들을 놓고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돈을 아끼려 마을 입구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던 일가족이 그렘린 무리에게 습격을 당한 모양이고, 이후 피 냄새를 맡은 놀이 달려온 모양새였다.
그렘린 십여 마리는 놀 무리를 경계하고 있었고, 나머지 십여 마리는 텐트 주변을 돌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어스가 비명을 듣고 나온 것은 불과 10분 미만이었다.
그런데 그사이 어른들은 피를 흘리며 죽은 상태였고, 이십대 초반의 여자 하나만이 갓난아이를 안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목가를 물린 모양이다.
목에서 피가 흘러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끌어안은 채 다가오는 그렘린을 향해 대거를 휘두르던 여자는 이내 어지러운 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를 위해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너무 많이 흘린 피로 인해 결국에는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 위로 그렘린 세 마리가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전형적인 그렘린의 공격 방식이었다.
7, 80센티미터 내외의 작은 키로 인해 그렘린의 공격 방법은 단순했다. 먼저 다리를 공격해 도주할 수 없게 만들고, 이후로 가장 약한 목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다 쓰러지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방식.
수만 많다면 병사들의 진영에도 겁을 내지 않고 공격하는 놈들이 그렘린이었다.
어스는 머뭇거릴 틈이 없어 바닥에 돌을 들어 던졌다. 깜짝 놀란 그렘린들이 몸을 사렸지만, 불과 11살짜리 어린아이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아랑곳하지 않고 기괴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렘린들은 어스마저 욕심을 내서 놀 무리들을 철저히 막았고, 그러던 중 여자를 공격하던 두 마리가 어스 곁으로 다가왔다.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어스가 주춤거리며 물러설 때, 여자의 가슴에 안겨 있던 갓난아이가 그렘린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히려는 것이 보였다.
손쓸 틈도 없었다.
“아, 안 돼!”
그때, 비명과 함께 텐트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와 그렘린을 끌어안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여덟아홉 살 정도 된 사내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힘으로 자기만한 몬스터를 어찌 이기겠는가.
뒤에서 감싸고 있기에 겨우 버티고는 있지만, 이미 아이의 팔은 그렘린의 발톱에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어스는 너무 화가 났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할 일이 없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돌아서 내려가려는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찢었다.
“아아앙!”
갓난아이의 머리통이 그대로 먹히려는 장면이 어스의 눈에 들어왔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순간, 어스의 눈이 뜨거워지더니 피눈물이 터졌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며 터질 것 같은 극통이 밀려들었다.
그때, 갓난아이의 머리통을 물어뜯던 그렘린이 녹색 불덩이에 맞아 순식간에 잿더미로 타올랐다. 산적들에게 쏘아졌던 붉은 불덩이와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 그만큼 온도가 높은 불꽃이라는 의미였다.
어스의 눈길이 향하는 곳마다 두 덩이의 불꽃이 날아갔고, 이내 불덩이는 모든 몬스터들을 사르고 있었다.
“어스, 어스, 어딨냐? 어스! 야! 어스, 뭐 해?”
새벽같이 나간 어스는 여관 뒤쪽의 화목용 숲에 있었다.
아무리 대로 주변이라도 새벽녘에 나오는 것은 위험했다.
놀과 같은 소형 몬스터들은 어디든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놀은 마을 주변에서 서식하면서 집을 나온 개나 가축들을 공격하곤 해서 늑대나 들개보다 더 고약한 몬스터였다.